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 조인성 박사와 최지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이론상 설명이 불가능해요!”
조인성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가능한 모든 가정을 생각했다.
‘딸세포, 염색체, 유전자, 단백질······.’
무수한 생각의 파편들이 혼돈 속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무저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잠시 나가자!”
인성은 지혜의 손을 잡아끌고 실험실 밖으로 나왔다.
지혜는 자신의 손목을 잡은 인성의 손이 차갑다고 느꼈다.
잔디밭, 개나리 담장 옆 벤치에 둘이 앉았다.
초봄의 햇살이 제법 따갑다.
“커피 한잔 뽑아다 줄래?”
지혜가 커피를 뽑으러 간 사이, 인성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런 경우는 이론에 앞서 결과가 먼저야.
이론을 통해 결과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결과를 통해 이론을 유추해 나가야겠지! “
잠시 후 지혜는 커피 두 잔을 들고 와 인성 옆에 앉았다.
“설명하실 수 있겠어요?”
“할 수 없어! 하지만 난 결과에 주목해.”
둘의 눈은 봄의 푸르름이 채도를 바꿔가고 있는 오봉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원인과 이유는 일단 접어두고, 과정과 결과를 정리해볼까?
한 마리의 건강한 숫양에서 체세포 한 개를 채취했어.
그리고 다시, 그 체세포에서 핵을 채취해서,
핵이 없는 ‘인공난자’에 이식한 거야.
단백질과 효소, 전기충격등 일련의 조건을 만들어주면, 인공난자 안의 핵이 분열하는 거지. 여기까지는 맞지? “
“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어요. 그 다음부터가 문제지요.”
“그래, 핵의 분열과정에서 DNA가 먼저 분열을 하는데,
DNA의 나선구조가 풀어지는 과정에서 특이한 변화가
일어나는 거야.
모세포가 갖고 있었던 원래의 DNA가 똑같은 두 개의
DNA로 분리 되어야 하는데, 모세포와 다른 염기쌍을
가진, 전혀 다른 DNA로 분열하는 거지. “
지혜가 물었다.
“그 다른 DNA가 어떻게 다른 거지요? 돌연변이 인가요? “
“아니야! 돌연변이가 아니야.
바로 이게 문제의 핵심이야!
분리된 DNA는 원래의 모세포가 갖고 있던 2개의 DNA정보를
서로 나누어 가진 것에 불과해! “
다시 지혜가 물었다.
“그럼, 원래의 모세포가 갖고 있던 2개의 DNA정보는 어디에서 온 걸까요?”
지혜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인성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어디서 오긴? 그 숫양의 아빠와 엄마한테서 받은 거지!”
“그러면, 숫양의 유전자가 다시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로 분리되어, 되돌아갔다는 얘기예요?”
“그거야! 자연생식을 통해 암수가 합성된 유전자가 다시 퇴행해서 원래의 유전자로 역진화 했다는 얘기야.”
인성의 말을 듣고 있는 지혜의 가냘픈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35억년 지구 생명의 역사를 지배해온 절대 불변의 법칙이 붕괴하고 있었다.
“진화가 거꾸로 간다는 얘기예요!”
둘은 봄의 햇빛을 받으며 그곳에 오래 앉아있었다.
한참 후, 인성이 닫혔던 입을 열었다.
“당분간 비밀로 하고,
이 문제를 본 프로젝트와 분리해서 진행해야겠어.
이것과 관련된 모든 실험자료, 분리해서 저장하고,
특이 분열을 일으킨 체세포가 들어있는 인큐베이터를 옆방으로 옮겨! “
“따로 연구를 진행하시려는 거군요!”
“그래! 너와 나, 둘이서 하는 거야!”
다음날부터 한 개의 인큐베이터가 제1 실험실 맞은편에 있는 작은 세미나실로 옮겨졌고, “출입엄금” 이란 경고문이 제2 실험실 출입문에 붙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인성과 지혜는 용인 중앙공원을 걷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지혜는 연구소를 떠나 인성과 함께 있을 때면 그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교수님, 여자와 사귀어 본적 있으세요?”
“몇 번 시도는 해봤는데······. 왜?”
“감성이란 것도 유전 정보에 포함되나요?”
“물론이지. 감성지수도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거야.
물론 학습을 통해 발전해 나가겠지만.”
“교수님 감성도 부모님한테서 물려받았겠군요?”
“그렇겠지. 난 중학교 이 학년 때 사고로 부모를 잃었어.
두 분이 지금 이곳용인 공원묘지에 묻혀계시지. 이
번 일요일엔 거기에 가보고 싶어. “
지혜는 새삼스런 인성의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저는 가끔 교수님을 이성으로 바라볼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의 내면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느끼지요.
하지만 그 앞에 서면 “출입엄금”이란 팻말이 붙어있는 거예요.
우리 2차 실험실 처럼요. “
인성은 공원길 벚나무 옆 벤치에 잠시 앉았다.
공원은 한가했다. 마치 둘만을 위한 공원처럼.
“여기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있는데, 왜 사람들이 없는 거지? 옛날엔 말이야, 종로 탑골 공원에만 가도 사람들이 북적 거렸다고!”
“그만큼 사람들의 감정이 메말라있다는 거겠지요.”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인성은, 고개를 돌려 지혜를 바라보았다.
“나도 널 여자로 볼 때가 있어.
네가 내 옆에 앉아 시뮬레이터를 들여다 볼 때, 난 네 머릿결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어. 그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여자의 냄새야. “
인성은 가늘고 긴 지혜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너하고 나 사이엔 기다려야만 할 시간의 장벽이 있어.
우리는 연구가 끝날 때 까지 감성을 억누른 채 기다려야 해. “
지혜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인성의 어깨에 기댔다.
봄이 끝나갈 무렵.
일차 실험실 안의 인큐베이터는 8개로 증설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푸른빛의 조명 속에, 여덟 마리의 태아 양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인성은 차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여어! 조 박사. 그래, 어쩐 일이에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바쁘시지 않으시면 연구소에 한번 들러 주십시오.
보여드릴게 있습니다. “
“그래요. 조 박사 얼굴 본지도 오래된 거 같은데,
오후에 바람도 쐴겸 용인으로 가지요. “
무균 복을 입고 있는 차 회장은 이 경이로운 광경에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린 채, 심장이 박동하고 있는 태아 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인성 박사가 말했다.
“성공했습니다, 회장님. 태아의 성장속도도 일반 양들보다 두 배나 빠르지요. 좀 더 연구하면 3배 이상 빨라질 수 있어요.”
차 회장은 몸을 돌리며 인성의 손을 잡았다.
“대단합니다! 조 박사. 수고했어요!”
1차 실험실에서 나와 조인성 박사의 연구실로 자리를 옮긴 차 회장은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언제부터 생산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다음 달부터는 시제품 제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제품이 나오면 바로 임상실험에 들어갈 수 있지요. 1년 정도만 임상실험을 거치면 본격적으로 시장 생산이 가능합니다. 그 사이에 법률적 분석과 절차에 들어가야 하고요.
그리고 이번 주 안에 특허출원에 필요한 자료들을 드릴 테니, 특허 신청에 들어가십시오. “
차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 박사님, 내게 원하는 거 있으면 뭐든지 말해 보세요.”
인성은 잠시 망설이다 말을 뱉었다.
“회장님, 저는 과학자입니다. 연구가 저의 인생이지요.
이 프로젝트가 끝나도 저는 연구를 계속해야 합니다.“
차회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과학자를 존경합니다.
오늘 이후로 이 연구소는 조 박사님 것입니다.
부동산 등기 이전하시고요, 연구자금 중단 없습니다.
그리고 인큐베이터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의 20프로는,
조 박사 연구를 위한 재단 설립에 사용하겠습니다.
기업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환원이지요. “
“감사합니다. 회장님.”
차 회장을 보내고, 인성은 용인 정광산 밑, 공원묘지를 찾았다.
가끔씩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그는 이곳에 와서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연구소 뜰에 피어있는 분홍 장미를 한 아름 꺾어온 인성은 그것을 엄마의 무덤위에 올려놓았다.
“엄마. 나 왔어요.
오늘은 유난히도 엄마가 만들어주던 풋고추 멸치조림이 생각나는 거 있지?
그게 먹고 싶어서 마트에 가 봤는데, 파는 게 없더라.
요즘은 가끔 여자 생각이 나.
아마 지혜 때문이겠지?
참 예쁘고 착한 앤데, 걔는 멸치조림을 만들 줄 몰라.
하, 하······. 웃기지?
엄마. 보고 싶다. “
인성은 이곳에 와, 엄마와 대화를 나눌 때면 언제나 열다섯 소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감성 유전자 속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15세에서 멈춰 있었으니까.
뜨거웠던 여름도 지나고.
인성은 이차 실험실 시뮬레이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인공난자에 착상시킨 숫양의 핵이 인큐베이터 배양액 속에서 전기충격을 받아 간기에 들어간다.
이때 DNA의 분리가 일어나는데, 세포내 염기가 7.25인 실험체에서 숫양의 모세포가 두개의 다른 체세포로 분열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염기 배열상, 하나는 암놈이고,
하나는 수놈의 배아세포다.
이제 인큐베이터 안에는 두 개의 성이 다른 배아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양성 쌍둥이다.
수놈 배아세포는 32번의 자기 복제를 마치고 성장을 멈췄다.
역시 단백질 문제다.
그리고 암놈 배아세포는 건강하게 복제를 지속했다.
앞으로 한 달 후면 이 특이한 복제양 암컷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는 이 새끼양 배아세포에 이름을 붙였다.
“클램비아” (Clambia).
복제라는 ‘클론’ 과, 양 이란 ‘램’의 합성어이다.
인성과 지혜는 푸른빛을 발하고 있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고 있는 분홍빛 ‘클램비아’를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주일 후.
인큐베이터 안의 ‘클램비아’는 태동을 시작했다.
가끔씩 혈액순환을 위해, 바닥과 닿아있는 자신의 몸체를 움직여 자세를 바꿨다. 성장속도는 일반 양보다 두 배 가까이 빠르다.
인성은 또 하나의 인큐베이터에서 자라고 있는 배아 세포를 바라봤다. 그것은 1차 ‘클램비아’보다 한 달 늦게 복제를 시작한 놈이다.
배양액의 단백질 성분을 다르게 조작한 상태였다.
이놈은 성장속도가 무려 4배나 빠르다.
‘이놈은 출산을 늦춰봐야겠어! 인큐베이터 안에서 언제까지 자라나 두고 봐야해.’
그리고 이주 후.
드디어 1차 ‘클램비아’가 인큐베이터에서 나왔다.
출산을 한 것이다.
이 새끼양은 출산 즉시 보육실로 옮겨졌고, 조제분유로 수유가 시작됐다.
인큐베이터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클램비아 1호는 성장속도가 반으로 떨어지며 일반 새끼양과 같은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인성은 이 클램비아의 체세포를 채취하여 처음 모세포를 제공했던 숫양의 어미와 유전자 비교분석에 들어갔다.
결과는 예측대로였다.
클램비아 1호는, 자신에게 모세포를 제공했던 숫양의 어미와
100 퍼센트 일치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지혜는 자신이 이름을 붙인 클램비아 1호를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시간에 맞춰 수유를 하고, 배변을 시키고······.
인성과 지혜는 클램비아 2호가 자라고 있는 인큐베이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은 성장이 빨라, 벌써 어미양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아직 출산 전이라 호흡을 한다거나 배변을 하지는 않았지만 육안으로도 그것은 이미 성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4일 후.
2차 실험실에서 인큐베이터 안의 클램비아 2호를 관찰하던 지혜가 외쳤다.
“성장이 멈췄어요!”
인성은 인큐베이터로 달려가 클램비아 2호의 신진대사를 확인했다. 성장이 멈춰 있었다. 인성은 지혜에게 말했다.
“출산을 시켜야겠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