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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대첩
작가 : 견화
작품등록일 : 2016.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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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독신대첩이 열렸다. (2)
작성일 : 16-09-27     조회 : 554     추천 : 2     분량 : 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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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은 속이 다 후련했다.

 

 눈엣가시 같은 우진을 처리 했기 때문이다.

 

 중인인 저 보다도 몰락한 가문 주제에 양반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위세를 떠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양반신분으로 상놈들이나 하는 장사나 하고 있다는 것도 더욱 아니꼬웠다.

 

 이방은 중인이지만 부안에서는 꽤 내로라하는 재력가에 속했다.

 

 그로인해 자신에게 속한 소작농이 많아 양반 못지않게 부안에서 이름을 날리는 관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방은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사회가 아니던가.

 

 제 아무리 많은 땅과 그 밑에 사람, 그리고 재산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나리. 저 왔습니다.”

 

 “드시오.”

 

 한 사내가 이방의 방으로 들어왔다.

 

 독신대첩에서 이방의 지시를 받고 군중으로 사라진 그 사내. 준성이었다.

 

 이방의 방은 여느 양반댁 대감마님의 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뒤에는 병풍이 있었고, 그 앞에는 보료와 탁상이 놓여져 있었다.

 

 양반인 준성의 초가삼간 집보다도 훨씬 좋은 집이었다.

 

 

 이방은 준성이 마음에 들었다. 양반이지만 살아가는 법을 아는 자이다.

 

 우진과 같이 몰락한 양반가의 자식이지만 준성은 자신에게 굽힐 줄도 알고 말도 잘 알아듣는 자였다.

 

 “아까는 수고했소”

 

 이방은 준성에게 묵직한 주머니를 넌지시 건넸다.

 

 “도움 드릴 수 있어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준성은 이방의 호의를 덤덤하게 받았다.

 

 

 준성은 자신이 양반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양반의 신분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우진처럼 상놈과 함께 장사를 하는 것도 싫었고, 농민들과 같이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연명하는 것도 싫었다.

 

 그리하여 이방 곁에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헌데, 그 여인은 괜찮은 것입니까? 많이 놀란 것 같았습니다.”

 

 사실 준성은 자신이 직접 희원에게 무례하게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를 둘러싼 사내들끼리 분란을 일으키게 할 셈이었다.

 

 그런데 우진이 다가오자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야 했으므로 자신이 직접 일을 내고야 만 것이다.

 

 선비로서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자책감에 희원이 걱정되어 이방에게 물은 것이다.

 

 “걱정 마시오. 겨우 스친 것 뿐인데 놀라봤자 뭐 얼마나 놀랐겠소?”

 

 준성은 희원에 대한 미안함과 이방에 대한 씁쓸함이 교차했다.

 

 

 *

 

 

 집에 돌아온 희원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고 있었다.

 

 “아씨.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오늘 마님께서 외출도 안하시고 종일 방안에만 계셔서 언제 별채로 오실지 몰라 얼마나 제가 심장이 벌렁 거렸는지 아십니까?”

 

 “나도 아직까지 벌렁거린다.”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도포남이 잡혔다.”

 

 “도포남이라니요? 그 때 그 주막에서 그 분 말씀이십니까? 아니 왜요?”

 

 “그게... 약간의 사고가 있었는데...”

 

 “사고요? 아씨. 안 다치셨어요?”

 

 단이는 사고라는 말에 놀라 희원의 몸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희원은 단이의 손길을 막아내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걱정이다. 아무래도 내일 다시 관아에 가서 도포남의 누명을 벗겨 줘야겠어.”

 

 “예에? 또 관아에 가신단 말입니까? 독신대첩은 어제 하루였잖습니까?”

 

 “나 때문에 그런 변고를 당하고 있잖아. 다른 것으로 나를 무시하면 했지. 그 따위 짓을 할 사람은 아니야.”

 

 “당최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단이는 연신 가슴을 쓸어내리는 희원이 안타까웠다.

 

 이러다 지난번처럼 또 앓아 누울까 걱정이 되었다.

 

 

 *

 

 

 도영은 흥미로웠던 관아의 일을 뒤로 하고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집 냄새다.

 

 한양보다는 풀냄새가 짙고, 바람에 짠내가 살짝씩 느껴진다.

 

 부안에 있는 바다 때문이리라.

 

 도영은 가장 먼저 사랑채에 가 아버지에게 안부 인사를 여쭈었다.

 

 “아버지. 도영입니다. 이제 막 부안에 도착했습니다.”

 

 방안에 들어가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린 도영이 성대감을 바라보았다.

 

 “그간 무탈하였느냐? 이번엔 몇 달 만에 집에 들렀구나.”

 

 “예.”

 

 “얼마 전에 내 너의 혼인을 청하고 왔다.”

 

 “아버님. 저는 아직 혼인 생각이...”

 

 “이제 너한테 한 곳에 정착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저 혼인만 해두라는 것이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한 곳에 정착 할 수 없는 자이온데 그렇게 되면 부인이 가여워 지지 않습니까? 하여 소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 혼인만 하라는 것이다. 너에게 딱 맞는 규수를 찾았느니.”

 

 “무슨 말씀이온지...”

 

 여전히 성대감의 의중을 알아차릴 수 없는 도영은 제 아비에게 되물었다.

 

 “며칠 후에 둘의 자리를 마련할 터이니 미리 혼인할 규수를 만나 보거라.”

 

 “아버님. 어찌 혼인 전에 부인 될 여인의 얼굴을 본 단 말입니까? 그러다 제가 싫다고 하면 여인에게 흠이 되지 않습니까?”

 

 “네게 좋은 혼처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고 다닐 수 있을 것이야.”

 

 “...”

 

 도영은 의아했지만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보다 아버지가 확신하는 여인이 어떤 여인인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신이 퇴짜를 놓으면 여인은 그 소문이 퍼지게 되어 혼처 자리가 계속 안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호기심을 먼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더욱 강했다.

 

 

 *

 

 옥사의 작은 창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그마저도 창살로 나누어 놔서 햇빛이 삼등분이 되어 있었다.

 

 ‘아침이구나.’

 

 우진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옥사란 곳에 갇혀 보니 막막했다.

 

 더욱이 이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런 꼴이라니.

 

 이 곳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범을 찾거나, 희원이가 자신의 무죄를 진술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지난 밤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헤아려 봤지만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우진은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나오시오”

 

 그 때 옥사 문을 지키고 있던 포졸이 우진에게 말했다.

 

 포졸은 문을 열고 우진을 끌고 관아 마당에 나왔다.

 

 관아마당에는 어제와 같이 포졸들이 주변에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이방은 여전히 자신을 비웃으며 노려보고 있었고, 현감은 덤덤한 표정으로 관아 대청마루의 정중앙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현감의 옆으로 희원이 서 있는것이 보였다.

 

 ‘어찌 된 일이지? 어찌 저 여인이 또 이 곳에 와 있는 것인가?’

 

 우진이 의아해 하고 있는데 포졸들이 그를 마당 중앙에 꿇어 앉혔다.

 

 “어제 정녕 네가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이냐?”

 

 현감이 단호한 말투로 우진에게 물었다.

 

 “예. 소인은 진실로 저 여인에게 무례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정녕 그 말이 사실이란 말이지?”

 

 “예.”

 

 우진은 결백을 증명하고자 눈과 몸에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해 말했다.

 

 “사또. 소인이 잘못 하였습니다. 정인(情人)을 만나고자 한 설레임이 크다 보니 마음이 많이 들떴습니다. 하여 갑작스럽게 사내들에게 둘러싸이다보니 오해를 한 듯 합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어제 모든 현장에서 정황이 잡혔는데.”

 

 이방은 펄쩍 뛰며 희원의 말에 반박했다.

 

 “사또.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어제는 저도 정황이 그러한지라 놀랍고 두려운 마음에 저 자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였습니다. 하여 본의 아니게 큰 죄를 덮어씌우게 됐습니다. 소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희원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현감에게 읊조렸다.

 

 “진범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오해였다고 주장하니 이 일은 없던 일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김서기를 풀어주거라. 그리고 낭자도 이제 집으로 들어가시오.”

 

 현감은 이쯤에서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반드시 실적을 내기 위해 다시 한 번 독신대첩을 재정비 하고 제대로 치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또! 어찌 일을 이렇게 쉽게 무마시키시는 겁니까?”

 

 이방은 현감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현감을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면 진범을 따로 찾아오도록 하시오. 허면 그 때 다시 죄를 묻도록 하겠소.”

 

 “...”

 

 이방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사또의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

 

 이만한 일에 준성이를 이 곳으로 데려오는 것은 만무하며, 따로 사람까지 써가며 가짜 진범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우진은 자신에게 오해를 하고 있던 희원이 도와줄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항상 자신만 보면 으르렁 거리던 그녀였다.

 

 그래서 자신의 누명을 벗겨주는 희원의 말에 아직도 놀라고 있었다.

 

 ‘저 여인은 어찌 나를 도와주는 것일까?’

 

 

 *

 

 

 준성은 새로운 서책을 구입하기 위해 책방에 들렀다.

 

 이방의 일을 도와주고 생긴 돈으로 그동안 구입하지 못했던 책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책방에 들른 준성은 낯익은 여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저... 어제 관아에서 본 듯 합니다.”

 

 “어찌 물으십니까?”

 

 “어제 관아에서 불미스런 일이 있었는데 댁은 괜찮은지 해서 물어보았소.”

 

 “저는 괜찮습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예.”

 

 

 희원은 어제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자신이 현감에게 아뢰어 누명이 벗겨지긴 했지만 그 일 때문에 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옥사에 갇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 다시 제 일을 보기 위해 책꽂이로 시선을 돌렸다.

 

 희원이 훑어보는 책꽂이의 반대쪽으로 준성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희원이 걷는 방향을 따라 맞은편 에서 희원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러다 희원이 알 수 없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 맞은 편을 바라봤다.

 

 준성은 바로 고개를 돌려 괜시리 책 하나를 꺼내 읽는 척을 했다.

 

 ‘무슨 책을 보려고 저리 찾는 것일까?’

 

 희원이 다시 책으로 시선을 거두며 걸어가자 준성이 속으로 생각했다.

 

 희원은 새로 들어온 춘화책이 있는지 살펴 보았다. 여전히 춘화집은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아쉬워하며 다른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 살펴보고 있는데 어느새 단이가 곁에 와 있었다.

 

 “아씨. 마님이 찾으십니다.”

 

 “뭐야? 걸린거야? 어쩌다가?”

 

 희원이 단이를 보고 놀라 말했다.

 

 “그러게. 오늘은 나가시면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어서. 어서 가세요.”

 

 단이는 희원에게 조급하게 말하자 희원은 보던 책을 대충 책꽂이에 꾸겨 넣고 급하게 책방을 나가려는데 우진이 헐레벌떡 책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우진은 희원이 자신의 누명이 벗겨주자 곧바로 현감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이 일로 자신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보다 그의 상단의 일이 틀어질까 걱정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독신대첩의 일을 제안한 것이 본인이었기에 사죄의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다행히 현감은 우진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고,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현감의 집무실을 나오자마자 희원을 만나기 위해 포졸들과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야기 좀 합시다.”

 

 우진은 급하게 나가려는 희원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근데 나중에...”

 

 희원은 우진의 손을 뿌리치려 흔들며 말했다.

 

 “나중에 언제 말입니까? 아직까지 도포도 되돌려 주려 오지 않았잖습니까?”

 

 “안 떼 먹어요. 나중에 도포도 돌려주고, 궁금한 거 뭐든지 말씀 드릴테니 이 손 좀 놓으십시오. 지금은 좀 급하단 말입니다.”

 

 희원이 더욱 제 팔을 흔들며 우진을 뿌리치려 하자 우진이 아까보다 더 세게 팔목을 잡아 당겼다.

 

 그 때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준성이 우진의 팔을 낚아채며 우진을 밀쳐냈다.

 

 “어찌 여인의 손목을 함부로 잡고 놔주지 않는 것이오?”

 

 준성은 희원을 제 뒤로 서게 하고 넘어진 우진을 향해 소리쳤다.

 

 “그게 아니라...”

 

 우진이 일어나며 해명을 하려 했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네가 여기에 웬일로.”

 

 “너는!!”

 

 우진과 준성은 서로를 알아보고 놀라자 영문을 모르는 희원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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