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테마파크] 정뇌경이 정명수를 치려다 도리어 참수당하다
글쓴이 :
스토리야 16-10-11 15:09
조회 : 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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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 2월 21일, 요사이 청나라에서 이것저것을 요구하며 조선 조정을 못살게 굴었는데, 그 앞잡이는 정명수, 김돌시라는 조선 출신의 역관들이었다. 이들은 본래 평안도와 황해도에 소속된 관노비였는데, 난리의 와중에 청나라에 투항하였다. 그리곤 재빨리 그들의 말을 배워서는 역관이 되어 청나라 사행 때마다 동행하여 온갖 요구를 해왔다. 실제로 조선에서는 정명수, 김돌시란 이름만 들어도 우는 아이가 그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하였다.
얼마 전 조선의 관리인 정뇌경이 심양으로 세자를 호위하러 갔다. 그는 심양에서 생활하며 누구보다 이들에게 시달림을 당하였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고심하였다. 마침 조선에서 청나라 조정에 보낼 세폐 물목이 도착하였는데, 정명수와 김돌시가 이들 물품 중 상당수를 빼돌린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러자 정뇌경은 이를 기회로 삼아 평소 정명수, 김돌시와 사이가 좋지 않던 관원을 통해 이를 청나라 조정에 알리고 처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눈칫밥으로 그 자리까지 오른 정명수와 김돌시가 아니던가! 이미 정뇌경이 그와 같은 일을 벌이는 것을 눈치채고는 빼돌린 세폐 물목을 감쪽같이 채워 놓고는 여타의 증거들도 모두 인멸해 놓았다. 이러자 청나라 조정에서는 도리어 정뇌경을 무고죄로 다스렸고, 이 사실을 조선 조정에 알렸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급히 선전관을 파견하여 정뇌경을 참수하고, 이를 저자거리에 효수(梟首)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을 위해 묵은 병폐를 해결하고자 나섰으나, 결국 여우같은 정명수 무리에게 도리어 당하고 만 것이었다. 게다가 못난 조정은 그를 가두어 돌아오면 되었을 것을 정명수와 김돌시의 눈치를 보느라 바로 참수하고 효시하였으니, 이래서야 누가 조정을 위해 목숨을 걸겠는가! 김령은 마음속으로 정뇌경의 기개를 기리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배경이야기
◆ 나라를 위해 간신을 처벌하려다 죽은 정뇌경
이 이야기는 세자를 호종한 정뇌경이 청나라에 붙어 온갖 부정을 저지르던 정명수와 김돌시를 처벌하려다 도리어 참수형을 당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정뇌경(1608~1639)은 본관은 온양이며, 자는 진백(震伯), 호는 운계(雲溪)이다. 경기도사를 지낸 정담의 증손자로 조부는 진사 정지겸, 아버지는 생원 정환이다. 어머니는 서주의 달이다.
1630년 별시문과에서 장원급제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공조와 예조, 병조의 좌랑을 거치고 부수찬, 수찬, 지평, 정언 등 삼사의 주요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대간에 임명되자, 본인이 과거 을사사화의 주범인 정순붕의 후손으로 대간이 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탄핵하기도 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에는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하였다.
이듬해 봄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하고, 소현세자가 볼모로 심양으로 인질 생활을 하러 가게 되자, 스스로 자청하여 세자를 수행하였다. 당시 청나라에는 도원수 강홍립을 따라 건주위 정벌에 갔다가 포로가 된 정명수, 김돌시 등이 청나라의 역관으로 변신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의 사정을 청나라에 알려주면서 청나라 황제의 신임을 얻고 있었으며, 양국 간의 통역을 담당하면서 조선의 임금을 모독하고 관리들을 업신여기면서 온갖 뇌물을 받으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정뇌경은 이를 목격하고 이들을 제거하고자 기회를 엿보던 중 조선에서 청나라에 보내는 세폐를 도둑질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계기로 이들을 처벌하려 하였다. 그러나 정명수 등이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증거를 인멸하자, 도리어 그가 무고죄로 잡혀 참수형을 당하였다.
당시 심양관에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정뇌경의 처벌을 면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이들은 직접 자기 옷을 벗어 정뇌경의 시신을 염해 주었다고 한다. 그는 사후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다시 이조 참판, 좌찬성으로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저자 : 김령(金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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