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어젯밤 인성과의 대화 이후, 마마미아에 대한 자신의
질투가 부적절 했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춘기 소녀와 같은 여린 감성을 갖고 있을 뿐이야.
내 생각이 지나쳤어! ‘
지혜는 이제 마마미아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의 순리를 어긴, 인성과 자신의 연구에 의해 태어난,
가녀린 존재이기도 했다.
지혜는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은 온통 인성과 마마미아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마치 사진전을 보는 듯했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아이와 대화하는 모습······.
그녀의 그림 속에서, 인성은 언제나 어린 소년이었다.
“마마미아, 머리의 상처는 좀 어때?”
마마미아는 눈을 돌리지 않은 채 그림에만 열중한다.
“지혜 선생님은 인성을 얼만큼 사랑하세요?”
지혜는 침묵 뒤에 나온 그녀의 질문에 당황했다.
“인성은 좋은 사람이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지.”
“저는 인성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그래. 알아.
사람을 사랑하는 건 좋은 거야. 나도 그를 사랑하고, 또 나는 마마미아도 사랑 한단다. “
잠시 후 마마미아는 고개를 돌리며 지혜를 안았다.
“마마미아, 우리, 오늘 서울구경 갈까?
많은 사람들도 보고, 과천에 동물원에도 가보고. “
“좋아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
지혜는 마마미아의 무구한 얼굴에서 넘치는 기쁨과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지혜가 운전하는 빨간색 리오는 양재동 톨게이트를 지나 과천 서울 대공원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공원은 한산했다.
팝콘을 사먹으며, 둘은 곳곳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마마미아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고, 지나는 사람들은 이 두 아름다운 여인들을 시샘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이 ‘큰 물새장’ 앞에 이르렀을 때, 마마미아는 물가에서 먹이를 찾고 털을 고르는, 수많은 물새들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지혜가 말했다.
“참 아름답지?
저기 보이는 게 황새고, 저거는 분홍 페리칸······. “
“저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그럼, 동물과 친구가 되는 건 참 좋은 거야.”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글쎄······. 재들은 말을 못하니까 물어볼 수도 없고, 아마 울타리 바깥세상을 상상하겠지?”
마마미아는 ‘큰 물새장’과 맞닿아 있는 관람 발코니로 올라갔다.
그녀의 눈이 물 건너 인공 섬에서 털을 고르는 새들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한참을 서서 새들을 응시하던 마마미아는 양손을 들어 크게 원형을 그렸다.
순간, 인공 섬에 있던 새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며 비상하기 시작한다.
많은 새들이 물위를 우아하게 날아서 마마미아가 서있는 발코니 앞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마마미아의 눈과 새들의 눈이 마주친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혜는 이 기막힌 광경에 눈을 크게 뜬 채 입만 벌리고 서있다.
주변의 사람들이 새떼 앞으로 몰린다.
눈을 새들에게 고정시킨 채 서있는 마마미아의 얼굴엔 수많은 표정이 변화하고 있었고, 그녀의 가는 입술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혜는 핸드폰을 열어 이 경이로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큰 물새장을 나서 대 동물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지혜가 물었다.
“새들이 너에게 무슨 얘기를 했어?”
마마미아는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한 아이는 울타리를 넘어, 보다 높이 날아보고 싶다고 했고요, 어떤 새는 지난밤에 자기 새끼를 쥐가 물어 죽였데요. 그래서 몹시 슬프다고 했어요. 또 한 마리는 내 눈이 예쁘다고 해요!”
‘이 여인이 진짜 동물과 대화를 한 걸까?’
지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텔레커네시스, 텔레파시, 염능력······. “
지혜는 자기도 어렸을 적에 개나 고양이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마마미아는 그곳에서 많은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동물들이 모여들고 마마미아는 그들과 눈으로 대화했다.
심지어 늦겨울의 햇볕에 봄이 온 줄로 착각하여 깨어난 나비가 날아와 그녀의 어깨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지혜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동물원 구경을 마치고 서울 시내로 들어섰을 땐,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의 가게들이 간판 불을 켜고 있었다.
“배고프지?”
지혜는 마마미아의 손을 잡고 맥도날드로 들어가 치킨버거 두 개를 시켰다.
테이블에 앉아 버거를 먹으며, 마마미아는 동물원에서 동물들과 나눈 대화를 능청맞게 지혜에게 얘기했다.
지혜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사춘기 소녀의 무구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저쪽 테이블에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는 끈끈한 눈길을 지혜는 의식하지 못했다.
”야! 재들 보이냐? 저 정도면 쓸 만하지 않아? “
한 남자가 마주앉은 남자에게 말했다.
“아따! 헹님은, 끈내주는 아들이 한둘 이 간디요?”
“임마! 이번 거는 좀 달라. 저 정도면 물건이야!”
꽃무늬 남방을 입은 남자가 핸드폰을 열었다.
“명태냐? 나다. 백대가리 찾아서 빨리 스타렉스 가지고 압구정동 맥도날드로 와라. 물건 찾았다. 그것도 둘이야!”
꽃남방이 전화를 끊자 뱀눈이 말했다.
“아니, 헹님! 장소가 않좋습니다요.
누깔들이 많지 않은가 벼! “
“얌마! 이런 기회 놓치면 평생 시다바리나 하면서 보내야해!
잔말 말고 감시해. 다 처먹고 밖으로 나오면 계속 따라붙어 기회를 잡아야지! 넌 밖에 나가 애들 오면 신호해! “
“예! 헹님.”
뱀눈은 허리를 꺾고 박으로 나갔다.
5분도 되지 않아 검은색 스타렉스가 가게 앞에 도착했다.
뱀눈이 손을 들어가게 안에 앉아있는 꽃남방에게 신호를 보냈다.
꽃남방은 결의를 다지는 눈빛으로 두 여자를 응시하면서 가게를 나와, 대기하고 있던 스타렉스의 조수석에 올라탄다.
“시동 끄지 말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애들이 나오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붙는다.
뱀눈은 밖에서 따라가! “
“알겠습니다, 헹님!”
뱀눈은 차 밖으로 나와 벽에 기댄 채 담배를 꼬나물었다.
“마마미아, 가자. 늦었어.”
지혜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마마미아를 데리고 가게를 나왔다.
늦은 시각, 겨울바람이 차다.
지혜는 마마미아의 찬 손을 꼭 붙잡고, 세븐일레븐을 지나 차를 세워놓은 주차구역까지 걸었다.
2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검은색 스타렉스가 천천히 따라온다.
두 여자가 도로변 공사장 임시펜스로 접어들 때, 뱀눈이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지금입니다요!”
순간 속도를 낸 스타렉스가 두 여자 앞에서 멈췄고, 세 명의 남자가 차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백대가리와 명태가 양쪽에서 두 여자의 팔을 낚아챈다.
“어! 뭐하시는 거예요!”
지혜가 경악하며 물었다.
꽃남방이 여자들 앞으로 다가서며 말을 뱉는다.
“이, 씨발년들! 화대 챙겨서 도망을가?
게다가 손님 지갑까지 털어! “
그때 뱀눈이 여자들 앞으로 나서며 말을 받는다.
“맞습니다요, 사장님. 이년들이 제 지갑을 털어 튄 년들입니다요!”
지나가는 몇몇 행인들이, 여자들을 곱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백대가리가 외쳤다.
“씨발놈들아, 뭘봐! 니들일 아니니까 신경 끄고 꺼져!”
남자들의 위세에 행인들은 가던 길을 재촉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황당한 상황에 지혜는 공포를 느낀다.
“무슨 말 하시는 거예요! 누가 지갑을 훔쳐요?”
순간 스타렉스 문짝이 활짝 열리고, 남자들의 억센 완력에 지혜와 마마미아의 몸이 차안으로 처박혔다.
“쿵!” 차 문이 거칠게 닫히고, 네 명의 남자와 두 여자를 태운 스타렉스가 급발진을 한다.
“악!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지혜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쳐 보았지만 그녀의 절규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남자들의 억센 팔이 두 여자의 양손을 뒤로 돌려 청테이프를 감았고, 여자들의 입에도 테이프가 붙었다.
“읍, 읍······.”
지혜는 계속 소리를 쳐보지만 목소리는 테이프에 막힌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다.
지혜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눈을 돌려 마마미아를 쳐다본다. 이 가련한 여인은 어떻게 되는 건가!
마마미아는 양손이 뒤로 묶인 채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뒷좌석에 꼿꼿이 앉아있다.
그녀는 인성의 말을 떠올리며 분노를 자제하고 있었다.
검은색 스타렉스는 올림픽대로를 지나, 미사리 조정경기장 근처의 낡은 창고건물 앞에서 멈췄다.
창고 문이 열리고, 검은색 스타렉스는 창고 안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쾅!”
창고 문이 닫히고 두 여자는 남자들에 이끌려 차 밖으로 나왔다.
파란 플라스틱 팔레트들만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창고 안에 불이 들어왔다.
중앙에 두 개의 철제의자가 놓여있었고, 남자들은 두 여자를 의자에 거칠게 앉혔다.
“야! 아가리에 테이프 벗겨봐! 상판때기 좀 보게.”
뱀눈이 여자들 뒤로 돌아가 거침없이 지혜의 얼굴을 덮고 있는 청테이프를 뜯어냈다.
“아악!”
마치 테이프가 살점을 뜯어내는 듯 아팠다.
지혜는 극도의 공포심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마마미아는 청테이프가 얼굴을 할퀴며 뜯어져 나갈 때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녀는 눈을 경직시킨 채, 혼돈 속에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지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거예요? 원하시는 게 뭔가요?”
꽃남방이 지혜 앞으로 나서며 말을 뱉는다.
“주둥아리 닥치고 오빠들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별일 없을 거야. 어디, 낯짝 좀 볼까?
야! 요년들 끝내주게 생겼네! “
남자가 몸을 숙여 지혜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남자의 호흡에서 썩은 악취가 풍겼다.
“살려주세요! 돈 필요하면 얼마든지 드릴게요. 제발 건들지 말아주세요.”
지혜는 눈물을 흘리며 남자들에게 사정했다.
뱀눈이 말을 받는다.
“아따! 쩐이 많은가 벼! 이 씨발년아. 조동아리 닫으라고 안 혀더냐. 한마디만 더 씨불이면 콱! 마빡에 문신을 파벌 랑께!”
지혜는 공포가 전신을 휘감으며 의식을 덮었지만 정신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이 상황을 모면해야해!’
꽃남방이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누님! 접니다. 초 에이급 물건, 두개 확보했습니다.
미사리 창고에 있습니다. 예, 예....... “
지혜는 눈을 들어 마마미아를 쳐다봤다.
“그녀는 꼿꼿이 몸을 세운 채 표정 없는 얼굴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다.
“마마미아!”
순간 마마미아는 얼굴을 돌려 지혜를 쳐다본다.
“마마미아. 이자들은 나쁜 사람들이야. 이들에겐 자비가 필요 없어!”
“저도 화가 나는데 인성이 참으라고 했어요.”
“아니야! 참을 때가 따로 있는 거야. 지금은 빨리 여기서 빠져 나가야해. 마마미아!”
마마미아의 눈이 차츰 초점을 잃으며 커지기 시작한다.
꽃남방이 말했다.
“야! 쟤들 뭐라는 거냐? 계속 떠들도록 내버려 둘 거야?”
그러자 뱀눈이 앞으로 나섰다.
“짝!”
순간 지혜의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억!”
지혜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이어서 뱀눈의 오른팔이 반원을 그리며 마마미아의 얼굴을 갈겼다. 마마미아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무반응이 뱀눈의 분노를 자극했다.
“워메! 이 씨발년 본데요!”
그가 다시 손을 들어 마마미아의 얼굴을 내려친다.
순간 여자의 양손을 묶고 있던 청테이프가 뜯겨져 나간다.
여자는 벌떡 일어섰다.
뱀눈은 여자의 얼굴에서 초점을 잃은 짐승의 눈을 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