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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침묵
작가 : 차이키
작품등록일 : 202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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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시작
작성일 : 25-06-06     조회 : 18     추천 : 0     분량 : 4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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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은 언제나 아침을 망친다. 마거릿 메이휴는 자동차 뒷좌석 시트에 몸을 맡기며 그렇게 생각했다. 찻잔보다 먼저 도착한 신문의 헤드라인은 루프해에서 떠오른 시체에 관한 것이었다. 볼드체로 쓰여진 묘하게 감각적인 문장들이 그녀를 짜증나게 했다.

 '젖은 머리칼이 수면 위로 풀어졌다', '검게 변색된 피부가 곡선을 그렸다'...

 마치 시체마저도 아름다워야 할 것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죽음을 미학으로 소비하는 기괴한 놀이처럼 느껴졌다.

 "웃기지도 않아."

 마거릿은 신문을 옆으로 접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른 아침의 안개, 유약한 햇빛, 마치 밖의 시끄러운 아이들— 그 모든 게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마거릿은 손등으로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손끝이 뜨거운 피부에 닿았지만, 그 온도조차 무감각하게 느껴졌다.

 바퀴와 돌바닥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마차는 호텔 앞에서 멈췄다.

 더 그랜드 메이휴.

 익숙한 호텔 간판이 평소처럼 그녀를 맞이했다.

 운전수가 차 문을 열고 그녀를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지만, 그에 손에 쥐인 것은 없었다.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다시 손을 치웠다.

 또각거리는 구두 굽의 소리가 그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로비에 들어서자 마거릿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두 천사상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온 호텔의 상징인 조각상은 찬란한 금빛으로 모두를 현혹시켰다.

 물론 순금은 아니지만. 마거릿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저 천사상들은 그녀와 같았다. 겉모습만 빛나고 내면은 허울뿐이라는 점에서. 그런데 어쩌면 그녀가 더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천사들은 최소한 아름답기라도 하니까. 한숨과 함께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접수 데스크에 앉아 있던 젊은 직원이 그녀를 보자 황급히 일어섰지만, 그녀는 괜찮다는 듯 앉으라고 손짓했다.

 또각,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엘리베이터까지 이어진 복도의 정적을 깨뜨렸다. 햇살은 아직 벽 전체를 비추지 못했고, 창밖의 안개가 정원을 희미하게 감쌌다. 마거릿은 엘리베이터 앞 벽을 슬쩍 바라보았다. 수없이 봐왔던 오래된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랜드 오프닝, 1세대 경영진, 발레단의 첫 정기 공연.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부러웠다. 허울뿐이라도 행복을 지녔다는 점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둔탁한 종소리가 울렸다. 격자무늬 철문이 지그재그로 열리며 나타난 것은 황동 장식과 마호가니 패널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이었다. 마거릿은 발을 들여놓으며 6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보이가 정중하게 인사했지만, 그녀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문이 닫히자 도르래와 케이블이 돌아가는 기계음만이 남았다.

 위로 올라가는 동안 그녀는 엘리베이터 벽에 새겨진 아르데코 양식의 무늬를 바라보았다. 황동으로 만든 층수 표시판이 천천히 숫자를 바꿔갔다. 2층, 3층, 4층... 엘리베이터 보이는 조용히 서 있었고, 그의 흰 장갑 낀 손이 조작 레버를 잡고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지네요, 아가씨." 보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런가요." 마거릿의 대답은 건조했다.

 6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보이가 문을 열어주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아가씨."

 익숙한 복도가 나타났다. 깊은 녹색 카펫이 깔린 복도는 로비보다 더 조용했다. 여기서는 구두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복도 양쪽으로 늘어선 문들 사이를 지나며, 마거릿은 각각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소음들을 들었다. 타이프라이터가 딸깍거리는 소리,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 누군가의 낮은 대화 소리.

 삶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가 없어도.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마거릿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도 잠시 머뭇거렸다. 문 너머에는 또 다른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류더미, 전화, 회의, 그리고 끝없는 결정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야 하는 하루.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손잡이를 돌렸다.

 사무실 안은 정돈되어 있었다.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어젯밤에 검토했던 서류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창가에는 어머니가 물려준 1인용 소파가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마거릿은 외투를 벗어 코트걸이에 걸고 책상에 앉았다.

 발레단 예산서를 먼저 펼쳤다. 이조벨이 요청한 새 의상비, 무대 장치 수리비, 그리고 게스트 안무가 초청비. 하나하나 꼼꼼히 검토하며 붉은 잉크로 메모를 적어나갔다. 프랑스제 만년필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만이 조용한 사무실을 채웠다.

 시계가 10시를 가리킬 때쯤, 비서가 호텔 운영 관련 서류를 가져왔다. 마거릿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헬렌."

 "아가씨, 찰스 님께서 11시에 회의실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알겠어요."

 헬렌이 나간 후, 마거릿은 호텔 서류를 하나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객실 예약 현황, 레스토랑 매출, 직원 현황... 모든 것이 평상시와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 서류에서 그녀의 손이 멈췄다.

 '호텔 신축 제안서 - 아틀란티스 투자사’

 마거릿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이런 서류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틀란티스라고? 제안서 내용을 천천히 읽어내려가며 그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더 그랜드 메이휴 호텔 부지 일부 매각', '미국식 리조트 확장', '기존 건물 철거 후 신축'...

 마거릿은 만년필을 내려놓는 것도 잊고 서류를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져 온 호텔의 전통적인 구조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찰스의 서명이 이미 들어가 있었다.

 "이게 뭐야." 그녀는 중얼거렸다.

 마거릿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만년필이 닿은 서류는 이미 붉은 잉크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잉크가 미처 마르지도 않은 만년필을 그대로 쥔 채, 그녀는 사무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구두 굽이 카펫을 두드리는 속도가 평소보다 빨라졌다.

 찰스의 사무실은 복도 끝에 있었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그녀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찰스."

 책상에 앉아 있던 찰스가 고개를 들었다. 마거릿의 표정을 본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뭐야, 마거릿. 11시에 오기로 한 거 아니었어?”

 "설명해줘." 마거릿은 서류를 책상 위에 놓으며 말했다. "이게 뭔지."

 찰스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 서류 봤구나."

 “너 도대체… 제정신이야?”

 "앉아서 이야기하자."

 "서서 듣겠어."

 찰스는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들고 있던 만년필을 까딱거렸다. "마거릿, 시대가 변하고 있어. 우리가 지금처럼 운영하면 10년 후에는 경쟁력을 잃게 될 거야."

 "할아버지가 세운 호텔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뭔지 아니?"

 “그야…”

 "전통 때문이야!" 마거릿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9세기부터 우리 호텔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어.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해왔다고!"

 "전통도 중요하지만, 수익성도 고려해야 해. 아틀란티스 측에서 제안한 조건을 보면—"

 "조건?" 마거릿이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우리 땅을 팔아서 미국식 리조트를 짓겠다는 게 조건이야?"

 "부분 매각이야. 그 자금으로 호텔을 현대화할 수 있어. 새로운 시설에, 더 많은 객실, 국제 수준의 서비스까지—"

 "너는 할아버지의 수치야." 마거릿의 목소리가 떨렸다. "할아버지는 이 호텔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치셨어. 전쟁 중에도, 어려운 시절에도! 그런데 너는..."

 마거릿은 잠시 숨을 고르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호텔을 철거하고 미국을 따라하기를 원한 게 아니라! 미국식으로 바꾸면 손님들이 더 이상 찾아줄 것 같아?”

 찰스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마거릿, 들어봐. 리조트 개발만이 문제가 아니야. 운영 효율성도 생각해야 해. 예를 들어 발레단—"

 "발레단을 없애겠다는 거야?" 마거릿의 목소리가 위험할 정도로 낮아졌다.

 찰스는 잠시 망설였다. 실수했다는걸 깨달은 듯했다.

 "그건... 조정이 필요할 것 같아. 손님들이 원하는 건 발레가 아니라 더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거든."

 마거릿은 책상에 두 손을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조벨은 알고 있어?"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마거릿, 현실적으로 생각해봐. 발레단 운영비가 호텔 수익의 얼마나 되는지 알잖아.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만해." 마거릿이 손을 들어 올렸다. "찰스, 넌 이 호텔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아."

 "무슨 뜻이야?"

 "이곳은 단순한 사업체가 아니야.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지켜온 것들이 있어. 발레단도 그 중 하나고."

 찰스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마거릿, 감정에 휘둘리지 마. 우리는 경영자야. 수익을 생각해야 하고 미래를 내다봐야 해."

 “감정적?” 마거릿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

 “내가 지난 2년 동안 발레단 예산을 어떻게 유지해왔는지 알기나 해? 한 푼 허투루 쓰지 않았어! 수준은 영국 최고 그대로였지만! 관객 수요에 맞춰 공연 일정을 조정한 것도, 무대 의상부터 토슈즈까지 직접 제작처를 알아본 것도 다 나였다고!”

 "그건 인정해. 하지만—"

 "취소해."

 "뭐?"

 "아틀란티스와의 계약. 취소하라고."

 찰스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 이미 1차 협상이 끝났고, 다음 주에 최종 계약서를 받기로 했어."

 마거릿은 서류를 집어들었다.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찰스, 마지막으로 물을게. 이 호텔 경영은 너 혼자 하는 게 아니야. 우리 둘이 함께 하는 거라고. 그런데 왜 이런 중대한 결정을 혼자서 내렸어?"

 "마거릿, 넌 항상 변화에 반대해왔잖아.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를 제외하고 결정한 거야?"

 마거릿은 서류 뭉치를 찰스 책상 위로 집어던졌다. 종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몇 장은 바닥에 떨어졌다. 찰스는 움찔했다.

 "일주일 줄게. 이 계약을 취소할 방법을 찾아.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연락하겠어. 네 평판을 위해서라도, 네가 직접 하길 바랄게."

 그녀는 돌아서서 문으로 향했다.

 "마거릿!"

 마거릿은 이름을 듣고 문 앞에서 멈춰 섰다.

 “할 말 없으면 갈게. 기억해, 찰스. 우리는 메이휴야. 돈에 미친 다른 가문이 아니라.”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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