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과 지혜는 서둘러 무균복으로 갈아입고 라텍스 장갑을 착용했다.
인공혈액의 염기를 낮추고, 헤모글로빈의 농도를 증가시켰다.
클램비아 2호의 심박 수가 증가한다.
잠시 후, 인큐베이터의 유리커버를 열었다.
그리고 심박측정기의 연결선을 제거하고, 인공탯줄을 끊었다.
이제 클램비아는 독립체다.
푸른빛 조명속의 클램비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혈압과 심박 수가 정상을 찾는다.
그리고 클램비아는 서서히 눈을 떴다.
녀석의 눈동자가 움직인다.
그의 본능이 그의 몸을 일으켜 세운다.
녹색의 무균복을 입고 있는 인성과 지혜는, 푸른빛을 받으며 당당히 서있는, 현대과학의 경이로운 결과물을 묵묵히 바라보고 서있었다.
지혜는 클램비아를 보육실로 옮겼다.
클램비아 2호는 성체였지만, 소화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까지 단백질과 인이 보강된 조제분유를 공급받을 것이다.
이제,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는 두 마리의 양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 마리는 청년기고, 다른 한 마리는 유아기다.
지혜는 이 두 마리의 복제양을 지극한 정성으로 돌봤다.
매일, 매일 관찰과 기록을 꼼꼼히 챙겼고, 인성은 실험 자료들을 정리해나갔다.
두 달 후.
지혜는 노크도 없이 인성의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수님, 저 좀 보세요!”
인성은 지혜를 따라 보육실로 갔다.
두 마리의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인성이 물었다.
“뭐가 문제가 있나?”
“둘 다 건강해요. 헌데, 이상한 게 있어요.”
지혜는 그동안의 관찰 기록을 인성에게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1호는 성장속도가 정상인데, 2호는 달라요.”
“뭐가 다르지?”
“클램비아 2호는 신진대사가 일반양보다 많이 빨라요.
먹이성분도 조절해 봤는데 잡히지 않아요. “
“수유 끊은 지 얼마나 됐지?”
“한 달 됐어요. 지능발달도 엄청나게 빠르고요,
근력도 강해서 목줄을 두 번이나 끊었어요.”
“흠, 먹이성분에서 단백질과 인을 줄이고, 좀 더 지켜보자고!”
흰색 스포티지는 겨울바람을 가르며 중앙고속도로를 지나 서안인터체인지를 접어들고 있었다.
밤새내린 첫눈으로 산과 들은 한 점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인성이 지혜에게 말했다.
“부지가 25만 평이래. 노인네, 욕심도 많으시지.”
“왜, 하필이면 안동이래요?”
“응, 최회장님 고향이 안동이라나 봐. 당신 고향에서 생애 마지막 사업을 해보고 싶으신 게지.”
조인성은 어제저녁 최 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인큐베이터 공장부지를 답사하기 위해 안동호 근방의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임시펜스가 둘러져있는 현장 정문을 통과해서, 용점산 밑 간이 창고 앞에 차를 세웠다.
둘은 눈을 밟으며 창고 뒤편의 오르막길을 걸어올라, 용점산 중턱에서 멈췄다.
“휴우!”
지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작은 한숨을 내뱉는다.
25만평의 대지가, 멀리 보이는 안동호를 배경으로 거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인성은 기지고온 카메라에,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지의 전경을 담았다.
“저기 보이는 곳에 복제배아 공장을 짓고, 그 옆에 최고등급의 한우와 젖소 공장을 지을 거야.
그리고 저쪽 산자락 밑에 초지를 조성해서 생산된 소들이 풀을 뜯겠지. “
“평화로운 모습이겠군요.”
“여기서 이 사업이 성공하면 인류는 기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지혜는 기대에 찬 눈으로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춥지?”
인성은 어깨를 움츠리고 추위를 참고 있는 지혜의 작은 어깨를 한 팔로 감았다.
그녀의 가는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지혜는 몸을 돌려 인성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얼굴을 묻고 있는 남자의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자는 양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들어 올리며 서서히 입술을 포갰다.
지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랬다.
다음날.
인성은 연구실에서 ‘클램비아’ 연구논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의식의 세계, 저 밑 심연으로부터,
억압되어 있던 무의식의 파편이, 의식의 옷을 입고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인큐베이터는 양의 배아에서 '클램비아‘를 완벽하게 탄생시켰어!
머지않아 차회장의 주문대로 소가 만들어지겠지.
근데······. 그런데······. “
그는 의식의 세계로 올라오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어떤 무의식의 파편을 잔인하게 끌어올린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인간은!”
조인성 박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러나 의식의 옷을 갈아입은, 이 기괴한 생각은, 이미 도도한 모습으로 인성의 머릿속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인성은 냉정을 찾으려 애쓰며 생각을 정리했다.
“모세포, 핵치환, 1차 간기, 유전자 분리, 일차 체세포 분열,
두 개의 양성 쌍둥이세포, 그리고 이어지는 체세포 분열······. “
그런 일련의 순서를 거쳐 얻어진 결과!
‘클램비아’
그건 바로 ‘엄마’였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엄마’
그는 전율했다.
잠재의식 저 밑바닥에, 그토록 사무쳤던 엄마의 모습이,
푸른빛 속의 클램비아와 오버랩 되어 간다.
그날부터 인성은 새로운 연구에 착수했다.
자신의 몸에서 채취한 체세포를 배양기에 넣고 시뮬레이터를 돌렸다.
모니터에는 모세포의 염색체와 유전자의 정보들이 숫자로 표시되고 있었다.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지혜는 가져온 커피를,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인성에게 건네며, 뒤에서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평화로운 미소를 담은 채 모니터를 바라보던 지혜의 눈 끝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인성의 어깨를 감고 있던 팔을 풀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왜, 상염색체가 22쌍이지요?”
인성은 경직된 눈으로 말없이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었다.
“뭐하시는 거예요?”
지혜는 경악하고 있었다.
“인간이지요?”
인성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며 몸을 돌려 지혜를 바라봤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문채 지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둘 사이에 말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인성은 지혜의 손을 잡아 옆의 의자에 앉혔다.
“그래. 인간이야! 난 이것을 해봐야겠어!”
지혜는 인성의 말에서 위압감을 느꼈다.
“전 동의할 수 없어요. 아무리 학문이 중요하지만,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는 없어요. 그건 죄악이에요!”
“들어봐!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내겐 법과 도의를 떠나 간절한 욕망이 있어.
학문에 대한 욕심이 아니야. 이건, 그동안 나를 지배해 왔던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욕망이야. “
부탁해! 이해해줘. 단 한번으로 끝낼 거야. “
지혜는 감정을 애써 가라앉히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얼 만드시려는 거예요?”
“엄마, 우리 엄마야! 난 엄마를 만나고 싶어!”
지혜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실험실문을 거세게 닫으며 뛰쳐나갔다.
인성은 의자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푸른빛 속에서 엄마가 웃고 있었다.
인성은 잔디밭 개나리 담장 옆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지혜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흰 눈이 덮인 오봉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성은 그녀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때도 겨울이었어.
아빠가 운전하던 소나타가 눈길에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들이받았지. 차는 가드레일을 뚫고 두세 번 구르며 바닥으로 떨어졌어.
아빠는 목이 꺾여 즉사했고, 엄마는 가슴에 구조물이 박힌 채 피투성이가 되어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지.
엄마는 마지막 남아있는 모든 힘을 쏟아 팔을 들어 내 얼굴을 잡았어. 그리고 엄마가 마지막 한 말이 뭔지 알아?
그건 ‘우리 아들’이었고, 내가 한 마지막 말이 ‘우리 엄마’
였서.
난 운전석에 목이 꺾인 채 죽어있는 아빠가 미웠지.
이렇게 예쁘고 착한 우리 엄마를 왜 죽였냐고 절규했어.
그 사고 이후, 난 한 번도 엄마를 잊은 적이 없었다.
사무치게 그리울 때마다 엄마 무덤에 갔지.
그리고 우리는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요즘은 가끔 네 얘기도 해. “
지혜는 인성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돌려 인성을 바라봤다.
인성의 눈도 젖어 있었다.
“한번 만이에요! 딱 한번이요!”
인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당겨 가슴에 안았다.
안동의 ‘성광인공축산’ 건설현장은 1차 공사인 시제품 공장과 인공배아 생산 시설이 완공되었고, 시제품 공장에선 한우와 젖소를 복제하기위한 ‘대리모 없는 공여체세포 인큐베이터’의 생산설비가 갖춰져 가고 있었다.
축산농 출신의 차회장은 자신의 고향인 안동에 대규모 인공 축산 공장을 설립하여, 대한민국 축산의 메카를 꿈꾸고 있었다.
조인성 박사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공장을 방문했고, 인큐베이터와 인공배아 생산 설비들을 점검하며 기술적 자문을 담당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곳에선 한 달에 2만 마리의 최우수 등급의 한우와 젖소들이 생산될 것이다.
차회장은 한 달에 한두 번씩 용인 연구소를 방문해서 조인성 박사와 직원들을 격려했다.
한편, 이차 실험실 내부에 또 하나의 철제 칸막이가 생기고,
CCTV와 자동 경보장치가 추가로 설치됐다.
하지만 15명의 용인 연구소 직원들 중,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조인성 박사와 최지혜 박사, 둘 뿐이었다.
그리고 그, 철제 칸막이의 출입문엔 ‘특수멸균실 출입엄금‘이란 팻말이 붙어있었다.
여덟 번째 실험 끝에 인공 난자에 이식된 인체 세포는 2차분열에 성공했다.
성장속도가 빠른 인간 복제 세포는 한 달쯤 후면 태아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혜가 보살피고 있는 클램비아 1호는 어느덧 잘도 자라 성체로 태어난 2호와 몸무게가 같아져 있었다.
털 색깔, 눈 모양······. 심지어 울음소리까지 똑같은 두 마리의 복제양을 지혜는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2호의 신체대사가 1호와 비교해서 눈에 띠게 빠르다는 것이었는대......
인성의 말대로 단백질과 인의 함량을 조절한 먹이를 공급받은 후로 약간 줄기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혜는 클램비아의 보육실에서 혈흔을 발견했다.
그녀는 연구실로 달려가 인성에게 말했다.
“클램비아 2호가 발정을 시작했어요!”
보육실로 달려간 인성과 지혜는 2호의 생식기에서 흐르는 혈액을 보았다.
선홍색 혈액이 외음부를 통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인성이 지혜에게 말했다.
“하루에 세 번씩 체온과 혈압 체크하고 잘 지켜봐.
일주일 후에 수놈 찾아 교배시켜야겠어. “
그날부터 지혜는 2호를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발정을 시작한 클램비아 2호는 몰라보게 성격이 변해있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뭔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지혜는 매일, 매일, 2호의 신체적 변화와 함께 정신적 변화를 꼼꼼히 기록해 나갔다.
일주일 후, 수놈과의 교배를 통해 임신을 하게 된 2호는 그제야 안정을 되찾아 갔다.
이제 다섯 달 후면 새끼가 태어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