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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대첩
작가 : 견화
작품등록일 : 2016.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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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버드나무
작성일 : 16-10-10     조회 : 444     추천 : 2     분량 : 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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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잣거리를 조금 넘어 작은 개울가를 건너고 나면 한 쪽 구석 어귀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기둥은 몇백년의 세월을 말해주듯 열 댓 명이 팔을 뻗어 둘러싸매 봐도 모자랐으며, 그 높이는 장정 서른 명이 겹쳐서 목마를 태워도 그 끝이 닿지 않을 정도로 컸다.

 

 그 잎은 또 어떠하랴.

 

 구(球)를 연상 시키듯 상하좌우로 뻗어나간 가지에 달린 푸른 잎은 일부러 부채질을 하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주었다.

 

 희원은 이 나무에 꼭 한번 다시 와 보고 싶었다.

 

 나무에 올라 중간 높이의 저 굵은 가지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삼복더위가 희원을 괴롭히던 그 때에 어미를 따라 이곳을 지나다 이 나무를 처음 봤다.

 

 

 더위에 지쳐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정부인의 뒤를 졸졸 따라 가던 중이었다.

 

 그러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는데, 글쎄 어느 사내가 이 나무에 올라 앉아 나뭇잎 사이로 책을 읽고 있지 않겠는가.

 

 그 모습이 어찌나 시원하고 멋져 보이던지 희원은 꼭 한번 따라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를 여인 혼자서 오기엔 인적이 드문 곳이라 위험했고, 몸종인 단이는 당연히 오지 못하게 했을테니 엄두도 못 내고 있던 터였다.

 

 “여기에 그토록 오고 싶었던 겁니까? 무슨 연유로...”

 

 준성은 나무를 이리저리 올려다보며 희원에게 물었다.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희원은 나무에 제 키보다 높이 손을 뻗고는 힘을 주며 말했다.

 

 “헌데... 여인의 몸으론 어렵겠죠? 저기.”

 

 희원이 가리키는 곳으로 준성이 눈을 옮겼다.

 

 “저기에 올라가 앉아서 책을 읽어보고 싶거든요.”

 

 “하하하하. 정말이십니까?”

 

 준성은 너무나도 의외의 말에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그리 우스운 일입니까?”

 

 희원은 간절한 제 맘도 모르고 웃어대는 준성에게 서운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낭자의 생각이 참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라 웃었습니다. 보통의 여인들은 나무에 오를 생각은 안하지 않습니까? 어찌 그런 생각을...”

 

 “멋져 보여서요.”

 

 아직도 나무 위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대답하는 희원의 모습에 준성이 웃음을 그쳤다.

 

 “저기 위에 앉아서 나뭇잎들이 부채질 해주는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으면 그 곳이 무릉도원일 듯 싶거든요.”

 

 준성은 너무도 진지한 희원의 모습에 괜히 민망해져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제게 용서를 구하신다 하셨지요?”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올라가 주십시오.”

 

 “내가요? 어딜요? 왜요?”

 

 준성은 희원의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하며 쉴 새 없이 말이 나왔다.

 

 희원을 만나고 이렇게 빠르게 이야기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다.

 

 체면이고 뭐고 당황하니 속마음들이 먼저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희원은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어린아이처럼 놀라는 준성의 반응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좀 더 이 기분을 더 누리고 싶은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선비님이시죠. 남자가 돼 가지고 이깟 나무 하나 못 올라가십니까?”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며 희원이 말했다.

 

 준성의 시름은 깊어져 갔다.

 

 용서를 구한다고 해놓은 말은 있고, 지켜주고 싶은 여인 앞에서 나무 하나에 오르지 못해 벌벌 떠는 나약하며 용기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무섭다.

 

 태어나서 운동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앉아서 매일 글공부만 하다 보니 그런 쪽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나무 위를 바라보지만 자신의 팔과 발이 오징어처럼 빨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저 나무기둥에 잘 달라붙어 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남자로 태어나 여인 앞에서 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다.

 

 척!

 

 준성은 나무에 손을 얹었다.

 

 오늘따라 나무표면이 더욱 거칠게 느껴져 자신의 손을 찌를 것만 같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먼저 제 손에 힘을 주려는데...

 

 “뭐하냐?”

 

 우진이 자식.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일단 올라가지 않은 시간을 벌였으니 좋긴 한데 저 자식이 왜 또 여기에 행차신지 빈정이 상했다.

 

 

 갑작스런 우진의 등장에 희원이 더욱 놀랐다.

 

 “그러는 당신은 여기 웬일이십니까?”

 

 희원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본 것처럼 곱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내가 먼저 물었습니다.”

 

 또 다시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둘이다.

 

 “날도 더우니 나무에 올라 책이나 읽어볼까 하여 왔다.”

 

 준성은 나무에서 손을 떼어 탈탈 털면서 우진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네가?”

 

 우진은 기가 막혔다. 집에서 책 읽는 것만 즐겨하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 준성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준성아.’

 

 우진은 눈빛으로 준성에게 말하고 있었다.

 

 

 ‘왜 난 이런거 하면 안되냐?’

 

 고개를 치켜든 준성이 우진의 눈빛을 받고 제 눈빛을 얹어 우진에게 말했다.

 

 “왜요. 김선비님은 여기에 오지 말란 법도라도 있단 말입니까?”

 

 한참을 그렇게 눈싸움을 하고 있던 우진과 준성이 희원의 말에 멈추었다. 우진은 희원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낭자는 대체 왜 나만 보면 화부터 내시는거요?”

 

 우진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뭔가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 대는데 사실 그 궁극적인 이유는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대체 왜, 무엇을 위해 언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화라니요? 누가 화를 냈단 말입니까?”

 

 “아님 말투가 센 건가? 아까 준성이한테 하는 말투는 나와는 다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희원이 들킨 마음을 감추려는 듯 되레 큰소리로 우진에게 물었다.

 

 우진이라는 저 사람은 항상 자신을 까발리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인가보다.

 

 어찌 매번 만날 때마다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는단 말인가.

 

 왜 남의 마음을 멋대로 단정지어 생각하냐는거다.

 

 항상 그런식인데 대화가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면 말구요. 일 끝나셨으면 이제 자리 좀 비켜 주시지요. 제가 할 일이 좀 있어서요.”

 

 “안 끝났습니다. 여기가 댁꺼라도 됩니까?”

 

 “그럼 언제 끝날 것 같은데요?”

 

 “오늘 하루 종일이요. 그리고 내일도. 내일모레도. 아니 평생.”

 

 우진은 자신에게 일체 양보하지 않으려는 희원의 유치한 대답에 기가 찼다.

 

 오랜만에 책이나 읽어볼까 하고 들른 곳이다.

 

 우진이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자주 이곳에 들르곤 했다.

 

 봄에는 버드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따듯한 기운을 얻었고, 여름에는 나무위에 올라 누워 나뭇잎이 부쳐주는 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달랬고, 가을에는 떨어지는 잎을 보며 서로를 위로했으며, 겨울에는 하얀 솜옷을 입은 모습에 마음에 위안을 받곤 했다.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버드나무 뿐인 것만 같아 우진에겐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진은 어서 불청객들이 제발 나가줬으면 하는 바람 뿐이었다.

 

 

 희원은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그 나무위의 주인공이 우진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채 계속 우진을 쏘아보고 있었다.

 

 ‘결코 당신한테는 이런 아름다운 곳을 빼앗기지 않겠어.’

 

 희원도 야무지게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또 다시 일촉즉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듯 했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만 미친 듯이 끓어댈 뿐 정작 겉으로 드러난 산 위에서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못하는 듯이 지금 두 사람이 그런 형국이었다.

 

 누군가 먼저 입을 열기라고 하는 순간엔 두 불길이 버드나무를 다 태우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낭자, 우리가 비켜주기로 하시지요.”

 

 그 불길을 잠재운 건 준성이었다.

 

 “우리가 왜요?”

 

 희원은 이 기회가 또 올 것 같지 않아 서운함에 물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땐 제가 어떻게든 낭자를 저 위에 올려드린다고 약속드리지요.”

 

 준성이 희원을 달래며 말했다.

 

 “정말이지요?”

 

 희원이 반색하며 확인했다.

 

 그러자 희원은 우진과의 대치상황을 끝내고 다시금 사랑스런 여인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면서 준성이 이끄는대로 버드나무를 벗어나고 있었다.

 

 “여인의 몸으로 이 나무에 오르려 했다고? 허. 참으로 정숙함이라곤 절대 기대할 수 없는 여인이야.”

 

 우진은 준성과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걸어가고 있는 희원을 보며 혼잣말로 말했다.

 

 한참을 보고 있던 우진이 시야에서 그들이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날랜 몸짓으로 나무에 오르더니 중간 가지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우진은 익숙하게 눕더니 품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

 

 

 준성과 희원은 다시 저잣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제서야 희원이 무언가 할 말이 생각난 듯 준성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두 분은 어찌 아는 사이입니까?”

 

 “형제입니다.”

 

 “예에?”

 

 희원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라 되물었다. 닮은구석도 없고 성격도 너무 다른데 형제라니. 희원은 믿을수가 없었다.

 

 “형제인데 많이 다르시네요.”

 

 “입양 되었으니까요. 우진이가.”

 

 준성의 말에 희원이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갑인데 형 노릇을 하며 가르쳐 들기에 서로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 분이 좀 남을 가르치려는 못된 버릇이 있으십니다.”

 

 희원이 준성의 말에 격하게 동의하며 말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둘은 책방 앞까지 다다랐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이만 집에 들어가봐야 할 듯 합니다.”

 

 희원이 먼저 준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제가 더욱 즐거웠습니다. 바래다 드릴까요?”

 

 “아뇨,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약속 지킬 수 있게 기회 주실거죠?”

 

 준성이 아쉬움에 희원에게 물었다.

 

 “그럼요. 지켜주실거라 믿어요.”

 

 희원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준성은 책방 앞에서 희원의 웃음을 되새김질 하며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뜬 희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거문고 소리가 들려온다. 기생들의 창 소리와 함께.

 

 오늘도 여전히 시끌벅적한 곳. 소월의 기방이다.

 

 소월은 오늘 현감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들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도 말이 적은 현감이지만 오늘따라 현감은 더욱이 말이 없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이방이 들어왔다.

 

 이방이 자리에 앉자마자 모든 음악을 끊게 했다.

 

 거문고와 창을 부르던 기생들이 일제히 멈추고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이방이 남은 기생들에게도 눈치를 주자 소월을 비롯한 나머지 기생들이 일어났다.

 

 “소월아, 너는 남거라.”

 

 현감의 말이었다.

 

 “사또. 어찌 그러십니까?”

 

 “마음이 울적하니 소월이만큼은 옆에 두고 싶소.”

 

 현감의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 이상 말리지를 못했다.

 

 그러자 소월이가 현감의 옆에 다시 앉으며 술을 따랐다.

 

 오늘의 독신대첩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다시 우진이와 그 여인이 소동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엮인 짝이 한 쌍도 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온전히 우진과 그 여인의 탓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행사에서 거슬리는 사람은 그 둘 뿐이었다.

 

 “알아보고 계시오?”

 

 현감은 독신대첩에 끝나자마자 그 여인의 정체에 대해서 조사하라고 이방에게 지시를 했다.

 

 “지금 사람을 풀어놓았으니 곧 정체를 알아올 것입니다.”

 

 “어찌, 매번 고을의 행사를 망치려드는지, 어느 편의 사람인지 소상히 알아보도록 하시오.”

 

 “그 다음엔 어찌 하시게요?”

 

 “모든 것을 알아내어 그 죄과를 물어야 되지 않겠소?”

 

 이방은 현감의 의중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의 소월도 둘의 이야기를 조용히 그러나 귀 기울이며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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