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나쁜심장
작가 : 송강
작품등록일 : 202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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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작성일 : 22-02-21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4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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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가 블라인드를 내리고 원장실 도어버튼을 안에서 누른 제혁은 책상 속 서류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박 종성탐정이 퀵으로 보내준 자료들이었다.

 다각도에서 찍은 여러 장의 첨부된 사진과 소견서들.

 이제 갓 시작된 단계인 점을 감안하자면 나쁘지 않은 진행속도이자 중간결과였다.

 자료들을 천천히 훑어보는 제혁의 시선에 들어 온 전면에 빨간 엑스 자를 그리고 있는 서류 한 장.

 던진 미끼를 물듯 박 탐정이 덥석 문 그 건이었다.

 박 탐정은 참고하라는 부연과 함께 친절하게도 서류 뒷면에 먼발치서 찍은 그들 부부의 사진도 클립으로 꽂아놓았다.

 일관된 무표정으로 요리조리 살피던 제혁은 다시금 타이트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조나단 리와 고 여름부부.

 ‘그들을 아느냐고? 물론 잘 알지. 이 부부를 어찌 모르겠는가.’

 그 당시 핫한 이슈메이커인 연예인 커플로 가는 곳곳마다 플래시가 팡팡 터졌던 유명부부였지.

 

 십여 년 전 어느 날.

 조나단 리와 고 여름부부가 은밀히 제혁을 찾아 왔다.

 모두들 퇴근하고 강산부인과라는 주황색간판의 불까지 꺼진 야심한 밤이었다.

 왕 영성선배의 긴한 소개로 왔다며 미리 개인직통전화를 넣어 두었던 부부.

 실제로 면전에서 본 그들 부부는 브라운관에서보다 훨씬 잘생기고 아름다운 선남선녀였다.

 부부는 돌려 말하지 않고 제혁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자신들의 아이를 낳아줄 맞춤 맞은 대리모를 주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제혁이 뜨악했다.

 “예에?”

 “돈이라면 걱정 마세요. 선생님께 건 대리모 에게건 왕 닥터가 말씀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충분히 사례하겠어요. 그리고 비밀보장은 염려마세요. 그 문제에 있어서는 선생님보다 저희 부부가 더 간절하니까요.”

 그때 제혁은 무슨 생각을 했던가?

 솔직히 그들 부부가 일반적이지 않고 좀 특이하다 느꼈던 것 같다.

 왜냐면 여타의 부부들과 달리 제혁에게 그 말을 한 이는 엄마가 될 고 여름이 남편인 아닌 조나단 이었기 때문이었다.

 내내 말없이 조용히 앉은 고 여름에 비해 조나단 리는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대리모선정규정까지 제시하며 열을 올렸다.

 “성사만 된다면 특별히 선생님께는 프리미엄을 더 드리겠습니다. 감사의 의미로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시 극심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던 병원의 상황을 꿰뚫듯 조나단 리는 거듭 돈으로 제혁을 현혹했다.

 사실 무리하게 오픈한 산부인과 개원이었다.

 포부에 찬 계획과 달리 동네산부인과 운영은 신통치 않았고 적자의 수준을 넘어 제혁은 나날이 숨통이 조여 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제혁은 NO라고 말했다.

 먼저 의료윤리법위반을 염두에 두고 언급했지만 전적으로 그것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상당히 솔깃하고 뜨거운 유혹이었으나 제혁이 그런 까다로운 대리모를 구할 재간이 없었던 이유가 더 컸다는 게 맞을 터였다.

 줄도 없고 빽도 없는 신생개업의의 입지나 그라운드는 그리 폭이 넓지 못했다.

 그들 부부는 그렇게 씁쓸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 영성선배가 제혁을 호출했다.

 자신이 운영 중인 불임클리닉센터로 제혁을 부른 영성은 친히 특진을 부탁했다.

 “수고 좀 해줘. 노수용이 지금 신혼여행중이야. 아니, 뭔 신혼여행을 한 달씩이나 간다니? 요즘 얘들은 참! 정말 같이 일 해먹기 힘들어 죽겠네.”

 진료담당 노 닥터의 부재로 제혁을 찾았다는 영성이 특수진료실로 그를 인도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제혁은 화들짝했다.

 놀랍게도 진료실 대기소파에는 조나단 리와 고 여름부부가 나란히 앉아 제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마저 거부하시지는 않을 테죠? 선생님의 의사로서의 신념에 감명 받아 실례를 무릅쓰고 특별히 왕 닥터에게 부탁을 했거든요.”

 이번에는 낭랑한 음성의 고 여름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왕 영성이 말했다.

 “아아!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어쩌다 상황이 맞아떨어진 것뿐이에요. 두 분도 아시다시피 강 닥터가 원체 원리원칙주의자라서요. 게다가 이 계통으론 실력도 아주 출중하니 선배인 내가 후배한테 이렇게 매달릴 수밖에요. 강 닥터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영성은 제혁을 향해 한손을 번쩍 들어 보이고는 진료실을 나갔다.

 얼떨떨한 제혁은 그들 부부의 진료를 무사히 끝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제혁은 다시 만나게 된 그들 부부보다 다른 장면이 더 생각났다.

 넓은 진료실에 세팅되어 있던 반짝반짝 윤이 나는 최첨단 장비들.

 제혁의 입장에서는 꿈에서나 볼법한 부럽기 짝이 없던 고가의 기계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강한 각인으로 남아있었다.

 전부터 제혁에게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해오던 영성은 제혁의 숨길 수 없는 달뜬 반응에 재차 동업을 종용했다.

 소규모지만 오너로서 첫발을 내디딘 곳에서 끝까지 버티고 싶었던 제혁은 고민 끝에 마침내 결심했다.

 빚잔치로 과감히 개인병원을 청산하고 <왕&강 불임클리닉>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그 계기를 만들어 준 게 제혁을 사로잡았던 그 최신의 첨단장비였다.

 어쨌거나 그 일이 있고 난지 며칠 후.

 제혁은 여전히 신혼여행중인 노수용을 대신해 조나단 리와 고 여름부부의 수정란 착상에 돌입했다.

 그때 그들이 데리고 온 대리모가 갓 스물을 넘긴 서 수인이었다.

 태산반도의 자연생태농원 갯벌에 머리통을 쑤셔 박고 최후를 맞이했던 그 여자.

 자취도 행방도 묘연하던 정체불명의 그녀가 바로 그 부부의 아이를 대신 품었던 여자였다.

 

 사실 제혁이 처음에는 서수인 그 여자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뭔가 찜찜한 사건에 휘말린 불편함 때문에 날이 서있었지만, 와중에도 갯벌에서 건져낸 시신의 얼굴을 서너 차례에 걸쳐 확인했었다.

 하지만 생판 낯선 초면이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뜬금없이 박 탐정이 보내온 피로 얼룩진 강산부인과 명함을 보고도 제혁은 의아했다.

 “......?”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SM에 그런 이름과 외모의 대리모는 없었다.

 혹시 몰라 보유 중이던 자료파일들을 전부 뒤졌지만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강원장님. 서수인 그 여자 보통이 아니던걸요? 아! 글쎄 그 여자가 대대적으로 성형시술을 했더군요. 거기에 개명까지. 허허허 그러니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요.”

 박 탐정은 기가 막힌다는 투로 허탈한 목소리를 냈다.

 

 

 다소 늦은 퇴근길.

 핸들을 잡은 제혁이 왼쪽 손목을 꺾어 시계를 보았다.

 “이 시간에 웬 차가 이리 밀린대? 주차장이 따로 없군. 사고라도 난건가?”

 사거리 교차로를 얼마 앞두지 않은 제혁은 묵 고개를 빼 기웃대다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기고 어깨를 내렸다.

 “휴우, 요즘 따라 하루가 길 구나 길어.”

 어딘가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의 주소록을 펼치던 그가 금세 고개를 젓고 앞을 응시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소리쳤다.

 “근데 정말 나도 궁금하네? 그 연예인 부부 아이가 대체 어디로 갔다는 거지? 하아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이 딱 맞네.”

 제혁이 갸웃거렸다.

 “하긴 그것까지야 내 알바는 아니지. 쩝.”

 내뱉는 말과는 달리 제혁은 이내 눈 끝이 잠잠해졌다.

 그 부부의 일이야 제혁자신의 일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기에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리모가 지녔다는 강산부인과 명함을 보았을 때.

 제혁에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서 수인이라는 그 여자가 빌리를 데리고 와 그곳에 버렸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건 뭐, 애초부터 변함없는 내 생각이었지.”

 제혁은 서수인 그녀가 조나단 부부의 아이를 분만한 후 또 다른 대리모를 했을 것이라 잠정 결론지었다.

 가리키는 상황이 딱 그랬다.

 이건 추측이나 예상이라기보다는 뭐랄까?

 회귀본능이라고나 칭함이 더 적합할 것이었다.

 대부분의 임산부둘이 불안감에 첫 아이를 낳은 절차의 익숙함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였다.

 산후 조리도 전문기관이 아닌 친정에서 한 산모들이 다음번에도 친정을 고집하는 원리처럼.

 서수인 그녀는 대리모로서 첫 아이의 분만을 자연생태농원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너무 나가서 오버 하는 것 아니냐고?

 “오버는? 내가 직접 그곳으로 가서 분만유도를 하여 출산을 담당했으니까 알지.”

 왕 선배가 보내준 차에 실려 늦은 밤이라 들어갈 때는 몰랐지만 다음날 나올 때는 멋진 천혜의 관경이 펼쳐졌었다.

 그곳은 그 누구의 눈길도 비껴가고 비밀이 보장되는 은밀하고 한적한 곳이기에 출산을 하기에 적합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제혁은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다.

 서수인 대리모는 연예인 부부에게 막대한 돈을 받았을 터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또 대리모를?”

 그때 제혁은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가 친자로 빌리를 낳지 않았을까.

 그것은 타당성 있는 추측이었다.

 타당한 추측은 결국 합리적인 의심을 낳았다.

 그 연예인 부부를 추적하다보면 대리모와의 관계도 일정부분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빌리의 원초적인 출생의향방도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그런 까닭으로 제혁은 박 탐정에게 넘긴 의뢰인 목록에 슬쩍 조나단 부부의 자료를 밀어 넣어 둔 것이었다.

 “설령 수포로 끝난다 해도 밑져야 본전인 셈이지. 안 그래?”

 빵빵! 빵빵!

 홀로 자신 있게 으쓱대는 제혁의 뒤에서 경적이 울려댔다.

 제혁은 여유롭게 핸들을 돌리며 스윽 고개를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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