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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버릭(maverick).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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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균천무상권결(鈞天無上拳結) 3.
작성일 : 16-03-30     조회 : 943     추천 : 0     분량 : 8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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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균천무상권결(鈞天無上拳結) 3.

 

 

 다음날 새벽, 연공을 마친 도민우는 권법 수련을 위해 객점 뒤쪽에 있는 숲으로 갔다.

 낙양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 망산(邙山)의 한 자락인 숲은 나무가 울창해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수련하기에 적당했다.

 숲 안쪽으로 오십여 장 들어가자 공터가 있었는데 과연 장천상이 수련을 하던 장소였는지 지면이 다져져 풀들이 자라지 못할 정도였다.

 균천무상권결의 요해는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져 있었고 초식 또한 수없이 들여다보아 외우다시피한 상태이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것과 펼치는 것은 다르다.

 도민우는 그림을 떠올리며 첫 번째 초식을 펼쳤는데 일단은 정확한 자세와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천천히 펼칠 수 밖에 없었다. 빠르면서 강하게 펼치는 건 어느 정도 능숙해진 뒤였다.

 헌데 몸이 반응을 한다고 할까.

 두 번째 자세를 펼친 뒤부터 저절로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심히 수련을 했으면 모든 초식들이 저절로 이어지는 걸까?’

 도민우는 내심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될 뿐만 아니라 도민우로서는 처음 펼쳐보는 권법인데도 자연스럽게 공력을 싣는다.

 첫 번째 권법의 마지막 초식까지 펼쳐본 도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권법을 펼친 것은 도민우가 아니라 장천상으로서의 반복된 수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장천상의 몸이 기억해 반사적으로 권법을 전개하고 있지만 사실 도민우는 권법을 알지 못했다.

 결론은 하나, 꾸준히 수련을 해 도민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권법수련을 마친 도민우는 다소 들뜬 기분이었는데 바로 운기(運氣)에 대한 걸 알게 된 때문이었다.

 권법을 펼치면 손과 발은 물론이고 전신의 모든 부위에 기가 이른다.

 기실 도민우는 지금까지 황정내경을 연마해 그 성취가 일갑자에 이를 정도였지만 단지 연공을 할뿐 그 기를 운용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권법을 수련하다보면 장천상의 몸이 자연스럽게 기를 끌어내 운용하는 덕분에 기를 신체의 다른 부위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었다.

 손에 기를 모으면 그 손은 돌덩이처럼 단단해지면서 괴력을 발휘한다. 그 상태에서 가격을 하면 그야말로 바위도 부술 수 있는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도민우는 운기(運氣)의 묘를 깨닫자 다음날부터 그야말로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연습했는데 어떨 때는 저녁에 시작해 다음 날 아침까지 날이 새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도민우는 결국 삼일 만에 전신의 모든 부위까지 자유자재로 기를 운용할 수 있었다.

 원하는 부위까지 기를 이끄는 것은 다소 시간이 걸렸다.

 손에 기를 모으는 것은 이제 능숙해졌지만 그래도 마음을 먹고 기를 모으는데 적어도 이, 삼분은 걸리는 것 같았다.

 심사기(心使氣)···

 마음이 기운을 사용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또 뜻이 이르면 기가 이는 경지라고 한다.

 그런 경지에 이르러야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민우가 낙양의 저자거리를 구경하기 시작한 것은 동진여이로 귀환한지 열흘째 되는 날 부터였다.

 처음에는 주변에 대한 상황파악에 급급해 동진여이를 벗어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동진여이에서 생활한 지 열흘이 지나면서부터 어린 강아지가 자신의 둥지에서 벗어나 조심스럽게 주위를 탐색하듯 중앙통 저자거리까지 관심범위를 넓힌 것이다.

 저자거리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행색을 한 온갖 사람들이 쉬지 않고 북적거린다.

 도민우는 북새통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우두커니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오늘로써 벌써 삼일 째였다.

 아침을 먹고 출근하듯 저자거리로 나와 사람구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곳에 적응하기 위한 세상구경일 뿐 별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목적이 없기 때문에 한껏 여유롭다. 그 때문인지 저자거리 한쪽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똑같구나.’

 물건을 팔기 위해 목청껏 손님을 부르는 장사꾼과 물건 값을 깎으려고 흥정하는 사람들, 엄마의 손을 잡은 채 쌓여 있는 온갖 상품들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고 있는 꼬마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도민우는 현대세계의 재래시장과 흡사한 분위기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파시(波市)에 가까워진 듯 상인들이 하나 둘씩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민우역시 동진여이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다 이채를 머금었다.

 저자거리 가장 끝 자리, 그러니까 도민우가 앉아 있는 곳에서 오륙 장 앞쪽에 한 사람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의자에 앉아 앞에 놓인 탁자와 손에 쥐고 있는 책자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오늘부터 좌판을 깐 건가? 뭘 파는 사람일까?’

 도민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민우가 저자거리에서 사람 구경을 하기 시작한 게 반 시진이 넘는 상태였다. 헌데 그 반 시진 동안 노인이 바로 가까이 있었는데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마치 복잡한 저자거리에 동화되어 묻혀 있었다고 할까.

 노인은 마치 천 년 전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다는 듯 동화되어 의식되지 않았다.

 도민우가 언뜻 탁자라고 생각한 것은 하나의 궤짝이었다.

 노인은 궤짝 위와 왼손에 쥐고 있는 책을 번갈아보며 간간히 오른 손으로는 무언가를 궤짝 위에 내려놓고 있었다.

 대략 육십대 초반은 되었을 연륜이 느껴지는 눈빛, 보통 사람의 두 배에 달하는 비대한 몸을 지닌 황의노인은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도민우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황의노인을 향해 다가들었다.

 ‘바둑이다!’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도민우의 눈이 커졌다.

 궤짝 위에는 양피지 위에 바둑판을 그려 놓은 양피지 바둑판이 놓여 있었다.

 노인은 왼손에 기보(棋譜)가 그려져 있는 책자를 들고 오른 손으로 기보에 따라 바둑돌을 하나씩 놓아가고 있었는데 기보를 보며 바둑을 공부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민우는 느닷없이 무림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바둑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덥석 손을 잡고 싶을 만치 반가웠다.

 노인은 바둑에 심취해 도민우가 바로 옆에 바싹 다가와 있건만 눈 한번 들지 않았다.

 도민우는 양피지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둘둘 말고 다니다가 아무 곳에서나 펼치면 바둑판이 되니 여행을 떠날 때 딱이구나.’

 바둑돌은 공장에서 깎아 만든 현대식 바둑돌과는 달랐다. 천연적인 조약들 중에서 크기가 비슷한 검은색과 백색의 조약돌을 골라 바둑돌로 사용하고 있었다.

 바둑의 기원은 아들 단주가 멍청해서 요 임금이 신하들에게 천지의 이치를 담은 기예를 만들라고 해서 만들어 진 것이라는 설이 있을 뿐 정확히 그 기원을 기록한 사서(史書)는 없었다.

 도민우는 연구생시절 고대바둑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고대바둑과 현대바둑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15도 또는 17도이던 고대바둑이 언제부터 19도로 정착되었는지 그 시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는데 무림의 바둑역시 19도의 바둑이었다.

 중국에는 정자(停子) 정로(停路) 정허(停虛) 등 여러 방식의 계가법이 있지만 모두 동수의 흑백 바둑알을 갖고 바둑을 두어 종국에 누가 반상에 돌을 많이 올려놓았느냐를 따지는 계가법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의 계가방법이라도 현대 바둑과 비교해 그 차이가 반집에 불과하니 방식만 숙지하고 있다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굳이 현대바둑과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고대바둑에서는 첫수를 바둑판의 정중앙, 천원에 놓을 수 없다는 것과 흑의 공제가 없다는 것 정도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계속 지켜보아도 양피지 바둑판위에 놓인 돌은 아직 종반에 이르지 못했다. 그만치 노인이 기보를 두며 바둑돌을 놓는 속도가 느려 한 수 한수를 집중해서 연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백이 진 바둑이군요.”

 도민우는 지루해하지 않은 채 바둑판 옆에 서서 내려다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바둑이 220수에 이르렀을 순간이었다.

 도민우가 지켜보니 215수에 바둑은 이미 결정이 난 상태였다. 이 상태라면 백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해도 세집 정도를 지게 되어 있었다. 이후의 착수에 실착이 있다면 그 간격이 더 벌어질 뿐 승부를 뒤집기는 불가능했다.

 노인이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그제야 처음으로 도민우에게 눈을 들었다.

 “자네 바둑 둘 줄 아는가?”

 “미숙하긴 해도 기교를 부릴 정도는 됩니다.”

 “소교(小巧)라···”

 황의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바둑에 입문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단계를 수졸(守拙)이라 칭한다.

 현대의 프로바둑에서 입단을 한 단계이다.

 도민우의 말은 비단 겸손한 말이기도 하지만 프로 4단을 일러 기교를 부릴 줄 아는 단계인 소교라고 하니 그로서는 자신의 기력을 정확히 이야기한 것이기도 했다.

 “후일 천무학련(天武學鍊)으로 날 찾아와 주지 않겠나. 난 그곳의 교두이네. 나도 바둑을 좋아하지만 정말 바둑을 좋아하는 분이 있어서 소개해 주고 싶네.”

 “예? 하지만···”

 황의노인이 돌연 얼굴을 굳힌 채 빈 허공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무엇엔가 집중하는 것 같았는데 도민우에게는 저저거리의 소음만 들려올 뿐이어서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다.

 잠시 빈 허공을 노려보며 무엇엔가 집중하던 황의노인이 문득 고개를 끄덕인 후 갑자기 다급해 하는 표정이 되어 도민우를 바라보았다.

 “내가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은 맹주(盟主)이네. 그 분은 나이 사십에 이미 무에서는 화경에 이르렀는데 그 뒤 무공을 버리고 바둑에 빠졌네. 어차피 그 양반 정도 되면 그 뒤의 경지는 깨달음인바··· 맹주의 말이 바둑이 정신 수양에 좋다고 하더군. 바둑과 무공이 일맥상통하는 게 있다고 하지만 난 아직 그 말의 뜻을 모르네.”

 “아··· 그랬군요.”

 도민우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나는 대로 한번 꼭 천무학련으로 와주게. 부탁이네.”

 “그러지요. 뭐!”

 황의노인은 다급한 눈빛이면서도 끝내 다짐을 받으려 하자 도민우가 선선히 대꾸했다.

 바로 그 순간, 도민우 앞에서 그림자가 일렁인 듯한 느낌이 일었다.

 도민우가 어리둥절 앞을 보니 황의노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도민우는 황의노인이 바둑돌을 모아 가죽주머니에 넣고 양피지 바둑판을 둘둘 말아 궤짝에 넣은 후 다시 그 궤짝을 앉아 있던 의자에 올려놓고 의자를 지게처럼 메고 일어서는 모습을 언뜻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무림의 고수였구나.’

 그제야 도민우는 황의노인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바둑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시대에도 바둑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어디에 가야 바둑을 둘 수 있는 걸까?’

 무림에서도 바둑을 둘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도민우로서는 가문에 단비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제는 과연 어디에 가야 도민우 정도의 기력을 갖춘 고수를 만날 수 있는 가 하는 거였다.

 잠시 후, 도민우는 시장이 파하기 전에 몇 군데 좌판에서 음식을 샀다. 동진여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들이었다.

 장기투숙자의 수효만 해도 삼십여 명, 뜨내기손님들까지 계산하면 하루에 만들어야 하는 음식의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따라서 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숙수(熟手)들만 세 명이고 그밖에 보조하는 사람들과 이것저것 잡일을 하는 점소이까지 합치면 스무 명 정도에 이르는 대식구였다.

 도민우는 삼일 전 처음 먹을 걸 건넸을 때의 반응을 떠올리고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내가 독이라도 타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는 눈빛들이었지.’

 도민우가 저자거리에서 먹을거리를 사다가 동진여이의 일꾼들에게 건넨 건 단순한 인사치레였다.

 헌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표정들이었고 혹시 장천상이 머리가 이상해 진 게 아닐까 하는 공포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조차 있을 정도였다.

 음식과 술을 파는 객잔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걸 선물한다는 건 환영받지 못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저자거리의 군것질거리들이긴 해도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서 만든 음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별식이 될 거라는 게 도민우의 생각이었다.

 과연 그의 생각이 들어맞아 사람들은 모두 그가 사갖고 온 주전부리를 맛있게 먹었는데 그러면서도 도민우의 호의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저자거리의 음식을 사갖고 갔을 때부터는 사람들이 도민우의 호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은 그날따라 뜨내기손님이 많은 바람에 준비해 놓았던 재료들이 모두 떨어져 막상 일하는 사람들이 먹을 게 없었다는 점이었다. 영락없이 굶어야 할 판국에 도민우가 먹을거리를 사들고 왔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다음 날부터 도민우를 대하는 태도들이 백팔십도로 바뀐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단 두 번의 작은 노력과 구리돈 이십 문도 안 되는 푼돈으로 장천상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것이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가 싶더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진다.

 도민우는 휘적휘적 동진여이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기왕에 무림에 왔으니 무공도 익혀두는 게 좋겠지? 그건 그렇고 어디로 가야 바둑을 둘 수 있을까···?’

 난데없이 무림에 떨어져 처음에는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도민우는 차분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도민우가 동진여이로 돌아온 것은 어느덧 하나 둘 씩 등이 내걸리는 시각이었다.

 일단 저자거리에서 사온 음식을 주방식구들에게 건네고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당으로 들어서던 도민우의 눈에 이채가 솟아났다.

 마당에 놓여 있는 평상에 앉아 있는 인물이 낯이 익었다.

 “어··· 장아우! 반갑네.”

 도민우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는 장대한 체구의 청년은 바로 천화루에서 만난 적이 있는 정보장사꾼이었다.

 천화루에서 거래를 할 때는 극히 사무적이었던 그가 사람이 바뀐 것처럼 친한 척을 하자 도민우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친한 사이였습니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우린 무려 두 번째로 만나는 사이인데 그럼 친한 게 아니란 말인가?”

 ‘무려 두 번째···?’

 “뭐 아직 친하지 않은 거라면 앞으로 친해보세.”

 상대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도민우는 엉겁결에 그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나 사실은 표화문(標和門)의 둘째 공자이네. 흑우공자(黑羽公子) 헌원무광(軒轅武狂), 그게 바로 날세.”

 흑우공자 헌원무광이 도민우의 손을 잡은 채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비록 둘째이긴 해도 형은 가업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 사실상 내가 머지않아 홍사(弘社)를 물려받게 될 거란 말일세. 그때가 되면 자네가 내 동생이라는 게 자랑스러울 걸세.”

 “동생···? 홍사?”

 “천화루는 남북 십삼개 성에 적어도 하나씩은 있네. 그 천화루는 홍사에 소속되어 있고 홍사는 다시 표화문의 예하이네. 어때? 대단하지 않은가? 내가 홍사를 물려받을 후계자라는 사실 말일세.”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지금의 도민우에게는 현실감이 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도민우가 심드렁한 표정을 바꾸지 않자 헌원무광은 실망한 기색이었다가 새삼 도민우에게 호기심이 가는 표정이 되었다.

 “내 신분을 알게 되면 대부분 알아서 기는 데 자네는 다르군. 그 점이 오히려 맘에 들어.”

 좋게 보면 당당한 거지만 달리 보면 뺀질거리는 느낌이다.

 도민우는 내심 황당한 기분이었지만 무어라 반박할 수는 없었다. 싸우자는 게 아니라 친하게 지내자는 것뿐인데 굳이 싫다고 할 이유도 없었다.

 “우린 고객에 대한 친절을 영업의 제일원칙으로 삼고 있는바 이렇게 고객을 직접 찾아가 결과를 보고 하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도민우가 못내 의심쩍다는 듯 바라보자 헌원무광이 히죽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게 사실은··· 대숙께서 이곳에 기거하고 계시네. 문안도 드릴 겸 온 거지.”

 ‘15호실의 고 아저씨가 원래 표화문의 제자였구나.’

 헌원무광이 돌연 도민우를 위아래로 쓸어보았다.

 “헌데 자네가 장천상 본인이면서 거금을 써가며 자신에 대해 알려 달라니 무슨 해괴한 짓인가?”

 도민우는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기 위해 짐짓 탄성을 터트렸다.

 “흠··· 내가 장천상 본인이라는 걸 알아낸 것과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까지 알아낸 걸 보니 천화루의 정보력이 대단하긴 대단하군요.”

 “뭐 우리 정보력을 시험해 본거고 사실은 진짜 중요한 정보를 살 계획이었다면야 말이 되지만 말일세.”

 “예. 사실은 진짜 중요한 정보를 살 예정이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 상대방이 예상하고 있는 대답을 해주는 게 가장 무난한 대응이라 할 수 있다.

 도민우는 말을 얼버무리며 손을 내밀었다.

 “뭐 그렇긴 해도 일단은 제가 요구한 정보를 내놓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 당연하지.”

 헌원무광이 품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바로 장천상이 요구한 장천상의 신상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였다.

 

 방으로 들어온 도민우는 헌원무광이 건네준 두루마리는 펼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침상 위에 벌렁 누워 천정을 바라보았다.

 말끔하게 도배 처리된 현대식 천정과 달리 어른 팔목 굵기의 서까래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천정이었다.

 돌연 그 천정이 바둑판으로 보인다.

 서까래들이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바둑판으로 바뀌더니 군데군데 패인 옹이라던가 상처들은 흑과 백의 바둑돌로 보였다.

 도민우는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저었다.

 바둑이 두고 싶었다.

 정말이지 간절하게 바둑이 두고 싶었다.

 저자거리에서 기보를 보며 바둑을 연구하고 있던 황의노인을 만난 뒤 잊고 있었던 바둑에 대한 열정이 새삼 되살아났다고 할까.

 기실 입단을 하면서 바둑이 업(業)으로 바뀐 뒤부터는 처음의 열정은 적잖이 희석된 상태였다.

 좋아서, 재미가 있어서 미친 듯이 두던 바둑이 입단 이후부터는 승부욕과 도전의식만으로 두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무림에 떨어져 바둑과 멀어진 생활을 하다가 다시 바둑을 접하게 되자 순수했던 그 열정이 들끓어 올랐다.

 도민우는 오랫동안 바둑을 두고 싶다는 간절함에 잠이 들지 못하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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