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새벽을 쫓는 자들의 연회
작가 : 심해해삼
작품등록일 : 2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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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클럽 미모사(1)
작성일 : 22-02-09     조회 : 201     추천 : 1     분량 : 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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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클럽 미모사(1)

 

 

  “우욱, 이게 뭐야.”

  앤드류는 자기 앞에 있는 음식을 역겹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시커멓고 말캉말캉하고, 두껍고 뜨끈뜨끈하다.

  그 외에는 앤드류가 생각하던 ‘음식’의 기대치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왜, 맛있는데.”

  주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눈앞의 음식을 푹 퍼서 국에 말아 후루룩 말아 먹었다. 그 모습에서는 일말의 개운함이 읽혀진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앤드류는 눈앞의 음식을 가리키며 역정을 냈다.

  “제대로 된 한식을 알려준다며? 그런데 나한테 먹이는 게 고작 이거냐?”

  주아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대꾸했다.

  “너 피 좋아하잖아.”

  “이게 피냐?”

  앤드류는 어처구니 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그러자 주아는 바로 항변했다.

  “선지도 엄연히 피거든?”

  앤드류가 더 이상 연합에서 지급하는 혈액 팩이 물려서 못 먹겠다고 투덜댔던 것이 화근이었다. 곧 바로 사냥해서 뜨끈뜨끈한 열기가 감도는 피가 아니면 성이 안찬다나 뭐라나. 당장 달려 나가 누구라도 잡아 뜯을 것 같은 그였기에 주아는 제안을 했다.

  뜨끈뜨끈한 피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한식을 소개해주겠다, 라고.

  그 말을 들은 앤드류는 적어도 핏기가 감도는 레어 스테이크 정도는 기대했었다. 하지만 주아가 그를 데리고 간 곳은 근처 24시간 선지 해장국 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앤드류가 마주한 것은 피 인지 뭔지 모를 시커먼 덩어리였다.

  주아 말로는 국에 말아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나.

  앤드류는 선지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주아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시커멓게 굳힌 걸 무슨 맛으로 먹어?”

  주아는 선지국을 우적거리며 말했다.

  “영국에도 블랙 푸딩인가 뭔가 비슷한 거 있잖아.”

  “그 끔찍한 영국 음식을 예시로 들고 올 생각부터 자체가 문제인거야.”

  앤드류는 영국 이야기가 나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잘 아는 모양이었다.

  그걸 보자 주아의 머릿속에 슬그머니 호기심이 차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너, 어디 사람이야?”

  “뭐?”

  질문의 의도를 파악 못한 앤드류가 대꾸했다. 주아는 앤드류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는 분명 동양인의 것과 같다.

  하지만 이목구비나 골격은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눈이나 머리카락은 동양인 같은데, 이목구비가 어째…….”

  “기분 나쁘니까 그만 봐.”

  앤드류는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그러다 슬쩍 얼굴을 돌린 뒤,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태어나기는 미국에서 태어났어.”

  “정말?”

  “그래. 아버지는 중국인이셨지.”

  “어머니는?”

  앤드류는 그 질문에 슬쩍 눈치를 피했다.

  “영국인. 하지만 확실히 잘 몰라. 어렸을 때 돌아가셨거든. 누구는 스코틀랜드인이라고 하더라. 음식 솜씨가 정말 끔찍했지.”

  그렇게 말하는 앤드류의 표정은 어딘가 울적해보였다. 주아는 그때서야 자신이 뒤늦게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에 애써 화재를 돌렸다.

  “그래, 인종이 뭐가 중요하겠어.”

  “적어도 내가 태어날 때는 안 그랬어, 머리카락과 눈이 검은 놈은 사람 취급도 안했지.”

  “진짜?”

  “그래. 가난한 이민자의 자식은 더더욱.”

  인종차별은 불과 몇십 년 전에도 버젓이 있었던 일이었다. 앤드류는 바로 그 시대를 가로질러 왔으니, 다가오는 바가 다를 터였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이런 일은 꿈도 못 꿨겠지.

  “그 시절에는 여자가 이렇게 총 들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 아냐.”

  “그건 그렇네.”

  여자가 총을 들고 다니기는커녕 수사관으로 활동하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을 시절을 떠올리며 앤드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주아는 그런 그에게 깍두기 그릇을 내밀며 재차 선지를 권했다.

  “자, 그러니까 한번만 먹어봐. 맛있다니까?”

  “안 먹어!”

  “그러지 말고 선짓국에 깍두기를 풀어먹어보라니까?”

  주아가 깍두기를 내밀자 앤드류는 기겁해서 물었다.

  “이거 그때 그 이상한 김치라는 거랑 비슷한 거지?”

  “아니야! 깍두기는 깍두기고, 김치는 김치야!”

  “무슨 차이인데?”

  김치와 깍두기의 차이? 주아는 그 말을 듣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겪어 보는 고민에 빠졌다. 재료의 차이? 요리법의 차이?

  처음 겪어 보는 김치와 깍두기의 딜레마를 주아는 서둘러 얼버무렸다.

  “어, 아무튼 달라.”

  “거봐 비슷한 거잖아.”

  앤드류는 코웃음을 쳤다. 그게 아니라고 주아가 바로 대꾸하려는 찰나, 식당 유리문 저편으로 규호의 모습이 스쳤다.

  “어, 규호 선배다!”

  주아는 곧장 규호를 알아봤다. 규호는 편한 운동장 복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주아의 기억이 맞다면, 그쪽은 공원이 있는 방향이었다.

  “운동 나오셨나?”

  규호는 주아와 앤드류가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빠른 걸음으로 길 저편으로 향했다. 얼마 안가 그의 모습은 도시의 그림자 너머로 사라졌다.

 

 

  * * * * *

 

 

  “후우.”

  규호는 차분히 숨을 내쉬었다. 한적한 공원의 공기는 차가웠다.

  인적이 드물지만, 이 도시에 풀과 나무가 그나마 밀집해 있는 곳은 여기 밖에 없었다.

  그는 공원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마침 구름 한 점 없이 밝았기에, 하늘에는 달빛이 가득했다. 규호는 나뭇가지 사이로 번져오는 달빛을 받으면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미약했지만 풀과 나무, 그리고 흙에서 나오는 기운이 번져온다.

  그런데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주위의 고요를 깨트렸다.

  “선배!”

  “산책 나왔냐?”

  주아와 앤드류였다. 언제부터 자신을 따라 온 걸까. 규호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스쳤다. 규호는 서둘러 어색하게 인사했다.

  “하하하, 이 시간에 둘 다 무슨 일이죠?”

  앤드류는 주아를 향해 턱짓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마녀가 나한테 끔찍한 음식 고문을 시도하려던 중에 널 발견해서 빠져나왔어.”

  “음식 고문이라니! 그냥 선짓국에 깍두기 풀어먹으라고 한 게 전부잖아! 그리고 거긴 선배가 나한테 가르쳐준 맛집이거든?”

  아무래도 근처에 있다가 자신을 발견하고 따라온 모양이었다. 주아는 규호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며 물었다.

  “산책 나오셨어요?”

  “으,응. 오랜만에 한국에 오니 조금 적응이 안돼서.”

  아무래도 여기서 그를 만났다는 것 자체에 들뜬 모양이었다. 주아는 공원 주위를 빙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오니까 옛날 생각난다, 그쵸?”

  “그래.”

  규호도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인적 드문 공원,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 그늘진 나무 근처.

  모든 것이 그대로다.

  “예전에 제가 사고치고 나면, 항상 선배가 선지국밥 사주고 여기 데리고 와서 위로 해주셨잖아요.

  “그랬지.”

  “사실 저, 만약 선배 아니었으면 수사관 진즉에 때려 쳤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선배가 도와주신 덕에 이렇게 은탄환도 배정 받았죠.”

  주아는 보란 듯이 가슴팍에 차고 있는 홀스터를 슬쩍 규호에게 내보였다. 은탄환 권총이 그녀의 자부심을 대변하듯 반짝였다.

  하지만 규호의 표정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음.”

  흥미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냥 짧은 음성 하나만 웅얼거린다. 그게 긍정의 표시인지, 부정의 표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규호의 얼굴에는 조금의 흥미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주아는 슬쩍 그에게 물었다.

  “선배, 어디 피곤하세요?”

  “아냐. 괜찮아.”

  규호는 손사레를 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힘없이 주아와 앤드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나, 이제 들어가 볼게. 어차피 잠이 안와서 잠깐 걸으려고 나온 거거든. 내일 보자.”

  이 말과 함께 규호는 휘청이다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주아는 난대 없는 그의 반응에 멍한 얼굴로 손만 흔들었다.

  “선배…….”

 

 

  * * * * *

 

 

  “규호 선배, 날 묘하게 피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집으로 돌아온 주아는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마신 후에 다짜고짜 이 말을 내뱉었다. 앤드류는 그런 그녀에게 일렀다.

  “진정해. 네가 스토커처럼 달라붙긴 했잖아.”

  “스토커가 아니라 사랑이야.”

  “그래, 모든 스토커들은 그렇게 말을 하곤 하더라.”

  앤드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주아는 씩씩거리기 바빴다.

  “아니, 그런데 일단은 우리는 같은 사건을 해결하고 있잖아. 그런데 그렇게 거리를 둬야 해? 내가 비록 과거에 고백을 하긴 했지만, 본인도 이렇다 할 대답도 하지 않았잖아. 그렇게 어색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화나냐?”

  “너 같으면 화가 안 나겠어? 백보 양보해서 내가 싫다고 쳐. 그래도 그렇게 굴 것 까지는 없잖아!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주아는 냉정한 규호의 행동을 곱씹으며 으르렁거렸다. 만약 규호가 눈 앞에 있었다면, 그대로 달려들어 물어 뜯을 판이었다.

  앤드류는 슬쩍 규호 편을 들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가만 보면 생각이 아주 없어 보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네 말이 맞아. 선배는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남자지.”

  속이 깊고, 배려심이 넘친다. 항상 한 발 자국 뒤에 물러서서 침착하게 행동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지금 이 상황을 넘어선, 저 높은 곳을 향해 깊이 생각할 줄 안다.

  그게 주아가 아는 규호라는 남자였다.

  “그래서 내가 반했지만.”

  이 말과 함께 그녀는 맥주 한 캔을 다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 * * * *

 

 

  “안녕하세요, 선배!”

  다음 날 아침, 주아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반갑게 규호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

  규호 역시 방긋 웃으면서 그들을 반겼다. 주아는 애써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바로 들어가신 거예요?”

  “응. 들어와서 바로 잤어. 피곤했거든.”

  앤드류는 단번에 그 말이 거짓말임을 알아챘다. 그도 그럴게 규호의 앞에는 복잡한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절대 오늘 아침에 와서 훑어볼 분량은 아니었다. 아마 규호는 자신들과 헤어진 후 여기서 밤을 지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모른 척 하며 규호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 좀 알아낸 건 있냐?”

  앤드류가 묻자, 규호는 단번에 낯빛을 바꾼 뒤 설명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우선 이건 피해자의 주머니에서 발견한 명함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구겨진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명함에는 가늘게 휘어진 미모사 잎사귀와 작은 양도가 그려져 있었다.

  “클럽 미모사.”

  말을 잇는 규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피해자는 최근 이곳을 방문한 뒤로 행방불명 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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