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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버릭(maverick).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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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바둑의 성지(聖地), 황장(皇莊)1.
작성일 : 16-04-04     조회 : 837     추천 : 0     분량 : 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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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바둑의 성지(聖地), 황장(皇莊)1.

 

 

 도민우는 내심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심해야 한다는 본능이 요란하게 경계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애써 태연을 유지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도민우는 차를 다 마신 후 다루를 나서 천천히 황장을 찾아 나섰다. 원래는 소요삼교 연서린이 집을 나서 황장에 갈 때 뒤따라갈 생각이었지만 계획을 바꾼 것이다.

 

 무주의 중앙대로를 따라 북단으로 일백여 장 올라가면 무주부(武州府)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무주부 옆에 무주부보다 더 규모가 큰 장원이 서있었는데 바로 황장이었다.

 도민우는 하나의 성을 방불케 하는 황장의 규모에 내심 탄성을 터트리며 문득 황장의 유래에 대해 장황하게 떠들어대던 객점 주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남북조시대의 민가 중 악부민가(樂府民歌) 라는 시가가 있다.

 그 악부민가에서 양대시가로 손꼽히는 게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와 목란시였는데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종군을 했던 여인 ‘화목란(花木蘭)’의 이야기는 바로 목란시로부터 유래된다.

 화목란은 단지 시가 속의 인물일 뿐 실존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둑에서 화목란과 같은 인생을 산 실존한 여자가 있었다.

 남제의 사서에 기록된 유영은 바둑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 관료로 발탁되어 활동하다가 결국 남장여자라는 게 밝혀진다.

 원래대로라면 귀향을 가거나 목숨을 잃어야 할 중대사안.

 하지만 송 명제에 의해 문책대신 오히려 후인을 양성하라며 한 채의 전각을 하사받는데 그 전각이 바로 황장이었다. 원래 바둑고수들을 모아 근무하게 하는 관청인 위기주읍(圍碁州邑)을 유영에게 하사하며 황장이라는 이름마저 내린 것이다.

 

 대문이 활짝 열려있고 사람들이 쉴 사이 없이 드나든다.

 도민우는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황장의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가 객점의 주인이 바둑을 둘 줄 아느냐고 물어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문 안쪽에 한 사람이 탁자를 놓고 앉아 있었는데 탁자 위에는 바둑판이 놓여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막기 위해 관문을 설치했다고 하더니 사활문제였구나.’

 첫 번째 관문의 사활문제는 대략 7급 정도의 기력이면 풀 수 있는 문제였다.

 통과한 사람에게는 홍색의 패가 주어지는데 한번 합격한 사람은 그 패를 보이면 아무 때나 출입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대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 한쪽으로 수십여 개의 평상이 줄지어 있는데 그 평상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국을 하고 있었다.

 하급자들이 바둑을 두거나 배우기 위해 드나드는 장소이기 때문인지 분위기는 매우 자유로웠다.

 남들이 대국하는 걸 구경하거나 훈수를 두는 등, 어떻게 보면 현대세계에서 동네기원을 대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관문의 사활문제는 제법 까다로워 3급 정도의 기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통과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활문제는 매일 바뀌기 때문에 그야말로 바둑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통과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건 청색패였고 그 패를 내보여야만 두 번째 대문 안쪽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두 번째 대문 안쪽으로는 평상이 아니라 회랑 형태의 건물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위에 일렬로 바둑판들이 놓여 있었다.

 앞에는 각기 포단마저 갖춰져 있었고 분위기도 진지해 크게 웃거나 떠드는 사람은 없었고 남의 바둑에 훈수를 두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마지막 관문은 사활문제가 아니라 지키고 있는 사람과의 대국이었는데 상대는 1급 정도의 기력을 갖추고 있었다.

 도민우는 이미 세 번째 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은 황장에 등록된 제자들이나 기력이 아주 높은 사람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도민우가 황장 안 어느 곳이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려면 일단 세 번째 관문도 통과해야 했다.

 단숨에 두 번째 관문까지 통과한 도민우가 앞에 앉자 대기하고 있던 30대 후반의 중년인이 이채를 머금었다.

 세 번째 관문을 맡은 중년인은 사실 끝까지 바둑을 둘 생각이 아니었다. 단지 상대의 기력을 시험해 보는 대국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국이 중반쯤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중년인은 바둑을 접지 않았다.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대국을 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진다는 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이었다.

 헌데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찌 보면 형세는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막상 대국하고 있는 중년인은 내심 진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포석에서부터 조금씩 손해를 보는 기분이었는데 막상 싸움에 들어가자 상대는 느린 걸음으로 제 갈 길만 가며 집을 넓히고 있었다.

 싸움을 걸어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간단히 피하며 조금씩 실리를 취할 뿐이었다.

 홀린 듯 바둑을 두던 중년인이 돌을 던진 건 결국 바둑이 200수를 넘기 전이었다.

 도민우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할 때 받은 청패를 황패로 교환해 받은 뒤 황급히 되돌아 나왔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내려고 했지만 바둑이 이백여 수까지 진행되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이미 미시가 지난 것이다.

 ‘내가 세 번째 관문에서 바둑을 두고 있을 때 들어왔을 텐데 어디로 갔을까?’

 소요삼교 연서린의 모습은 첫 번째 대국장은 물론이고 두 번째 대국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문득 도민우의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삼교(三巧)라 함은 세 가지가 빼어나고 아름답다는 의미일 터··· 그중 하나가 바로 바둑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이미 예전에 삼관문을 통과해 내원까지 들어간 게 아닐까?’

 잠시 후, 도민우는 황급히 다시 세 번째 대문을 지나 내원으로 들어갔다.

 

 내원은 비단 넓을 뿐 아니라 풍광이 뛰어나고 운치가 있었다.

 잘 가꿔진 작은 화원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십여 개의 정자들이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어 한적하면서도 평화스러웠다.

 또한 서너 개의 별채가 서로 떨어져 있어 마치 도원경을 대하는 것 같았다.

 도민우는 황궁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이곳 황장의 내원이 황궁 못지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정자는 물론이고 수많은 별채의 방에서도 대국을 하거나 바둑 공부를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원 전체는 마치 한 사람도 없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도민우는 드넓은 내원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눈에 뜨이는 정자들을 살펴보고 별채의 방들마저 둘러보았지만 끝내 소요삼교 연서린을 찾을 수 없었다.

 황장의 내원에는 경계를 하는 무인은 한 명도 없었다.

 바둑을 배우는 사람들이 수십여 명이나 있었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정자나 별채의 방에서 대국을 하는데다 한 결 같이 대국에 집중하느라 입을 여는 사람이 없어 오히려 사람이 살지 않는 폐장원같았다.

 밥 한 끼 지를 정도의 시간동안 내원 안을 헤매던 도민우는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다.

 주위는 고적하기만 할뿐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도민우는 되돌아 나오려고 했지만 방향을 알지 못해 무턱대고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몇 개의 화원을 통과해 대나무 숲에 들어서자 한 채의 정자가 보였다.

 고적하기 이를 데 없는 정자였다.

 정자 위에는 한명의 황의노파가 앉아 있었는데 앞에 바둑판이 놓여있었다.

 꼿꼿하게 편 허리, 흑발이 단 한 오락도 섞이지 않은 윤기가 흐르는 백발.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황의노파는 그 기도가 범상치 않아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주위에 수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도민우는 밖으로 나가는 길을 묻기 위해서 정자에 올랐다.

 황의노파는 도민우가 옆에까지 가까이 다가와도 바둑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분위기가 너무 엄숙해 도민우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

 황의노파는 흑과 백을 번갈아 두며 복기해 210수에 이르자 한참을 생각한 뒤 180수까지 돌을 회수한 후 다시 복기를 하고 있었다.

 도민우가 지켜보는 동안 황의노파는 몇 번을 복기했지만 끝까지 돌을 놓지 않고 다시 180수로 되돌아오곤 했다.

 “그 수가 완착이었습니다. 거기서는 끊게 놔두고 다른 곳으로 갈게 아니라 연결을 했어야 하는 겁니다.”

 바둑이 다시 183수에 이르렀을 때 도민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가? 이 수가 패착인건가···?”

 ‘패착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본인이 졌던 바둑을 복기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도민우는 내심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패착이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 진짜 패착은 따로 있었다는 건가? 좌상귀에 가일수 하지 않은 것 말인가? 하지만 그건 겨우 일곱 집이었고 대신 나는 열두 집을 차지했네.”

 “집으로는 이득을 봤지만 183수에서 끊기는 바람에 대신 세력이 엷어졌지요. 그 때문에 조금씩 밀리면서 결국 지게된 겁니다.”

 “아···!”

 그제야 머리가 밝아졌다는 듯 황의노파가 나직이 신음을 터트렸다.

 “이 수를 단숨에 읽어 내다니··· 대단하군. 대단해!”

 황의노파는 탄성을 터트린 후 새삼 도민우에게 눈을 돌렸다.

 그 눈에 이내 의아해 하는 빛이 떠올랐다.

 황장에 드나드는 바둑 고수들 중에서 황의노파가 모르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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