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새벽을 쫓는 자들의 연회
작가 : 심해해삼
작품등록일 : 2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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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겐 아주 어색한 당신 (2)
작성일 : 22-02-09     조회 : 196     추천 : 0     분량 : 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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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내겐 아주 어색한 당신 (2)

 

 

  “그래서 정리하자면, 마약 제조를 위해 시체 밀매업자와 거래했다는 거야.”

  앤드류는 규호에게 지금까지 사건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물론 주아에게 했던 이야기처럼 자신의 자세한 이야기까지 하진 않았다. 앤드류는 마약 제조업자들과 오랜 기간 악연이 있고,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함께 동행 하게 되었다고만 설명했다.

  거기까지 들은 규호는 물었다.

  “그러면 왜 그들은 시체 밀매업자를 죽였을까요?

  “나한테 ‘증거를 없애러 왔다’라고 했어. 아마 자신들이 거래를 하고 있었다는 걸 없앨 생각이었겠지. 당장 밀매업자만 사라지면 자신들의 행적을 아는 놈들은 없으니까.”

  앤드류는 티토노스 했던 말을 되짚었다. 시체의 상태를 봤을 때, 티토노스는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일격에 죽였을 게 분명했다.

  “그때 그 귀족 말이야, 아는 얼굴이라고 했지?”

  주아는 티토노스를 떠올리며 물었다.

  고수머리를 한 옛일곱살 정도의 소년.

  순수하리만큼 잔인하고, 말도 행동도 가볍기 그지없다. 이미 몇 백 살은 먹었겠지만 행동거지는 딱 그 맘 때쯤의 아이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그 점이 주아를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사회성이나 도덕심 없이 몸만 어른이 된 아이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뉴스를 통해 볼 수 있으니까.

  “응. 17살에 피를 마시고 귀족이 됐어. 그래서 신체 능력은 별거 없지만, 어마어마한 고주파 내지를 수 있지. 귀찮은 놈이야.”

  앤드류는 담담히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규호가 물었다.

  “그러면 마약 유통에 관여된 뱀파이어가 더 많을까요?”

  “많지. 우리 귀족은 보통 한 명의 여주인을 중심으로 남편들이 뭉쳐서 혈족 단위로 움직이거든.”

  “재밌는 이야기네요. 그러면 여주인이 제일 강한가요?”

  “아니, 사람과 똑같아. 여자 귀족은 피부와 근력 모두 남자보다 떨어져. 신속함이나 지구력도 마찬가지지.”

  앤드류는 보란 듯이 주먹을 거머쥐었다. 그러자 그의 셔츠 아래로 근육이 울거져 나왔다. 그는 그 상태로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흠흠, 하지만 여자 귀족만이 자신의 피를 나눠서 새로운 귀족을 낳을 수 있어. 티토노스가 속한 혈족은 그런 식으로 모두 귀족이 됐지. 뭐, 나도 내 아내의 피를 마시고 귀족이 된 처지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앤드류는 말꼬리를 흐렸다.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피하고 있는 게 티가 났다.

  그래도 규호는 대강 상황을 파악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상황은 대강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

  “뭔데?”

  “마약의 재료가 되는 버섯을 키우려면 원한을 품고 죽은 시체가 필요해요. 그런데 원한을 품고 죽은 시체를 대체 어디서 구하죠?”

  마약 백야(白夜)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원한을 품은 채 죽은 시체에서 키운 흰 매미 시체 버섯이 필요하다.

  구호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했다.

  “생각해보세요. 시체라면 어떤 식으로든 구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문제는 그 시체가 원한을 품었는지, 품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냥 납치해서 무작정 죽이면 적당히 원한이 생가지 않을까? 옛날에는 전쟁터에서 죽은 시체 가져다가 썼거든.”

  앤드류의 추측을 들은 주아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아니지, 만약 납치해서 죽였다면 원한보다는 두려움이 들 거야.”

  주아는 구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선배 말이 맞아. 뭔가 이상해. 보통 납치 사건은 저항할 힘이 없는 노약자를 대상을 이뤄져. 하지만 그렇게 납치해서 죽인다고 해도 피해자는 원한을 품기보다는 무섭고 혼란스럽기만 하겠지.”

  현 상황을 알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함.

  눈앞의 상대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력함.

  그저 이 순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에서 찾아오는 절망과 굴복감.

  주아라면, 그 상태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지난 기억과 함께 집어 삼켰다.

  “아니면 국경 근처에서 공수했겠지. 한국은 북한이랑 반세기 넘게 전쟁 중이잖아. 원한을 품고 죽은 시체 정도는 국경에 널리지 않았어?”

  앤드류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두 사람의 추리를 지적했다. 그 말을 들은 주아가 어처구니 없어 되물었다.

  “넌 도대체 한국을 무슨 나라라고 생각하는 거야?”

  “60년 넘게 내전을 하고 있는 나라, 그리고 썩은 냄새 나는 풀떼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나라.”

  그 말을 들은 주아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야, 내가 김치 욕하지 말랬지!”

  씩씩거리는 주아를 뒤로 한 채 규호가 앤드류에게 일렀다.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이 북한과 휴전 상태인 건 맞지만, 생각하시는 치열한 전쟁은 60년 이후로는 없습니다. 국경에 원한을 품고 죽은 시체가 널려 있지도 않고요.”

  “그래? 생각하는 것과 다르네. 어쩐지 뭔가 평화로워 보이더라.”

  앤드류의 말에 주아는 어처구니가 없어 물었다.

  “넌 대체 한국에 대해서 무슨 말을 듣고 온 거야?”

  “적어도 내가 한국어를 배우던 무렵에는 북한과 한국이 전쟁 중이었거든?”

  “너 되게 오래 살긴 살았나 보다.”

  긴 수명이 있는 종족은 때때로 역사의 인식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었다. 하지만 설마 한국 전쟁을 어제 일처럼 이야기 하는 걸 듣게 될 줄이야.

  “아무튼 단서는 원한을 품고 죽은 시체라는 거군요.”

  규호는 고심하며 이 부분을 다시 되짚었다. 앤드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한국이 평화로운 나라라면 그 녀석들은 대체 어떻게 시체를 구한거지?”

  “흠, 이럴 때 물어볼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있긴 있는데 죽었잖아. 그 시체 밀매업자 말이야.”

  앤드류는 피식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어떻게 보면 티토노스의 혈족과 가장 가깝게 접근한 사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규호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맞아요. 그걸 왜 생각 못했죠?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뭐? 너 설마 샤먼(Shaman)이었냐?”

  앤드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샤먼(Shaman).

  죽은 자와 소통하며, 죽음 너머 저편을 엿볼 수 있는 영매나 주술사를 그렇게 부른다.

  그 말을 들은 규호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만 지어보였다.

  “샤먼은 아닙니다만, 대강 비슷한 것이긴 합니다.”

 

 

  * * * * *

 

 

  셋은 얼마 가지 않아 어제의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여전히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긴 했지만, 이미 수사는 대강 끝난 지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버려진 공장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앤드류는 어제 시체를 발견한 지점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에 밀매업자가 죽어 있었어.”

  “흠.”

  규호는 잠시 주위를 기웃거리더니 주아와 앤드류에게 일렀다.

  “잠시만 여기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앤드류는 그 말을 듣고 주아와 함께 몇 걸음 떨어져서 그를 지켜봤다. 앤드류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오, 시작하려는 건가.”

  “뭘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봐?”

  “동방의 샤먼은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은 처음이란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주아는 피식 웃었다.

  “훗, 규호 선배는 샤먼이 아니야.”

  “그럼 뭔데?”

  마침 규호가 눈을 집중하고 양 팔을 벌렸다. 그러자 주위의 공기가 갑자기 사뭇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기뿐이 아니었다. 바닥의 흙도 부스럭거리면서 몸을 틀었고, 곳곳에 자라난 풀들도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존재감을 내보였다. 마치 일대의 모든 것이 규호라는 한 존재에게 반응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주아는 그런 규호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보통 샤먼은 죽은 자의 영혼이나, 고위 신령의 힘을 빌리는 주술(呪術)을 사용해. 하지만 규호 선배가 쓰는 힘은 달라. 규호 선배는 자연의 힘 그 자체를 사용하거든. 한국에서는 그걸 도술(道術)이라고 하지.”

  그녀의 설명대로 규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사뭇 달랐다.

  흡사 잔잔한 호수나 우거진 숲을 보는 것과 같은 편안함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주아는 그걸 바라보며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규호 선배는, 세상만물의 흐름과 이치를 깨우친 도사(道士)야.”

  곧 규호가 입을 열었다.

  “<영은 하늘로, 혼은 땅으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규호에게 반응했다.

  아니, 아예 몸을 기울였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른다.

  감각이 예민한 앤드류는 본능적으로 이 모든 것을 감지했다.

  분명 나무나 흙, 바위나 풀들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규호의 말 하나 하나에 움직임을 보였다. 주위의 흐름이 오직 규호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실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지나온 걸음 걸음을 내게 말해다오.>”

  규호는 이 말 한 마디를 짤막하게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동시에 그에게서는 실로 서명하기 힘든 고고한 분위기가 흘렀다. 꼭 높은 산봉우리에 자라난 한 그루의 고고한 나무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주아는 붉어진 얼굴로 이 모든 것을 넋 놓고 바라는 중이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애정인지, 감격인지 모를 감정이 잔뜩 고여 있었다.

  앤드류는 주아의 얼굴을 보고 슬쩍 말했다.

  “그러다 눈 빠지겠다.”

  “뭐,뭐가!”

  “솔직히 말해봐. 너 저 모습에 반한거지?”

  “저런 걸 보고 안 반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주아는 팔꿈치로 앤드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앤드류 역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규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맞아, 신기하긴 하네.”

  선해 보이는 헤실 거리는 인상이어서 가볍게 봤지만, 막상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사뭇 규호가 다르게 다가온다. 일종의 거룩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땅에서 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풀들은 듬성듬성 일정 간격을 유지한 채 일자로 길게 땅에 선을 그었다. 얼핏 보니 꼭 누군가 지나온 동선 같았다.

  눈을 뜬 규호는 땅 위의 풀을 보며 설명했다.

  “찾았습니다. 아마 시체 밀매업자가 지나온 길일 거예요.”

  기대 이상으로 중요한 단서였다. 주아는 곧장 그를 치켜세웠다.

  “선배, 정말 대단하세요!”

  앤드류 역시 어깨를 으쓱였다.

  “쓸 만한데? 드루이드 비슷한 건가?”

  “보잘 것 없는 재주 입니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 돋아난 풀을 보며 말했다.

  “자연 만물은 생각보다 우리를 주의 깊게 살피죠. 저는 그저 자연에 말을 걸을 수 있는 잔재주만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는 말도 하기 전에 총부터 쏴재끼는 인간도 있는데, 뭘..

  그러면서 앤드류는 주아에게 슬쩍 눈치를 줬다. 주아는 곧장 발끈해서 반박했다.

  “나보고 하는 말이냐?”

  “찔려?”

  “이게 진짜!”

  참으로 직설적인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아까 규호를 넋 놓고 바라보던 그 표정은 어디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규호는 그런 둘에게 차분히 일렀다.

  “그러면 움직여 볼까요? 밀매업자가 지나온 동선을 추적했으니, 여기를 따라가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네, 당연하죠. 선배!”

  역시나 주아는 다시 친절한 후배 모드가 되어 규호를 뒤따랐다. 첫 만남부터 바로 어제까지 말 대신 총으로 일방적으로 대화를 했었던 앤드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허이구. 이거 차별 때문에 서러워 살겠나.”

  “야, 다 들린다.”

  앞서 가던 주아가 다시 고개를 돌려 으르렁거렸다. 앤드류는 졌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네,네. 잠자코 있겠습니다.”

  어찌 됐든 셋은 땅 위에 돋아난 풀을 향해 함께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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