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새벽을 쫓는 자들의 연회
작가 : 심해해삼
작품등록일 : 2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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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너의 비밀, 나의 거절 (2)
작성일 : 22-02-19     조회 : 195     추천 : 0     분량 : 5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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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너의 비밀, 나의 거절 (2)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규호는 차갑게 대꾸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긴장이 서려 있었다. 앤드류는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케팔로스한테 공격 받았었지? 보통 사람이면 그 공격 한 번에 척추가 으스러질 거야. 하지만 넌 다치기는커녕 피 한 방울 안 흘리더군.”

  클럽에서 케팔로스는 온 힘을 다해 규호의 몸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찢겨져나가고도 남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규호는 찢겨나가기는커녕 상처 하나 없이 태연하게 대화까지 주고받았다.

  “방어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저런 잔재주가 많아서요.”

  규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앤드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윽고 그는 대뜸 규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그 마녀가 널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지?”

  그 말을 들은 규호는 잠시 움찔거렸다. 그리고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오갔다. 얼마 가지 않아 규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알고 있긴 합니다.”

  “잘됐네. 앞으로 나 대신 그 자식 옆에 있어줘.”

  앤드류의 말에 규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건 못합니다.”

  “왜?”

  “그 이유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단호했다. 앤드류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마녀, 지금 한 혈족과 완전히 척을 졌어. 내가 쫓고 있는 놈들인데 하나 같이 잔인하고 교활하지. 거기다 나랑 관련이 되어 있다는 걸 알았으니 대놓고 표적이 될 거야.”

  단순히 몇 번 맞서는 정도라면, 추적당할 우려가 있으니 그쪽에서도 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주아는 혈족 셋과 대치하고, 그들을 추적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나온 이상 다음번에는 어떤 식으로든 죽자 살자 주아를 노릴 게 분명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절대 주아는 이번 사건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마녀는 절대 이번 사건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달려들겠지. 그리고 아마 죽을 거다.”

  “당신이 계속 있어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규호의 말에 앤드류는 잠시 주저하다가 허심탄회하게 답했다.

  “난 그 마녀를 지켜줄 자신이 없어. 아까 그걸 확신했지.”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네가 하면 되잖아.”

  이번에도 들려온 대답은 똑같았다.

  “전 못합니다.”

  “그러니까 왜?”

  앤드류는 날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규호는 그의 질문에 말꼬리를 흐렸다.

  “그건…….”

  이번에도 시원찮은 반응이었다. 호의도 있다. 상대방에게 자신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규호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일정 부분은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방패삼아 그저 겉돌기만 할 뿐이다.

  앤드류는 그 부분이 수상쩍었다.

  “난 그걸 확실히 하고 싶어서 온 거야. 해외로 나갔다는 사람이 갑자기 귀국한 것도 이상하고, 귀국하자마자 우리를 돕겠다고 나서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아. 분명 우리를 돕고자 하는 것 같은데 꿍꿍이를 모르니 어째 마음이 안 놓여.”

  거기까지 말하고서 앤드류는 규호에게 고개를 바짝 가져다댔다. 그리고 사냥감을 품평하듯 몇 번인가 킁킁 거리며 그의 냄새를 맡았다.

  “무엇보다 네놈은 ‘사람’ 같지 않다는 거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느꼈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위화감. 규호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그에게서는 무언가 자신과 다른 낯섦이 느껴졌다. 종족의 차이가 아니다. 성격이나 기호의 차이는 아니다. 자신과 다른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그 이질감이 그와 거리를 만든다.

  “왜 거절하는지 말해줄 생각이 없다면, 내가 직접 봐야겠어.”

  “멈추세요!”

  규호는 기겁하며 뒷걸음쳐 물러섰다. 하지만 앤드류는 단호했다.

  “싫어.”

  그는 손톱을 세우더니, 빠르게 앤드류의 상체를 내리그었다. 그의 손톱은 섬세한 칼날처럼 규호의 윗옷만 북 찢어냈다. 찢겨져나간 옷 틈 사이로 싸늘한 밤 공기가 스며들어와 규호의 상체를 훑었다.

  “이런.”

  이어서 앤드류의 입에서 당황과 놀라움이 반반 섞인 신음이 튀어나았다.

  “주아에게는 비밀로 해주시겠습니까?”

  규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찢어진 옷 안쪽으로 보이는 규호의 몸은 나무껍데기와 푸르스름한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것으로 볼 수 없었다. 규호는 자신의 상체를 가리며 씁쓸한 어조로 덧붙였다.

  “저도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습니다.”

 

 

  * * * * *

 

 

  “저주인가?”

  “저주라. 어떻게 보면 그럴 수 있겠죠.”

  앤드류의 질문에 규호는 자신은 상체를 손으로 쓸었다. 맥박은 느껴진다. 감각은 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아니다.

  “혹시 우화등선(羽化登仙)이나 물아일체(物我一體)에 대해 아십니까?”

  “끙. 한국어는 대강 할 줄 알지만 그렇게 어려운 말은 몰라.”

  규호는 가만히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서 나무줄기가 자라났다. 환각이나 소환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람 몸 그 자체게 나무가 된 것처럼 힘줄과 맥박이 나무에게서 느껴진다.

  “동양의 도술은 원래 인간과 자연을 합일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술을 최고 경지까지 연마하면 인간의 모습을 벗고 더 높은 상위 개체가 되죠. 이것을 보통 우화등선이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승화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규호의 몸에서 자라난 나뭇가지는 더 굵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규호의 손은 흡수 당하듯 그 형태를 나무에 완전히 집어삼켜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건 인간으로서 완전히 소멸을 의미합니다.”

  “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앤드류의 물음에 규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걸 찾기 위해 저는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중국 곳곳을 뒤지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했죠. 하지만 방법은 없었습니다. 당연하죠. 원래 도술 자체가 그러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요.”

  자연과 하나 되기 위해 만들어진 수련법이다. 그 반대 방법 따윈 존재할리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앤드류는 그걸 듣고 떨떠름한 투로 재차 물었다.

  “대체 어쩌다가 그런 거야?”

  “주아가 쓰고 있던 은탄환의 전 주인은 저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주아에게서 들은 적 있다. 연합에 있는 은탄환은 총 17정. 그리고 그 은탄환을 소유할 수 있는 수사관은 정확히 17명이다. 이형의 괴물과 싸우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무기인 만큼, 그것의 소유를 허락받았다는 것 자체가 조직 내 엘리트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규호는 실력으로 보나, 인품으로보나 그 엘리트에 들고도 남을 인재였다.

  “전 언제나 재능 있는 인재로 대우 받았습니다. 성취감도 있었죠. 그래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죠. 모두에게나, 그리고 주아에게서나.”

  앤드류는 단번에 규호의 생각을 읽어냈다.

  “너도 그 마녀를 사랑했구나.”

  “네. 어쩌면 주아가 절 사랑하기 훨씬 전 부터요.”

  규호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부사수로 처음 만났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씩씩하고 꾸밈 없는 그 모습에 반했어요. 그래서 도술을 연마해 더 높은 경지에 이르면, 더 많은 사건을 해결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면서 주아에게 언제까지나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었죠.”

  그는 가만히 손을 쥐었다. 그러자 나뭇가지로 변해 쑥쑥 자라던 손가락이 금세 사람의 신체로 돌아왔다. 하지만 피부에는 여전히 짙은 흉터처럼 나무 질감이 남아 있다.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럼 이대로 그냥 우화등선인가 뭐신가를 하겠다는 거야? 주아를 두고?”

  “앤드류씨, 우화등선의 경지에 이르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게 뭔지 아십니까?”

  그렇게 말을 잇는 규호의 모습은 지독히 담담했기에, 오히려 더 슬퍼보였다.

  “성욕입니다. 더 이상 번식을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걸 들은 앤드류의 경악의 빛이 스쳤다. 규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는 식욕, 그 다음에는 수면욕이 사라집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본능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더 높은 세계를 향한 평온한 갈망뿐입니다.”

  “그래서 주아의 고백을 듣고 도망쳤군.”

  “네. 그것을 듣고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제 자신이 무서워서요.”

  어떤 여자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해왔다.

  어찌 보면 실로 아름답고 완벽한 이야기.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

  바로 자신에게 고백했던, 그리고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에게로 향한 애정. 이게 소실되어 모든 것이 삐걱거리게 되었다.

  “저도 주아를 사랑했습니다. 주아가 제게 고백했을 때, 어떻게든 인간으로 남고 싶었죠. 그래서 서둘러 방법을 찾고자 떠난 겁니다. 방법을 찾아서, 인간으로 남아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었죠.”

  인간은 욕망을 느낀다. 성욕을 느끼고 애정을 갈구하며, 식욕을 느끼고 맛을 음미하며, 피로하고 지치기에 편안함을 추구한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자연 그 자체는 아무런 것도 느끼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럴 필요가 없는 거대한 흐름 그 자체이기에.

  지금 규호는 그 거대한 흐름에 이미 반쯤 섞여 들어간 상태였다.

  “점점 이 상태가 심해지면서 주아를 사랑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주아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자 귀국한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앤드류는 비웃음인지 모를 쓴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웃기네. 아무것도 못 느낀다면서.”

  “느끼진 못해도 기억은 있으니까요.”

  사랑은 모르지만, 사랑했다는 기억은 있다. 감정과 욕망은 희미하지만, 적어도 보고 따라할 수는 있다.

  앤드류는 규호를 보면서 느꼈던 그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규호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헤실거리는 웃음, 정중하면서도 사냥한 말까지 모조리.

  진심이 아닌 것은 언젠가 들통 나기 마련인데, 그 모든 것을 그저 연기하고 있을 따름이었으니 앤드류의 눈에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서 지금 주아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드는데?”

  “아무런 생각도 안 듭니다.”

  규호는 발치에 있던 돌을 발로 찼다. 돌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 저 멀리 데구르르 굴러갔다.

  “아무것도요. 그냥 길거리의 나무와 돌처럼 느껴져요. 만약 제가 이 상태라는 걸 알면 주아는 절망할겁니다.”

  “동시에 무너지겠지. 너한테 잘 보이고 싶다는 일념으로 은탄환을 지키고 있으니까.”

  주아는 규호가 자신과 같은 사건을 수사한다고 했을 때부터 들떠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어색한 화장과 구두까지 신으며 규호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썼다. 그러던 그녀가 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앤드류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건 규호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떨어트린 채 힘없이 말했다

  “그게 이 세상에 남은 제 유일한 미련입니다.”

  “너나 나나 영 솔직하지 못하군.”

  앤드류는 나지막이 그읨 kf에 동조했다. 그리고는 몇 번 헛기침을 한 다음, 머쩍은 얼굴로 서툴게 사과를 건넸다.

  “저, 그……아까는 갑자기 달려들어서 미안했다.”

  확인하겠답시고 옷을 찢어 발겼으니,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규호는 되려 홀가분해보였다.

  “아뇨.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진정어린 모습으로 앤드류에게 당부했다.

  “부디 주아 곁에 오래 있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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