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따! 그년 뱃때지엔 칼도 안 들어 간 다요!”
꼴 같지 않다는 듯 꽃남방이 비아냥거린다.
“그년은 눈이 빨라. 네놈 칼이 나가기도 전에 손모가지가 먼저 부러져!”
“헹님은 빠지시오! 내하고 백대가리가 할 텐께!”
순간 백대가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머리를 뱀눈에게 돌린다.
“왜 하필, 저에요?”
“짜슥도 쫄아 부렀구먼! 에이! 씨벌!”
“휴우......”
꽃남방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추웠던 겨울도 가고, 연구소 담장 밑엔 개나리가 피었다.
차 회장은 3차 프로젝트도 상의할 겸 연구소를 방문했다.
연구실에서 인성은 프로젝트 기안서를 읽으며 말했다.
“내용검토는 끝났습니다.
양은 일차 때 성공했으니까 문제가 없는데, 개가 문제예요.
개는 유전학적 생식 특성이 다른 동물과 다릅니다.
잘못되면 돌연변이가 생길 수도 있어요.
작년에 일본서 복제에 성공했는데, 머리 두 개 달린 개가 나왔지요.
한 달을 못 버티고 죽었습니다.
그나마 그게 현재로선 최첨단이지요. “
인성의 말을 차분히 듣고 있던 최 회장이 말을 받았다.
“흠······. 일단 양의 인큐베이터는 생산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군!
그럼, 사우디 쪽 오더는 받아도 된다는 말인가?”
“예, 회장님. 사우디 오더는 받아도 됩니다.
하지만 영국 측의 ‘애완견 인큐베이터’는 일단 보류하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그 문제는 차지혜 박사와 상의해서 방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건 그렇고, 연구소에 별다른 문제는 없는가?
지난번 인원 감축 때 한 녀석이 말썽을 피웠다며? “
“예, 그 일은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인성은 잠시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회장님, 한 가지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요.”
“아! 그래. 조 박사 부탁이라면 야······.”
“예, 차지혜 박사에게 외사촌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출산 때 뇌손상을 입어 정상이 아닌 상태로 자랐지요.
엄마가 난산에 출혈로 아이를 낳다가 죽고, 외할머니가 맡아 기르셨대요.
무지했던 노인네는 애가 오래 살지 못할 거 같아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채 키웠나 봐요.
얘가 자라서 지금 스물네 살이 되었습니다.
천행인지 몇 년 전부터 손상을 입었던 뇌가 회복되면서 지금은 거의 정상인에 가깝습니다.
외할머님이 돌아가시고, 지금은 차 박사와 이곳에 함께 있는데, 차 박사는 출생 신고가 안 된 그 아이의 주민등록을 걱정하더군요. “
한참 인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 회장은,
“음. 딱한 얘기군!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도와줘야지.
어찌됐든,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인데 방법이 없을라고!
내, 안동시에 ‘성광축산’ 관계로 연줄이 있으니, 힘써 보겠네.
잠시 기다려보시게. “
“감사합니다, 회장님. 꼭 부탁드립니다.”
“하, 하. 자기일도 아닌데 조 박사가 그렇게까지 나서는 거 보면 우리 차지혜 박사에 대한 생각이 깊은 거 같군! 좋은 일이야.”
차 회장은 은근히 인성과 지혜가 짝을 이루길 기대하고 있었다.
보름후.
병원에서 퇴원한 네 남자가 천호동 용마싸롱 2층 방에 모여앉아 있었다.
백대가리와 뱀눈은 그때까지 깁스를 하고 있었고, 명태는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그나마 갈비 두 대로 끝난 꽃남방이 부러진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채 소파에 걸터앉아 왼손으로 소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독사누님 어디 가셨냐?”
“화장실 가셨갔지요.”
“그놈에 화장실은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을 가는 거야!”
용마싸롱 주인인, 노랑머리 50대 중년여자는 젊어서 인천 옐로하우스에서 잔뼈가 굵은, 포주 출신이었다.
그때 만난 70세 부자노인을 꼬드겨 동거를 했고,
노인이 죽자 노인의 가족들과 피터지게 싸워 재산을 분할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나이 40에 인천을 떠나, 천호동 사창가에 들어와 여자애들 넷을 데리고 가계를 차렸다.
하지만 타지에서 들어와 자기들 지역에 둥지를 튼 이 여자를, 그곳 사창가 포주들이 곱게 놔둘 리가 없었다.
급기야 대판 싸움이 벌어졌고,
여자는 자기 배로 들어오는 칼을 맨손으로 잡았다.
배에 칼이 반쯤 박힌 상태에서,
여자는 이를 악물고 양손으로 칼을 잡은 채 머리로,
칼을 잡은 남자의 얼굴을 들이 받았다.
남자는 얼굴이 반쯤 깨진 채 기절했고,
여자는 자기 배에 꽂힌 칼을 뽑아 남자의 어깨를 찔렀다.
그 일이 있고난 다음부터, 그곳 사람들은 그녀를 독사라 불렀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그곳에 둥지를 틀을 수 있었고,
사업이 잘되어 지금은 용마싸롱 같은 사업체를 3개나 운영하고 있었다.
그때 받은 칼에 절단 난 신장 한 개를 제거해야 했고,
콩팥이 하나밖에 없는 독사는 화장실을 자주 가야만했다.
뱀눈이 사건이 있던 날 창고에서 가져온 지혜의 핸드백을 뒤지며 말했다.
“아따! 이년 명함에, 그러니까, ‘분자 생식학 연구소’, 박사, 차지혜!
워메! 이게 무슨 말이여?”
“그 명함 이리 줘 봐!”
꽃남방이 명함을 뺏어 든다.
“이년 이거, 보통 년이 아니구먼!”
뱀눈이 묻는다.
“근디, 용인은 알겄는디, ‘분자 생식학’ 이건 뭔소리데요?”
“얌마! 한글도 모르냐? 무식한 새끼!
뭐, 분자가······. 그러니까, 떡치는 거, 뭐 그런 거 아니겠냐! “
“떡은 잘 치겄구먼요, 박사니께!”
야! 백대가리! 니는 박사 묵어봤냐? “
“아, 아니요, 아직······.”
남자들이 음담패설을 뱉어내고 있을 때 독사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조둥아리들 살아난 거 보니까 움직일만한 거 같은데,
뱀눈이 하고 백대가리는 외상값이나 받아와!”
“아따! 누님, 몸이 이런디 워떠코롬 일을 한 다요?
짭새들 가라앉을 때 까지 처박혀 있으라. 안하셨능감요! “
“에이, 씨발! 밥만 축내는 버러지들 데리고, 이거 뭐하는 건지!”
독사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그 시간 지혜는 마마미아를 데리고 안동시 평화동사무소를 방문하고 있었다.
새로 발급받은 주민등록증과 출생증명서를 받아든 지혜는,
“마마미아, 이제 넌, 정상적인 한국인이 된 거야.
이제부터는 항상 이 주민등록증을 휴대하고 다녀야 돼.”
마마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 회장은 마마미아를 그의 호적에 양녀로 입적 시켰다.
안동시장을 만나 사정을 얘기했고, 뇌손상 확인을 받기위해
아는 병원에 돈도 써야했다.
마마미아가 새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돌아오자, 인성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넌,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어. 머지않아 사회로 나가게 될 거야.”
며칠 후.
차 회장은 인성에게 전화를 걸어 한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차 박사 외사촌 말이야, 나이가 벌써 스물넷인데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나!
아직 말이 어눌하고 사리판단이 성숙하지는 못하지만
그 아이는 타고난 미모를 갖추고 있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성광축산’의 홍보모델을 시켜봤으면 하네.
그저 한 달에 몇 번 사진 찍는 일이니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
인성은 차 회장의 제안이 고마웠지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려 깊으신 제안 감사합니다. 회장님.
제가 차 박사와 상의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인성은 지혜를 불렀다.
차 회장의 제안을 들은 지혜는,
“뭘 망설이세요? 이제 주민등록도 되었고,
처음 해보는 일이니 무리가 있겠지만 그 정도의 일은
해낼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일을 통해 의식이 더욱 성숙해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제가 알아서 살필게요. “
인성은 지혜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왠지 그녀가 떠나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렇게 하지.”
일주일 후, 마마미아가 지혜와 함께 사진촬영을 위해 안동으로 떠날 때,
인성은 마마미아를 태운 지혜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아쉬운 눈으로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 걸까? 그녀는 과연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
그는 자신으로부터 이어지는 본질적 질문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안동, 성광축산 한우 방목장에 임시로 마련된 야외촬영장.
민소매 티셔츠에 흰색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있는 마마미아는,
‘건강하게 미래로!’ 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플래카드 옆에서
성광축산 일등급 한우 포장육을 든 채 카메라 앞에 서있다.
지혜는 저만치 촬영장이 보이는 나무그늘에 앉아 마마미아의
첫 촬영을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아이포커스’ 광고 에이전트에서 나온 촬영감독이 지시를 내린다.
“왼손으로 포장육을 들고, 오른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봐!”
마마미아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취한다.
“얼굴 표정! 환하게 웃어야지! 가슴 쭉 펴고, 다리 모으고!”
마마미아의 어색한 포즈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감독은 카메라 앞으로 나와 직접 자세를 취해본다.
“알았어? 뭔가 자연스럽고도 자신감 있는 포즈!
포근하면서도 상큼한 미소! “
근 한 시간이나 이어진 여러 차례의 포즈교정을 거치고서야
일차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2차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휴식중인 마마미아에게 감독이 말했다.
“장지영씨, 일차는 그런대로 됐는데, 이차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찍는 거야. 동물성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제거된 건강육을 강조하려면 건강미를 보여줘야지! 적당한 노출이 필요해!”
마마미아는 스텝들의 도움을 받아 간이 탈의실에서 감색 원피스 스위밍슈트로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늘씬한 키에 조각 같은 몸매, 순백의 피부가 봄의 햇빛을 밭으며 빛나고 있다.
촬영감독 김호빈은 입을 벌린 채, 이 우아한 여인에게 끈적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어렵게 이차 촬영을 마친 마마미아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갔을 때, 그 앞에 김호빈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지영씨, 수고했어.
처음이라 부족한 점이 많지만 훈련을 거치면 일류가 될 거야.
진짜 톱모델이 되고 싶으면 전화해! “
마마미아는 그 남자가 건네주는 명함을 받아든 채 말없이 서있다.
“능력 있는 매니저를 잘 만나야 일류가 되는 거야!”
그는 은근히 손을 들어 눈부시게 드러난 여자의 하얀 어깨를 잡아본다.
마마미아는 남자의 뜨거운 손이 자신의 어깨에 닿는 순간,
움찔! 뒤로 한발 물러섰다.
남자는 겸연쩍은지 손을 거두며,
“아니! 호의의 표신데, 오버하는 거 아니야?
내 말 잘 기억해 둬. 네 미래가 달린 얘기야! “
남자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스텝들에게로 돌아갔다.
나무그늘에 앉아 촬영을 지켜보았던 지혜는, 마마미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수고했어, 마마미아. 어때, 할 만해?”
“감독님 주문에 따라 하기가 어려워요.”
“처음이라 그런 거야. 감독이나 스텝들말 잘 듣고 열심히 해봐.”
마마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가 마마미아를 데리고 촬영장을 나올 때 김호빈이 자신의 명함을 지혜에게 건네며 말했다.
“장지영씨 핸드폰번호 좀 주시겠습니까?”
“아직 핸드폰이 없는데요, 곧 마련해서 연락드리지요.”
남자는 씁쓸한 미소를 띠운 채 돌아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