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테마파크] 항복비문을 짓다
글쓴이 : 스토리야  16-10-11 15:28   조회 : 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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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2월 29일, 맑은 날이었다. 우리 주상께서 항복하는 날, 오랑캐들은 조정에다 항복의 사실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기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얼마 전 조정에서는 이 비문을 지을 사람을 정하는 일로 고심하였다. 누구나 이 치욕스러운 비문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조정 사람들은 대부분 피하고 붓을 잡지 아니하였다. 이리하여 서로 미루기를 거듭하다가, 장유와 이경석 두 사람이 마침내 붓을 들어 비문을 작성하였다고 한다.
장유가 지은 비문은 오랑캐에 대한 존경과 찬미를 지극히 하였다. 그러나 이를 열람한 주상은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겨, 다시 여러 대신들에게 명하여 찬미하는 말을 더 넣도록 하였다. 비석의 길이는 2칸이고, 너비는 반 칸 남짓이었으며, 비석을 감싼 큰 누각을 세웠다. 누각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웅대한 높이로 우뚝 솟아 있고, 앞에는 붉은 문을 세웠으니, 200년 조선의 역사에 이런 슬픈 일이 또 있단 말인가. 들리는 이야기로, 비석을 세운 날 대동강이 3일 동안 역류하였다고 한다.
김령은 장유가 지었다는 항복 비문을 지인으로부터 받아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한번 훑어보니 차마 볼 수 없는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이런 시대에 이와 같은 사람이 태어나 이런 글을 지었으니, 시대와 인물이 서로 호응한다 할 만 했다. 이경석이 지은 글은 직접 보지 못하였는데, 아첨하고 찬미하는 말이 장유보다 더욱 심하다고 한다. 특히 오랑캐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온 일을 옛날 성왕이 순수(巡狩)하는 일에 견주었다고 한다. 차마 듣지 못할 말들이었다.
두 명이 지은 항복 비문은 오랑캐에게 보내어 그들의 선택에 맡긴다고 한다. 그나마 이 두 명 외에 이경전도 항복 비문을 짓도록 명받았으나, 그는 목숨을 걸고 사양하여 짓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이 두 소인배에 비하면, 이경전은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 할 만하였다.


 

배경이야기

◆ 항복의 치욕을 담은 삼전도비

 이 이야기는 조선이 청나라에게 항복한 내용을 비석에 새기기 위하여 장유와 이경석이 비문을 지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비석은 바로 삼전도비를 지칭하는데, 삼전도비는 현재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청나라의 전승비이다. 비를 만들 때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이다. 비의 높이는 4미터 가량에 이르고, 너비는 1미터 40센티이다. 이수와 귀부를 갖추었고, 미술사적으로는 빼어난 양식미를 자랑하고 있다.
비문은 이경석이 지었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새기는 것은 이여징이 하였다. 비석 앞쪽에는 몽골 문자로, 오른쪽에는 만주 글자로, 뒷편에는 한자로 비문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원인과 조선이 청나라에게 항복한 사실을 기술하고, 항복 후에 청 태종이 조선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곧 회군하였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본래 비의 위치는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는데,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면서 조선과 청 사이의 조공 관계가 단절되자, 강물에 수장되었다. 그러나 1913년 일본에 의해서 다시 비가 세워졌다가, 광복 직후 주민들에 의해서 땅속에 묻혔다. 1963년 수재로 인해 묻혀 있던 삼전도비가 세상에 다시 드러났으며, 이후 여러 차례 이전하다가, 2010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2007년 경에는 한 시민에 의해 붉은색 스프레이로 비석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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