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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대첩
작가 : 견화
작품등록일 : 2016.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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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가자. 도포남에게.
작성일 : 16-09-30     조회 : 472     추천 : 5     분량 : 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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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원은 도영이 보지 못하게 고개를 숙이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머리에 씌여진 쓰개치마 때문에 성난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독신대첩엔 왜 그리 가고 싶은 것이오?”

 

 희원을 놀리기로 작정한 것인지 도영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왜 물으십니까? 허락해 주시지도 않으실거면서.”

 

 희원은 괜히 민망함에 퉁명스럽게 말했다.

 

 “재미있소?”

 

 도영의 의외의 말에 희원이 놀라 토끼눈을 하고 도영을 바라봤다.

 

 “에이. 혼자만 재미를 보면 섭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서방 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함께 봅시다. 그 재미.”

 

 “예에?”

 

 “내가 이래 뵈도 전국팔도를 다 돌아다녔는데 말이오. 그것만큼 재미난 일은 보지를 못했소.”

 

 “이제 끝났는데요.”

 

 희원은 도영의 반응이 신기하기도 하고, 자신을 이상하게 보지도 않고 오히려 재미를 느낀다고 하니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단 하루로 끝냈단 말이오? 아쉽네. 많이 아쉬워. 만약에 다시 열린다고 하면 함께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한번 찾아봅시다. 정인(情人).”

 

 “...”

 

 희원은 도영 때문에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다. 어리벙벙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다. 참으로 이상한 선비님이다.

 

 본인은 단 한번도 정인(情人)을 찾아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 희원의 생각과 용기를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희원의 귀에 가까이 입을 가져다 댔다.

 

 “내 일이 워낙에 바쁘잖소.”

 

 희원은 도영의 기가 막힌 귓속말 보다도 소곤거리며 닿는 그의 입김이 제 귀를 간질이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희원은 귀를 만지작거리며 도영의 말에 대꾸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한 번 더 생기면 함께 갑시다. 나만 두고 혼자 가기 없깁니다.”

 

 도영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희원에게 말을 하고는 호탕하게 웃어대며 앞장서 걸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희원은 속으로 생각하며 도영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하늘이 점점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자 적벽강도 함께 하늘을 닮아가려는 듯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

 

 

 “형님. 형님”

 

 동복이 아침 댓바람부터 소리를 지르며 우진의 집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거. 무슨 일인데 그리 소란이야?”

 

 “독신대첩을 다시 연답니다.”

 

 “뭐?”

 

 “이번엔 미리 신청해서 참가표를 받고요.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서 일각에서 한식경 정도 이야기를 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의자나 뭐 그런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걸 상단에 맡긴답니다. 이걸 잘 해내면 여각 주인권을 주겠다고요.”

 

 “그게 사실이야?”

 

 “예에. 지금 상단들에 소문이 쫘악 퍼졌습니다. 경상보다 우리가 빨리 가서 그 자리를 잡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형님이 행수가 될 기회입니다!”

 

 “가자.”

 

 우진은 기록하고 있던 장부를 거세게 덮고 동복과 함께 급하게 집무실을 빠져 나갔다.

 

 ‘기필코 잡아야 되는 기회이다!’

 

 관아로 향하는 우진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게 매섭게 변하고 있었다.

 

 

 *

 

 

 희원은 아주 오랜만에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산수화의 모사가 아닌 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참 붓을 놀리던 희원이 붓을 한쪽에 놓더니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몸을 일으켜 서랍장에 다가가 잘 개켜진 우진의 도포를 꺼냈다.

 

 부드러운 비취빛 도포에 잠시 손을 얹는가 싶더니 비단 보자기에 싸기 시작했다.

 

 오늘은 꼭 돌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씨. 성도영 도련님께서 약과를 보내오셨습니다.”

 

 단이는 수북이 쌓은 약과를 담은 소반을 희원에게 건넸다.

 

 “단아. 나갈 채비를 하거라.”

 

 희원은 평소 좋아하던 약과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단이를 재촉했다.

 

 “어디 가시게요?”

 

 “송상. 도포남에게.”

 

 “지금요? 약과 안 드시고요? 성도련님이 주신건데...”

 

 단이는 오랜만에 보는 귀한 약과에 침을 삼키며 희원에게 물었다.

 

 “갔다와서 먹자. 아니 갔다오면 너 다 먹어.”

 

 “정말이요? 진짜 저 다 주시는거지요?”

 

 “응”

 

 단이는 희원의 말에 신이 나서 앞장 서 걷기 시작했다.

 

 그 시각 우진과 동복은 관아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다행히 경상보다 일찍 현감에게 도착해서 두 번 째 치르는 독신대첩의 필요한 경비를 송상이 모두 치르기로 했다.

 

 일이 너무 쉽게 잘 풀리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여각 주인권을 받아내기만 하면 모든 손해를 벌충할 수 있기 때문에 우진은 큰 일을 위해 이 모든 것을 감수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상단 앞에 다다랐는데 멀리 대문 앞에 희원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대문에서 멀찌감치 희원은 떨어져 있고, 돌계단 위의 대문 바로 앞에는 단이가 상단 노비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화라기 보다는 실갱이에 더 가까웠다.

 

 “대체 누구를 찾는다는 것이오?”

 

 “그러니까 도포를 잃어버리신 분이요. 안에 가서 한 번 더 여쭤봐 주세요.”

 

 “그런 사람 없소”

 

 “그 분이 여기로 오면 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이보시오. 그래서 내가 아까 한차례 둘러보고, 물어보고 왔질 않소. 그런데 아무도 도포를 잃어버린 사람이 없다는대두.”

 

 “한번만 더 물어봐 주실 수는 없나요? 분명 여기 송상이라고 했거든요.”

 

 단이는 이제 문에 서 있는 사내에게 매달릴 지경이었다.

 

 희원은 그런 단이의 모습이 안스러워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단이가 그렇게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사이, 우진은 희원의 속도 모른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긴 어쩐 일이오?”

 

 말을 꺼낸 우진이 그제야 희원의 손에 보자기가 들려 있음을 보았다.

 

 “드디어 옷을 가져온 것이오?”

 

 “사람을 이런 식으로 우롱하고 기만해도 되는 것입니까?”

 

 “기만이라니요?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입니까?”

 

 희원은 화가 나 있었다.

 

 송상으로 찾아오면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큰 소리를 쳐 놓고서는 정작 송상에는 그를 아는 이가 아예 없지를 않은가.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더니. 이것이 자신을 업신여긴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혹, 아랫사람들에게 저희가 찾아올 것이라는 걸 말해놓지 않으셨나요?”

 

 단이가 희원의 눈치를 보며 우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우진은 아차했다. 송상으로 오라고만 해놓고,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간 여러 일들이 생기다 보니 깜빡하고 아랫사람들에게도 언질을 주지 못했었다.

 

 자신의 불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희원은 당황해 하는 우진의 모습에 더욱 기가 막혔다.

 

 그제서야 그녀는 우진을 생각하면 방망이질을 해댔던 심장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오만방자한 사람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무엇이 그리 잘났는지 희원만 보면 훈계하려 드는 그 오만함, 무례하게 제 생각을 거침없이 희원에게 내뱉던 방자함에 대한 분노. 그런 것에 그동안 제 심장이 성을 내었던 것이다.

 

 희원은 보자기를 우진에게 던졌다.

 

 “귀하다 하여 돌려주러 온 것인데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게 아니라 사정이...”

 

 “사정? 당신은 처음 본 그 날부터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었소. 그래도 여러 번 곤경에서 구해주었기에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려 했습니다. 헌데, 보십시오. 처음의 생각이 맞는 것이 아닙니까?”

 

 “오만방자? 그러는 당신에 대해 말해드리리까? 밤에 돌아다니며 보는 춘화집에, 대낮에 주막에 들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욱이! 신분까지 내려놓으며 둘러싸인 사내들에게 웃음을 팔고 있던 꼴이라니.”

 

 숨도 쉬지 않고 내지르던 우진이 한차례 숨을 고르더니 동복에게 희원의 옷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동복은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우진의 말에 부리나케 뛰었다.

 

 “남의 일을 그리 쉬이 말하지 마십시오.”

 

 희원은 우진의 말에 눈가를 찌푸렸지만 흥분되는 모습을 내비치고 싶지 않아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며 차분히 말했다.

 

 “보이는 것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냥 그 날 옥에 쳐 넣어 놨어야 했나봅니다. 관아에 까지 가서 해명을 해주었는데 고마운줄도 모르고.”

 

 희원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火)의 기운을 기어이 입 밖으로 내뱉고야 말았다.

 

 “허. 일부러 사내의 손길을 노리고 그동안 그랬던거 아니었소? 사내가... 그리 고프시오? 평생 혼인은 못 할 것 같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직접 사내를 꼬여내어 운우지정을 나눠보겠다? 허.”

 

 우진의 말에 희원은 끓어오르는 분을 삭히기 위해 큰 숨을 들이 쉬고, 내쉬었다. 그녀의 성난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그리고 고마움? 그 말은 내가 먼저 들었어야 했소. 오만방자함은 내가 당신에게 해야 되는 말이오!”

 

 우진은 분을 삭히려 노력하는 희원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둘이 내뿜는 열기가 마치 입에서 불을 내뿜는 두 마리의 성난 용 같았다.

 

 어느새 희원의 치마가 들어있는 보자기를 들고 나온 동복이 단이에게 건넸다.

 

 “가자. 더 이상 이 곳에 머무를 수가 없구나.”

 

 희원이 뒤돌아 가며 말했다.

 

 “어찌 그리 화를 내십니까?”

 

 동복은 희원이와 단이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씩씩 거리며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우진에게 말했다.

 

 “하여간에, 신경이 쓰이는 여인이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화를 내야 되는 것인데 저러는 것이냔 말이다.”

 

 “그만 하십시오. 내일부터 일이 많아집니다. 오일장 물건에, 도자기에, 독신대첩 일까지. 일이 산더미입니다.”

 

 동복이 우진을 타이르며 말했다.

 

 희원은 애꿎은 돌들을 발로 차대며 길을 걷고 있었다.

 

 “괜히 왔어. 괜히. 이 까짓 도포자락이 뭐라고. 그냥 불태워버릴걸. 오만방자한 사람 같으니라고.”

 

 “아씨. 그만 고정하세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예. 이제 볼일 없을 거에요.”

 

 

 *

 

 

 시골 밤의 개구리 울음소리가 창가처럼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사내들의 화통한 웃음소리가 협주를 하기 시작했다.

 

 밤과 술, 그리고 여인이 주는 흥겨움은 시골이라고 해서 소박하지 않는다.

 

 칠흑 같이 어두운 시골길에 둥그런 빨간 빛들이 기방의 대문 앞부터 마당으로 쭉 이어지더니 기와집 마루의 기둥 사이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 각 방안의 호롱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노오란 네모난 빛이 더해지니 아직 여름인데도 가을의 단풍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어떤 이는 하루의 고단함을 술 한 잔에 풀고, 어떤 이는 조강지처한테 바랄 수 없는 향락의 기쁨을 기생의 치마폭에서 보상 받고 있었다.

 

 거문고가 울려 퍼지고, 시조가 읊어 지고 있는 그 왁자지껄한 곳, 거기 어느 방 한 칸에 홀로 앉은 도영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때 스르륵 문이 열리더니 한 여인이 들어왔다.

 

 “어찌 혼자서 청승을 떨고 계십니까? 연화라도 부르지 않으시구요.”

 

 “오직 너 만이 내 술 맛을 돋워 주는걸 알면서 어찌 그런 서운한 말을 하느냐?

 

 도영은 가까이 다가와 앉는 여인의 허리를 제 쪽으로 확 잡아 당기며 말했다.

 

 “그간 잘 있었느냐. 소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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