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테마파크] 대리 시험을 친 자들이 탈락을 면하다
글쓴이 : 스토리야  16-10-06 16:17   조회 : 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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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년 3월 7일, 맑고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최근 경상좌도 여러 고을들이 군역에 차정할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고강(考講)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얼마 전 이웃 고을인 안동에서 고강을 했는데 여러 명이 대리 고강을 하였다. 안동 부사는 알면서도 구태여 적발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응당 탈락되어야 할 자들이 모두 탈락을 면하였고, 탈락한 자들은 모두 스스로 고강을 한 자들이었다. 이들 입장에서는 몹시 억울할 만한 일이었다.
또 풍산현에서도 고강이 있었는데, 이정열(李廷悅)이란 자가 선산에 사는 김하정(金夏鼎)에게 자기 대신 대리로 고강을 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사가 김하정에게 곤장을 치고는 시험의 실무를 맡았던 별감 권우량(權友諒)을 옥에 가두었다. 또한 재임 정기홍(鄭基弘)을 잡아서 끌고 갔다. 김하정은 이정열과 종형제 사이였고, 정기홍은 이정열 누나의 남편이었다. 권우량이란 자는 능력이 없는 자인데도 분수에 넘치게 향임이 되었는데, 지난번에는 경상도 도사와 짜고 비리를 저질러 이미 한 차례 심문을 받았는데도 또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 걸맞는 인물이 아닌데도 분수에 넘치게 직책을 맡았으니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는 것이었다.
김령이 사는 예안현은 아직까지도 고강을 받지 않았는데, 대리 고강을 인정해 줄 것인지를 두고 서로 가타부타 논쟁 중이었다. 게다가 병을 핑계로 아니면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 시험을 기피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확실히 믿을 수가 없었다. 대리 시험을 인정한다는 것은 당연히 안 될 일이었다. 일이 이러한 지경인데 신임 현감으로 내정된 금상현(琴尙絃)은 아직도 예안에 도착하지 않았으니, 임명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김령은 이래저래 고을의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경이야기

◆ 수령을 보좌하는 직책, 향임(鄕任)

이 이야기는 안동에서 대리 시험을 친 이들이 시험에 합격하고, 직접 시험에 본 자들이 탈락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 중에 대리 시험과 관련하여 향임(鄕任)이 처벌을 받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향임이란 조선시대 지방 수령의 업무를 보좌하고 고을 일에 대한 자문을 맡은 기구인 향청(鄕廳)의 실무자이다.
조선 건국 이전부터 고려에서는 지방에 위치한 품관들을 통해 향리들을 규찰할 목적으로 유향소를 조직하였다. 이것이 조선시대에도 계속 이어졌는데, 태종 때 폐지되었다가 성종 때 다시 설립되었다. 이리하여 각 고을에는 유향소가 복립되었고, 이 유향소의 실무를 맡은 향임을 유향 품관 가운데서 좌수 1인과 별감 몇 명을 뽑아 운영하도록 하였다.
그 뒤 점차 각 지방마다 지역 사회의 지도층인 사족(士族)으로 구성되는 계(契)가 조직되고 그 명부를 향안(鄕案)이라 하였으며, 향안에 등록된 구성원을 향원(鄕員)이라 하였다. 유향소의 향임은 계의 집행 기구로서 향원 중에서 선출하였다. 향원 전원이 참석한 향회(鄕會)에서 향규(鄕規)에 따라 50세 이상의 향원은 좌수를, 30세 이상의 향원은 별감을 각각 선출해 중앙의 경재소(京在所)에 추천서로 보고해 임명되었다.
1603년(선조 36) 경재소가 혁파된 뒤에는 향회에서 추천하였지만, 실제 수령이 임명권자가 되면서 기능도 크게 변화하였다. 그 밖의 향임으로 창감(倉監)·감관(監官)·풍헌(風憲)과 그 아래 소리(所吏)·사령(使令)·소동(小童)·식모 등이 있어 인원은 보통 10∼30명이었다. 이들은 좌수가 임명하였는데, 창감·감관은 수십 내지 수백 명에 이르는 아전들의 업무를 감독하거나 직접 그 일에 종사하였다. 따라서 전정(田政)·환정(還政)·진정(賑政) 등의 실무나 사소한 송사는 향임들의 입김에 의해 좌우되었다. 또한 풍헌은 각 면내의 수세(收稅)·차역(差役)·금령(禁令)·권농(勸農)·교화 등 모든 일선 행정 실무를 주관해 1면의 민정을 장악했다.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저자 : 김령(金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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