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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작가 : 윤준식 YOON
작품등록일 : 20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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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무라이 (Samurai)
작성일 : 22-01-23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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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사무라이

 

 “180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의 단장은 하세쿠라 쓰네나가였습니다.

 

 마사무네 휘하에 있는 사무라이이며,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참전하는 등, 전투 뿐 아니라, 항해술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쓰네나가는 어떤 사람이오? 지난 번 세례식에서 봤을 때, 그에게서 보통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대단한 기운 같은 걸 느꼈소.”

 

 “네,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물론, 분명한 사무라이입니다. 사무라이라고 하면, 어르신께서 쓰네나가를 보고 처음 느끼셨다는 그 분위기 바로 그것입니다. 주군에 대한 충성, 절제와 단호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사무에와는 비록 세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처음부터 지원해준 그를 주군으로 따르고, 충성을 다하는 사무라이 중의 사무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기사들이 어떤 목적과 맹세를 갖고 전쟁에 나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무라이들은 어떤 명분보다도 주군의 뜻에 따라 목숨까지도 내놓는 충성도가 중요합니다.

 

 약한 자를 위해서,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전투를 하는 멋진 신사, 정의의 신사가 돈키호테라면, 사무라이는 이기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습니다. 자신이 아니라, 주군이 명하는 바를 따르고 승리하는 것만이 명분이고 명예입니다.”

 

 “아, 그렇군. 그대가 말하는 사무라이와 내 소설에서의 기사 돈키호테를 비교하기는 어렵군. 사실 돈키호테라를 기사의 표상으로 볼 수는 없소. 그는 이 땅에 존재했던 중세의 기사와는 거리가 먼 존재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돈키호테는 원래의 기사와 다르다는 뜻인가요?”

 

 “그렇소. 원래 서양의 기사라는 게, 사무라이의 그것도 아니지만, 돈키호테가 보여주는 그런 기사도 아니오.

 

 기사라는 것은 우리 시대에 존재하지 않소. 다만, 작품 속으로 들어온 기사라고나 할까? 중세의 기사와는 사뭇 다른, 허구화 된 존재인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그대가 말하는 무시무시한 사무라이가 이미 존재하지 않고, 수백 년 세월이 지났을 때, 그 존재가 작품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오.

 

 사무라이의 복장은 싸움을 위한 것보다는 여인을 유혹하는 옷이 될 것이고, 그에게 주군에 대한 목숨을 거는 맹세보다 한 여인에 대한 맹세와 사랑 이야기가 빠지지 않을 것이오.

 

 돈키호테는 바로 이렇게 변형된 가공의 기사인 것이오. 신을 위해 멀리 십자군 원정을 떠나던 기사들, 이교도를 물리치겠다고 맹세의 대상으로 삼은 성모 마리아 자리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올려놓고, 멋진 폼으로 그녀를 위해 목숨을 거는 따위는 일종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뜻이오.

 

 이러니, 돈키호테의 모습이 현실의 사람들에게는 웃음을 자아내지 않겠소? 말하자면, 현실에서는 그런 옷을 입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어투와 말을 하지도 않을 것이며, 스스로 상정한 여인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인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하라고 말하니, 요즘 사람 그 누가 그렇게 하겠소?”

 

 “그렇다면, 지금은 기사가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소. 그것은 지난 세월의 일이고, 단지 이야기로 꾸며진 기사 만 있을 뿐이오. 요즘의 기사 작위는 아무나 줄 수는 없고, 단지 왕실에서 주는 정도의 형식 만 남았으니, 겉모습 만 그렇고, 몸과 마음은 약한 존재가 된 것이오. 이를 사람들은 궁중기사라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비하하기도 하오. 전투력을 가진 존재도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영웅도 아닌, 단지 집안의 혈통과 유산으로 받은 작위일 뿐이오.

 

 물론, 마을과 마을로 다니다보면 자기 자신을 기사라고 하는 사람들을 지금도 있는데, 그것은 가짜 기사라고 보면 될 것이오. 단지 돈 있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한량질에 불과한 것이니….

 

 그리고, 요즘 세상에 각자 사랑하는 여인이 가장 예쁜 것이지, 자신이 예쁘다고 보는 여인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요할 수는 없소. 상대성의 시대에, 마치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누가 정상으로 보겠소. 게다가 보여주지도 않고 둘씨네아를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인정하라니 말이오.”

 

 “네, 기사나 사무라이에게 쓰일 명예라는 단어의 개념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중세 기사에게는 종교적인 명예가 있었고, 돈키호테에게는 둘씨네아에게 바치는 그런 명예였을 것이지만, 사무라이의 명예는 주군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쓰네나가는 그런 면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기독교도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비록, 사절단 파견의 목표를 비밀에 붙였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사절단을 보내면서까지 자신이 선택한 기독교적 신앙을 지키려는 키 작은 외눈박이 마사무네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생명을 걸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온 쓰네나가의 용기와 충성심이 이 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 같소. 특히, 키 작은 외눈박이란 마사무네의 별칭인 것 같은데, 키가 작고 외눈이라는 것 자체가 주는 이미지는 기사소설에 아주 좋은 소재가 될 듯하오. 일본에는 사무라이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내가 그것들을 수집할 수 만 있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소설이 나올 것 같소.”

 

 대화를 하면서 석희에게 비친 세르반테스는 그야말로 뼈 속까지 소설가였다. 석희가 경험한 이야기, 그가 말한 모든 것은, 세르반테스의 귀와 눈을 통해 온통 소설의 장면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세르반테스가 말하는 스페인의 현실은 석희에게 소설이었고, 석희의 이야기는 세르반테스에게 소설이 되었던 것이다.

 

 “아, 미안하오. 내가 워낙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사람이라...... 그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잠시 내 세계에 빠지고 말았군. 그런데, 그대는 기독교 전도사이기도 하지만, 조선인이기에 쓰네나가를 만나고, 여기까지 동행하기에는 불편함이 많았을 것 같소만….”

 

 “제가 쓰네나가를 처음 만날 때, 저는 이미 전도사의 서품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말하자면, 스페인 및 포르투갈 신부들처럼 사제의 옷을 입고있는 모습으로 그를 만났습니다. 조선인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제의 이미지로 만난 것입니다.

 

 게다가 다행인 것은, 그가 마사무네 휘하에서 이미 기독교도였기에, 제가 조선인이라는 것은 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번 사절단은 마사무네와 루이스 신부의 작품이라, 방문 단장은 루이스 신부였고, 쓰네나가는 부단장인 셈입니다. 저는 전적으로 루이스 신부를 비롯한 많은 사제들과 어울리는 상황이고, 쓰네나가 등 일본인들은 제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줘야 소통할 수 있기에, 충분히 저의 영역이 보장된 상태입니다. 덕분에, 제가 선발한 조선인들도 차별없이 이 번 여행에 임하고 있습니다.”

 

 같은 배에 탔지만, 배가 일본의 영토에 있을 때와 센다이를 떠나 공해 상으로 나왔을 때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고 있음을 석희는 느끼고 있었다. 루이스 신부가 사절단 전체의 책임을 맡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외국인 신부에 불과했음으로 일본 내에서는 그의 입지가 부각되지 않았지만, 태평양에 나오고, 멕시코와 스페인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일본인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출신의 사제들 숫자가 많기도 했지만, 낯선 땅에서 매일 매일 닥치는 일들이 일본인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했고, 그들의 목숨 또한 자신이 보호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음을 알기에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낯선 땅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은 일본인과 조선인 간에 있었을 상호 반감까지도 녹일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고 석희는 생각했다. 힘을 합해야 만 생존할 수 있다는 현실은, 서로 말하지 않고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양측 간 소통에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석희의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일본에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에게는 쓰네나가보다도 석희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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