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마마미아
작가 : 청아람
작품등록일 : 201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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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제 8화
작성일 : 16-09-20     조회 : 453     추천 : 1     분량 : 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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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가 본 사물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그 기억이 손끝의 신경에 정확히 전달된다! “

 

 그것은 마치 스캔 받은 사물의 데이터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프린터 같았다.

 빛의 각도와 그림자의 방향까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인성은 호기심이 들었다.

 “마마미아, 참 잘 그렸어.

 이번엔 네가 본 사물의 형체 말고,

 네 머릿속의 생각들을 표현해 볼 수 있을까?

 너의 느낌이나 감정······.

 이런 것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너의 상상력으로,

 네 마음껏 그려보는 거야. “

 

 마마미아는 인성이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생각했다.

 그녀는 말없이 연필을 잡고 스케치북의 뒷장을 넘겼다.

 

 하얀 도화지 위에서 연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리 오봉산이 보인다.

 흰 눈이 쌓인 들판 한가운 데로 난 하얀 길은,

 산 밑의 떡갈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겨울 햇빛이

 어두운 숲속에 하이라이트를 만든다.

 

 숲으로 난 길을 한 여인과 소년이 걷고 있다.

 소년은 여인의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고개를 쳐들어 여인에게 얘기한다.

 

 “엄마, 저 숲은 따뜻할까? 추울까?”

 

 여인은 고개를 숙여 소년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아침이 되어 빛이 들어오면 따뜻해지고,

 밤이 되어 어둠이 들어오면 추워질 거야. “

 

 “우리 저기에 집짓고 엄마하고 살면 좋겠다!”

 

 여인은 한없이 평화로운 미소를 소년에게 보낸다.

 

 완성되어가는 그림을 지켜보며, 인성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침 6시.

 마마미아는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부터 매일 아침 인성과 조깅을 하기로 한 시간이다.

 인성은 가벼운 산책보다는 적당히 땀을 흘릴 수 있는 아침조깅이

 마마미아의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마미아, 내일부터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6시 15분에 내방으로 와. 그리고 나하고 함께 오봉산 쪽으로 뛰는 거야.”

 

 마마미아는 잠들기 전, 인성과의 약속 시간을 기억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야지!’

 

 그녀가 눈을 뜬 시간은 정확히 6시였다.

 그녀는 기억과 감각이 신체리듬을 정확히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입고 있던 잠옷을 벗고, 지혜가 사다준 조깅 복으로 갈아입었다.

 감색의 고탄력 조깅팬츠가 완벽한 비율의 하체를 감싸고,

 민소매 런닝복에 드러난 희고 긴팔을 뒤로 돌려 머리를 묶었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운동화 끈에 매듭을 지었다.

 

 그녀는 감각적으로 6시 15분이 된걸 느낀다.

 그리고 인성의 방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아! 잠시만 기다려. 곧 나갈게.”

 

 인성이 조깅복을 입고 방을 나왔을 때, 마마미아는 복도 창을 통해 오봉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의 뒷모습을 본 인성은 섬뜩 놀랐다.

 완벽한 몸의 균형, 하얀 피부, 길게 묶어 내린 윤기 나는 검은 머리.

 

 인기척에 몸을 돌린 여인의 모습은 무구한 완벽! 그 자체였다.

 

 연구소 정문을 나와 오봉산 쪽으로 난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며, 둘은 속도를 내었다.

 

 “헉, 헉······.”

 벌써 20분을 달렸다.

 겨울바람이 쌀쌀했지만 어느새 인성의 옷은 땀으로 젖었다.

 마마미아는 입을 꼭 다문 채 인성과 보조를 맞추며 뛰고 있었다.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긴 다리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떡갈나무 숲으로 들어섰을 때 인성이 헐떡이며 말했다.

 “헉, 헉······. 잠시 쉬어야겠어!”

 

 인성은 허리를 굽혀 양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숨을 고른다.

 여인은 떡갈나무에 몸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헐떡이는 인성을 바라본다.

 마마미아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혜는 아침식사를 같이하기 위해 마마미아의 방으로 갔다.

 지혜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깅복을 갈아입던 마마미아가 깜짝 놀라며 얼른 벗은 몸을 타월로 가렸다.

 

 “아! 미안해. 문이 열려있어서······.”

 지혜는 처음 보는 마마미아의 행동에 당황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야. 내가 몸을 씻어주기도 하고, 속옷을 갈아 입혀주기도 했었는데······.’

 

 “먼저 내려가 있을게. 옷 갈아입고 식당으로 내료와.”

 지혜는 방문을 닫고 나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연구실에서 성광축산이 보내온 3차 프로젝트 내용을 검토하고 있던 인성에게 지혜가 말했다.

 

 “마마미아의 행동패턴이 많이 달라졌어요.”

 지혜는 미소를 지은 채 아침에 자신이 보았던 마마미아의 행동을 인성에게 얘기했다.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거야.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거지.

 몸은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지만 정신은 갓 태어난 아기의 수준이었어. 이제 학습과 경험을 통해 의식이 성숙해 진거야. 내게도 조금씩 거리감을 두기 시작했어. “

 

 “자연스런 일이군요.”

 

 “그래. 성숙한 여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지혜는 앉아있는 인성의 목을 뒤에서 감싸 안으며 말했다.

 “이따 일 끝나고 데이트해요.”

 

 인성은 고개를 돌리며,

 “그래. 저녁 같이 먹고 드라이브나 할까?”

 

 마마미아는 그림에 열중하고 있었다.

 좌우로 끝없이 움직이는 연필 끝에서 인성의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생겼어?”

 마마미아는 눈을 도화지 위에 고정시킨 채 잔잔한 미소만 짓는다.

 

 마마미아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행복한 눈으로 뒤에서 지켜보는 인성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주민등록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

 출생신고가 안 된 마마미아가 사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이 필요했다.

 하지만 부모 없이 실험실에서 태어난, 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어떻게 출생등록을 시킬 수 있을지 인성은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흰색 스포티지는 42번 국도를 따라 이천 도자기 마을로 들어섰다.

 각종 생활 도자기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가게들을 지나, 이천 쌀밥집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지혜는 인성의 팔짱을 낀 채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이른 저녁이었지만 식당 안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안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5분도 안되어 각종 산나물과 직접 담근 장아찌, 펄펄 끓는 된장찌개가 나오고, 곧이어 곱돌솥에 갓 지은 햅쌀밥이 꽁치구이와 함께 식탁을 덮었다.

 

 지혜는 인성의 솥밥 뚜껑을 열고 밥을 퍼, 옆에 놓인 빈 그릇에 옮겼다. 그리고 물병의 물을, 밥을 퍼낸 솥에 붓고 뚜껑을 닫았다. 이제 밥을 다 먹을 때쯤이면 솥 안엔 구수한 누룽지가 후식을 위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식사를 하며 지혜가 인성에게 물었다.

 “박사님께 마마미아는 어떤 존재예요?”

 

 인성은 하얀 햇밥이 담긴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생각했다.

 

 인성은 대답이 없었고, 지혜는 묵묵히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글쎄, 어떤 존재일까?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아니면 복제인간과 정상인의 관계? “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아닐까요?”

 

 예리한 지혜의 질문에 젓가락을 움직이던 인성의 손이 멈췄다.

 

 “당연한 질문 아니야? 그녀는 여자고 난 남자야.

 그래서 그녀는 내 엄마고 난 그녀의 아들이야. “

 

 “정말 그녀에게서 ‘엄마’를 느끼세요? 그리고 마마미아도 당신을 아들로 느끼고 있을까요?”

 

 “질투하는군!”

 

 “네. 질투해요!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워요.

 그녀가 당신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전 쓸쓸해져요. “

 

 인성은 말없이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은 도화지를 꺼내 지혜 앞에 펼쳐 보였다.

 

 “마마미아가 처음 그린 그림이야.

 난 그녀에게 가슴 깊숙이 담고 있는 자신의 생각을 그려보라고 했어. 그리고 이게 그녀가 그린 그림이야.

 그녀의 잠재된 의식 속에 가장 그립고 고귀한 게 아들이고, 내 안에 잠재된 의식 속엔 엄마가 있어. “

 

 지혜는 솥에서 익은 누룽지를 인성의 그릇에 담아주며 말했다.

 “그러면 저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넌 내가 열네 살 때 엄마를 잃고 처음 만난 여자야.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 그리고 난 너를 안았어.

 내가 이성으로 느낀 여자는 네가 처음이었다.

 

 결혼이라는 세속적 결속이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하지는 않아. 어쨌든 지금 난 너와 함께 있고, 때가되어 마마미아가 사회로 나갈 때, 난 흔쾌히 세속적 결속을 선택할 거야. “

 

 “제게도 잠재된 모성애가 있는 것 같아요.

 마마미아의 행복한 눈빛을 보면서, 저도 그녀처럼 당신을 닮은 아들을 갖고 싶다는 잠재적 욕망이, 질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도 모르지요. “

 

 “잠재된 욕망은 시간이 지나면 표면으로 올라와 현실이 될 거야. “

 

 식당을 나왔을 땐 이미 어둠이 깔려있었다.

 

 흰색 스포티지는 42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어둠속을 달렸다. 차가 남한강변에 이르렀을 때, 인성은 강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위에 차를 세웠다.

 

 강 건너 작은 마을에서 뻗어 나온 불빛이 검은 강물위에 반사되어 물결에 흔들린다.

 

 “매일 당신과 함께 있는데도 당신은 늘 멀리 있는 사람같이 느껴져요.”

 

 인성은 멀리 강 건너의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연구가 끝나면 저 마을에 가서 살까?”

 

 “그게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르지요. 전 가끔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져요.”

 

 “나도 그래. 과연 과학의 발전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는지, 그게 정말 인간의 행복인지······.

 나도 회의감이 들 때가 있어. “

 

 “인간 세상에 마마미아의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녀의 인생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그녀의 인생을 책임질 자격이 있을까요? “

 

 인성은 이어지는 지혜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겠어. 과연 마마미아가 자신이 그렇게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될는지, 그건 아무도 몰라. 만일 그녀가 자신의 출생으로 인해 불행해 진다면 난 죄의식을 견디지 못할 거야.”

 

 지혜는 아무 말 없이 인성을 안았다.

 인성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들어 입술을 포갰다.

 

 맑고 달콤한 타액이 인성의 입안을 적신다.

 그들은 그렇게, 그곳에 오래있었다.

 

 하얀 스포티지가 연구소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지혜는 인성의 팔짱을 끼고 숙소로 올라왔다.

 

 연구소 2층, 왼쪽에서 두 번째 창문에선, 한 여인이 차에서 내리는 두 연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성이 지혜와 헤어져 방으로 들어왔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자 마마미아가 잠옷을 입은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마마미아! 왜, 여태 잠안 자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인성은 마마미아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왜, 무슨 일 있었어?”

 그녀를 침대위에 앉히며 인성이 물었다.

 

 “지혜 선생님하고 어디에 갔었어요?”

 “응. 산책하고 왔어. 근데 왜 울어?”

 

 “지혜 선생님을 마마미아보다 더 사랑하세요?”

 

 인성은 난감했다.

 “그렇지 않아. 그건 말이야......”

 

 “마마미아는 이 세상에서 인성을 제일 사랑해요.”

 

 “나도 마마미아를 제일 사랑해. 하지만 내가 지혜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과 너를 사랑하는 건 다른 거야.”

 

 마마미아는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인성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 이제 늦었으니 자고, 내일 아침조깅 가야지?”

 

 인성은 일어나 방으로 가려했다.

 

 “가지 마세요. 무서워요.”

 

 “그래 알았어. 네가 잠들 때까지 네 옆에 있을게.”

 

 인성은 마마미아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여인은 긴 팔로 인성의 허리를 감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든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달빛이 잠든 여인의 얼굴에 실루엣을 만든다.

 

 인성은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여인의 팔을 들어 가슴에 올려주고 여인의 방을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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