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사신
작가 : 휘닛
작품등록일 : 201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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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두번째이야기(양심)
작성일 : 16-10-31     조회 : 480     추천 : 0     분량 : 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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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문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저 벽만 바라보며 온몸을 부르르 떨고만 있었다.

 

  발소리는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짝]

 

  나의 고개가 돌았고 그제야 누가 들어온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앞에는 아내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눈망울로 그러나 애써 표독스런 눈매를 띠며 서있었다.

 

  뺨이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나의 떨림은 조금도 진정되지 않았다.

 

  “벌벌 떨고 있을 거면서 왜 그런 거야”

 

  아내가 따져들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저 입술을 꼬물꼬물 거린 것이 나의 유일한 행동이었다.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아내는 뒤돌아서서 나가버렸다.

 

  “나와!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야”

 

  아내의 앙칼진 목소리에 나는 더듬거리며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지만 비틀거리면서도 뒤를 따랐다.

 

  나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운전석을 열었고 아내가 나를 잡아 당겼다.

 

  “미쳤어!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려고? 게다가 술도 그렇게 마셔놓고는 다 죽을 일 있어!”

 

  아내는 노발대발하며 나를 밀어내고는 자신이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순종적으로 옆자리에 연행되듯 올라탔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우리는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흘긋 처다 본 아내의 얼굴에는 살기어린 눈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집 문을 열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아직 남아있는 먹구름에 달이 가려 한 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불이 모두 꺼진 집 안은 더욱 어둡게만 느껴졌다.

 

  아내는 성큼성큼 걸어가 차키를 탁자위에 올려놓고는 불을 켜려고 하였다.

 

  “불 키지 마!”

 

  나는 순간 소리를 질렀고 아내는 놀라서 획하고 돌아봤다.

 

  이제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비틀거리며 떨고 있던 사람이 소리를 칠거라고는 예상 못한 듯 보였다.

 

  “왜?”

 

  그러나 아내역시 물러서지 않고 되받아쳤다.

 

  나는 부엌 식탁에 앉으며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할 얘기가 있어”

 

  “나도 할 말 많아. 불 켜놓고 해!”

 

  “앉아봐. 너 얼굴 보면서는 도저히 못 말할 것 같아서 그러니까”

 

  “쯧쯔... 양심은 있어 참... 그래 어디 얘기해봐”

 

  화가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내의 톤이 조금은 내려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절대로 술 취해서 하는 농담 따먹기가 아니니까”

 

  나는 제법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물론 아내는 여전히 콧방귀 끼며 취객을 상대하는 태도로 건성건성 듣고 있었다.

 

  “네네. 말해보세요.”

 

  “다은이가 곧 죽어”

 

  “뭐라고? 어떻게 애 아빠란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해서 딸을 팔아!”

 

  아내는 벌떡 일어서서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진정하고 들어! 농담하는 거 아니니까”

 

  “지금 다은이 옆방에서 잘 자고 있어. 근데 뭐? 다은이가 죽는다고?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아내는 결국 못 참고 폭발하고 말았다.

 

  “나도 사실은 믿기지가 않아. 그런데 사실이야. 다은이는 원래 내일 죽어”

 

  아내는 나의 말에 기가 찼는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런 아내의 반응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근데 이제 안 죽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지금 나랑 장난해? 나 지금 당신이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지금 취해서 이러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이랬다저랬다 해?”

 

  아내는 흥분해서 속사포로 쏘아붙였다.

 

  “몰라 나도 잘 모르겠어. 뭐가 뭔지 모르지만 사실인건 맞아. ”

 

  아내는 급기야 헛웃음을 터트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 그래서 계속해봐”

 

  “내가 죽기로 했어. 다은이 대신에 내가... 내가 죽기로 했어.”

 

  “아 머리아파... 그... 대신 죽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사신이 그랬어. 내게 남은 수명 26년을 다은이에게 양도해 주겠다고”

 

  나는 여전히 진지한 태도로 말을 내뱉었지만 아내는 이제 깔깔 웃어대기 시작했다.

 

  “재밌네. 그래서 사신이 다은이 대신에 당신보고 죽으라고 했다는 거야? 그걸 지금 믿으라고? 내 눈 똑바로 바라보고 얘기해!”

 

  “그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우리 둘 사이에는 암흑만큼이나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한동안을 골똘히 생각만 하던 아내가 침묵을 깨었다.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건데?”

 

  더 이상 아내는 나의 말을 가벼이 듣지 않았다.

 

  제법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또 진지하게 대화에 임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미정아! 나 대신에 다은이를 잘 부탁해... 애한테는 이런 거 말하지 말고”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여 힘없이 당부했다.

 

  “그런 큰일을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하더니 나보고는 그냥 따르라고? 아니 다은이에게도 물어볼 거야. 이건 우리 가족의 일이니까!”

 

  아내는 간신히 억눌러놨던 감정이 다시 폭발하기 시작하여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구름이 서서히 걷히는지 불그스름한 빛이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그렇다.

 

  붉은 달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붉은 달.

 

  그것은 떠올랐다기보다는 눈을 깜빡이듯 한순간에 나타났다.

 

  그것은 다른 때와 같이 항상 그 자리를 부유하던 숙주의 몸뚱이 한 가운데를 찢어발기고는 마치 자신이 오리지널임을 표방하려는 듯 그것들 중 아무도 닿지 못했던 한 차원 더 높은 공중에 자리 잡고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높이 떠감에 따라 핵은 주위의 검은 먹구름 한 점에도 쉽게 가려질 만큼 아주 작아졌지만 붉게 충혈 된 눈동자의 빛은 더욱 강렬하게 세상을 노려보았다.

 

  칠흑의 어둠속에서 날카롭게 째려보던 눈동자의 시선이 멈춘 곳은 자신이 바스러뜨린 숙주가 또르르 흘러 떨어진 어느 창가였다.

 

  방의 안쪽까지는 감시의 눈초리가 미치지 못하는지 어둑어둑하여 어떠한 물체의 형체도 알아 볼 수 가 없었다.

 

  다만 쉴 새 없이 눈알을 돌리며 붉은 창틀 모양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갔다.

 

  동공을 차츰 크게 벌림에 따라 빛은 총기를 잃고 차차 뿌옇게 흐려졌다.

 

  하지만 붉은 빛은 슬그머니 창틀을 넘어 고가의 가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붉은 선반, 그 위에 놓인 붉은 오디오와 붉은 TV,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 맞은편의 붉은 소파...

 

  밤손님은 거실에 그치지 않고 부엌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집안은 어두컴컴했고 바닥을 짚으며 살금살금 기어 어느 정도 침투했을 때 빛 한줌 없는 부엌에서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화들짝 놀란 토끼눈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절대 말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그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애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렇게 살라고?”

 

  “모르는 게 나아. 괜히 죄책감 가지고 살 필요 없지.”

 

  “그러면 나는? 나는 어떻게 살라고! 나는 마음 편히 두발 뻗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시끄러! 나는 마음이 편한 줄 알아? 나도 이런 결정 내리기 싫어. 이 가슴이 어?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다고!”

 

  “어차피 자기 마음대로 할 거였으면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하지 나한테는 왜 말해서 사람을 등신으로 만들어 왜! 나는 일말의 죄책감도 안 느낄 것 같아? 나도 할게. 응? 나도 한다고”

 

  “제발 잠자코 너는 우리 애 옆에 남아줘... 내 선택이 틀리지 않도록... 내 마지막 부탁이니까.”

 

  “당신... 그거 알아? 당신도 젊어. 우리 아직 시간도 있으니까 다른 방법도 생각해보자. 응? 당신 술 깨면 내일 다시 이야기해. 솔직히 취해서 하는 그런 허무맹랑한 말도 아직 못 믿겠어... 너무 극단적이잖아.”

 

  “애기엄마. 잘 들어. 나는 알아. 나만은 안다고! 그리고 이건 절망이 아닌 희망이야 다시없을 기회라고! 그것이 악마의 속삭임이었다고 해도 상관없어. 내 영혼 하나면 싸게 먹히는 거니까. 두 말하게 하지 마! 나도 어렵게 결정한 결심이니까 더는 흔들지 마.”

 

  격앙된 언쟁은 그걸로 종식되었고 누군가 걸어 나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아아앙 흑흑 아아앙 싸우지 마 아아앙 꺽꺽”

 

  다은이였다.

 

  아마도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 탓에 깬 듯싶었다.

 

  그때 불현 듯 기억조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다은이를 밀어버리고는 뒷걸음질을 치다 열쇠만 챙겨서 도망치듯 집을 나와 버렸다.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을 마구 뛰었고 가로등 아래에 다다라서야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왜 거기서 그런 기억이 떠올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린 내가 어둠속에서 붉은 눈을 띠며 몰래 훔쳐보았던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 그리고 눈...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엔 어느새 검은 눈꺼풀 한 무리가 덮쳐 왔고 숨어서 가늘게 실눈 뜨던 붉은 홍채는 빛을 잃어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검은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은 어슴푸레 붉은 빛을 띠고 있었고 이내 완전한 어둠으로 덮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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