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새벽을 쫓는 자들의 연회
작가 : 심해해삼
작품등록일 : 2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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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격한 남자는 탐지견 대신으로 (1)
작성일 : 22-02-06     조회 : 199     추천 : 1     분량 : 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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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과격한 남자는 탐지견 대신으로 (1)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뭘 그렇게 놀라? 말 한 그대로야. 특식, 난 네 명령을 듣고 싶지 않아. 뭐라고 해야 할까……닭이나 돼지에게 에게 명령 받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주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자신은 내통자가 코앞에 있다는 사실에 애가 타는데, 어쩌면 저렇게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죽이고 싶은 놈이 있다면서!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어. 우리 이왕이면 서로 돕고 살자. 응? 아니면 진짜 김치에 절여지고 싶어?”

  주아는 김치를 들먹이면서 한 번 더 협박했다. 그러자 앤드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넌지시 물었다.

  “뭐, 좋아 협조하지.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나를 이렇게 꺼내와도 괜찮은 거야?”

  “그,그 정도는 수사관 재량으로 어떻게 할 수 있어.”

  “정말?”

  앤드류는 그녀를 빤히 보며 히죽 웃었다. 주아는 그러자 자연스럽게 말문이 막혔다. 사실 이렇게 앤드류를 데리고 나오는 것도, 멋대로 수사에 이용하는 것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만약 이번 일이 잘못되면 은탄환을 뺏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

  주아는 애써 태연한 처 답했다.

  “정말이야.”

  “좋아, 믿어주지.”

  다행히 앤드류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주아는 다시 항구 노동자들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그를 채근했다.

  “그래서 누구야?”

  “어디보자.”

  앤드류는 근처를 빙 둘러본 뒤, 어느 한 쪽을 가리켰다.

  “저기 빨간 모자를 쓴 놈하고 오른쪽에 있는 늙다리, 그리고 저기 할 릴 없이 담배만 뻑뻑 피우고 있는 놈이야.”

  “그래?”

  상대는 셋. 거기다 셋 다 나이 들고, 삐쩍 말라보였다.

  자기 혼자 충분히 상대가 가능해보였다. 그 외의 사람들은 전부 눈속임용 민간인일게 분명하다.

  여기까지 생각한 주아는 서둘러 은탄환을 장전했다.

  “어쩌게?”

  주아의 생각을 눈치 챈 앤드류가 물었다. 주아는 그에게 씩 웃어보였다.

  “내통자는 바로 잡아야지.”

  이 말과 함께 그녀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예상 밖의 행동에 앤드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만류했다.

  “이봐!”

  하지만 주아는 앤드류의 부름을 무시한 채 은탄환부터 치켜들었다. 그리고 항구 노동자들 사이로 총구를 겨눈 채 날카롭게 소리쳤다.

  “연합 소속 서주아 수사관이다. 현재 이 일대에서 진행하는……!”

  그걸 본 앤드류는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 멍청하고 과격한 수사관은 처음 봤어.”

  그 순간, 구석에 있던 노인이 주머니에서 작은 방울을 꺼냈다. 그리고 방울을 흔들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땅을 박차고 일어나라……. 때가 이르렀으니……>”

  이윽고 창고 저편으로부터 덜커덕 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창고 저편에서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초점이 하나도 없었고, 몸은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거기다 입고 있는 옷은 잔뜩 낡아 있었으며, 몸 곳곳에 얼기설기 기워낸 상처로 가득했다.

  주아는 직감적으로 저들이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 뭐,뭐야!”

  앤드류는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양반, 네크로맨서(Necromancer)였나 보네. 그래서 시체를 뜯어 먹고 사는 놈들이랑 잘 어울렸나봐.”

  시체들은 기이하게 몸을 뒤틀면서 주아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몸은 마네킹처럼 뻣뻣했지만, 그 때문에 축 늘어뜨린 팔다리가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창고에서는 시체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귀하를 현 시각으로 위험약품 밀수법 위반 및 연합 소속 수사관 위협 혐의로 체포한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주아는 자신을 포위하는 시체들에게 총구를 겨눈 채 미란다 원칙을 읊었다. 그와 중에도 시체는 점점 그녀와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주아의 바람과 달리 그들은 순순히 체포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태양을 살라 먹는 나의 용이여!>”

  주아는 주문을 읊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곧 은탄환에서 여러 차례의 섬광이 빠르게 솟구쳤다. 섬광은 강하고 빠르게 시체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주아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재차 주문을 영창했다.

  “<불이여, 강과 같이 흘러라.>”

  섬광이 스쳐지나갔던 부분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불꽃은 번뜩이며 시체들을 휘감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체들은 불꽃을 뚫으면서 꾸역꾸역 몰려왔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야, 딴 거 없냐? 너 마녀잖아. 좀 다른 기술 좀 써봐.”

  보다못한 앤드류가 말했다. 그러자 주아는 빽하고 소리쳤다.

  “시끄러워!”

  예상 밖의 격한 반응이었다. 대충 눈치를 챈 앤드류는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설마, 너 그거 밖에 할 줄 모르냐?”

  “다,닥쳐! 네가 뭘 알아!”

  말까지 더듬는 그녀를 보며 앤드류는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어우, 정곡을 찔렀나보네.”

  주아는 그가 비웃거나 말거나 쉬지 않고 은탄환을 발사했다. 은탄환이 맞을 때 마다 시체들은 먼지처럼 부스러졌지만, 문제는 그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거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녀는 조금씩 구석에 몰리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앞서 있던 시체가 무슨 신호를 내리듯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쿠에에에에에에에에엑!”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기에에에에에에엑!”

  뒤따르던 시체들도 이어서 울부짖음을 내질렀다. 사방에 메아리치는 망자들의 고함. 주아는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의식을 긁어 파는 그 외침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했다.

  “으아아악! 빌어먹을!”

  주아는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런 그녀에게 앤드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넌지시 물었다.

  “야, 도와줄까?”

  “뭐? 네가 무슨 수로?”

  “나는 귀족이야. 저런 쓰레기들은 웃으면서 짓밟을 수 있지.”

  거기까지 말하고서는 앤드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송곳니가 번뜩였다. 그는 주아의 목덜미를 빤히 바라보며 제안했다.

  “대신, 네 피 한 모금만 마시자.”

  “미쳤어?”

  주아는 식겁해서 반문했다. 그러자 앤드류는 곧바로 대꾸했다.

  “그럼 어쩔 건데? 내가 날뛰려면 피가 필요해. 특히 마력을 가득 담고 있는 마녀의 피만큼 좋은 특식도 없지.”

  마녀의 피는 일반인과 달리 마력이 흐른다.

  그리고 마력은 밤의 괴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정수.

  앞서 그녀의 피를 마시고 구속을 풀어냈던 것처럼, 이번 역시 자신의 피를 주면 앤드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자신이 과연 앤드류를 제어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이대로 도망치던가.”

  그녀가 뜸을 들이자 답답했던 앤드류는 다시 재차 물었다.

  도망쳐? 주아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을 에워싼 시체들을 노려봤다. 저 너머에 자신이 지금까지 찾아 헤매던 실마리가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조금만이야.”

  주아는 앤드류에게 목을 내밀었다. 그녀의 목에는 아직도 앤드류가 물어뜯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었다. 앤드류는 자신이 깨문 상처가 남아 있는 주아의 목을 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걱정 마.”

  그는 이 말을 끝으로 신속하게 주아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앤드류의 차가우면서도 단단한 팔은 주아의 목을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하게 붙들었다.

  이윽고 그는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아의 목에 입을 묻었다. 이윽고 살갗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통증이 피부를 타고 흘렀다.

  “윽!”

  주아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앤드류는 눈을 감은 채 그녀의 피를 힘껏 발아들였다. 꿀꺽, 꿀꺽. 자신의 피가 입을 지나 앤드류의 식도로 흘러가는 간헐적인 소리가 귓가에 이어졌다.

  “아, 최고야.”

  피를 마신 앤드류는 목에서 입을 떼며 감탄했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는 그의 모습은 포만감안지, 고양감인지 모를 감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잘 들어, 특식.”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주아에게 일렀다.

  “내가 지금 날뛰는 건 네가 고마워서도, 피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것도 아냐. 너는 단순한 먹이일 뿐이니까.”

  그의 눈은 주위에 가득한 시체를 보며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냥 귀족으로서 더러운 아랫것들이 설치는 걸 도저히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야. 알았어?”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시체들 사이로 훌쩍 뛰어들었다. 그가 갑자기 달려들자 시체들의 이목이 한 순간에 집중됐다. 앤드류는 그것을 즐기듯이 쾌활하게 웃어보였다.

  “자, 버러지들아. 너희들의 천박한 연회에 귀족 나으리께서 납시었다!”

  그의 목소리가 어두운 항구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러니까 알아서 모셔!”

  앤드류는 훌쩍 시체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시체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앤드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시체를 보면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역겹군.”

  이 말을 끝으로 그는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시체들이 종이 찢겨나가듯이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게 그의 몸짓은 시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실로 엄청난 완력이었다.

  “끝이 없네.”

  앤드류는 짜증 섞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시체의 수는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 순간을 위해 대비를 단단히 해놓은 모양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주아를 불렀다.

  “특식. 잘 봐. 오늘 귀한 구경 시켜줄게.”

  앤드류는 양 팔을 힘껏 옆으로 치켜들며 말했다.

  “네 피에 깃든 마력 덕이야. 오늘 기술 한 번 제대로 쓴다.”

  이윽고 일대에 빛이 가득 차올랐다.

  빛, 그래, 빛.

  주아는 처음에 앤드류의 몸에서 치솟는 것이 순수하게 빛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빛이 아니라 시리도록 푸른빛을 내뿜으며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불꽃은 그의 피부에서 치솟아 팔과 다리를 타고 온 몸을 휘감았다.

  달빛처럼 차가워 보이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강렬해 보이는 불꽃이었다.

  앤드류는 온 몸에 불꽃을 갑옷처럼 두른 채 미친 듯이 시체들 사이를 헤집었다.

  “캬하하하하하하!”

  그의 광소가 쉼 없이 이어졌다. 그에게 달려들던 시체들은 불꽃에 닿자마자 바스라졌다. 앤드류는 불꽃을 휘어 삼킨 하나의 광채가 되어 몇 차례의 날카로운 궤적을 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 있던 시체들은 새까맣게 탄 재가 되어 조각나 흩어졌다.

  “다들 체력이 좋지 않나보네. 이 정도 춤을 춘 것 가지고 지쳐 나가떨어지다니.”

  앤드류는 몸에 묻은 재를 툭툭 털면서 중얼 거렸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이 상황을 조종하고 있던 네크로멘서는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도망쳤다.

  “으아악!”

  주아는 그걸 보고 신이 나서 명령을 내렸다.

  “잘했어! 이제 빨리 쫓아!”

  하지만 앤드류는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지. 난 할 일 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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