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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작가 : 윤준식 YOON
작품등록일 : 20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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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소설 (Novela)
작성일 : 22-01-23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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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소설

 

 “난 [명심보감]을 보고 깜짝 놀랐지. 우리 스페인에서도 그와 비슷한 시기, 유사한 내용으로 후안 마누엘이 쓴 [루까노르 백작]이라는 책이 있는데,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금쪽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네.

 

 그 책도 기본 철학과 사상, 그리고 대화 형식은 동양에서 온 것이니, 그 뿌리가 페르시아나 인도까지 뻗어 있다고 말하고 있지. 말하자면 기존 서양의 책과는 다르게, 여러 상황에 따라 사람이 적절히 행해야 할 도리를 제시하는 아주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네. 그러다 보니, 오래 전부터 우리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지침서로 내려오고 있다네.

 

 이런 이곳 사람들에게 [명심보감]은 미지의 책이었지. 고려라는 나라는 전혀 듣지 못 한 나라였으니, 내용은 물론이고, 멀리서 전해졌다는 그 자체로도 다른 책들과는 비할 바 없이 흥미를 끌었지.

 

 이 책은 나 개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게, 내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오.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를 알게 되었고, 공자와 장자를 비롯, 동양의 많은 현자들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었소.

 

 사실, 선과 악, 그리고 자연의 이치와 하늘의 뜻에 대한 공자와 장자의 말은 나의 세계관, 우주관과 다르지 않았으니, 내 책 [돈키호테]에 무리없이 담아놓을 수 있었던 것이오.”

 

 석희는 세르반테스가 [명심보감]을 접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 내용과 철학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음에 크게 놀랐다.

 

 “[돈키호테]가 허황되고 웃기는 이야기들로 만 채워져 있다 알려져 있는데, 심오한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니, 대단히 놀랍습니다. 거기에다 [명심보감]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니, 더욱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게, 현자들이 말하는 경구를 포함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저는 단순한 이야기들의 나열이라고 만 생각했는데….”

 

 “소설이란, 아니 문학이란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단지 내포하는 것이지. 말하자면, 간접적인 표현이라고나 할까?

 

 [명심보감]이 어떤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답을 제시한다고 보면, [돈키호테]는 생각할 수 있는 수많은 여지, 즉 생각의 공간을 제시하는 것이 다른 것이오.”

 

 “저를 비롯한 동양인들에게는 [명심보감]의 제시 방법에 훨씬 익숙합니다. 집에서나 서당에서 늘 우리는 어른들이, 훈장님이 가르친 대로 따라야한다고 교육받았습니다. 그들은 항상 옳다는….”

 

 “하하. 그것이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소. 이미 정해진 진리라는 것을 외우고, 그것을 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점점 다듬어 나가는 방법이 동양의 방식이라면, 미리 정해놓지 않고, 끊임없이 제시하고 논쟁과 토론을 통해, 정해지지 않은 어떤 의미에 도달하고자 하는 게 서양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군.

 

 가치란 정해지지 않았으며,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늘 변화할 수 있는 그런 것이겠지. 플라톤도 그렇고, 단테도 그렇고, 그들이 쓴 [연회]라는 것이, 모두 이런 대화와 토론을 전제로 하는 책이라네.

 

 물론, 이런 차이는 교육하는 방법에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겠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주입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즉각적이고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오래 자리를 잡지는 못 하지. 그냥 단순한 암기식 공부일 뿐, 몸에 배어 나오지 않으니 말이네.

 

 따라서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 간접적으로 그 의미를 전달하느냐를 고민하는 게 서양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교육이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것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은 다 한다고 보네.

 

 동양은 제시할 내용에 충실했던 반면, 서양은 제시하는 방법에 더욱 고민을 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새로운 소설을 쓰시겠다는 말씀도, 그 제시하는 방법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내가 말하는 새롭다는 것은, 새로운 기법이라고 말하는 것도 틀리지 않네.

 

 아까 자연에 대해 말하다가 말이 여기까지 왔군. 하여튼, 나는 자연이라는 것에 모든 것의 답이 있다고 보네. 모든 것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고, 자연은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이지. 아니, 자연 자체가 문제이면서 답이라고 할까?

 

 사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각각의 문제는 특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특별한 것에 대한 해결 방법도 나오는 것이니, 각자가 문제 풀이를 위해 행하는 인위적인 행위도 잘 보면, 역시 자연 속에서 이뤄진다는 뜻이네.

 

 이런 생각이 동양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의 개념과 맞닿는다고 볼 수 있네. 우리가 흔히 왜곡되기 전의 완전한 자연을 말하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자연은 완전한 자연의 왜곡이 아닌, 처음에 만들어진 자연의 연장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소.

 

 인간이 아무리 인위적인 행위를 해도, 결국 자연 안의 일이니까. 물론, 약간 불안전하여, 움직임과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오. 발생하는 문제도 늘 달라지고, 답도 늘 달라지는 것 말이지.”

 

 “동양과 서양이 많은 다른 점을 보이지만, 인간이라는 공통점 속에 기본적인 뿌리는 같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소. 그리고 [명심보감]이 동양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고, 각 학교에서 공부하는 필수교재라는 사실은, 동양 사람에 대한 나의 관심과 존경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소.

 

 그동안 나는 우리 것에 만 심취해 있었지. 지중해를 넘어 다른 세상에서도 인생에 대해 그렇게 깊이 다루고 있다는 것, 발전된 문명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못 했던 게 사실이지.

 

 오히려, 역사 상 동양은 간혹 서양을 침략하는 야만인 정도로 여겼을 뿐, 그들에게 깊은 종교적, 철학적, 학문적 바탕이 있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했소.

 

 특히, 서양에서는 시와 시의 본질을 통해 인생을 논하고, 글쓰기와 연설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면서, 문학과 예술, 그리고 역사와 철학을 논하는 것이 그리스 시대로부터 내려온 전통이지만, [명심보감]을 통해 만난 동양은 사람의 마음가짐, 즉 군자의 도리를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하고 있었소.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서양 문학과 예술, 그리고 지식의 근본적 화두였다고 보면, 어쩌면 동양은 실질적인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소. 제시된 답을 삶 속에서 실천만 하면 되는 실용적인 단계 말이오. 물론, 학교에서 가르치는 책이기에 그런 점이 부각된 것도 있겠지만….”

 

 석희는 세르반테스가 천재적인 머리에 대단한 석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로부터 내려오는 서양의 책들을 읽고, 이해하고 있었으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스페인에 들어오는 정보와 지식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책을 읽으면서 늘 책이 나온 바로 그곳, 현장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네. 호기심이 발동하면, 책을 떠나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안되는 성격이라, 동양, 특히 중국과 고려라고 하는 나라에 꼭 가고 싶어졌소. 아니, 난 꼭 가야겠소!

 

 다른 사람들은 동양의 금, 은, 보석, 그리고 예쁘고 상냥한 여성을 말하면서 그곳에 가고 싶다 말하지만, 난 오로지 책의 세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잖소. 하하하.”

 

 그는 한 바탕 웃고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석희는 그가 고려에 가고 싶다는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일반 서양 사람들이 동양을 찾는 물질적 이유와는 별개의 관심을 갖고 있소. 그것은 동양이 갖고 있는 엄청난 정신세계를 발견하는 것이고, 나의 발견은 두고두고 서양의 정신문화 전반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 확신하오. 나는 꼭 가서 그것을 배우고 싶소.”

 

 세르반테스의 말은 길어졌다. 어느새 해는 사각의 정원 벽 다른 면을 비추고 있었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책장 쪽을 비췄다. 빛이 강하다 보니, 햇빛이 닿지 않은 공간과의 대비가 대단히 컸다. 대화 중에 이사벨은 여러 번 차를 가져와 대접했고, 석희는 세르반테스와 맞장구치면서 제법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훈은 내용보다는 이상하게 생긴 노인의 말과 몸짓이 흥미로운 지, 유심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더 길어졌으며 자신이 레판토 해전에 참가한 이유, 그리고 거기서 왼손에 부상을 입었던 이야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고향을 떠나, 스페인의 이곳저곳, 특히 톨레도를 비롯, 세비야, 그라나다, 마드리드, 바야돌리드, 부르고스, 발렌시아, 그리고 바르셀로나에 간 이야기도 했다.

 

 시에라 네바다 산에 들어간 이야기, 몬떼시노스 동굴에 직접 들어간 이야기, 어떤 호수의 섬에 갔었던 이야기 등 자신의 작품 속 장면들을 위해 직접 탐사했던 것을 열심히 말해주었다.

 

 순전히 돈 때문에 스파이로 포르투갈에 갔었던 이야기도 했지만, 더 흥미있는 것은 이태리에 간 사연이었다.

 

 스승과의 불화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하마터면 감옥에 가야하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었고, 그것을 피하려는 이유로 미련없이 떠나기도 했지만, 기왕 이태리에 갈 바에야, 아꽈비바 추기경과 함께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단호하게 결심했다고 한다.

 

 특히, 추기경과 가야만 원하는 여러 지역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라 말했다. 이태리에서는 피렌체, 나폴리, 로마, 시칠리아, 사르데냐, 롬바르디아 등 기회가 닿는 대로 이동을 했는데, 단테, 페르라르카, 복카치오 등의 현장을 밟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말했다.

 

 특히, 로마 이후 각 지역으로 나눠진 이태리의 통일을 기원하며 피렌체며, 로마, 베네치아, 볼로냐 등 전국을 떠돌아다녔던 단테처럼, 그리고 그의 [신곡]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자취를 꼭 직접 보고 싶은 갈망이 세르반테스를 이태리로 이끌었다고 했다.

 

 레판토 해전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도, 호메로스가 읊었던 트로이 전쟁의 현장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스를 넘어 터키까지 가서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헥토르와 파리스,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영혼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들은 인간이면서 신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니, 세르반테스는 신이 된 영웅들의 위대한 비결을 듣고 싶었다고 했다. 이미 시대는 그 영웅들을 잃었고, 동시에 인간이 갖고 있던 신성성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돈키호테의 모험은 무모한 것으로, 비웃어버리곤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야 말로, 잊혀진 인간의 위대성을 회복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테네의 파르나소스 산에 가서, 수많은 문인들이 얻은 영원한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고도 했다. 투르크 군에 맞서 비잔틴 제국을 지키는 백기사 띠란떼의 뒤를 잇기 위해 직접 전투에 참여했다고도 말했다.

 

 한편, 이태리와 그리스를 넘고, 이집트와 아랍, 페르시아를 넘어, 이제는 동양에서 자신의 지적 원류를 찾고자 한다고도 말했다.

 

 석희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단한 집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집념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행동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었다.

 

 [명심보감]과 고려라는 나라에 대해 기억하는 것도, [명심보감]을 품은 동양, 그리고 고려에 꼭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런 그의 성격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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