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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작가 : 묘재
작품등록일 : 2016.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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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
작성일 : 16-08-19     조회 : 1,015     추천 : 1     분량 : 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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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장(序章)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하얼빈 역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마도 곧 도착할 열차를 기다리는 높은 관료들과 러시아 군대 때문인 것 같았다.

 길게 늘어선 러시아 군인들은 석상처럼 굳은 얼굴로 주변의 분위기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헌데 그들의 뒷줄에 평범한 듯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러시아식 복장을 갖춘 동양인이 구경꾼 무리에 섞여 있는 것이다.

 강인해 보이는 눈빛이 인상적인 동양 남자, 그의 이름은 바로 안중근이었다.

 끼이이이익-

 그때 굉음이 울리며 열차가 하얼빈 역으로 들어왔다.

 러시아 군인들은 열차에 신경을 쓰느라 안중근을 의식하지 못했다.

 터억!

 이윽고 문이 열리며 염소수염을 기른 일본인이 나타났다.

 자신을 기다리던 관료들과 악수를 나눈 일본인은 뿌듯한 얼굴로 군인들을 쳐다보았다.

 “하이- 핫!”

 힘찬 기합 소리에 맞춰 러시아 군인들이 사열을 시작했다.

 일본의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맞이하는 군인들의 동작에는 절도가 넘쳐났다.

 허나 그 순간, 숨죽이고 있던 안중근이 군중 속에서 번개처럼 뛰어나왔다.

 탕! 탕! 탕!

 여러 번의 총성이 하얼빈 역을 강타했다.

 그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몇몇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안중근은 오직 이토 히로부미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반드시 죽인다!’

 철컥-

 탕! 탕! 탕!

 필사의 각오가 담긴 총알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날아갔다.

 허나 이미 일본 순사가 그의 앞을 막아선 뒤였다.

 ‘틀렸는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 안중근은 눈을 부릅뜨고 일본 순사를 쳐다봤다. 그가 쓰러지면 마지막 남은 총알을 이토 히로부미에게 쏠 생각이었다.

 그런데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츠팟!

 일본 순사의 몸뚱이 앞에서 총알 세 발이 사라진 것이다.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직접 총을 쏜 안중근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푸푸푹!

 “크허어억……!”

 사라졌던 총알은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을 꿰뚫고 튀어나왔다.

 일본 순사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고, 쓰러진 이토 히로부미를 본 안중근은 옷에서 태극기를 꺼냈다.

 “꼬레아 우레! 꼬레아 우레!”

 러시아어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안중근의 표정은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저놈이다!”

 “잡아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군인과 순사들이 그를 체포했다.

 그러나 안중근은 의연한 얼굴로 하얼빈 역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고맙소…….’

 끌려가는 안중근의 시선은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고정돼 있었다.

 “후우-.”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왼쪽 뺨의 흉터를 제외하면 아주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생김새로 보건데 안중근과 같은 대한제국의 사람이 분명했다.

 처억.

 청년은 누군가 어깨에 손을 올리자 고개를 돌렸다.

 그 손의 주인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셨소이다.”

 “알고 있다. 책임은 내가 진다.”

 “원로회에서 가만있지 않을게요.”

 “내 힘으로 백두산 폭발을 막겠다. 그 정도면 원로회도 만족할테지.”

 “배, 백두산을! 스스로 제물이 되겠다니……. 정말이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인 뒤 걸음을 옮겼다.

 그가 움직이자 노인도 자취를 감추었다.

 어떻게 사라졌던 총알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는지, 그리고 안중근이 청년에게 고마움을 전한 이유는 무엇인지.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남았지만, 진실은 너무 깊이 숨겨져 있었다.

 -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

 

 +++

 

 하얼빈에서 총성과 함께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울려 퍼진 것도 벌써 102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하지만 빠른 성장의 그늘에는 어두운 이면도 존재하는 법이다.

 권력자들의 부정부패, 그리고 청산되지 않은 과거까지.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여기, 서울 시내의 후미진 뒷골목에서도 또 하나의 억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와당탕탕-!

 낡은 점퍼를 입은 청년이 쓰레기 더미 위로 쓰러졌다.

 그는 슬픔이 짙게 배인 눈빛으로 자신을 넘어트린 사람을 쳐다봤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청년의 물음이 공허하게 울리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검은 정장의 사내는 비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놈 하나가 죽는다고 세상이 알아줄 것 같나? 누구도 너 따위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이익……!”

 쓰러진 청년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정장 사내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나보군. 독립군의 후손이랍시고 뻣뻣하게 살아봤자 누가 알아주나?”

 “닥쳐, 더러운 친일파의 후손 주제에!”

 “순진한 놈, 아직도 그딴 소리를 하다니.”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조금씩 청년에게로 다가갔다.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은 청년은 반항할 힘이 없었다. 그저 눈을 부릅뜨고 사내를 노려보는게 다였다.

 콰악!

 사내의 구둣발이 청년의 가슴팍을 짓밟았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굴욕적인 행위였다.

 “그냥 죽여…….”

 “똑바로 알아둬라. 세상은 오직 두 부류로 나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청년을 밟은 채 오만한 말을 내뱉은 사내가 허리를 숙였다. 이윽고 그는 청년의 손에 있던 반지를 빼앗았다.

 아무래도 그 반지가 목적인 것 같았다.

 “너 따위는 이 물건을 가질 자격이 없다.”

 “크으윽!”

 반지를 뺏긴 청년의 얼굴은 분노와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거리낌 없이 발을 들어 그의 목을 부러트렸다.

 뚜두둑-

 정장 사내는 사람을 죽이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미련을 남길 이유가 없었다.

 헌데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청년이 마지막 힘을 짜내서 몇 마디 말을 남겼다.

 “너… 실수한 거야……. 그, 그 사람이 돌아와서… 너희 모두를 심판 할 테니…… 쿨럭!”

 뜻 모를 유언을 남긴 청년은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의 섬뜩한 저주에도 불구하고 돌아선 사내는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청년이 죽어가며 남긴 저주가 현실이 되리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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