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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작가 : 윤준식 YOON
작품등록일 : 20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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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꼬리아 델 리오 (Coría del Río)
작성일 : 22-02-02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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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꼬리아 델 리오

 

 석희 일행이 세비야에 도착하자마자, 아나 마르띤은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 중의 하나였다. 석희의 손을 잡은 그녀는 반가움의 눈물을 흘렸다. 쓰네나가 일행이 세비야를 출발해 마드리드로 급하게 갈 때, 석희가 개인적으로 써 준 감사의 편지는 시장에게 잘 전달되었다는 말도 했다.

 

 아나를 다시 만난 석희도 기쁨이 컸다. 사실, 그녀와 헤어진 후, 그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머리에서 지우려 해도, 그럴수록 더 떠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가톨릭 전도사로서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둘씨네아를 말하면서, 한 여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는 게 기사라고 했고, 진정한 사랑이며, 명예라고 했을 때, 석희는 하마터면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할 뻔 했다.

 

 성모 마리아의 자리에, 한 여인을 대신 올려놔야 한다고 말할 때, 석희 자신도 아나를 생각했었다.

 

 한편, 세비야에 도착한 석희는 꼬레아 델 리오에 가보겠다고 말했고, 아나는 주저없이 동행하겠다고 했다.

 “나의 고향도 이렇게 생겼소.”

 

 “아, 예. 참 편안한 곳입니다.”

 

 다시 찾은 마을은 생각했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작은 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의 작은 광장이 형성되어 있지만, 집들과 길은 정비되지 않아, 대도시인 세비야에 비할 바 없는 그냥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다만, 세비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내려, 육로로 갔기에, 이동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은 큰 일렁임 없이, 그야말로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그 위로 늘 배들이 오가고 있었다.

 

 집도 몇 채가 안되고,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 아주 조용한 마을, 석희는 눈을 감고 심호흡으로 공기를 마셨다. 고향 바다와 냄새가 느껴졌다. 그리움이 더욱 밀려왔다.

 

 “쓰네나가 일행이 세비야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석희와 아나가 강가를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훈이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그래, 우리는 그라나다로 돌아왔으니, 마드리드에서 바로 내려온 2진도 지금 쯤 도착할 때가 맞군. 우리도 빨리 세비야로 돌아가자. 마드리드에서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군.”

 

 석희 일행이 세비야에 도착한 지, 3일이 지나서 도착한 쓰네나가와 루이스 신부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은 무역에 대한 스페인 왕의 확답도, 기독교 탄압에 대한 교황청의 대책도 얻지 못 했다고 한다. 성과는 없고, 여행은 길어지고, 모두들 지친 상태로 세비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게다가 쓰네나가와 동행한 사토 나오끼라는 사무라이는 큰 병에 걸려있었다.

 

 그는 마사무네가 선발하여 보낸 사람으로, 나이는 쓰네나가보다 많았지만, 직급은 낮았다.

 

 다른 사람에 비해 몸이 약했기에 여행 중 계속 몸이 좋지 않았으나, 쓰네나가는 나오끼의 여러 경험과 능력에 대해 신뢰하였고, 의지했다. 그런 나오끼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진 것이다.

 

 이미 일행 중 5명은 여행 중 스페인에서 사망한 바 있다. 모두가 열악한 환경이라 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이었다. 그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석희, 나는 어쨌거나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네. 일정이 너무 길어 졌어. 마사무네께서 우리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급하네.

 

 세비야에 오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일본 내에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더욱 심해졌으며, 우리의 입장이 아주 난처해졌다네.

 

 우리는 일본에 돌아가도 설 자리가 없을 것 같네. 아니,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

 

 일단 나는 먼저 떠날테니, 자네는 나오끼가 회복하는 대로 배를 타도록 하게.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이곳으로 오는 스페인 신부들을 통해서라도 일본 내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늘 파악하도록 하게.

 

 만일, 상황이 매우 악화되었다고 판단되면, 그 이후의 결정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앞으로의 모든 결정, 나오끼의 목숨까지도 자네에게 달려있다는 점 꼭 기억하게. 미안하네, 내가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 해줘야하는데….”.

 

 석희는 암담했다. 어떻게 되었든 쓰네나가 일행과 함께 가야 일본에라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개별적으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를 탄다는 것, 그리고 베라끄루스에서 그 넓은 멕시코를 지나고, 다시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에 가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조선에, 그리고 고향 웅천 땅을 다시 밟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의 꿈은 좌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떠날 수 없는 중병 상태의 나오끼를 홀로 남겨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루이스 신부가 남든지, 아니면 자신이 남아야 하는데, 여러 가지를 고려해봤을 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판단이 이렇게 서자, 석희는 동행한 훈은 어떻게 할까 고민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석희는 훈을 불렀고, 상황을 소상히 설명했다.

 

 “훈이는 어떻게 하겠니?”

 “저도 여기에 머물겠습니다. 전도사님과 운명을 같이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선에는 꼭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선을 위한 일을 함께 하자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하지. 우리는 조선을 위해 뭔가 일을 해야 한다. 일본에서 배운 것, 그리고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보고 배운 것을 조선에 알리고, 조선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해. 이는 우리 둘의 약속일 뿐 아니라, 지금 어딘가에 계실 성빈 형님과 피렌체의 안도현 씨와의 약속이기도 해.”

 

 “그러면, 저도 전도사님과 여기에 머물다가 함께 행동하겠습니다.”

 

 “아냐, 내가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봤는데,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해졌어. 훈이는 쓰네나가와 함께 떠나는 게 좋겠어. 그들과 함께 가지 않는다면, 대서양을 넘고, 태평양을 가로질러야 할 텐데, 이 모든 일이 쉽지 않아. 둘 중 하나라도 먼저 갈 수 만 있다면, 그 방법이 낫다고 생각돼.

 

 루이스 신부와 동행하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태평양을 건너는 배를 탈 수 있을 것이야.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훈이라도 먼저 가는 게 좋겠어.

 

 신부님께는 내가 은밀히 말씀드렸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훈이라도 조선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조선에 기독교의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훈이를 써달라고 말이야.

 

 루이스 신부는 우리의 계획에 공감했고, 기꺼이 약속을 하셨어.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여행을 하면서 알아보자. 상황은 늘 변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훈이 먼저 떠나라. 그리고, 자네의 부모님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향 해남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도록 해.

 

 거기에서부터 조선 기독교의 뿌리가 내려, 온 나라에 퍼지도록 해줘. 부탁이야! 나도 여기의 모든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기회를 엿봐, 조선으로 갈게. 우리 꼭 다시 만나자!”

 

 “형님…. 무슨 말씀인 지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요. 꼭 오셔야 합니다.”

 

 쓰네나가 일행이 떠나기 바로 전날 밤, 석희는 다시 훈을 불렀다.

 

 “훈이의 세례명이 후안이니, 나는 여기 이 마을의 이름을 훈이 이름에 붙여주고 싶어. 후안 데 꼬리아 델 리오!

 

 어때?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꼭 기억하고, 조선에 가서도 기독교는 물론, 우리가 보고 배운 것들을 조선의 사람들에게 전해주겠다는 우리의 맹세인 거지. 이제 훈이, 아니 후안은 이 마을의 첫 번째 조선인인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와 조선의 웅천을 함께 떠나 일본에 도착했고, 예수회에서도 함께 공부한 성빈 형님께 보내는 편지야. 알지? 비센떼 권 전도사님.

 

 지금 정확히 어디에 계신 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의 어딘 가에서 천주를 알리고 계실 수도 있어. 나도 여기서 백방, 형님의 소재를 알아보겠지만, 훈이도 조선에 들어가는 즉시, 전도사님의 행방을 알아봐.

 

 아마도 은밀히 알아봐야 할 거야. 만나게 되면 이 편지를 전달하고,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알려드려. 물론, 우리가 여기서 보고 배운 것과 우리의 계획을 말씀드리고, 서로 의기투합하여 내가 합류할 때까지 미리 시작하도록 해. 아마도, 훈이가 가면, 전도사님께 큰 도움이 될 거야. 여기 있네.”

 

 석희는 편지를 주고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도 훈에게 걸어주었다.

 

 “안또니오 꼬레아를 지켜줬다는 이 목걸이가 훈이를 지켜줘, 꼭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소원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형님도 꼭 조선에 오셔야 합니다. 천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겁니다. 그리하여 조선을 깨우는데 우리를 쓰실 겁니다.”

 

 훈이가 가슴 쪽에서 뭔가를 꺼내서, 석희에게 건넨다.

 

 “아니, 이것은 복주머니구나?”

 

 “네, 저희 어머니께서 제가 어릴 때, 만들어 주신 겁니다. 비록 일본에 있더라도, 꼭 조선인임을 잊지 말라고요. 저는 늘 이것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분하고 억울할 때, 꼭 이것을 보면서,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늘 저의 소망을 담았습니다. 소망하는 모든 것이 이뤄질 것이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금방 또 하나의 소망을 담았습니다. 형님과 제가 조선에서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윤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작가의 말
 

 현재 스페인 남부 도시 세비야 근처에 '코리아'(꼬리아)라는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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