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벌떡 일어서 뱀눈의 손을 잡았다.
“어어! 이년 봐라······.”
뱀눈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의 몸이 번쩍 들어 올려지더니 창고 벽으로 날아가 꽂혔다.
털썩! 바닥으로 떨어진 몸이 풀어지며 경련한다.
순간 백대가리가 철제의자를 들어 여자를 내려친다.
여자는 날아오는 철제의자를 왼손으로 막아 잡고 남자의 팔을 비틀었다.
“우두둑!”
왼팔이 부러진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처절한 비명을 지른다.
“아아악......”
이어서 명태의 몸이 날아가 엎어진 뱀눈 옆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믿기지 않는 광경에, 꽃남방은 움찔 뒤로 물러선다.
마마미아는 꽃남방에게 몸을 돌리고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선다.
“아, 아······. 넌 뭐야? 어떻게 이럴 수가······.”
남자는 자기 앞에 우뚝 서있는 조각 같은 여자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공포를 느낀다.
순간 남자는 허리춤에서 칼을 빼들었다.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초점을 잃은 여자의 검은 눈동자가 남자의 눈과 마주친다.
“이 씨발년!”
칼을 든 남자의 오른손이 여자의 얼굴을 향해 똑바로 날아든다.
마마미아의 시신경은 극도로 발달되어있다.
칼의 움직임이 즉각 뇌에 전달되고, 뇌의 판단이 중추신경을 통해 팔의 근육으로 전달된다.
칼은 채 뻗어 나오지도 못하고, 여자의 손이 남자의 팔목을 잡는다.
“우두둑!”
팔목이 부러져 나갔다.
“아악!”
칼이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남자의 몸이 일직선으로 날았다.
“퍽!, 털썩!”
꽃남방의 묵직한 몸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던 뱀눈의 가는 몸에 부딪치며 떨어진다.
뱀눈은 엄청난 충격에 다시 정신을 잃었다.
적막, 신음소리······.
마마미아는 바닥에 널브러진 철제의자를 집어 들고 꽃남방 앞으로 걸어간다,
“안 돼! 마마미아. 됐어. 이제 그만해!”
지혜의 외침에 마마미아는 그제서야 몸을 돌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네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피곤죽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지혜는 얼른 일어나, 부러진 오른팔을 부여잡은 채 고통에 정신을 잃은 백대가리 앞으로 가, 바지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들었다.
있는 힘을 다해 창고 문을 열어젖히고 마마미아에게 외쳤다.
“마마미아! 차에 타! 빨리!”
마마미아를 조수석에 태우고 스타렉스에 올라탄 지혜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릉! 끼이이이익!”
힘주어 밟는 액셀에 공회전을 하던 차바퀴는 미끄러운 바닥에 궤적을 그리며 창고에서 튕겨져 나왔다.
비상등을 켜고,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지나 올림픽대로로 들어설 때, 반대편에서 또 한 대의 검은색 밴이 올림픽 대로에서 창고 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지혜는 먼저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차!”
핸드폰을 찾던 지혜는 창고에 핸드백을 두고 온 것을 깨닫는다. 지혜는 그대로 액셀을 밟았고, 암사 인터체인지에서 핸들을 꺾어 명일역 앞 파출소에서 급정거 했다.
“내려! 마마미아!”
지혜와 마마미아는 파출소 문을 세차게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늦은 시각,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두 여자들을 보고. 당직을 서던 두 명의 경찰관이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지혜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을 보고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흑, 흑······. 도와주세요!”
경찰관은 여자를 부축해 의자에 앉히며,
“진정하세요. 이제 괜찮습니다.
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해 보세요. “
지혜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일련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놈들이 아직 거기에 있습니까?”
“몰라요. 그 사람들 차를 뺏어 타고 왔어요.”
경찰관은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2호, 2호, 지역본부 상황실!
명일 파출소 당직근무, 차 경장입니다.
인신매매 같습니다.
미사리 조정경기장 옆, 창고건물입니다.
지원팀 보내주십시오. 지금 출동합니다. “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와 함께 가실 수 있겠습니까?”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 순경! 권총 챙기고 순찰차 시동 걸어!”
2호 순찰차는 경광등을 켠 채 올림픽대로를 달려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지났다.
“저기예요!”
지혜는 손가락으로 전방에 보이는 낡은 녹색창고를 가리켰다.
지혜와 마마미아를 태운 순찰차가 창고 앞에 멈추고, 이어서 2대의 경찰차가 연이어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차 경장은 창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철제 창고 문에는 굵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임 순경! 절단기 가져와!”
자물쇠가 끊어져 나가고, 창고 문이 열렸다.
창고는 비어있었다.
꽃남방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검은색 밴은, 창고 안에 벌어진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고 널브러진 네 명의 남자들을 싣고 떠난 뒤였다.
창고 안에는 두 개의 철제의자가 쓰러져 있었고, 세 명의 남자들이 부딪친 창고 벽에는, 간밤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 핏자국이 선명했다.
본서에서 나온 사복 차림의 남자가 현장조사를 마치고 지혜에게 물었다.
“강동 경찰서 강력계, 임 형사입니다.
혹시, 놈들 보면 기억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예, 기억하고말고요!”
“좋습니다. 일단, 어려우시겠지만 서로 가시지요.”
“예. 그러겠습니다. 아! 잠깐만요. “
지혜는 잃어버린 핸드백을 찾는다.
“뭐를 찾으시나요?”
“아, 네. 도망 나올 때 핸드백을 두고 나왔어요.”
“뭐, 중요한 거라도 들어 있었나요?”
“그렇지는 않은데, 신분증하고 현금 조금......”
“아무래도 놈들이 가져간 거 같습니다. 저희가 더 찾아 볼 테니, 일단 가시지요.”
지혜는 그저 멍하니, 부산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던 마마미아를 데리고 강동 경찰서로 갔다.
임 형사는 자기 책상 앞에 의자 두 개를 내주고 피해자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괜찮아요. 뺨을 맞은 거 이외에는.”
“놀라셨겠습니다. 인신매매 단으로 보이는데, 강동구에는 사창가들이 많아서인지, 그런 조직이 여럿 있습니다.
근데 어떻게 두 분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까?
그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었을 텐데요. “
임 형사는 연약한 두 여자가 인신매매의 현장에서 아무 탈 없이 빠져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혜는 난감했다. 그 상황을 어떻게 경찰관에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라......”
“있었던 그대로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돼서, 어떻게 조서를 꾸며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지혜는 경험 많은 강력계 형사 앞에서 거짓말로 얼버무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고, 있었던 상황을 그대로 털어 놓았다.
임 형사는 지혜의 말을 듣고는, 그녀 옆에 앉아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조각 같은 얼굴에 큰 키, 건강미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어떻게 이 여자 혼자서 4명의 남자를 상대할 수 있었단 말인가!
“아가씨, 이름이 뭡니까?”
“장지영 이예요!”
마마미아는 인성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남자가 묻는 말에 ‘장지영’이라는 이름을 대고 있었다.
“장지영 씨, 나이가 몇입니까?”
마마미아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제 외사촌 동생 이예요. 나이는 스물넷이고, 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혜가 얼른 끼어들며 마마미아의 대답을 대신했다.
“음, 동생분이 충격이 심하신 거 같군요. 혹시, 동생분이 운동 같은 거 하셨나요?”
“운동이라니요?”
“아! 무술 말입니다.”
지혜는 언뜻 기지를 발휘했다.
“아, 예. 격투기를 오래 했어요.”
“아! 그러셨군요. 하기야 요즘은 예쁘게 생긴 여자 격투사들이 많더군요. 됐습니다. 일단 돌아가셔서 쉬시지요.
연락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순찰차로 차 있는데 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압구정동이라고 하셨지요? “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거......”
지혜는 검은색 스타렉스 키를 임 형사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예, 고맙습니다. 중요한 단서가 될 겁니다.”
지혜와 마마미아는 순찰차를 타고 압구정동에 세워놓은 빨간색 리오 앞에서 내렸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서야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지혜는 옆의 마마미아를 당겨 안았다.
“마마미아, 고마워.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마마미아는 지혜를 감은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지혜 선생님, 저는 괜찮아요. 제가 잘못한 건 아닐까요?”
“아니야, 마마미아. 네가 날 구한 거야!”
빨간색 리오가 연구소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새벽 세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때까지 연구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성이, 지혜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수십 번도 더 전화했는데 전화도 안 받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
“들어가요. 일단 들어가서 얘기할게요.”
셋은 2층으로 올라와 지혜의 방에 모여 앉았다.
지혜는 지난밤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태를 인성에게 상세히 설명했고, 이야기를 들은 인성은 지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몸은 괜찮아요. 마마미아도 괜찮고요. 마마미아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그녀는 지난밤의 악몽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고,
마마미아는 그녀의 가는 손으로 지혜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강동구 천호동, 칠성병원.
네 명의 남자들이 온통 몸뚱아리에 붕대를 감은 채 나란히 누워있었다.
꽃남방은 갈비 두 대가 나갔고, 손목이 부러졌으며, 뱀눈은 어깨뼈가 부서져 스테인리스를 박았다.
그리고 백대가리는 팔꿈치가 탈골되었고, 명태는 장이 파열되어 네 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밤새 신음을 하던 남자들은 진통제 덕분에 이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꽃남방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50대 중연여자가 말했다.
“병신 새끼들! 기껏 길러놨더니 여자애 하나한테 깨져?”
꽃남방은 억지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을 뱉는다.
“그게 아닙니다, 누님. 못 믿으시겠지만 그년은 사람이 아닙니다. 90 킬로가 넘는 저를 들어 15 미터 떨어진 벽에다 꽂더라니 까요!”
“그걸 말이라고 씹어뱉어? 병신새끼!”
노랑머리 중년여자는 서슴없이 거친 말을 쏟아내며 남자들을 질책하고 있었다.
“차는 어떻게 했어?”
백대가리가 대답했다.
“그년이 뺏어 타고 갔습니다요. 누님.”
“자알 한다! 아주 경찰서에 갖다 바쳤구먼!”
“차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누님.
차 명의는 제 사촌형님 앞으로 돼 있고, 좀 전에 전화 걸어, 이틀 전에 도난당한 걸로 해 놓았습니다. “
“일단, 퇴원하면 깨진 몸이나 추스르고, 당분간 쥐 죽은 듯이 숨어들 있어!”
노랑머리 중년 여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나갔다.
여자가 나가자, 뱀눈이 이를 악물고 말을 씹어뱉는다.
“”쌍년! 기다리고라! 내 나가서 볼 팅께! “
꽃남방이 말을 받았다.
“임마! 독사누님 얘기 못 들었냐?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을 테니 잠수타고 있으라. 않더냐? 그리고 네 실력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뱀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