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돌연변이의 보물섬
작가 : 소지
작품등록일 : 201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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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꿈은 눈을 감으면 깨어난다.
작성일 : 18-12-20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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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연은 역의 대합실 안에 앉아서 그곳에서 난로를 쬐면서 있었고, 시혁은 묵묵히 그런 그녀의 붕대를 갈아주는 중이었다. 그곳에는 난로의 소리와 붕대를 갈아주는 소리 외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아연은 마음속에선 어제와 오늘의 그의 태도가 도리어 죄책감으로 일고 있었다.

 

 “저, 시혁아.”

 

 “지금은 말하지 마, 붕대 감기 어려우니까.”

 

 시혁의 쌀쌀한 말투에 아연은 잠깐 풀이 죽었다.

 

 잠시 후, 붕대를 새로운 붕대를 다 감았다. 시혁은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 아연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생각했다.

 

 “어제 어영부영 말을 흐리고 넘어간 거 미안해. 그리고 저번에 화나게 했던 것도 미안하고,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 그러니까 부디 화를 풀어줄 수 있을까?”

 

 아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합실에는 고요가 차오르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침묵이 지속될수록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가속됐다. 시혁은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서있었다.

 

 “시혁아, 누나를 용서할 수 없다는 거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어. 터무니없는 욕심일지 모르지만 부디…….”

 

 “누나.”

 

 시혁은 그녀의 말을 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연은 눈가가 부르르 떨리며 눈물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소매를 잡은 손조차도 놓았고, 이제 다시는 그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에 빠졌다. 시혁은 고개를 돌려서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난 아직도 누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어. 그리고 화도 안 났고 말이야.”

 

 아연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닦지도 않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럼 어제랑 오늘 왜 그렇게 차갑게 대했던 거야?”

 

 “그건 그냥 누나의 반응이 재밌어서.”

 

 시혁은 멋쩍게 웃고 있었고, 아연은 얼굴을 찌푸리며 더욱 많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시혁은 당황했다. 그리고는 곧 그녀는 시혁에게 안았다. 손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으며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어서 마치 물에 젖은 고양이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시혁은 그런 아기 고양이 같은 그녀의 모습에 다정하게 허리를 감싸며 안아주었고, 그 둘의 사이에 흐르던 냉기 같던 기류는 다시금 온기를 회복했다.

 

 “그나저나 저 둘은 사귀는 관계가 아닙니까?”

 

 역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머리숱이 별로 없는 민머리를 드러내고 대합실을 멀리서 지켜보며 벤치에 앉아있는 부제와 수녀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원래 아무리 서로를 향한 마음이 확고해도 쉽사리 전해지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또한 전한다고 결심한들 그 사람 앞에서는 그 결심이 무뎌지고 말죠. 수줍음과 섞인 거절당하면 다시는 평탄한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부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합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무원은 그런 그와 대합실을 번갈아 보았다.

 

 “부제님은 결혼 안 하십니까?”

 

 부제는 그를 잠시 매서운 눈빛으로 째려보다가 이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목사들은 흔히 결혼을 하지만 천주교는 독신주의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신부와 수녀는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지식이 얄팍해서 그만 결례를 저질러 버렸네요.”

 

 “아닙니다. 한국에는 개신교인이 천주교인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죠.”

 

 역무원은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대합실에서 포옹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저 아연이라는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과 청초한 외모,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어쩐지 옛날에 짝사랑하던 그녀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그 생각을 부정했다. 허나 곧 다시금 그녀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저 시혁이라는 애한데서 강제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빼앗고 싶었다.

 

 대합실 안에선 아직도 둘은 포옹을 하고 있었다. 아연의 눈물을 그쳤지만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연은 그의 품이 따뜻하고 기분 좋았다. 시혁은 그녀가 작고 부드러운 감촉이 들어서 이제껏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그녀가 어쩐지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붉게 물든 얼굴을 그녀에게 들키기 싫었다.

 

 “저기 시혁아, 할 말이 있어.”

 

 아연은 그의 품에 안긴 채로 말했다.

 

 “뭐든지 들어줄게, 부담 없이 말해줘.”

 

 시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그녀를 떼어놓고 붉은 노을처럼 한껏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은 마주쳤다.

 

 “쟤네 설마 키스하려는 거 아니야?”

 

 역무원은 그 둘을 바라보면서 경악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부제와 수녀는 둘이 잘 되면 좋겠다는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역무원은 궁여지책으로 아까 저들이 들어왔던 문으로 다가갔다.

 

 “감염자들이 지금 철조망을 뚫으려고 하고 있다!”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시혁은 대합실에서 뛰쳐나와서 창을 집어 들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연은 대합실에서 가슴을 언저리를 손으로 부여잡으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진동을 감지하곤 타락한 자들이 미친 듯이 철조망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부서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며 그곳으로 달려온 시혁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역무원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부제도 달려왔으나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는 문을 닫고 역무원을 데리고 역 플랫폼으로 갔다.

 

 시혁은 김이 샌 듯한 표정으로 창을 내려놓고 대합실로 되돌아갔으며 아연은 그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가슴이 뛰었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양 손으로 볼을 감싸며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이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어제와 오늘, 이 이틀 간 시혁이 야박하게 대하던 것이 트라우마 비슷한 것이 되어 진심을 고백하리라 결의를 다져도 그의 앞에선 무용지물이 된다.

 

 인간이란 요정처럼 날아다닐 수는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쉽게 말할 용기는 없었다. 지금 상황은 마치 한여름의 꿈같아서 한 번이라도 눈을 감으며 다시는 이 순간, 이 광경, 이 감정과 감촉이 봄날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그에게는 다시는 그녀가 손을 내밀어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녀에게는 그가 다시는 평온하고 따스한 품을 빌려주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엔 망설인다.

 또 다시 그 둘 사이에는 골이 생겼다. 하지만 그 골의 틈은 좁았다. 누군가 큰 용단을 내려 뛰어 그곳을 넘어갈 힘이 두 사람에겐 있다. 허나 지금은 포기하기로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청아한 물을 들이키며 마음속 번뇌와 고단을 떨쳐내기로 한다.

 

 시혁은 아연의 고운 손을 두 손으로 붙잡으며 기도하듯 자신의 마음을 흘러 보냈다. 소리를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연은 일순 당황했지만 이내 그 손을 맞잡으며 마음을 흘려보낸다.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달라고. 두 사람의 귀에 맞닿지는 않지만 그 무엇보다도 확고한 말이었다.

 

 이내 손을 놓고는 시혁은 대합실 바깥으로 나간다. 그리고 얼굴엔 애잔함과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한편 플랫폼에선 역무원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미안하고, 어쨌든 타이밍 좋게 오셨네.”

 

 “왜 갑자기 반말을 하시, 아니 왜 때가 좋은 거죠?”

 

 “오늘이 마지막 운행인데. 하루라도 늦게 오셨으면 꼼짝없이 시골에 갇히셨겠네.”

 부제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뇨?”

 

 “아, 라디오 방송에선 안 나오던가?”

 

 역무원은 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행커치프로 닦으며 말했다.

 

 “쿠데타가 일어났소. 전 정부가 워낙에 무능했어야지. 어쨌든 군부가 들어서고 열차 운행도 오늘로 끝이오. 아무튼 대략 6시쯤에 열차가 지나갈 텐데 그때 역에서 신호를 보내면 열차가 멈출 것인데……. 우리 역에 전기가 나갔어. 그래서 전력 차단기를 올려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바깥에 감염자가 득실대는데 어떻게 나가.”

 

 “그러면 전력 차단기만 올리면 전기가 들어옵니까?”

 

 “그렇다니까.”

 

 “그럼 제가 나가 보죠.”

 

 부제는 플랫폼에서 내려오며 창을 챙겼다. 분명 쉽게 일이 풀리지 않을 것임을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대합실에서 나오던 시혁이 부제를 붙잡았다.

 

 “부제님, 어디 가시게요?”

 

 “아, 시혁군.”

 

 부제는 적잖아 당황하며 난처한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사정을 말하면 시혁도 따라나설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처지를 몰랐던 역무원은 시혁에게 말을 했다. 모든 일을 알게 된 시혁은 창을 들었다.

 

 “부제님, 제가 혼자 갔다 올게요. 어차피 가까우니 별 문제 없을 거예요. 그리고 아연 누나가 최대한 모를 때 나가야 수월하게 갔다 올 수 있을 테니 지금 당장 나갈게요.”

 

 “하지만 시혁…….”

 

 부제가 그를 말리려고 입을 뗐을 때 역무원이 말을 끊으며 시혁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철조망 밖에 타락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거 참, 어린 애가 용기를 내서 나간다는데 말리지 마소. 괜히 애 기죽게. 그리고 가까우니 별 문제 없을 거요.”

 역무원은 그리 말하고 눈치를 보며 문에서 떨어져 대합실로 다가갔다. 부제는 문 앞에 서서 소리가 들리면 나갈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시혁은 철조망의 개구멍에서 천천히 나가서 좌우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발을 천천히 내딛으며 바로 옆 전력 차단기로 다가가서 손잡이를 올렸다.

 

 대합실 안에서 아연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잠시 구름에 누운 듯 환상에 젖어있었다. 방금 전 달콤함을 회상하며. 그때 역무원이 대합실 안으로 들어서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애야, 잠깐만 날 도와줄 수 있겠니?”

 

 아연은 잠시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다.

 

 “뭘 도와드릴까요?”

 

 역무원은 바깥의 수녀를 바라보며 최대한 사각지대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뻗었다.

 

 “저기 보이는 구멍에 열쇠를 빠뜨려서 빼고 싶은데 손이 두꺼워서 안 되겠네. 구멍에 손을 넣어서 빼줄 수 있겠니?”

 

 “네.”

 

 아연은 그렇게 말하며 사각지대로 걸어갔다. 역무원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시혁은 전력 차단기를 무사히 올렸다. 하지만 너무 쉬워서 오히려 맥이 빠졌다. 그는 서둘러 철조망 안으로 들어와 문을 열고 역으로 들어갔고, 부제는 안도하며 잘했다며 칭찬해주었다. 시혁은 창을 놓고 대합실로 걸어갔다.

 아연은 쭈그려 앉아서 그 구멍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그 구멍 끝에는 딱딱한 벽만 있을 뿐 열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이상하다며 역무원을 본 순간, 역무원은 그녀를 덮치려는 듯 손을 뻗으며 목을 잡았다.

 

 “뭐하는 짓이야!”

 

 때마침 대합실 안으로 들어온 시혁은 역무원을 향해 달려가며 아연의 목을 잡은 그 손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손은 맥없이 날아갔으며 시혁은 아연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역무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부제는 방금 전 그 성난 목소리가 역 내부에 크게 울려서 서둘러 대합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부제님, 이 역무원이 아연이 누나를 죽이려고 했다고요.”

 

 “사실입니까?”

 

 부제는 역무원을 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시혁은 주먹을 굳게 쥐고 있었으며 아연은 그의 뒤에 찰싹 붙어서 목을 어루만졌다. 아마도 아픈 것이리라. 그리고 곧 아연의 입에선 피가 조금 흘러나왔다.

 

 ***

 

 와타나베 이치카야는 한국의 수도,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바리 코트를 입었으며 그의 손에는 서류가방이 들려있었다. 휴대폰은 끊임없이 울렸지만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무음으로 바꾸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어쩐지 일본으로 다시는 못 돌아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스치며 그는 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곧 꿈을 꾸게 되었다.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듯한 꿈을.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소지입니다.

 

 감기 걸려서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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