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현빈은 집에서 눈을 떳다.
피곤한 아침이 밝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 그지같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이렇게로는 죽을 수는 없다.
이 세상이 얼마나 넓고 해볼수 있는 것도 많은데 무능력이라는 이유 하나로 죽을쏘냐.
오늘도 굳은 다짐으로 발길을 나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아, 세상... "
오늘도 하늘은 푸르구나, 너무 푸르러서 재수가 없다.
그리고 오늘도 학교 앞은 붐빈다.
조용히 지나가자.
" ... 거기 멈춰. "
어... 어음, 뭔가 느낌이 쎄 한데.
내 손목을 잡고 휙 돌려세우니 보이는 얼굴은... 어? 무술반 형님이다.
" 바로 동아리 가입심사를 하러 가자. "
아, 아에엣...?
질질질.
무슨 악력이 이렇게 강한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끌려갈수밖에 없었다.
" 어어, 얘가 우리 부에 들어온다는 애야? "
불쑥, 갑자기 문에서 튀어나오는 한 여성분 때문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뻔 했다.
연갈색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매우 다정했다.
" 어머어머, 놀랬어? 괜찮니? "
내 볼을 손으로 잡는 그녀는... 음, 예쁘다.
그녀의 손길을 느끼고 있을 때, 남자가 동아리실로 끌고 들어갔다.
" 내 이름은 전설이다. 이쪽은 홍연이고. "
" 에이잇, 내가 소개하려고 했단말야! "
투닥거리는 그 둘을 멍하니 바라보며 있었다.
" 뭐 해? 네 소개도 해~ "
" 저는 현빈입니다. "
그 후로는 간단한 입부 심사들이 치뤄졌다.
여기서 내가 놀란 것은 두 가지 있다.
" 나는 사실 능력이 없다. 너와 같은 무능력자지. "
그 말에 한 번 놀랐다.
내가 본 무능력자들은 전부 하찮고, 약하고, 남들 사이에서 숨기만 하는 겁쟁이들 뿐이었다.
하지만 전설 형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창피했다.
나는 아무런 것을 하지 않았구나.
후회가 되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홍연 누님은 은신, 유령 복합 능력자며 전설 형님과 커플이란 것이다.
정말 대단했다.
둘은 매우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이게 되었고 또한 가입하고 싶어졌다.
둘에게 인사를 건네고, 동아리 실을 나와 반으로 걸어갔다.
또다시 점심시간 까지 잠이나 자야겠다.
점심을 먹으러 줄을 서 있었다.
저벅 저벅, 휘청.
누군가가 발을 걸어 나는 휘청거리며 급식판을 떨어트렸다.
" 어머, 괜찮니? 미안하다 애. "
고개를 들어보니 승희는 웃고 있었다.
전혀 미안하지 않은 눈빛, 비웃고 있는 가식적인 웃음
그것이 고의라는 것은 딱 보면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찮은 무능력자 일 뿐이니.
점심 식사 후, 찝찝한 옷차림으로 반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누군가가 불러세웠다.
" 저기, 승희가 저쪽 골목으로 오라는데. "
정말로, 나는 찍힌 것이었다.
오늘 하민이도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것 같았다.
그녀의 공격에 버틸 수 없었기에, 그 상처가 매우 크기에.
그런데도 타겟을 나로 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피곤할 것만 같다.
" 하민이 어디 있어? 왜 학교 안 나와?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그래서, 모른다고? "
내 턱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악랄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하, 젠장.
" 그래. 모른다고. 원래 걔랑 친하지도 않았고. "
" 야, 너 걔 감싼다고 편들어주지 마라. 진짜 죽이고 싶어진다? "
씨... 내가 뭔 죄가 있다고.
불만이 가득하지만 밖으로 방출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느낀, 최선의 대피책...
" 커헉. "
내 목을 염력으로 움켜쥔다.
" 야, 진짜 죽을래? "
그렇게 나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떠올랐지만... 더 큰 감정에 의해서 묻혀버리고 말았다.
승희의 뒤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건 바로, 하민이었다.
" 너도 죽을래? "
그녀에게는 알 수 없는 오라가 펼쳐지고 있었다.
살벌하게 승희를 향해 말하는 하민이는 평소와 180도 달라져 보였다.
그것보다, 하민이는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해졌다.
오늘은 쟤들 때문에 결석한거 아닌가?
" 하, 너 웃긴다? 갑자기 와서는, 저번이랑 똑같은 상황 만드는거야? 둘이 같이 뒤질려고? "
하민의 이상한 기운을 느끼지 못한 듯, 승희는 계속 도발해왔다.
뭔가 깊은 어둠의 힘이 보이는 것 같았다.
" 야, 현빈아. 그때는... 미안했어. "
뒷모습이지만, 죄책감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왠지, 막아서야하만 할 것 같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 죽여버리겠어. "
" 너 따위가 어떻... "
염력을 쓰려는 듯한 승희의 자세에서 두려움을 느낀건 처음이었다.
" 어... 어? "
슉, 하민이의 주먹이 승희의 눈앞까지 닿았다.
빠르다.
그것 말고는 형용할수가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이제 우리, 그만 괴롭혀. 진짜 죽기 전에. "
사실 뒤에 서있던 나만 아는 거였지만, 그녀의 뒷목은 땀에 차 있었다.
그리고 뒤에 있기에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던, 승희의 표정이다.
두렵고, 겁에 질렸는데도 분노에 차 있는 그녀의 모습은 무언가 하려는 모양이다.
위험해.
" 야, 너도 능력이 개화한 것 같은데. 그거 하나 믿고 개기면 안 되지. "
쿠구궁, 하며 주변의 물건들이 떠올랐다.
" 하, 내가 예전같은줄 알아? "
아, 안돼. 저걸 정통으로 맞았다간...
그 순간, 내 눈에만 보였을까?
커다란 낫이 허공을 가르고 사라졌다.
동시에 떠올랐던 물건들도 떨어졌다.
" 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
곁에 있던 여자애들의 말에 나도 공감이 갔다.
" 뭐, 뭐야... "
" 봤지? 더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마. "
그 둘은 서로를 째려보며 멀어졌다.
" 하민아, 괜찮아? "
아까의 사건이 그녀의 체력에 무리를 준 것 같았다.
그래도 나에게 웃음을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다.
하민이의 웃음이 이렇게 예쁠 지 몰랐다.
항상 멍이 들어있던 얼굴도, 여기저기 찢겨 있던 교복도 오늘은 말끔했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안 보여주는 웃음이 더욱 예뻐 보였다.
" 니가 더 안 괜찮지. 애들이 심하게 안 했어? "
" 딱히, 그냥 염력으로 목을 조른 정도? "
피식, 별로 안 아팠어.
약간의 허세를 부리며 나도 같이 웃어보였다.
" 그런데, 너 학교 결석한 거 아니었어? 어떻게 지금... "
" 병원 갔다가 온 거야. 여기 오니까 급식시간 이어서 급식실 가는데, 네 소리가 들렸어. "
아아, 그렇구나.
흘깃, 하민이의 옆모습을 훔쳐봤다.
그리고 아까 그건... 능력이려나.
" 아까, 보라색의 낫. 그게 네 능력이야? "
흠칫, 살짝 놀란 것 같이 보이는 하민이었다.
그러면서 얼굴을 붉힌다. 뭐야, 왜 이런거로 부끄러워 하는데?
" 어... 봤어? 내 능력이거든. 짱 쎄지. "
아까의 야리꾸리한 표정을 지우고 뭔가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얼굴이다.
젠장, 부럽다.
"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루만에 얻게 된 거야? 비법 있으면 공유좀. "
장난스럽게 묻는 말에, 그녀의 표정은 우울해졌다.
" 아, 아니...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
고개를 돌리는 현빈을, 하민은 빤히 쳐다봤다.
***
" 이봐, 진짜로 죽고 싶은 거야? "
" 뭐, 뭐야... 꿈인가? "
갑자기 낯선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검은 양복의 잘생긴 남성이 내 방 안에 떡하니 서있는 광경을 보면, 누구나라도 소스라칠것이다.
" 쯧... 내 계약자가 이렇게 약하면 안 되는데. "
" 계... 계약자? "
갸웃, 그런 게 뭘까.
설마 능력은... 아니겠지.
그냥 이건 꿈일거야.
" 그래, 나라는 능력의 주인. "
뭐... 그럴리가 없어.
진짜 꿈이라니까, 뭐 하는 거야. 왜 안 깨는데.
" 이거, 꿈 아니야 멍청아. "
" 진짜... 내 능력이야? "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 그래, 어쩌다 내 능력자가 이렇게 약한지는 모르겠지만. 죽고싶으면 죽어, 난 약한 애는 필요없어. "
울컥.
" 야, 말 다 했냐? 애초에 니가 빨리 나타나면 되는 거였잖아! "
" 뭐, 그냥 널 시험... "
" 너만 그러면 되는거냐? 어?! 계약자라면서!! "
지금까지 쌓여온 울분을 한껏 터뜨리며 그에게 마구 주먹을 날렸다.
하나도 맞지 않았지만.
" ... 이건 사과해야겠네. 미안. "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여기서 버티면, 나도 능력이 생기는거야.
" 이렇게 힘든 삶을 준 신을 대신해서 사과하며, 이렇게까지 되게 내버려둔 내 마음을 표하며. "
꾸벅, 그 녀석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 사신, 연명. 네게 내 힘을 줄게. "
***
결국 하민이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한채로 학교를 마친다.
그래도 뭐, 이만하면 전보다 많이 발전한 게 아니겠어?
하민이가 능력을 개화시켜서 이렇게 되긴 했지만.
솔직히 둘이 싸울 때,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나왔다.
나를 지켜 주려고 한 건데, 하민이에게 질투도 시샘도, 그 밖에 모든 감정이 느껴졌다.
젠장, 진짜 내 성격도 더럽게 꼬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무능력자였는데.
그래도 안도감도 들었다.
하민이도 능력이 개화했으니, 나도 어느 순간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자부했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
그러면서 나를 다독이며 걸어가는데 전설 형님에게 붙잡혀버렸다.
" 동아리실로 가자. 신입. "
" 자자, 오늘은 여러 무기를 잡아볼 거다. "
" 응응. 무기는 칼, 창, 도끼, 활도 있어!
도대체 왜 학교에 이런 무시무시한 무기가 있는지 의아했지만, 사람들의 능력이 더 무시무시하단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무능력, 혹은 능력이 약한 사람을 위한 방과후였다.
전설 형님도 능력이 없어서 처음 방과후를 창설할 때 일이 많았다고 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공부를 잘해도, 지금은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참 x같은 세상을, 전설 형님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무술에 열중인지 물었다.
" 더 나아지고 싶어서, 내 상황에 좌절해서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뭐라도 하면, 그때부터 달라지는 거다. "
솔직히 공감은 가지 않았다.
전설 형님이야 강하고, 잘생겼고, 여자친구도 있는 잘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나는 힘도 없고, 잘 하는 것도 없다.
같은 무능력자라고 해서 다른것까지 같은 게 아니다.
약자의 심리는 심히 꼬여 있었다.
나도 열심히 노력했다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확 뒤바꿔준 사건이 일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