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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별에서 남자가 왔다.
작가 : 화휘
작품등록일 : 20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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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습관성 미소
작성일 : 23-03-09     조회 : 473     추천 : 0     분량 : 6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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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꿈이지?”

 

 하랑은 몽롱한 눈으로 자기 무릎에 놓인 남자를 므훗하게 쳐다봤다.

 하랑 무릎에 놓인 남자는 아까 광장에서 본 남자였다.

 한 시간 전 만해도 하랑은 밤새워 출력한 도면을 거래처에 납품하고 이른 퇴근하던 중이었다.

 눈이 반쯤 감긴 하랑은 집에 가 빨리 잠을 청할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와. 저 남자 봐.’

 

 여자들의 감탄 섞인 소리에 하랑은 호기심에 발걸음을 멈추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광장을 쳐다봤다.

 

  우와. 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여자들처럼 감탄을 질렀다.

 

 눈에 확 띄는 남자였다. 하얀 면티에 그냥 검은 긴 바지를 입었을 뿐인데, 남자는 단숨에 여자들 시선을 모두 끌어당겼다.

 남자는 187정도 되는 키에, 맑은 피부 거기다 잔 근육을 지닌 마른 몸매였다. 나이는 하랑보다 적어 보였다.

 조막만 한 얼굴은 잘 깎아 놓은 조각이었고 더구나 청량한 이목구비를 가졌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진 하랑은 부러워하며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남자는 길을 잃은 듯 광장을 서성거렸다. 남자는 많은 인파 속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 굴었다. 그의 눈빛은 간절하고 절실해 보였다.

 

 하랑은 광장의 남자를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존재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남자.

 잠깐이지만 하랑은 졸음이 날아갈 듯 보였지만, 깨어있는 시간이 40시간이 넘는 탓에 이내 입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 말았다.

 몸을 돌린 하랑은 광장을 빠져나갔다. 뒤로 여자들 환호 소리가 들렸지만, 하랑은 무시하곤 흐느적거리며 길을 재촉했다.

 하랑은 몽롱한 상태로 길을 걷다 그만 집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걷는 걸 깨닫고 멈췄다.

 다시 방향을 돌려 걷던 하랑은 도저히 잠을 이기지 못하고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버렸다.

 공원은 나무가 가득했고 하랑은 벤치에 앉아 졸아댔다.

 시원한 바람과 바스락 되는 나뭇잎 소리가 하랑을 잠에 더욱 빠지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뭔가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하랑 다리에 딱 떨어졌다. 아까 광장에서 본 남자였다. 평소였으면 소리치며 일어났을 하랑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랑은 자기 다리에 떨어진 천상계의 남자를 보고 있자니, 이게 도저히 현실이라 인식하지 못했다.

 

 하랑은 남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건... 꿈이야.”

 

 하랑은 남자의 무게 때문에 다리 감각이 무뎌지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꿈이라고 진짜 믿고 있었다.

 

 하랑 앞으로 키 작은 9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걸어왔다. 아이는 부서진 연을 들고 있었다.

 아이가 오는 걸 보자 하랑은 갑자기 일어섰다.

 쿵. 하랑 무릎에 베고 있던 므훗한 남자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남자를 보고 하랑은 다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꿈치곤 ...너무 좋다.”

 

 반쯤 감긴 눈으로 하랑은 흐느적거리며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남자는 아무 일도 아닌 듯 툭툭 털고 일어났다. 남자에게 다가온 꼬마는 커다란 눈으로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형. 많이 아프죠?”

 

 아이는 자신의 연을 가져오기 위해 나무에 올랐던 남자를 무척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당연하지.”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가 남자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프다는 말에 심각해진 꼬마를 본 찬란한 남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근데 봐 줄 수 있어. 너 덕에 만날 사람을 만났으니까.”

 “...아까 그 평범한 어른 여자요?”

 

 남자아이는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잘난 놈이 평범한 여자를 찾다니... 그런 노골적인 얼굴이었다.

 

 “응.”

 

 남자는 꼬마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길을 나섰다.

 

 ***

 

 졸음과 사투를 벌이던 하랑은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갈 생각에 평소에 잘 가지 않는 지름길을 택했다.

 

 역시 불길한 일은 왜 이리 잘 맞는지...

 

 좁은 지름길에서 하랑은 백수와 딱 마주쳤다. 백수는 이름처럼 직업도 없고 평소 하랑에게 치근거리는 양아치 필이 나는 남자였다.

 백수는 하랑이 자주 가던 동네 빵집 친동생이었다. 빵집 주인도 하랑을 맘에 들어 해 백수랑 자꾸 엮으려 했다.

 하랑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백수는 치근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하랑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어색하면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미소를 짓는 버릇이 가졌다. 하랑의 습관성 미소에, 백수는 싫다는 하랑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해 버렸다.

 

 아무리 미소를 안 지으려고 해도 하랑은 습관성 미소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습관성 미소를 버릴 수 없었던 하랑은 백수를 만나지 않기 위해 빵까지 끊어버리는 수고까지 했다.

 

 근데... 골목에서 딱 마주치다니... 하랑은 되돌아가려 했지만, 백수가 하랑을 봤는지 손인사를 했다. 백수는 막 일어났는지 까치머리였고, 조리를 질질 끌며 하랑에게 다가왔다.

 피할 수 없기에, 하랑은 천천히 걸어가면서 온갖 생각을 했다.

 

 일단 말을 걸면, 인사만 하고 서둘러 가자.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하랑이 관심 없어 해도 백수는 이리저리 하랑에게 관심을 보였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하랑은 백수를 물리칠 방법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쥐가 날 정도로 아팠지만, 이 어색함과 공포스러운 상황에도 하랑은 습관성 미소를 또 지었다.

 점점 다가오는 백수를 보자 하랑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번엔 그만 안 둘 거야. 치근거리면 ....한 대 치자. 한 대 쳐.

 

 상기된 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두려움에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 어어어어?

 

 희한한 일이었다.

 백수가 겁을 먹었다. 그는 하랑을 빤히 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시선을 두더니 그냥 의무적으로 고개를 까닥하곤 휙 지나갔다.

 

 백수가 말도 걸지 않고 지나치자, 하랑은 안도감에 참았던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납득되지 않던 하랑은 꽉 쥔 손을 쳐다봤다.

 

 내가 주먹을 쥔 걸 봐서 그런가?

 

 하랑은 백수가 자신을 피한 게, 주먹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하랑은 겁에 질린 백수를 떠올렸다.

 

 내가 주먹을 쥐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겁을 먹었나?

 

 하랑은 백수 행동이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백수의 눈빛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백수는 초원에서 사자를 만나 싸울 힘을 잃은 듯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는 하이에나였다.

 

 대체 뭘 봤기에 겁을 먹은 거지?

 

 걸어가던 하랑은 자신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를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따라오는 발소리.

 

 하랑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백수가 겁을 먹은 건, 하랑의 주먹이 아니라 자기 뒤에 있는 뭔가라는 걸.

 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텅 빈 골목엔 아무도 없었다. 하랑과 하랑 뒤를 쫓는 발자국 소리만 있었다.

 이번엔 하랑이 백수처럼 겁을 먹었다.

 

 하랑 뒤에는 광장에 있던 그 남자가 있었다. 백수는 남자를 보자 일단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는 신체조건을 주눅이 들었다. 거기다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남자 눈빛에 기까지 확 죽어 도망쳐 버린 것이었다.

 

 남자는 강렬한 눈빛만으로 백수를 찍어 눌러버렸다.

 기에 눌린 백수는 남자가 무서워 하랑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었다.

 

 하랑은 자신을 쫓는 인기척을 느끼자, 발걸음을 재촉해 골목길을 빠져 나갈 찰나였다.

 

 빠앙. 배달 오토바이가 갑자기 튀어나온 하랑을 보곤 신경질적으로 빵빵거렸다. 놀란 하랑은 피하려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우악. 하랑의 몸이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하랑은 놀란 나머지 눈을 찔끔 감았다.

 

 충격 대신 낯설고 짙은 향기가 하랑에게 전해졌다. 그렇다고 싫은 향은 아니었다.

 눈을 뜬 하랑은 넘어지려는 자신을 껴안고 있는 존재를 올려다봤다.

 

 하랑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남자의 길고 진한 속눈썹이었다. 다음으로 속눈썹만큼 잘생긴 남자의 짙은 갈색 눈이 들어왔다.

 때마침 바람이 남자의 흑갈색 머리카락을 흔들렸고 하랑도 마음도 같이 흔들렸다.

 

 하랑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에 그만 넋을 잃었다. 맑은 갈색을 품은 눈, 거기다 높은 콧대, 완벽한 대칭을 뽐내는 얼굴까지.

 

 그런 얼굴을 직접 바로 자기 눈으로 그것도 가까이 확인하자, 하랑은 감탄을 하는 바람에 입이 슬며시 벌어졌다.

 남자는 신처럼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쿵쾅쿵쾅. 남자의 무덤덤한 표정에도 하랑 심장은 주책없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더구나 남자는 큰 키에 여자를 품기 적당한 어깨, 말랐지만 단단해 보이는 상체에 긴 다리.

 

 하랑을 품은 남자는 신의 특별한 손길로 만들어진 조각 같았다. 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습관성 미소가 아닌 정말 마음에서 저절로 나오는 진정한 미소였다.

 

 근데 어딘가 익숙한 남자였다.

 

 “맞다. 아까 꿈...”

 

 남자는 헤벌쭉거리는 하랑을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저런 남자가 쫓아다니는 걸 그냥 뒀습니까?”

 

 뭐지? 이 삐딱함은?

 

 멋진 외모와 달리, 남자의 말투는 딱딱했다. 아니 정확히 하랑을 꾸짖고 있었다.

 

 하랑은 아까까지만 해도 이 멋진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하고.

 

 하랑도 남자가 몰아세우자 억울했다.

 

 “저도 저 남자가 쫓아다니는 거...”

 

 모르는 남자한테 말도 안 되는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다니.

 

 하랑은 남자를 보며 조용하게 흘기며 말했다.

 

 “고마웠습니다.”

 

 남자 품에서 빠져나온 하랑은 그래도 정중하게 인사를 하곤 길을 재촉했다.

 

 남자가 하랑 손을 잡아챘다. 남자는 하도 강하게 낚아채는 바람에 하랑은 중심을 잃고 남자 품에 다시 푹 안겼다.

 남자의 눈과 다시 마주치자, 하랑 뺨이 다시 발그레해졌다.

 

 하랑은 그제야 이 남자가 누군지 떠올랐다.

 

 “근데 당신은 아까 광장에 있던 모델 맞죠?”

 

 갑자기 남자는 인상을 쓰며 심각해졌다.

 

 “제가 모델입니까?”

 

 중저음의 차분하면서도 깔끔한 말투. 남자의 목소리는 차가움이 배어 있던 아까와 달리 호감이 묻어났다.

 그 목소리를 듣고 보니, 하랑도 화가 풀릴 정도였다.

 

 “아까 촬영 중 아니었어요?”

 

  하랑은 되레 남자에게 되물었다. 남자의 맑은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그 주름도 하도 멋지게 접혀 하랑은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뭐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기억상실증?

 

 하랑은 어디서 수작질이냐는 듯 남자를 흘겨봐야 하는데, 하랑은 공손하게 물었다.

 “그래요. 뭐 너무 긴장하면 기억 안 날 수 있죠.”

 

 남자는 깊고 멋진 눈으로 하랑에게 더욱 집중하며 말했다.

 

 “근데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경찰을 부르러 핸드폰을 들던 하랑은 손을 멈추곤 되물었다.

 

 “뭐가 기억나요?”

 

 남자는 하랑을 서늘하게 만드는 말을 꺼냈다.

 

 “당신이 존엄한 존재라는 거.”

 “존엄한 존재요? 제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진지한 남자 태도에 하랑은 살짝 자신도 진지한 척 굴었다.

 

 “근데 존엄한 존재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북한 김정은도 존엄한 존재인데... 저는 어떤 존엄한 존재죠?”

 “그대는 여왕입니다.”

 

 여왕? 이름이 여왕은... 아닌데... 하하하... 설마?

 

 하랑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남자를 흘겨봤다.

 

 여왕?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여왕? 에엥? 미친 놈?

 

 불길한 느낌에 하랑은 달아나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아나려는 하랑 앞에 양복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막아섰다.

 

 이건 또 뭐지? 설마... 납치?

 

 하랑은 피를 흘리며 길가에 쓰러져 있는 자신을 상상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여주임 머리라도 잡을걸. 이럴 게 쉽게 죽을 줄 알았으면 떡볶이라도 실컷 먹을걸.

 

 어제 하랑은 다이어트를 한다며 먹지 못한 떡볶이가 떠올랐다.

 

 신의 피조물인 남자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을 막아섰다.

 

 “당신들 뭐야?”

 

 그는 하랑을 도우려고 하랑 앞으로 끼어들었다.

 

 양복 입은 남자들이 다가오자, 신의 피조물은 두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훅. 훅. 퍽. 신의 피조물이 주먹을 몇 번 날리자, 양복 입은 남자 둘이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졌다.

 

 신의 피조물은 몸을 돌려 자신 뒤에 있는 하랑에게 물었다.

 

 “대체 저자들은 또 뭡니까?”

 

 하랑은 난감했다. 아니 억울했다.

 

 “저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서요.”

 

 안심도 잠시, 갑자기 거대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민첩하게 몸을 돌려 신의 피조물 목을 쳤다.

 순식간에 그는 의식을 잃고 하랑 품에 쓰러졌다. 피조물 무게를 버티던 하랑은 이내 깔리고 말았다.

 

 하랑은 정신이 몽롱했다. 날밤을 새운 탓도 있고, 남자의 무게로 가슴도 답답한 탓도 있었다.

 

 의식을 잃어가는 하랑은 왜 이렇게 배가 고픈지 눈물이 났다.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어제 떡볶이나 실컷 먹을걸.

 

 의식을 잃은 순간까지도 하랑은 어제 먹지 못한 떡볶이가 다시 간절하게 떠올렸다.

 

 ***

 눈을 떠보니, 낯선 곳이었다. 눈을 돌려 본 하랑은 상체를 일으켰다.

 낯선 방, 낯선 침대... 낯선 옷... 은 아니었다. 남색 면바지에, 긴 줄무늬 셔츠 차림 은... 낯설지 않았다. 다행인지 하랑은 아까와 같은 옷차림이었다.

 안심도 잠시 하랑은 두려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근데 여기는 어디지?

 

 깔끔하고 정돈된 방이었다. 다만 크기는 하랑 집 24평을 전부 합친 것보다 컸다. 하랑이 깔고 있는 매트리스 역시 단단했지만 고급 소재처럼 보였다.

 방에 가구는 화장대와 붙박이장 그리고 열린 미닫이문을 통해 역시 깔끔한 욕실이 보였다.

 분명 하랑 자기 방은 아니었다.

 하랑은 손을 들어 뺨을 비틀어 봤다. 아프지 않았다. 그냥 좀 따끔할 뿐...

 

 분명 꿈은 아니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방문이 열렸다. 40대로 보이는 낯선 여자가 들어왔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비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여자는 깬 하랑을 보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정신을 차리셨습니까?”

 

 하랑은 전혀 모르는데, 여자는 하랑을 아는 듯 굴었다.

 하랑은 마른 침을 삼키며 경계의 눈빛으로 물었다.

 

 “... 날 죽인 건가요?”

 

 여자는 표정 변화 없이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교수님이 기다리십니다.”

 

 교수?

 

 대학 전공 교수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한 하랑이었다.

 

 하랑이 경계를 풀지 않자, 여자는 사무적인 말투로 대꾸했다.

 

 “나하랑씨. 나하랑씨를 여기로 모신 이유가 알고 싶다면, 절 따라 오시길 바랍니다.”

 

 고민하던 하랑은 침대에서 빠져나와 빠른 걸음으로 여자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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