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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의 끝에서
작가 : 아름다운뿌리
작품등록일 : 201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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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시귀(2)
작성일 : 18-06-02     조회 : 344     추천 : 0     분량 : 2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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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락의 끝에서

 #5화 _ 식시귀(2)

 W_아름다운뿌리

 

 

 분명 난 알고 있었다,

 오빠가 식시귀 란 걸.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유향의 치료를 거부할 때부터.

 

 죽었다고 생각한 그 오빠가 갑자기 살아서 내 앞에 나타난 것부터 이상했다.

 

 분명 그 싸늘한 주검도 봤고

 영안실에서 나오던 그 차가웠던 그 몸도 보고.

 눈을 감고 누운 채로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던 것도

 8살 때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오빠가 살아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에도 내가 아는 척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래도

 

 오빠잖아

 

 

 “위험하다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너도 날 죽일 작정이냐?”

 “……,”

 

 

 아무말 도 할 수 없었다.

 천하의 이소아가.

 

 냉정함으로 이름을 떨치던 이 연이.

 온갖 악마의 이름은 별명으로 다 붙은 이 내가.

 적인 이 남자 하나를 벨 수 없다니.

 

 “마음이 아프구나 이소아. 이대로 몰랐으면 좀 더 행복하게 오래 지낼 수 있었을 텐 데.”

 “…….”

 

 난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 입을 열어도 소리가 나오지 않을 걸 알았기에 입을 열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건 다 의미 없잖아.

 

 “난 그저 널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네가 그 누구보다 더 아끼던 내가 이젠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네. 아- 이 설움을 어디서 풀어야 하나? 아- 이 뜨거운 감정은 어디에 풀어야 하나?!! 소아야! 오랜만에 만난 오빠와의 재회 치고는 너무 조용하잖니? 빨갛게 물들여볼까? 아니면 네 목을 나의 마지막 가는 길의 꽃으로 장식해볼까? 응? 어떻게 해줄까? 난 좀 더 너랑 놀고 싶은데?”

 “……. 날 죽여 그리고 날 먹어.이제 내가 아닌 오빠가 살아남아줘”

 “…….”

 “그런 아픔 다시 주고 싶지 않아. 나 혼자 아프기로 했어. 그런 걸 혼자 떠안고, 떠맡지 말아줘.”

 “…….”

 “내가 살아남은 만큼 이젠 오빠가 살아남아줘”

 “…….”

 

 

 점점 커지는 눈.

 잔뜩 놀란 오빠의 얼굴.

 난 그런 오빠에게 가까이 가서 오빠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아마 여태 원하던 게 이런 따스함이겠지. 오빠는 이런 따스함을 알기도 전에 먼저 죽었잖아. 그 따스함을 내가 뺐어 느꼈잖아.

 

 “오빤 차갑지 않아. 이렇게 따뜻한 걸.”

 

 절대 차갑지 않았다.

 또 전혀 딱딱하지 않았다.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오빠는 이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걸”

 

 아마 항상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몸이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된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자신이 저주스러웠을 것이다.

 “…….”

 

 

 항상 피 속 한가운데 서있는 자신이 너무 불안했을 것이라.

 

 “이제야 드디어 혼자가 아니게 됐는데. 벌써 헤어지기는 싫어 오빠. 조금만...아니, 더 오래 있어줘..”

 “……왜? 도대체 왜? 넌 옛날부터..”

 “이렇게 안고 있는 이 동안. 이 시간 동안은 전혀, 절 대 아프지 않아 오빠. 그렇지 오빠?”

 “……”

 

 그렇게 답답하던 마음도 이렇게 둘이 안고만 있으니 그 답답함도 고통도 한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날 안은 채 조용히 울고 있는 오빠도 같은 느낌일 거라.

 

 

 *

 *

 

 

 

 아-

 이제 쓰러지는 건 그만하고 싶다.

 그래도 여주인공인데 심심하면 쓰러지니

 

 “그렇지?“너도 네가 생각할 때 너무 자주 쓰러지는 것 같지? 그 누가 그 험한 임무를 처리하는 판도라의 희망으로 보겠나.”

 

 따뜻한 손길.

 따뜻한 그 온기

 따뜻한 향기

 

 “내가 없으면 잠도 못 이뤘던 너인데 그런 나를 놔두고 다른 남자와 혼인이라…”

 

 멀리서 말하던 목소리는 어느새 내 귀에 그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고 이윽고 내 귀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에 말했지? 바람 피면…… 죽인다고.”

 

 

 내가 여태 들어왔던 협박 중 제일 위험하고 소름끼친 협박

 

 “으아아아아아!!!”

 

 볼썽사나운 비명을 지른 여자는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어났다.

 

 “허억- 하아-”

 “오- 일어났군. 내가 한 협박이 꽤나 효과가 있었다는 말. 그렇다는 말은 몸은 날 기억하고 있다는 뜻인데..”

 “월야 선배!!놀랐잖아요”

 “선배?”

 “흐음- 그럼 월야 선배보다는 루에라고 불러드리면 좋아하려나?”

 “루에님?”

 “지금 루에라 한 건가?”

 “전 당신이 누군지 다 기억하고 있다고요. 제 기억은 매우 멀쩡합니다.”

 “그렇다면 너.”

 “너가 아니라 제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제가 누누이…!!”

 

 난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나의 입은 더이상 열리지 않았고 그런 나의 입을 막고 있는 건 월야.

 월야선배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일어난 이 당황스런 상황을 파악하고 난 급하게 선배의 어깨를 때리고 밀쳤지만 밀쳐지지도 않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자신의 입술을 때지 않는 월야 선배

 오히려 나의 행동에 자극을 받았던 것인지 선배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고

 

 “으-!!”

 

 그 움켜쥐는 고통에 열린 내 입 사이로 월야 선배의 혀가 흘러 들어왔다.

 내가 떨어지려 발버둥을 치자 그의 손과 팔은 날 더 옥죄어 왔고 난 그의 두 팔에 갇혀 그의 혀를 그대로 받고 있었다.

 

 “하아- 하아-”

 

 내가 그와 떨어진 것도 어느새 20분이란 긴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아- 하아-”

 

 내 첫사랑

 내 아련하고 사랑스러웠던 내 첫사랑.

 

 뚝

 뚜둑

 

 작은 유리방울이 깨져 바닥으로 흐트러진 건 절대 내 눈에서 나온 내 눈물이 아니었다.

 그 유리 구슬의 주인은 바로‥

 월야.

 나의 팔에 떨어진 그의 비는 내가 만지기에는 너무 뜨거웠다.

 그가 떨어트린 눈물은 나의 팔을 서서히 뜨겁게 만들었고 곧 나의 팔은 불에 데인 듯 뜨거운 고통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대체 왜?”

 

 그렇게 자신감이 높던 그 월야 선배가.

 칼로 찔러도 피만 나올 뿐 눈물 한 방울 떨굴 것 같지 않던 그가.

 

 대체 왜?

 뭐 때문에?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건가?

 

 뜨겁다.

 너무 뜨거워

 그의 눈물도 그의 눈빛도

 그의 마음도

 

 백야가 갑자기 나타나 그와 내 사이를 갈라도 화내며 날 저승으로 다시 데려갈 때에도 난 아무런 저항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물론 그도 마찬가지겠지.

 그리하여 그날의 월야 선배와 나와의 재회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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