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새벽을 쫓는 자들의 연회
작가 : 심해해삼
작품등록일 : 2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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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괴물이라 불리는 남자, 앤드류
작성일 : 22-02-06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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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괴물이라 불리는 남자, 앤드류

 

 

  주아는 긴장한 얼굴로 전등을 켰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옅은 불빛 한 줄기가 시야를 밝혔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어깨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는걸 봐서는 적잖이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 지금 그의 양 손목을 휘감고 있는 은제 수갑이 아니었다면, 주아는 지금 이 자리에서 갈가리 찢겨졌을 게 분명했다.

  “그럼 다시 취조를 시작하겠다.”

  주아는 무전기를 켜며 말했다. 전등 불빛 저편에 있는 남자는 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빈정거렸다.

  “너 같은 얼굴 마담 말고 진짜 주인을 만나고 싶은데? 손님 대우가 형편이 없어서 말이야.”

  남자는 그러면서 양 팔을 힘껏 들어보였다. 그의 손목 아래를 휘감은 사슬이 쉬지 않고 쩔렁거렸다. 꼭 남자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딴청 피우지 마.”

  주아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남자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이해해줘. 나는 귀족이거든. 그래서 이런 것에 민감해.”

  남자는 보란 듯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입가에서 잘 벼려 놓은 것 같은 송곳니 두 개가 반짝였다. 사람의 것으로 보기 힘든, 그런다고 짐승의 것도 아닌, 말 그대로 괴물의 송곳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꼭 잘 벼려 놓은 두 개의 단검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저것이 바로 노빌리타스 녹티스(Nobilitas Noctis).

  통칭 ‘밤의 귀족’이 가진 상징.

  그들은 ‘흡혈귀’나 ‘뱀파이어’ 같은 단어를 인간들이 붙인 멸칭으로 여긴다.

  밤을 지배하며 인간을 먹이로 알고, 밤의 주민들을 자신의 발 아래로 여기는 저들은 자기 자신을 귀족이라 명명한다.

  지금처럼 붙잡힌 상태에서도 보여주는 저 여유로움은 아마 거기서부터 기인된 오만함이 분명했다.

  “그럼 조사를 시작하겠다. 순순히 대답해.”

  주아는 진중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남자는 그저 코웃음 치기 바빴다.

  “재밌군. 지금 명령하는 건가?”

  남자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 보여주는 웃음도 입술 아래 감추고 있는 송곳니를 내보이는 일종의 경고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주아는 그런 남자의 태도를 애써 무시한 채 추궁을 이어갔다.

  “이름이 뭐지?”

  “앤드류.”

  남자는 생각보다 순순히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주아는 남자의 낯선 이름을 되짚었다.

  “좋아, 앤드류. 너는 일주일 전, 밀항선을 타고 한국에 들어오려고 했어. 그렇지?”

  “맞아.”

  앤드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아는 다시 질문을 이었다.

  “왜 한국에 왔지?”

  “하하하하하하하!”

  앤드류는 그 말을 듣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돌연 웃음을 멈추더니, 주아를 노려보며 빈정거렸다.

  “야, 특식. 내가 왜 그걸 너한테 말해줘야 하지?”

  그리고서 그는 주아에게 힐끗 모멸의 눈길을 던졌다. 한 없이 아래에 있는 것을 내리깔아 보는 고고한 존재만이 가지 수 있는 눈빛이었다.

  앤드류는 그 눈빛으로 주아를 쓸어보며 빈정거렸다.

  “내 심기 좀 그만 건드려. 넌 특식이니까 적당히 비위만 맞춰주면 죽이진 않을게.”

  주아는 그걸 듣고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설마 그 잘난 총이라도 또 쏴보시게?”

  “아니, 은탄환 한 발에 얼마인데. 그렇게 비싼 걸 고문용으로 쓰기에는 아깝지.”

  주아는 비장한 얼굴로 무전기에 대고 명령을 내렸다.

  “가지고 와.”

  곧 취조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양복을 입은 연합 요원들이 뚜껑이 닫혀 있는 커다란 그릇을 들고 취조실 안에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앤드류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뭐,뭐야? 이 역겨운 냄새는?”

  앤드류는 반사적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이루 말하기 힘든, 강력하고 시큼한 냄새가 취조실을 가득 채웠다.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강력한 악취였다. 주아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보고 차분히 물었다.

  “보통 너희 같은 것들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기피해. 왜 그런지 아나?”

  “알게 뭐야! 어서 저 냄새나는 것 좀 치워!”

  앤드류는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방금 전의 여유로운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미지의 존재에게서 비롯된 두려움마저 읽혀졌다.

  주아는 그런 그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야 있나. 이건 한국인을 지키는 최종 병기인걸.”

  그녀는 힘차게 그릇 뚜껑을 열었다. 빨갛게 버무려진 김치 한 포기가 튀어나왔다. 주아는 김치가 담긴 그릇을 앤드류의 코앞으로 들이 밀었다.

  “자, 봐. 이게 바로 한국의 자랑, ‘김치’야.”

  “우에에에엑!”

  코를 찌르는 강력한 냄새에 앤드류는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다.

  마늘과 고추, 젓갈의 푹 삭힌 냄새가 그의 온 감각을 뒤흔들었다. 꼭 코와 입을 역겨운 불꽃으로 지지는 느낌이었다.

  주아는 보란 듯이 김치 한 포기를 길게 찢었다.

  “너희는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후각이 몇 배나 뛰어나다고 들었어. 그래서 마늘 냄새라면 질색한다며? 그런데 어쩌지? 이 김치에는 마늘이 듬뿍 들어갔거든.”

  찢어진 김치 사이로 붉은 젓갈이 그 사이로 뚝뚝 떨어졌다. 그걸 바라본 앤드류의 표정이 경악과 공포로 일그러졌다.

  “저,저리 치워!”

  “거기다 이 김치는 보통 김치가 아니야. 젓갈을 잔뜩 넣어 푹 삭힌 신 김치야. 너희 뱀파이어들에게는 아주 몹시 자극적일 거야. 후후후후.”

  주아는 괴로워하는 그를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앤드류는 자신의 눈앞에서 빨갛게 번들거리는 김치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치워! 치우라니까!”

  앤드류의 얼굴에는 방금 전과 같은 태연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김치라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괴악한 존재에서부터 비롯된 역겨움과 공포가 그의 얼굴로 가득했다. 주아는 역전된 상황 속에서 보란 듯이 찢은 김치를 흔들어 보였다.

  “거기다 이건 성당에서 봉사활동으로 담근 김치지. 김치가 잘 익도록 아주 고명하신 신부님이 축성까지 내려주셨어. 축복 받은 성스러운 김치다, 이거야.”

  앤드류는 김치를 보며 악을 썼다.

  “알게 뭐야! 그,그거 어서 치워! 빨리!”

  “그러면 섭섭하지. 한국인이 권하는 김치는 거절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

  “이게 진짜 죽고 싶냐?””

  앤드류는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씩씩 거리며 주아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주아는 태연한 얼굴로 무전기를 향해 짤막한 명령을 내렸다.

  “쏟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취조실의 천장이 열렸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김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김치 폭포는 바로 아래에 있는 앤드류의 몸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건 또 뭐야!”

  젓갈과 김치로 뒤덮인 앤드류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주아는 새빨갛게 젖은 그를 보며 빈정거렸다.

  “한국인은 김치를 담글 때 적어도 몇 백 포기는 담가. 너 같은 괴물을 상대하는데, 설마 김치를 한 포기만 가지고 왔을 거라고 생각했어?”

  김치에서 풍기는 강력한 마늘과 젓갈의 냄새가 앤드류의 전신을 뒤덮었다. 거기다 신부의 축성 때문인지 당장이라도 살갗이 벗겨질 것처럼 쓰라렸다.

  “사,살려줘! 제발! 내,냄새가……주,죽을 것 같아……!”

  온 몸이 김치로 뒤덮인 앤드류는 고통과 공포에 젖어 주아에게 사정했다.

  주아는 그런 그에게 일갈했다.

  “결정해. 이대로 김치에 파묻혀 절여지던가, 아니면 이 땅에 온 목적이 뭔지 말해.”

  “어흐흐흐흑……! 이 악독한 것들……!”

  앤드류는 김치로 뒤덮인 채 울먹였다. 그러다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죽이고 싶은 녀석이 있어! 그런데 그 놈이 한국에 왔단 소리를 듣고 찾아온 거야! 정말이야, 그뿐이야!”

  “그게 누구지?”

  “그,그건 말 못해!”

  앤드류는 벌벌 떨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놈이 ‘사람’이 아닌 건 맞아! 그 녀석이 죽는 게 너희에게도 이로울 거야! 부탁이야! 아무것도 안 할게! 그냥 그 녀석만 죽이고 조용히 한국을 떠날게! 이 역겨운 것 좀 치워줘!”

  온 몸이 김치 젓갈에 물든 채 소리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안쓰럽게 보일 정도였다.

 주아는 그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김치 고문을 받은 뱀파이어 중에 끝까지 버틴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저게 거짓말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런다고 이토록 강한 괴물을 그냥 내보낼 순 없었다.

  주아는 앤드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 * * * *

 

 

  “자, 잘 봐봐.”

  주아는 항구 뒤편, 그늘진 곳에 몸을 낮춘 채 조심스럽게 창고 근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항구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앤드류는 그들을 힐끔 보고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뭐? 그냥 더럽고 냄새나는 남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잖아.”

  주아는 차분히 설명했다.

  “지금 우리 연합에서는 항구를 통해 들여온 마약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 그런데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구울들이야. 항구 노동자 중 일부와 내통하고 있어서 요리조리 우리 수사망을 벗어나고 있지.”

  “그래서?”

  “내통자들은 인간이라 우리 힘으로 찾기에는 무리가 있어. 그러니 네가 좀 봐줘. 너나 구울이나 같은 괴물이잖아. 내통자가 누구인지, 혹시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아?”

  그 말을 들은 앤드류는 발끈해서 반박했다.

  “지금 시체를 뜯어 먹고 사는 천것들과 귀족을 같은 선에 두는 건가? 조금 짜증나는군.”

  앤드류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동시에 그의 입가에서 송곳니가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그걸 본 주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물어 뜯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목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고통.

  그리고 천천히 빠져나가는 피와 생명.

  주아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개를 도리질 쳤다.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주아는 이 일념으로 강하게 나갔다.

  “다시 김치에 파묻히고 싶어? 죽이고 싶은 놈이 있다면서. 적당히 누가 누구인지 찾아내기만 하면 나도 최대한 도와줄게.”

  “하! 이 몸을 탐지견으로 쓰시겠다?”

  “쓸 수나 있으면 다행이지. 참고로 쓸 모가 없으면 김치와 함께 감옥에 처박아 버릴 줄 알아.”

  앤드류는 빈정거리는 어투로 답했다.

  “뭐, 찾기는 어렵지 않아. 구울은 시체를 뜯어 먹고 살기 때문에 무덤가의 젖은 흙냄새가 나거든. 그래서 자주 접촉한 놈들은 쉽게 가려낼 수 있어. 지금도 몇 놈에게서 그런 냄새가 나.”

  “그래? 누구인데? 지목해봐!”

  주아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이대로 내통자만 잡아내면 미연도 뭐라 말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생각 이상으로 매몰찼다.

  “싫어, 나는 못해.”

  “왜!”

  변덕스러운 그의 행동에 주아는 참지 못해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앤드류는 그 모습을 보더니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이유는 간단해. 너 같이 짜증나는 여자의 명령을 듣는 게 기분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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