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현대물
매버릭(maverick).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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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균천무상권결(鈞天無上拳結) 1.
작성일 : 16-03-29     조회 : 757     추천 : 0     분량 : 4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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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균천무상권결(鈞天無上拳結) 1.

 

 

 소지품은 별게 없었다.

 한쪽의 낡은 궤짝에 몇 벌의 옷이 들어 있을 뿐 그야말로 단출해도 너무 단출했다.

 방안에 단서가 될 만한 게 없자 도민우는 새삼 자신의 소매와 품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일행과 함께 있어 대놓고 자신을 뒤질 수 없었다.

 전낭에는 은자와 금자는 물론이고 전표까지 들어 있어 꽤 두둑했다.

 눈에 띄는 건 유지(油紙)로 감싼 뒤 다시 비단으로 단단히 묶어 놓은 세 가지의 기물이었다.

 부러진 단검 한 자루와 손에 쥐어질 정도 크기의 동패(銅牌) 하나, 그리고 손가락 크기의 옥으로 조각된 미인상(美人像) 하나였다.

 동패에는 구름 같기도 하고, 파도 같기도 한 기이한 문양이 각인되어 있었는데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특이한 것은 동패의 중앙에 지흔(指痕)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두께 한 치가 넘는 동패가 거의 뚫릴 뻔한 지흔이었다.

 ‘이 동패는 목에 걸고 있던 게 분명하다. 곧 누군가의 지공(指功)을 이 동패가 막아주는 바람에 동패의 주인이 목숨을 건진 것 같은데···?’

 도민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단단히 감싸 놓은 걸 보니 사연이 있는 물건들이 분명한데 도대체 무엇에 쓰이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도민우는 세가기 기물을 원래대로 싸놓은 뒤 걸치고 있던 상의를 벗어 뒤집었다.

 한 장의 얇은 양피지가 등 부위의 천에 덧대어 꿰매져 있었다.

 양피지는 얇았지만 등을 대고 누우면 다른 부위와 차이가 났다. 해서 도민우는 이미 삼일 전에 옷에 무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제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균천무상권결(鈞天無上拳結)>

 

 양피지의 상단에는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권법의 요결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 초식의 전개과정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천수관음(千手觀音)을 묘사한 것처럼 한 사람의 몸에서 무수하게 많은 손과 발이 뻗어 나온 것 같은 그림이었다.

 그림은 모두 열두 개였는데 그림 하나가 한 초식을 묘사하고 있는 듯 했다.

 무수하게 펼쳐져 있는 주먹들, 그리고 발의 움직임이 한꺼번에 그려져 있었지만 내뻗은 주먹 끝에 번호가 작은 글씨로 쓰여 있어 순서를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발의 움직임역시 마찬가지로 일일이 번호가 적혀 있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랄까.

 도민우는 장삼에 꿰매져 있는 게 바로 권법요결이라는 걸 알고 내심 환호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삼일 전에 몸의 주인, 장천상이 보여준 권법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던 것이다.

 삼일동안 쉬지 않고 길을 재촉해 피로가 쌓인 상태였지만 도민우는 이내 권법에 빠져들었다.

 먼저 구결을 단단히 암기한 후 그 요체를 깨우친다.

 몸으로 익히며 수련하는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도민우가 권법요결에서 눈을 뗀 건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정오 무렵에 숙소에 돌아왔는데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원래는 몸도 씻고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점심은커녕 저녁 먹을 시간도 꽤 늦은 시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민우는 서둘러 주청으로 나가 간단하게 요기를 때운 후 점소이에게 동경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현대사회에서는 도처에 널린 게 거울이다.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고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무림에서는 여인의 규방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바로 거울이었다.

 

 점소이가 가져온 거울은 전신을 비쳐볼 수 있는 전신경이었다. 크기도 컸지만 동(銅)으로 만들어져 작은 체구의 점소이로서는 꽤나 무거웠을 것 같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동경에 비쳐진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눈썹이 짙고 턱 선이 갸름하다. 코도 오뚝했지만 입술이 얇아 고집이 세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와 출렁이고 있는데 다듬지 않아 머릿결이 거칠기 이를 데 없었다.

 ‘얼굴만 봐서는 나보다 한두 살 어리겠구나.’

 도민우는 거울에 비쳐진 모습이 의외로 준미하자 내심 흐뭇했다.

 잠시 후, 도민우는 내친 김에 옷을 모두 벗고 몸마저 살펴보기 시작했다.

 ‘몸을 보살피지 않았군. 너무 말랐어.’

 비단 말랐을 뿐만 아니라 온 몸에 상처투성이였다. 그중에는 오래된 상처도 있었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도 있었는데 어떤 상처는 뱀처럼 길게 몸을 휘감은 것도 있었다.

 ‘화아··· 나이도 어린놈이 엄청 쌈질을 하고 다닌 모양이구나.’

 도민우는 몸을 뒤덮고 있는 무수한 상처를 보자 새삼 장천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강렬해졌다.

 

 동경을 돌려준 도민우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당 한쪽의 평상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기이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신기한 걸 꼽으라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 무림으로 건너 왔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로 불가사의한 것은 자신이 무림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도민우가 망연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 여인이 앞쪽에서 걸어왔다.

 이십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꽉 끼는 홍의로 감싼 몸이 탄력이 느껴져 건강미가 넘쳤다. 희디 흰 피부에 갸름한 얼굴. 약간은 오만해 보이는 눈매가 다소 흠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미모를 가리지는 못했다.

 도민우는 홍의여인이 서너 걸음까지 가까워지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꾸벅였다.

 홍의여인이 흠칫 이채를 머금고 걸음을 멈추더니 도민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민우는 여자인 홍의여인이 너무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바람에 무안해져 허공을 보며 딴청을 했다.

 홍의여인은 다시 걸음을 옮겨 도민우가 앉아 있는 평상 앞을 지나갔다.

 하지만 두어 걸음도 못가 몸을 돌려 도민우에게 다가왔다.

 “좀 전에 인사를 한 거 맞냐?”

 “그게 어째서요?”

 도민우가 멍청히 반문했다.

 사람이 사람을 보고 목례라도 하는 건 그냥 예의일 뿐이다. 헌데 그걸로 시비를 거는 말투로 질문을 던지자 도민우로서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너··· 사람이 변한 거 같아.”

 “내가 어땠는데요?”

 “넌 절대로 인사를 하는 놈이 아니었어. 지금처럼 말이 많지도 않았고.”

 ‘단 두 마디를 했는데 그게 말이 많다고 느껴질 정도면 장천상이라는 이 친구는 얼마나 말이 없었던 걸까?’

 도민우가 새삼 장천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홍의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보다도 분위기와 눈빛이 바뀐 거 같아.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순간 도민우의 뇌리로 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는 짐짓 심각한 안색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의 내가 어떻게 보였는데요?”

 다행히도 홍의여인은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은 듯 이내 대꾸했다.

 “음습하고··· 염세적이었지.”

 “염세적? 이 나이에 말입니까?”

 “그래. 그 나이에.”

 홍의여인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는 듯 옆에 앉자 도민우는 일부러 분위기 있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할 상대가 있다는 말을 한 적 있습니까?”

 “아마 그랬을 걸.”

 염세적이었다는 말에 즉흥적으로 던져본 질문일 뿐이었다.

 보통의 경우 그랬냐는 둥, 무슨 일을 겪었냐는 둥 놀란 빛을 띠워야 한다. 헌데 상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런 반응이라는 건 곧 복수를 해야 할 상대가 있고 그 이야기를 한 모양이구나.’

 이렇게 되자 도민우는 좀 전에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손자병법이군.”

 “나는 내 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데 실상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어느 정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으며 성격은 어떻고, 장점은 무엇이고 또 단점은 어떤 겁니까?”

 홍의여인이 이채를 머금었다.

 그녀는 새삼스럽다는 듯 도민우를 빤히 바라보다가 우호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남에게 물어본다? 너··· 의외로 괜찮은 놈이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은 법인데 말이야.”

 홍의여인은 신이 난 듯한 눈빛이었다.

 “좋아. 너 자신에 대해 남들이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 이야기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좋았어!’

 도민우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던 숙제, 자신에 대해 알아내는 게 이렇게 술술 풀리는 순간이었다.

 홍의여인이 정색했다.

 그녀는 똑바로 도민우를 바라보며 한자 한자 끊어서 말했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한마디로 너는··· 밥맛이다. 네 가지가 없고.”

 “네 가지?”

 “그 네 가지가 뭐냐면··· 첫째, 예의가 없고 둘째, 남을 배려하는 배려심이 없고 셋째, 사교성도 없고 넷째·· 이게 결정적인 건데 매력도 없다. 결론은···싸가지가 없다는 말이다.”

 “끄응···!”

 도민우의 얼굴이 화악 일그러졌다. 아무리 몸을 빌린 상태라고 해도 자신의 면전에 대고 욕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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