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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괴물인가?
작가 : 김지혜
작품등록일 : 20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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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익숙한 느낌의 괴물
작성일 : 22-02-21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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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이미 두 번의 질문으로 자신을 갈등하게 했으면서 또다시 자신을 고민과 갈등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말에 동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세 번째 질문밖에 안 됐는데, 벌써 지치신 건 아니죠?]

 

 또 저 미소다. 모든 것이 자신의 손안에 있음을 자신하는 미소. 모두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을 즐기는, 그런 미소.

 

 나는 너 때문에 이렇게나 고통스러운데, 너는 어찌 그리 편할까. 나를 손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어떻게 그렇게 즐겁다는 듯이 웃을 수가 있을까.

 

 동범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으나 차마 자신이 지쳐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그동안 지현을 위해, 정확히는 모두를 위해 노력해온 것이 헛수고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되어버리니까.

 

 고개를 푹 숙이며 지현이 말을 넘기는 것을 기다리는 것만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방관자의 침묵이었다.

 

 [뭐, 대충 알겠어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동범은 지현이 분명 자신이 무언가를 말하리라 예상하고 저렇게 말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현이라면 자신의 침묵마저도 예상하고 모든 말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지현이 짜 놓은 판 위에서 일어난다. 지현의 목표는, 그녀가 말하는 괴물은 그 판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지만, 결국 그마저도 꼭두각시인 것 마냥 그녀에게 즐거움을 줄 뿐, 그 이상의 어떤 감정을 유발하진 못했다.

 

 그렇기에 무서웠다. 어린 나이에 개화해버린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이, 모든 사람이 장기 말에 지나지 않을 저 눈이, 자신을 바라본 순간부터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예측할 두뇌가.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만은 없었다. 지현에게 자신은 일종의 브레이크이리라. 더 잔인해지고, 더 참혹해지기 전에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

 

 동범이 그동안 죽기살기로 따라다니며 그녀의 뒤를 좇는...... 약간 스토커 같은 행동을 하긴 했어도 그것마저 전부 알고 있는 것이 지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내버려 둔 것도 지현이었다.

 

 덕분에 동범은 그동안 지현을 무서워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달리 큰 지장 없이 지현을 좇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동범은 자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현이 인정해준, 지현이 내버려 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경우이자 지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패.

 

 그것이 동범이 생각한 자신의 역할이었다.

 

 동범은 사뭇 비장한 눈빛으로 화면 속 지현을 바라보았다.

 

 직접 보았다면 따가웠을 동범의 시선에도 화면 속 지현은 그저 그린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그럼,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죠.]

 

 이번에도 기분 나쁜 노이즈와 함께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검은 화면이 길게 지속되는 것이 무언가 달랐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Socrates-

 

 이전에는 몇 가지 단어만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필기체로 된 문장이 검은 화면에 돌연히 띄워졌다.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에 관해 조금만 찾아보면 쉽게 나올 수 있는 명언이었다.

 

 그런데, 이게 이번 질문과 무슨 관계가 있지?

 

 동범이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처럼 지현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스스로 빠진 수렁에 다른 이를 끌어들이려 한 자, 그와 함께 수렁을 묻어버린 자. 둘 중 누가 괴물일까요?]

 “.......”

 [아, 이번에는 먼저 대답을 듣지 않겠습니다.]

 

 지금이라면 금방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동범은 속으로 아쉬움을 삼켰다.

 

 지현은 그런 그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바로 대답해버리면 제가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보람이 없잖아요? 굳이 쉬운 질문을 한 건 그만큼 이번 이야기는 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죠.]

 

 지현의 말이 맞았다. 지현이 이번에 들려줄 이야기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러니 부디 즐겨주세요. 당신처럼 반성을 모르던 어리석은 이의 이야기를.]

 

 지현은 세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연이 자신에게 한 짓들을 방관하던 이들과 마주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전학을 간 학교에서의 이야기를.

 

 생각 외의 인연에서 맺어진 어리석은 자의 폭력과 버둥거림에 대한 관찰일지를.

 

 ***

 

 “미안해. 난 여기서 더 버티기가 힘들 것 같아.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지현은 그 말 한마디와 함께 원래 있던 고등학교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동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딸을 위하는 엄마의 마음에서 기인된 행동력에는 제한이 없었다.

 

 수연은 지현을 위해 이전에 살던 동네와 고등학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그러면서도 지현의 교육과 생활, 거기에 부가적으로 자신의 직장에 문제가 없는 곳으로 이사했다.

 

 새로 이사를 간 곳에서는 아무도 지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가 ‘겨울이’라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규칙과 올바른 태도에만 관심이 있었다.

 

 동네 분위기가 학교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전학을 간 학교는 고등학교의 정석 그 자체였다.

 

 모범적이고 규율을 잘 지키며 학생들의 생활과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런 꿈의 학교와 동네에서 살 수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반성을 모르고,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 노력하며 강한 자에게는 굽신거리면서 약한 자에게는 서슴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익숙함마저 느껴지는 아둔한 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너, 너. 교복 단추 하나는 얻다 빼먹었냐. 나 양아치요, 라고 광고하니?”

 “......네?”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윽박에 지현은 당황하며 자신의 교복 단추를 살폈다.

 

 정갈하게 채워진 단추를 뒤로하고 맨 위에 있는 단추만 풀어져 있었다.

 

 ‘실수로 못 채웠나 보네.’

 

 고작 단추 하나 안 채운 게 윽박지를 만한 이유가 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우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식적인 사과를 건넸다.

 

 “아, 죄송합니다.”

 “하아, 쯧.”

 

 학생의 바로 앞에서 해도 되는 것인지 의심되는 한숨과 혀를 차는 소리에 지현은 흠칫 놀랐다.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서 나오는 한숨은 익숙했다. 과거, 수민이 자신에게 하던 행동이었으니까.

 

 방금의 한숨, 혀를 차는 소리도 전부 수민이 하던 행동과 비슷했다.

 

 뭔가 쎄했다. 이 익숙하고도 낯선 느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지현은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벌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입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행동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는 들고 있던 종이에 무어라 적기 시작했다.

 

 “너, 벌점 2점이다. 학번하고 이름, 빨리 불러.”

 “네...... 20712 유지현입니다.”

 “그래, 이제 가 봐.”

 “네.”

 

 막 2학년이 된 터라 조용히 넘어가긴 했지만, 지현은 오늘 있었던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익숙한 무시와 제멋대로 규율을 바꾸는 능력은 그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으니까.

 

 지현은 서둘러 그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그래야 그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저기.......”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지현의 등을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자 처음 보는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 난 현아라고 해. 지혜 친군데,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지혜? 아, 작년에 같은 반이었지.’

 

 빠르게 지혜에 대한 정보를 떠올린 지현은 사르르 미소를 지었다.

 

 “아, 전에 우리 반에 찾아온 적이 있었지? 그때 지혜한테 초콜릿 주러 왔었나?”

 “어어, 맞아. 지혜가 내가 만든 초콜릿을 좋아해서 자주는 못 하지만 가끔씩 만들어주고 있어.”

 

 이야기는 둘의 공통점이었던 지혜에서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로, 그 다음에는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변해갔다.

 

 지현이 의도했던 대로 둘은 매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까 길호철이 너한테 뭐라 하던데, 너무 신경 쓰지 마. 저 쌤 원래 저래.”

 “그래?”

 “응, 전에 어떤 애한테는 염색했다고 교내봉사까지 시켰다니까? 걘 자연 갈색인데 말이야.”

 “와, 진짜 심각하네. 선생님 맞아?”

 “그러니까! 도대체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 거야!? 자기가 뭐, 이사장 아들이라도 돼?”

 

 그동안 호철에게 쌓인 것이 많았는지 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내는 현아를 바라보며 지현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길호철. 수민이 술에 취했을 때마다 자주 입에 담던 이름이었다.

 

 바닥이란 걸 모르고 항상 하늘만을 쳐다보았던 자신의 날개를 꺾고 바닥에 떨어뜨렸다는 죽일 놈. 그게 수민이 말하던 호철이었다.

 

 ‘어쩐지 뭔가 익숙하더라니.’

 

 호철에게서 느꼈던 익숙함은 수민에게서 본 행동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그래, 비슷했기에 더 좋은 것 같다.

 

 한 번 상대해본 적 있는 적을 다시 만나면, 그때는 처음보다 쉽게 상대할 수 있으니까.

 

 수민과 비슷한 호철도 조금만 공을 들이면 쉽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괴물은 생각보다 더 죽이기 쉬울 거라고. 지현은 그렇게 자신했다.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면 죽이기 어려웠을 수민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이는 수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성정을 가졌을 거라는 사실을 간과하고서.

 

 .

 .

 .

 

 “그래서, 네가 손해 본 건 없잖아. 전부 그가 혼자서 자멸한 것뿐이잖아.”

 

 동범의 말에 지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히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현의 반응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전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그가 자멸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시는 건 아니죠? 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멸이란 걸 모르고 살았을 사람이 자멸이요?]

 “.......”

 

 동범은 지현의 말에 침묵으로 긍정했다.

 

 지현을 만나지 않았다면 악행을 계속해왔을 호철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어떤 행동이 옳은 행동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했을 것이다.

 

 계속된 악행에도 자신의 직업, 지위 등 가지고 있는 것을 단 하나도 잃지 않고 죽을 때까지 어려움도, 힘듦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그게 그에게 예정되어있었던 미래였다. 지현은 만나면서 바뀌었지만.

 

 잠깐 사이에 생각을 정리한 동범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현은 해사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도 내가 그보다 나쁘다고 생각하나요? 그가 나보다 더 큰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나요?]

 “.......”

 [이럼, 조금만 들어보고 가시죠. 당신은 모를 다른 아이들의 증언입니다.]

 

 치지직- 거슬리는 기계음 뒤에 모자이크로 얼굴이 가려진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새...... 아니, 선생님이요? 오우, 유명하죠! 야구 배트로 학생 때리는 게 일상인 선생님인데요!]

 [그 선생님이 병원에 보낸 애들이 한둘이에요? 엄청 많아요!]

 [여기 볼 쪽에 상처 보이시죠? 그 선생님이 제 뺨을 때리다가 손톱에 긁힌 거예요.]

 [그 선생님이 들고 다니는 막대기 있잖아요, 그 지시봉. 그거 애들 때리려고 들고 다니는 거예요.]

 

 그럼, 학부모들은 뭐라고 안 해요?

 

 나직하게 들려오는 지현의 목소리에 동범은 자기도 모르게 안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런 게 궁금했었다. 어째서 저렇게 수많은 피해자에도 불구하고 호철이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있었나.

 

 동범은 의문은 지현의 대답에 금방 해결되었다.

 

 [어떻게 뭐라고 해요.]

 

 저마다의 피해 사실을 늘어놓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졌다.

 

 [다른 애의 잘못으로 넘기거나 학업을 위한 사랑의 매라고 하면 그만인데요.]

 

 동범은 충격에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버렸다.

 

 그런 그의 반응에 굴하지 않고 지현은 얘기를 이어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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