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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작가 : 윤준식 YOON
작품등록일 : 20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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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미션 (Misiones)
작성일 : 22-01-23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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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미션

 

 히데요시의 치하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있었지만, 권력이 이에야스로 넘어가면서 그 양상은 심해졌다. 권력의 이동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대립과 피바람은,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강력한 탄압으로 번졌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일본의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했다가 실패했던 사절단 파견을 포기하고, 일본 내에서는 무시 못 할 세도가였으며 신실한 기독교도인 마사무네에게 요청하여 사절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비센떼 권, 즉 성빈 형과 저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함께 갈 생각이었습니다. 루이스 신부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습니다.

 

 따라서 배를 짓고, 출항 준비를 함께 했습니다만, 출발을 바로 앞두고 일본의 예수회 본부로부터 조선의 기독교 대표로 임명받은 비센떼 권이 포교를 위해 직접 조선으로 들어가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됩니다.

 

 예수회 소속으로 포르투갈 출신인 프란시스꼬 빠체꼬 신부와 함께 우선 북경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조선의 북쪽 변방을 통해 들어가 포교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본과의 전쟁 후, 남쪽은 경계가 심하지만, 상대적으로 북쪽은 감시가 약하고, 접근이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임무를 받은 비센떼 권은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 1612년 북경을 향해 먼저 출발했고, 저는 1613년 배가 완성된 후 루이스 신부와 동쪽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비센떼 권과 저는 헤어지기 전 만나, 꼭 조선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성빈 형은 중국에서 조선으로 들어가 기독교를 알리고, 서양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하듯이 조선에서도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으며, 저는 유럽으로 가서 조선을 알리며, 교황청에도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말하자면, 같은 사절단이지만, 일본인들은 일본인대로, 저희는 저희들대로 나름의 임무와 계획을 갖고, 한 명은 서쪽으로, 또 한 명은 동쪽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대단한 계획이군. 단 두 사람의 결의가 한 나라 전체를 변화시킨다는 장대한 포부가 아닐 수 없소. 몸은 비록 전쟁포로로 끌려왔지만, 그래서 조국에 대해 원망 만 할 것 같은데도, 오히려 자신들의 상황을 이용해서 나라를 구하려는 마음은 대단한 생각인 것 같소.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대들에게는 나라와 부모를 우선 시하는 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오. [명심보감]의 몇 몇 대목이 그대가 말하는 중에 내 머리 속을 스쳤소.

 

 나는 동양에서 말하는 충효라는 것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모든 일에 효가 우선이고,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일을 먼저 한 후에야, 비로소 공부를 하라는 가르침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소.

 

 큰 이상의 실현이 아니라, 자신의 부모에 대한 효를 바탕으로, 형제 간의 우애, 부부 간의 도리가 가정과 이웃, 국가로 확장된다는 가치관 말이오.

 

 ‘아버지가 부르거든, 밥을 먹는 중이라도 밥을 뱉고 즉시 대답해야 한다’는 구절이 생각나오. 동양에서 말하는 효의 단면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표현 같아 대단히 흥미로웠소.

 

 그 책을, 우리 말로는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는 보배 같은 거울’로 풀이했는데, 결국 매일매일, 그리고 매 순간 거울을 본다는 뜻일 테고, 나는 그런 행위 자체가 삶의 수행에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하오.

 

 우리가 성경에서 인용하듯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마음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거울에 비춰보면서 살아가는 [명심보감]의 자세와 통한다고 생각되오.

 

 서양이나 동양이나 겉으로는 다른 것 같아도, 깊이 들어가면 같은 뿌리에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소.

 

 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에서도 그리고 그리스에서도, 터키와 알제리에서도, 결국 사람들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소.”

 

 “네, 잘 이해하고 계시는군요. 저희들은 어릴 때부터, 충과 효에 대해 배우고, 실천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제가 태어난 조선은 가난하기도 하지만,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늘 전쟁과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온 강토가 초토화된 것은 물론, 개인과 가족, 그리고 친척과 이웃, 마을과 나라가 온통 황폐되었습니다.

 

 이렇게 외부의 침략이 많은 나라에서는 내부적으로 단결하고 협력해야 생존할 수 있는데, 오히려 나라가 힘들 때 안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나라가 망할 때, 그 원인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부의 분열에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서쪽, 동쪽, 북쪽, 남쪽의 세력들이 반도에 들어오면서, 반도국에 살아가는 우리의 성향도 다양해진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우리 각자의 내부에 어떤 또 다른 성질들이 있어, 무의식적으로 표출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충과 효라는 개념은 알고 보면, 이런 내부 분열을 극복하고, 일치단결하는 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더욱 강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만 치우치면, 분명히 외세로부터 공격을 받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역사적 교훈이, 결국 충과 효라는 개념을 가장 중시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오. 세상일에 있어서 우선은 개인의 행복이지만, 나라가 안정되어야 각 개인과 가정도 안정될 수 있는 것이오. 모든 사람은 그냥 내버려 둔다면, 누구든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서로 의견이 다르고, 방향도 다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오.

 

 결국은 그런 개개인을 하나로 묶는 사상과 철학이 필요한 것이오. 이것을 인위적인 힘으로 묶겠다는 것은 또 하나의 억압이지만, 삶 속에 기본 사상으로 자리잡게 해준다면, 그야말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그런 기본이 무너지면서 주변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조선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는 아까 말한 이유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소.

 

 여기 스페인도 같은 반도국이오. 더 많은 이민족들이 들어왔다, 머물고, 물러났소. 그대가 말한 그런 속성들이 늘 잔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소. 늘 분열의 소지가 있는 나라인 것은 맞소.

 

 다만, 스페인이 세계로 진출하게 된 것은, 국가적 통일을 달성한 게 큰 계기가 되었다고 보고 있소. 이민족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종교를 통해 분리된 왕국과 사람들의 단합을 외쳤소.

 

 종교와 종교 간의 대결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결국은 한 종교가 승리하고, 다른 종교는 패퇴하면서 자연스럽게 통일이라는 게 이뤄졌고, 그것이 큰 에너지로 발산한 것이오.

 

 한편, 나는 통일이라는 물리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것 역시 일반인들의 일이기보다는 정치적 힘 간의 대결 현상으로 보기 때문에, 각 개인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도 보고 있소.

 

 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행복이오. 아무리 스페인이 다른 종교를 물리치고 통일을 이뤄 거대 제국을 형성했다고는 하지만, 정치적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이 너무나 컸고, 지금은 스페인이 추구한 종교를 지키겠다고 세계에서 들어오는 금과 은을 전쟁과 무기에 낭비함으로써, 오히려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졌소.

 

 그러나 자존심은 자존심대로 세져, 일은 하지 않고, 전통있는 기독교인의 집안이라고 스스로 자랑 만 하고, 다른 사람을 깔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오.

 

 물 만 먹고도 밖으로 나와서는 이쑤시개를 입에 무는 그런 헛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많아졌소. 어려운 일은 저급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피하고, 헛되이 옷의 복부분 하얀 깃만 더 넓고 높이 올리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스페인의 경제는 날로 하락하고 있소.

 

 명성과 현실의 차이가 클수록, 결국 통일의 힘은 약해지고 소멸될 것이며, 나중에는 분열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오. 지금 스페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미래의 스페인은 아마도 삼등 국가가 될 것이 확실하오.”

 

 “우리 조선의 상황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부적으로 서로 이간질하고, 산산이 나눠지고, 서로 대결하고, 그 틈을 일본이 들어온 것입니다. 지금도, 그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암울할 뿐입니다.

 

 저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세계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을 중심에 두고 보는 작은 눈이 아닌, 태평양을 넘고, 대서양을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큰 눈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일본은 스스로 부족함으로 깨닫고, 외부세계에 문을 열었습니다. 무기를 개발하여 조선을 압도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온 것도, 그 역사의 연장선입니다. 아마 조선은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고, 집안싸움 만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력하나마, 비센떼 권이나 저나 나라에 대한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하오. 그리고, 여기서의 경험이 꼭 그대의 나라, 조선에 알려지고, 조선의 발전에 크게 기여되기를 나도 기원하겠소.

 

 그런데, 센다이에서 출발한 180명은 적은 수가 아닌 것 같소. 특히, 엄청 크고 넓다는 태평양을 건너는 일이고, 선박을 처음 만들었으니, 만드는 것 이상으로, 항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항해 이야기를 해주시겠소.”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세르반테스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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