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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3년: 두번째 판게아
작가 : 윤그루
작품등록일 : 20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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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자 사는 인생 (3)
작성일 : 18-11-07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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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이 마침내 걸음을 멈춘 곳은 별관 옥상이었다.

 별관 옥상은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본관 옥상과는 달리 조금 특별했다. 인테리어 공사 중 옥상으로 올라오는 계단이 고립되어지면서, 벽을 뚫지 않고서는 일반적인 계단으로 올라올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바깥쪽의 화재 대피 계단을 잘만 활용하면 꽤나 쉽게 이곳에 올라올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 방법을 아는 이는 나, 유진이, 카를, 이렇게 셋 뿐이었다. 선생님을 피해 화재 대피 계단을 오르다 옥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는데, 그 이후로도 우리는 이곳을 아지트 삼아 꾸준히 모여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아마 어김없이 이곳에 모여 놀았을 거다. 그러나 이 시간에 이런 식으로 이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카를은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안쪽으로 밀어넣더니, 내 어깨를 세차게 움켜쥔다.

 “[너 제정신이야?]” 그가 소리친다.

 피곤한 한숨이 흘러나온다. 스티븐을 상대하느라 힘도 정신력도 너무 많이 썼다. 카를까지 상대할 기력까지 남아있지는 않았다.

 “[미안해.]” 내가 고개를 숙인 채 말한다. “[이성을 잃었어.]”

 “[미안해? 그게 지금 할말이야? 너가 지금 한 짓을 봐. 이건 미안해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알아, 나도.]”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걔한테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너 걔가 누구 아들인지 몰라? 너 그 못으로 걔 얼굴에 흠집이라도 냈으면 바로 사형이었어! 알아?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너 지금쯤 사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었을거라고!]”

 “[그게 뭐 어때서!]” 내가 결국 카를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친다. 보이지 않으려 했던 촉촉한 눈동자가 카를을 노려보며 흔들린다. “[내가 사형 당하는 게 뭐 어때서? 내 아빠 사형장으로 내 몬 사람이 나야! 내 입으로 우리 아빠 죽인 사람이 나라고!]”

 눈에 눈물이 더욱 고여진 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참고 있었다. 정말 하루 종일. 7년 전 이 날에 대한 기억을 꾹꾹 누르면서, 넘치려 했던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다.

 “[근데 내가 좀 죽으면 어때.. 그래봤자 저지른만큼 되돌려받는 건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전에 다시 고개를 떨군다. 올해만큼은 절대로 울지 않으려 했는데, 이렇게도 완벽하게 망해버렸네.

 카를은 그런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 말 없이 다가와 어깨를 감싸준다.

 “[자학하지마.]” 그가 조용히 말한다. “[그런 거 아니란 거 너도 알잖아.]”

 대꾸 없이 얼굴을 카를의 옷섬에 묻는다. 부드러운 토닥임이 내 어깨를 천천히 달래준다.

 “[미안해, 소리질러서. 너무 놀래서 그랬어. 미안해, 강해일. 미안해..]”

 대답 대신 눈물만이 그의 말에 답하며 흘러나온다. 내 눈물이 카를의 옷을 적셔들어갈 동안, 우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

 눈물이 그텼을 땐 이미 수업시간이 많이 지나버려서, 어쨌든 마지막 시간이기도 하니 그냥 땡땡이를 치기로 하였다.

 옥상 한 켠의 나무 궤짝에 걸터 앉아 숨겨두었던 콜라를 한 캔씩 꺼내온다. 대충 건배를 하고 한 모금 쭉 들이키니, 시원한 탄산이 남아있던 눈물을 모두 끌고 내려가준다.

 “[이 녀석이 지구 대재앙을 살아남아서 참 다행이야. 안 그랬음 이 맛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 아니야?]” 카를이 내 어깨를 툭 건드리며 말한다.

 나도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인다. 역시 서로에게 오래 삐쳐있는 건 우리와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게. 학교에서 금지만 안 시켰으면 맨날 퍼 마실텐데. 우리 학교는 이게 건강에 안 좋으면 얼마나 안 좋다고 금지시키나 몰라.]”

 카를도 픽 웃는다. “[그래도 판게아절 파티 때는 좀 먹을 수 있겠지. 그때는 탄산음료도 막 몇 박스씩 쌓아두잖아.]”

 “[그게 내가 내일을 기다리는 유일한 이유야.]”

 “[너 올해도 무도회 안 할 거야? 한번쯤 해 볼 때도 되지 않았냐?]”

 판게아절에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축제가 열린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저녁에 열리는 가면 무도회인데, 말 그대로 아이들이 드레스와 수트를 입고서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파티다.

 이모르 시대 때는 이 가면 무도회가 사람들의 유일한 유흥거리였다고 한다. 먹을 것도, 할 것도 없는 이모르 안에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건 노래와 춤 뿐이었는데, 이 노래와 춤 마저도 매일 같은 사람들과만 하다보니 질려버려서, 서로 가면을 쓰고 마치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난 듯이 하는 가면 무도회가 발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모르 시대가 끝난 지금은 즐길 것도, 먹을 것도 너무나도 많았지만, 이 가면 무도회는 여전히 판게아인들에게 하나의 전통으로 남아있었다.

 “[왜 하는지 제일 이해 안 되는 게 그 무도회야.]” 내가 콜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한다. “[다들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구역질이 날 것 같거든.]”

 내 대답에 카를은 쩝, 하며 놀랍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 그럼 난 이제 같이 가달라고 할 여자애 찾기 시작해야겠네. 혹시 몰라서 끝까지 자리 비워두고 있었는데. 역시 강해일 씨, 절대 변하지 않으셔.]”

 “[서둘러. 이제 애들 거의 다 짝 있을 텐데.]”

 “[걱정 마세요. 아직도 내가 같이 가자면 가줄 애들은 많이 남아있으니까.]” 카를이 느끼한 눈빛을 슬쩍 흘리며 말했다.

 웃음이 피식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 아이를 보는 날이. 망할 놈의 내 성격 떄문에.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를은 마지막 남은 콜라 방울까지 입에 탈탈 털어 넣고서 시원하게 일어선다.

 “[수업 시간 거의 끝났다. 가서 유진이 데리고 저녁 먹으러 가자.]” 그가 콜라 캔을 발로 찌그러뜨리며 말한다.

 나도 남은 콜라를 모두 들이키고는 일어선다. 아까와는 달리 목구멍을 넘어가는 탄산이 유리조각이라도 되는 듯이 쓰라리다.

 “[그래. 걔 지금 완전 멘붕 상태일 텐데. 걱정하다가 기절이라도 하기 전에 빨리 데리러 가야지.]”

 우린 함께 빈 콜라 캔을 옥상 한 구석의 드럼통에 골인시키고는 옥상 밖으로 나선다.

 

 유진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울음을 터트렸다.

 “어디 있었어… 그 난리를 겪어놓고 수업시간 내내 없어져 버려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어?” 유진이가 끅끅대며 말했다. 수업시간에도 계속 울었는지 눈은 팅팅 부어있었고, 얼굴은 눈물에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유진이를 꼭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준다. “미안해. 잠깐 카를이랑 옥상에서 얘기 좀 하다 왔어. 이제 다 괜찮으니까 울지 마, 응?”

 “진짜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유진이의 말은 이제 울음하고 너무 섞여 버려서 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그 옹알거림에 모두 고개를 끄덕여주며 등을 토닥여 준다. 걱정을 많이 했는지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긴, 마음 여린 애가 혼자서 얼마나 걱정했을지가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나는 더 빨리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유진이를 더 세게 안아준다.

 

 유진이의 울음이 드디어 멎은 것은 한참 후였다. 유진이는 히끅히끅하며 나와 카를을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너네 둘 다 미워!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사라져 버리면 어떡해? 나도 데려가던가 했어야지. 나 혼자 걱정하게…” 또 다시 울음이 터져나올 낌새가 보이자 나는 그 전에 얼른 유진이를 달랜다.

 “그래, 미안해 유진아. 잘못했어, 응?”

 “너!” 유진이가 나한테 눈을 치켜세우며 말한다. “너가 제일 나빠. 물론 스티븐이 백 번 천 번 맞을 짓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그 크-은 애한테 덤비면 어떡해? 난 너가 진짜 잘못 되는 줄 알았잖아… 나 진짜…” 유진이의 울음보가 결국 다시 터진다.

 난감한 표정으로 카를에게 이제 니 차례라는 눈빛을 보냈다. 누군가를 달래는 데에는 소질이 전혀 없는지라 카를은 쭈뼛쭈뼛 유진이에게 다가가서는 최대한 밝은 톤으로 말한다.

 “[음… 기운 내, 유진아. 우리가 진짜 미안해. 음… 오늘 저녁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걸? 김치 볶음밥이야! 완전 맛있겠지?]”

 순간 어이가 없어서 헛기침이 나온다. 이건 도대체 어떤 류의 위로법이야? 먹을 걸로 유인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의외로 유진이는 카를의 위로에 웃음을 터트린다.

 “[혹시 그거 지금 위로라고 한 거야?]” 유진이가 웃음을 참으며 말한다.

 “[응, 그렇긴 한데... 뭐, 어쨌든 성공은 했네.]” 그도 씩 웃어 보인다.

 흐뭇하게 둘을 바라본다. 순간 평생 이 친구들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이어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내 가슴을 더 세차게 후벼판다.

 일부러 더 밝게 웃으며 둘에게 헤드락을 건다. “그럼 이제 다 운 거지? 이래 놓고 또 울면 안된다, 너.”

 “아, 예, 예. 다 울었습니다요.” 유진이가 눈물을 한 번 쓱 닦고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는다.

 “[좋아! 그럼 김치 볶음밥 먹으러 가자-아!]”

 카를을 선두로 급식실을 향해 계단을 뛰어내려간다.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쿵, 쿵, 하는 진동이 몸에 울려퍼진다. 그때마다 내 심장도 함께 무너져내린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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