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시대의 소주
글쓴이 :
스토리야 16-09-07 23:59
조회 :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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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소주
소주는 술덧을 증류하여 이슬처럼 받아내는 술이라 하여 노주(露酒)라고도 하고, 화주(火酒) 또는 한주(汗酒)·기주(氣酒)라고도 한다.
또한 아라키주[亞刺吉酒]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증류주(蒸溜酒)의 발생과 관련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과실이나 곡물을 원료로 하여 술을 빚은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이것을 다시 증류하여 만든 소주는 인간의 지혜가 상당히 진보된 후대의 산물이다.
술의 증류법은 중세기 페르시아에서 발달되었다고 하며, 아라비아에서 원나라·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이것은 소주를 아라비아어로 아락(arag)이라 하고, 만주어로는 알키라고 하며, 우리나라 평안북도지방에서는 아랑주, 개성지방에서는 아락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소주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로 몽고군을 통해서 도입되었고, 그뒤 이를 즐기는 무리가 생겨서 소주도(燒酒徒)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몽고군의 주둔지였던 안동과 개성·제주도는 제조법이 발달하였으며, 최근까지도 그 전통이 유지되어 유명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유행되어 이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이고 있다.
≪단종실록≫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제노릇을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고, ≪중종실록≫에는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져서 쌀의 소비가 늘고 있으며, 소주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1490년(성종 21)에 사간 조효동(趙孝同)은 “세종 때는 사대부 집에서 소주를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는데,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도 소주를 사용하고 있어 비용이 막대하게 드니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하였다.
≪지봉유설≫에서는 근세에 와서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서 소주를 많이 마셔 취해야만 그만두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약용으로 마시거나 왕이나 사대부들이 마셨던 술이었는데, 점차 일반서민에게도 보급되어 각 가정에서도 많이 빚어먹게 되었다.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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