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익히 알고 있겠지만, 힐레나의 쌍둥이언니 스칼렛후작영애다. 오늘부터 같은 극단의 사람이야. 선배인 너희가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
“네, 제이님.”
“언니... 어서와.”
“그래, 고마워.”
똑같은 은색 머리칼, 똑같은 붉은 눈동자. 뚜렷한 눈매와 도톰한 입술, 점까지 다른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그 분위기로 짐작할 뿐이었다. 스칼렛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구나하고 다들 착각할 수도 있었다.
스칼렛의 일과는 조금 달라졌다. 신분이 가장 높은 귀족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권력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예술에 능통하다면 얼마든지 작위를 딸 수도 있으니까. 전용 실습 연습 홀을 체플넴이라 하는데 그녀가 제일 빨리 나와, 그곳을 청소한다. 가장 말단이기 때문이고, 그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소품을 정리하고, 악기를 점검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둘씩 극단원들이 나타난다. 아직은 매우 어색하다. 먼저 가서 싹싹하게 구는 성격도 아니고, 차갑고 잔인한 성정을 아직은 드러낼 수도 없었으니. 거의 단답으로 말을 끊어낸다.
“후작영애는 뭐가 저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차갑고 쌀쌀맞아.”
“그저 표정이 없는 것뿐이에요. 원래 잘 웃지 않기도 하고...”
“겉보기만 그렇다는 거야?”
“네. 언니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세요.”
힐레나에게 몰려있던 사람들이 스칼렛이 등장하자, 각자 어색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기는 그녀. 저런 여인이 어떻게 풍부한 감정전달하는 뮤지컬의 연기와 노래를 한단 말인가. 아직 인정할 수는 없었다.
“스칼렛.”
“……”
“여전히 차갑구나. 힘들지? 그렇겠지. 여왕처럼 군림하다가...”
“닥치고 꺼져.”
“그 얼굴에 고운 말을 써야지. 힐레나를 좀 본받아봐.”
그녀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하나 있긴 했다. 바로 ‘샤를레라 위너즈 헤버’ 워너즈백작가의 영애이자 스칼렛과 힐레나의 소꿉친구가. 모두가 그러했듯 샤를도 그녀들을 차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칼렛이 하수라고 생각했다. 힐레나 역시 질투와 시샘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걸 숨긴다고 하지만, 이미 들통 난 것을.
“넌 사랑받지 못해. 저기 봐, 우리의 남자주인공 알렉산더와 힐레나의 모습을. 네가 달라지지 않으면 결코 가질 수 없어. 뭐 바뀐다 해도 소름끼치지만.”
나불거리는 저 입을, 혀를 잘라버리고 싶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가라앉혔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때가 되면 철저히 망가트려줄 것이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자.
붉은 머리칼, 선명한 금색눈동자의 남자. 투펜 공작가의 차남이며 남작이기도 하다. 알렉산더와 힐레나의 연애사는 유명하다. 주위 시선 따위 신경 쓰질 않았고, 특히나 그가 그녀를 많이 아끼고 사랑했다. 처음 극단에 들어온 힐레나를 첫눈에 반했다나.
그러나 같은 얼굴의 스칼렛에게는 결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바라던 바다.
“흐..후후...”
“스칼렛?”
“고마워, 샤를.”
“어? 뭐?”
투쟁심이 불타오른다. 힐레나 나의 귀여운 동생, 너의 것은 모두. 모조리 빼앗을 거야. 그 무엇이라도. 자신을 어둠이라 부른다면... 그 어둠에 질척이며 잠식되는 그대들을 지켜볼 거다.
“자, 연습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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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해주신 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