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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느 로판에 빙의한 거죠?
작가 : 김김쓰
작품등록일 : 202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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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2-05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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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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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세상에서 제일 가벼웠다.

 작위가 내려지면 내 책임도, 아니꼬운 시선도, 분명 배가 될테지만 괜찮았다.

 내가 멸망을 막으면 작위 값을 해내는 것이 될 테고, 못 막으면 다 멸망해버릴텐데 뭐.

 더군다나 생각보다 일찍 끝난 조사에 내 흥은 맥스를 찍고 있었다.

 

 "키셀, 시내 카페 들렀다 갈까?"

 "가고 싶은 곳 있어?"

 "맛있고, 조용하고, 예쁘고, 프라이빗한 곳."

 "맛있고, 예쁜 데 가자.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환경은 내가 만들어 줄게."

 

 역시 마법사 썸남이 최고야!

 앗, 썸남이 맞나?

 이게 썸인가?

 우리 언제 사귀지?

 이상한 생각들이 내 머리를 휩쓸기 전에 재빨리 머리를 털었다.

 

 "가자!"

 

 당연히 이동 마법을 쓸 줄 알고 마차에 내려 키셀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딱딱하게 굳은 키셀의 손과 흔들리는 동공으로 보아하니, 그냥 시내 카페에 갈 생각이었나보다.

 나도 당황했다.

 손을 놔야하나?

 웃어버릴까?

 당연히 순간이동 할 줄 알았다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야하나?

 자고로 여장부란 남자의 손을 덥석덥석! 따위의 이상한 성희롱 발언이 나올까봐 숨을 고르던 사이 손을 놓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렇게 키셀과 나는 팔만 굳은 이상한 목각인형들처럼 삐걱삐걱 걷기 시작했다.

 손을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꽉 잡을 수도 없고, 설상가상 긴장한 내 손바닥에서는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땀이 나면 키셀이 내게 깨겠지?

 그럼 나는 손이 땀에 번들거리는 주제에 손을 즐겨잡던 더러운 썸녀로 영원히 남는거야!

 하늘이시여, 역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까!'

 

 혼자 다한증에 걸린 비련의 여주인공에 몰입하던 와중이었다.

 나를 깨우듯 손을 살짝 흔드는 움직임에 고개를 들자, 해사한 키셀의 얼굴이 보였다.

 내 상상 속에서 손에 땀이 흥건한 나를 경멸하던 키셀은 순간 모두 사라지고 가을의 햇살을 담은 키셀만 보였다.

 

 "무슨 생각해?

 나랑 있는데."

 "아, 아니야."

 

 눈웃음을 치며 말을 거는 이 여우.

 방금 7번째 꼬리가 자라는 걸 봤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키셀이 너무 좋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나만 봐도 여기 이렇게 빙의할 줄 꿈에는 알았는가.

 

 '아, 빙의...

 빙의도 말 아직 못 했는데......'

 

 정신병으로 의심받기 좋은 상황까지 가지고 있다.

 너무 상처받지 않도록 빠져버리면 안 된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잡생각을 훌훌 털어버렸다.

 카페에 앉아 디저트를 다 마시고(?) 나자, 키셀이 방음막을 쳤다.

 

 "이번에 새로 보호막을 개발했어, 엘리.

 우리의 얼굴이나 입술이 제대로 보이지 않도록 시각에 혼동을 주는 마법도 함께 섞었는데, 어때?"

 

 '입술? 입술을 왜 굳이 말하지?

 보호막 안에서 뭐하려고?

 꺄아아아아!'

 

 "이렇게 하면 우리의 대화를 읽을 수 없고, 유심히 봐도 우리의 정체를 알긴 쉽지 않을 거야."

 

 그래, 내 뇌는 제대로 썩어버린게 틀림없었다.

 뿌듯해 보이는 키셀을 한참 칭찬해줬다.

 나의 더러운 생각을 들키지 않도록.

 

 "키셀,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드릭의 목적이 뭔지 몰라도 거의 완성단계인 것 같아.

 이렇게 나를 대놓고 죽이려는 게 들켜도 상관없다는 식이잖아.

 너나 리베론은 좀 알아낸 게 있어?"

 "음...... 실은 지난 연회에서 네가 어머니 모시고 나간 이후에 나에게도 같은 시도를 하는 놈이 있었어."

 "뭐?!!!

 그걸 왜 말 안했어????!!!

 그럼 너도 우리 저택에서 지내야하는 거 아니야?

 혼자서 지내는거 괜찮아?"

 "괜찮아. 마탑으로 아예 거주지를 옮긴지 좀 됐어.

  쓸모없는 마법사들이라도 모여있으면 쉽게 못 오긴 하겠지."

 "뭐?!!!!

 마탑에서 살아????!!"

 

 충격의 연속이었다.

 나는 몰랐던 키셀의 삶이 너무 많았다.

 나는 어쩌면 그간 내 얘기나 내 위협, 내 사업에 대해서만 말하면서 우린 소통이 잘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너무 내 얘기만 해서 키셀은 자신의 변화를 말할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닐까.

 

 "응.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

 마탑에 점점 일이 많아지다 보니...

 집도 그대로 있긴 한데, 들어갈 시간이 없다보니까.

 마탑에서 산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

 

 '알고보니 집에도 못 갈 정도로 착취당하는 근로자였단 말인가!

 아니지, 아니지.

 따지고보면 실세이자 강력한 차기 마탑주니까, 그냥 셀프로 착취한 건가?'

 

 온갖 생각들이 머릿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내가 한동안 말이 없자 키셀이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절대 숨기려거나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고, 별로 중요한 내용도 아니고......

 앞으론 다 말할게.

 화났어?"

 "그런게 아니야.

 내가 네 삶에 너무 관심이 없었나 싶었어."

 "전혀. 날 이렇게 바라봐주는 게 최고의 관심인걸."

 

 '그 정도 관심은 눈이 달린 생명체면 모두 가지고 있을텐데...'

 

 "그나저나 널 공격한 건 무슨 의미지?"

 "하, 이것도 미리 사과할게.

 너에게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네 귀에 들어가기 전까지 리베론과 처리해놓고 싶었던 부분인데......"

 

 키셀이 아카데미에 마물이 나타났던 날, 왜 부재중이었는지 알게 됐다.

 그 날 이후로 왜 키셀과 리베론 둘 다 정신이 없어 보였는지도.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나없이 진행하려고 했다니, 혼쭐의 시간이었다.

 

 "왜 말 안했어?

 당사자인 내가 제일 잘 알아야하는 부분인데?!"

 "미안해. 재빨리 도망나오느라 짧게 들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

 무슨 공정이 완성단계인 건지도 모르겠고.

 지금 네 말을 들으니까, 뭔지 모를 목표가 코 앞인데 우리가 방해물인가봐.

 우린 무슨 목표인지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까지 없애려고 하지?"

 "몰라!! 내가 엄청 쎄지기만 해.

 둘 다 굴려버릴 줄 알아."

 

 한참을 입이 나와 툴툴대는데, 그런 날 보며 웃음을 참고 있는 키셀이 눈에 들어왔다.

 

 "웃음이 나와??!"

 "하하. 알았어.

 엘리,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이제 그만 화를 풀어줘.

 케익이라도 한 개 더 먹을래?"

 "흥!!"

 

 말없이 고개를 돌리자 훌륭한 호위인 키셀은 케익을 한 개 더 사왔다.

 적절히 음식을 공급하다니 훌륭한 호위다.

 그리고 나는 훌륭한 호위대상답게 우물거리며 먹어치웠다.

 

 "일단 우리의 목표는 그 단체의 목표를 알아내는 거겠지?"

 "아무래도?

 그게 가장 중요한 정보긴 하지."

 "그럼 가자.

 그 본거지로.

 너랑 나랑."

 "뭐라고?!

 절대 안 돼.

 엘리, 네가 못봐서 그렇지만 상당한 마법사들이었어.

 나 혼자 당연히 쓸어버릴 수 있지만, 그들이 널 노리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몰라."

 

 실은 책 내용을 다 말하고 그러니 대비하자, 라고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나로써도 확신이 필요했다.

 이미 리베론이 체리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책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생겨버렸다.

 이후에 다 죽고 나서 원작대로 이어질지는 모르는 부분이지만.

 

 더군다나 나는 책을 완독하지도 못했다.

 마력 폭발은 맞는지, 그게 그들의 소행인건지, 그들의 소행을 막으려다 일어난건지, 앞뒤 내용을 하나도 몰랐다.

 내 나름의 추론에 60프로 정도의 확신만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말할 수도, 그대로 준비할 수도 없었다.

 우리도 알아야했다.

 키셀에게 괜한 선입견을 심어주는 대신, 있는 그대로 관찰한 후에 함께 결론을 내려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키셀, 너도 마력을 리딩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 마력을 리딩하는 목적 자체가 마법을 사용하려는 거잖아?

 리딩과 동시에 마법을 시전하고, 마법에 사용될 마력을 리딩하는 데 최적화 되어있지?

 나는 달라.

 다양한 환경에서 섬세한 리딩을 하는 걸 중점적으로 연습해왔다고."

 "그래도....."

 "우리는 가서 뒤지고 엿들을 거야.

 그런데 너는 오감을 증폭시키는데 어떤 방법을 써?"

 "...... 마법."

 "그래.

 키셀, 이미 내가 하려는 말을 알았겠지.

 마법써서 들키고 걔네 다 쓸어버릴 거 아니면 너 혼자 가서는 얻는게 별로 없어.

 나는 리딩으로만 오감을 증폭시키는 법도 이미 많이 훈련했잖아.

 내 마력만 읽히지 않는다면 투명망토를 입은 것처럼 가서 정보를 빼내올 수 있어.

 여차하면 너랑 그냥 튀자.

 혹시 모르니 이동 마법스크롤도 챙겨갈게.

 아티팩트 있으면 그것도 하나 줘.

 몸에 가지고 갈게."

 "...엘리......

 너없이 아무 것도 못하네.

 미안해...."

 

 키셀의 눈이 자신없이 아래를 향했다.

 저래서 마탑주 되면 맨날 어디서 혼나고 다니는거 아닌가 몰라.

 

 "어머, 틀렸다.

 네가 부족한게 아니고 내가 너무 뛰어나서 안 데리고 가는 건 전력손실이 커서야.

 그렇지?

 그리고 네가 멍청이라 반박을 못하는 게 아니고, 내가 똑똑해서 반박할 구석이 없는 거야.

 맞지?"

 "푸흡. 맞아.

 네 말이 다 맞다, 엘리."

 

 그제야 빛나는 얼굴을 든 키셀이 날 보며 예쁘게 웃어보였다.

 

 "그래. 그리고 나는 옳은 내 말에 자꾸 반박하는 남자는 싫어해."

 

 내가 할 수 있는한 최대한 밝게 웃으며 키셀에게 장난을 걸었다.

 입을 꾹 다물고 감정을 삼키기에 능숙했던 그는 울기도, 웃기도 잘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듯 했다.

 울보인 키셀도 귀여웠고, 가끔은 소심한 키셀도 귀여웠으며, 내 장난에 금방 또 웃어주는 키셀도 사랑스러웠다.

 귀여우면 답도 없다는데, 나는 아주 큰 일이 난 듯 싶었다.

 

 "그럼 언제 가지?

 소수정예가 좋을 듯 싶은데."

 "사람 일 모르는 거니까 리베론도 같이 가."

 

 의외였다.

 둘이 개와 고양이가 따로 없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홈크 단장님이나 다른 기사들도.

 물론 가까이 갈 순 없고.

 산 입구 쯤에 놓고 와야겠지만."

 "그랬다가 우리만 튀면 그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을까?"

 "안 들키게 멀찍이 떼어놓고 와야지.

 나도 못 읽을 정도의 범위에 데려다 놓으면 그들도 읽을 수 없을거야."

 

 대단하다.

 본인 실력에 저렇게까지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위험부담이 많아지는 게 아닐까?"

 "실은 다른 거점이 없고, 수장만 알아낼 수 있다면 그대로 쓸어버릴 생각도 하고 있어."

 "아, 전투 대기조야?"

 "응. 이동 스크롤은 충분하니까 실력 좋은 놈으로 5명 이내로."

 

 이동 스크롤 쯤이야 집에 100개 정도 있다는 느낌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는 키셀이 멋져보였다.

 부자 마법사! 최고야!

 

 "알았어.

 단장님이랑 리베론에게는 내가......"

 "아냐! 리베론한테는 내가 말할게.

 너는 단장님만 설득해."

 

 전례없이 키셀이 내 말을 재빨리 끊었다.

 리베론과 어느새 절친이 되었나.

 스타일이 벌써 분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연말에는 배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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