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원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부안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성문을 들어설 때만 해도 부안과 다르지 않았다. 단지 좋은 집이 몇 채 더 있는 정도랄까.
그런데 점점 도성 안으로 더 들어올수록 이야기가 달라졌다.
부안에서는 보지 못한 크기의 기와집 하며, 덕지덕지 붙어있는 초가집까지.
이 사람들은 당최 어디에 벼를 심고, 배추를 심어 먹고 사는지 온 땅이 죄다 집 밖에 없는 듯 보였다.
그렇게 저잣거리로 들어오니 이번엔 눈앞에 펼쳐진 진귀한 물건들 하며, 그 가짓수가 열손가락을 몇 번을 접었다 펴도 모자랄 판이었다.
사람들은 또 어찌나 이리 많은 것인지, 사람들 때문에 치여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만 같았다.
시끄럽기는 왜 이리도 시끄러운지, 일각마다 산모가 출산을 하듯 왁자지껄해서 귀청이 떨어져나갈 지경이었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뱅그르르 하며 신기하게 주위를 둘려보고 있는데 급히 뒤에서 뛰어오는 사람에 의해 희원이 휘청거렸다.
균형을 잃고 허우적대는 희원의 허리를 사내의 손이 휘감았다.
[한양에서는 눈 뜨고 코가 베인대요.]
순간 희원은 단이가 했던 말이 생각 나 몸이 떨렸다.
“시골에서 온 거 티내십니까?”
그러나 낯익은 목소리가 희원을 안심시켰다.
우진이었다.
“여긴 어떻게...?”
희원이 예상치 못한 얼굴을 만난 것에 놀라며 우진에게 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어쩐 일이오?”
우진이 미덥잖다는 표정으로 희원에게 물었다.
“흠흠. 일이 있어 왔습니다.”
“혼인도 안한 처자가 홀로. 한양까지 왔단 말입니까?”
의아한 듯 우진이 희원에게 물었다.
“남의 일에 왜 이리 참견이 많습니까?”
희원이 제 몸을 툭툭 털며 말했다.
“매번 구해줘도 욕을 얻어먹으니 나 원 참. 그럼 일 보러 당신 길이나 가보시오.”
우진은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괜히 뿔이 나 희원에게 툭 던지며 제 길을 걸어갔다.
희원은 더 이상 혼자 다니는 것이 두려워 우진의 뒤를 따랐다.
평소에는 미워 죽을 것 같은 사람이어도 낯선 곳에 오면 오묘한 동무의식이 생기나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는 저런 사람이라도 의지가 되니 말이다.
“언제까지 따라올 겁니까?”
우진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누가 누굴 따라간다고 그럽니까? 나도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먼저 가시지요.”
우진이 옆으로 몸을 비켜서며 희원을 앞장서게 했다.
그러자 희원은 고개를 숙이며 안절부절 한 채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왜 안 가십니까?”
우진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희원의 귀에 들렸다.
무언가 대꾸할 말을 찾고 있는데 머리가 뺑글뺑글 돌아가지 않았다.
“...”
“어디서 묵고 있습니까?”
매번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던 희원이 아무 말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놀릴 재미도 없어져 우진이 물었다.
“그게... 저쪽에서 일자로 온 것 같긴 한데...”
“...”
“헤에-. 여기가 참으로 복잡합니다. 부안과는 사뭇 ... 아니 아주 많이 다릅니다.”
희원이 소금에 절인 배추 마냥 풀이 죽어서 엉성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우진에게 말했다.
“일행들 몰래 나온 것입니까?”
우진이 물었다.
“맨 가마만 태우니 세상구경을 할 수가 있습니까? 제가 언제 또 한양엘 와보겠습니까? 그래서...”
“참... 이해가 안 됩니다.”
“...”
“어쩐다...”
“저만 두고 가지 마십시오.”
희원이 간절한 눈으로 우진을 보며 매다렸다.
그 모습이 묘하게 우진에게 쾌감을 불러 일으켜줬다.
“흠... 가만 있어보자. 내 일이 바쁜데...”
“제가 돕겠습니다. 그러니 데리고만 있어주십시오.”
우진은 제 앞에서는 처음으로 안절부절 못하며 매달리는 희원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도와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비록 바쁘긴 한데...”
우진이 뜸을 들이자 희원이 더욱 애절하게 우진의 소매자락을 붙들었다.
“흠... 그렇다면 당신 일행이 곧 찾으러 올 것 같으니 이 근처에 있도록 합시다. 그 때까지만 같이 있어주겠소.”
희원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보였다.
잠시 놀려줄까 하여 뜸을 들이고 같이 있어만 주겠다고 한 것인데 저리도 좋아하는 얼굴이라니.
우진은 놀라움과 알수 없는 묘한 감정이 일어나 희원의 웃음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맙습니다.”
“예?”
우진이 잘못 들은 듯 하여 희원에게 되물었다.
“고맙다구요. 함께 있어주셔서.”
“허. 허허허허허.”
우진이 헛웃음을 한번 내뱉더니 뒤이어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어찌 웃으십니까?”
“그런 말도 하실 줄 아십니까? 나는 아예 그런 말은 못 배운 줄 알았습니다.”
“네?”
“구해준 것이 여러 번인데 그런 말은 처음 들은지라...”
“아니, 고맙다고 말해줘도 왜 빈정거리십니까?”
희원은 괜히 민망하여 우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또 다시 둘의 으르렁거림이 시작되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우진이 희원을 달랬다.
“이리 와보시지요. 낭자께서 흥미를 가질법한 것이 있습니다.”
희원은 계속 흘겨보며 우진을 따라갔다.
이젠 어쩔 수 없다. 미워도 한동안은 같이 있어야 한다.
도영이든 단이든 자신을 찾으러 올 때까지 우진과 함께 이 근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양은 희원에게는 너무 크고 넓고, 그리고 두려운 곳이었다.
*
희원은 다시 한 번 입이 떡 벌어졌다.
책이 가득가득한 곳이었다.
부안, 그 시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이었다.
희원은 물 만난 고기마냥 책방을 이리저리를 휘저으며 연신 책들을 꺼내보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별천지입니다.”
“좋아하실 것 같았습니다.”
우진이 엷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허나 춘화집은 없습니다.”
엄중하고 단호한 말투로 우진이 덧붙였다.
희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 우진을 쏘아봤다.
“그런 것만 찾을까봐 걱정돼서요.”
희원의 눈빛을 받아내고도 우진이 기어코 한마디를 덧붙이며 아까 보다 큰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듯이.
“그런 것만 안 보거든요. 그리고 그런 거 나쁜 거 아니거든요.”
희원이 여전히 우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네네. 그러시겠죠.”
우진이 건성으로 대답하며 책들을 둘러보았다.
*
그 시각, 도영은 객사에 들렀다.
단이는 오랜만에 꿀잠에 녹아 있었다.
“희원 낭자 안에 계시오?”
단이가 도영의 말에 놀라 눈을 뜨는데 희원이 사라졌다.
문을 벌컥 열고 나가 울상을 지어보였다.
“어찌 그러느냐?”
“분명 아씨께서 잠든 것을 보았는데... 그만 소인이 잠이 들어버렸는지...”
놀란 도영이 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괜찮다. 너도 곤한 여정이었으니... 내가 한 바퀴 돌아보고 올 터이니 너는 여기 가만 있거라.”
단이는 계속 울상을 짓고 있었다.
도영은 객사를 빠져나와 저잣거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초행길인 한양에서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당황할 희원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이라 희원이 제대로 길을 찾아올 리 만무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데리고 오는 거였는데, 한양 간다고 아예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정혼자이니 언질을 주고 가려고 들른 것이었는데.
호기심이 가득한 여인이라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제발 사고라도 안 쳤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저잣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희원을 찾고 있는 그 때, 희원과 비슷한 여인을 발견했다.
헌데 웬 사내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
*
“뭐가 그리 재미있습니까? 나도 좀 알려주시지요.”
“선비님!”
도영이가 나타나자 희원은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그를 불렀다.
“길이라도 잃었으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즐거우신가 봅니다. 우리 정혼자님.”
도영은 웃고 있는 희원을 보자니 왠지 골이 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요. 그것이 아니라 책 글귀가 재미가 있어서...”
희원은 순간 보고 있던 책을 얼른 덮으며 도영에게 말했다.
분명 본인이 사라져 단이는 물론이거니와 도영이도 많이 놀랐을 터였다.
그런데 여기서 희희낙락한 모습을 보였으니 도영이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 정혼자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도영은 우진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것 없습니다. 곤경에 처한 듯하여 그저 도와드렸습니다.”
“그래요오. 허면 곤경에 처할지는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왔을까요?”
우진이 담백하게 있는 사실대로 말했으나 도영은 그러지 않은 모양이다.
날이 선 목소리로 우진에게 재질문을 하였다.
“그저 우연히 뵈었을 뿐입니다. 어찌 그리 말씀 하십니까?”
희원이 도영의 시선을 빼앗으며 톡 쏘듯 말했다.
“이제 정혼자가 오셨으니 저는 이만 가드리지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기가 불편해진 우진이 뻘쭘하게 말하며 자리를 비키려 했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혹, 다음에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우진은 도영을 한번 보고는 별다른 대답 없이 희원에게 웃어 보이며 책방에서 나왔다.
“둘이 엔간히 붙어있습니다.”
도영이 우진의 뒷모습을 보며 희원에게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사실 도영으로서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하면 둘이 붙어 있으니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것이 아니라 제가 길을 잃어 헤맬 때 도와주신 것이 다입니다. 어찌 여기에 오셨는지는 소녀도 잘 모릅니다.”
희원은 왜인지는 모르지만 도영에게 변명을 하며 우진을 감싸고 있었다.
“자유연애가 꿈이라더니 벌써 정인(情人)을 찾은 것은 아니고요?”
어쩔 줄 몰라 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희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대며 놀리듯이 말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희원은 억울하게 눌러쓴 누명보다도 그의 숨을 느낄 만큼 가까워진 얼굴의 거리 때문에 더욱 놀라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찌 맨날 이렇게 신체를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야?’
희원은 속으로 도영을 나무라며 붉어진 제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
우진은 왠지 억울했다.
목숨 건져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어도 본인이 딱 그런 상황에 처해질지 누가 알았단 말인가.
갈 길 잃은 불쌍한 사람 하나 구해줬더니만 돌아오는 것은 누명이었다.
‘나도 신기하다. 어찌 내가 가는 곳마다 저 여인이 나타나는 것인지. 누가 물어볼 말인데, 누가 누구한테 뭐라고 하는 것인지. 허. 참.’
우진은 억울함에 긴 다리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면서 연심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도착한 객사에는 동복이가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이고. 형님. 어디를 이리 다녀오시는 겁니까? 지금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방문을 열자마자 동복은 우진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각 주인권을 얻기 위해서는 현감의 결정이 매우 중요한데, 매번 독신대첩에서 자신이 얽혀 소란이 일어나니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그 자리에서 현감이 괜찮다며 이해해준다고는 했지만 그 말만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청나라 도자기를 구해서 현감의 기분을 풀어주어야만 했다.
아니면 다른 상단에서 현감에게 선수를 쳐 주인권을 따내갈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주인권만 따내면 이미 여러 지역에서 송상의 행수를 맡고 있는 지금의 행수가 부안지역의 행수자리는 우진에게 넘겨주고도 남을 일이다.
우진에게는 기필코 해내야만 하는 일인 것이었다.
이 중차대한 일을 하고자 한양까지 올라왔건만 오자마자 마주친 것이 또, 그 신경 쓰이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따라 다니는 것이냐고 물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본인이 그런 소리를 들었으니 어이가 없었다.
“날이 저무니 오늘은 편히 쉬고, 내일부터 찾아보도록 하자.”
우진이 말하며 동복에게 건너가 쉬라고 말했다.
*
준성은 이방의 방에 앉아 있었다.
이방이 자신을 그의 방으로 부른다는 것은 무언가 할 일을 내준다는 것이었다.
준성은 담담한 표정으로 이방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방안에 매퀘한 연기가 자욱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
두 뼘이 넘는 길이의 장죽 끝에 상아로 만든 얇은 물부리를 이방이 입술에 힘을 주어 빨아 댈 때마다 하얀 연기가 방안을 메워갔다.
“한번 피워 볼텐가?”
이방이 장죽을 준성에게 건네며 물었다.
준성은 참아왔던 기침을 조용히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백동연죽일세. 남원에 있는 장인에게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것이지.”
이방은 담배통에 담뱃재를 넣으며 말했다.
백동으로 만든 담배통 위에는 금으로 된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웬만한 재력이 아니고서는 고작 담뱃대에 금과 상아로 치장한 것을 사용할 수는 없던 시기였다.
준성은 가만히 이방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내로 태어났으면 이런 담뱃대로 담배 한번 원 없이 펴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방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또다시 물부리에 제 입술을 대었다.
이방이 뻐끔뻐끔 할 때마다 방안이 또다시 연기가 자욱해졌다.
준성은 올라오는 기침을 참으려 애를 썼다.
“자네 독신대첩에서 말이야.”
이방의 말에 준성은 긴장했다.
“자네랑 얘기 했던 그 여인 말일세. 이름을 아는가?”
이방이 준성에게 물었다. 준성은 틀리지 않은 예감에 몸을 움찔거렸다.
오늘은 왠지 독신대첩의 일 때문에 자신을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그였다.
그저 희원을 다시 보기를 고대하며 간 곳인데 이것이 이방의 눈에 날까 걱정이 되었다.
한편 이방은 현감의 지시로 희원의 존재에 대해서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알아보아도 그 여인의 정체를 아는 이가 없었다.
모두 처음 보는 여인이라고만 했다.
출구가 없는 듯 보여 낙심하고 있을 그 때 독신대첩에서 그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준성이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 때 통성명을 하지 못했는가?”
이방이 담배를 빠끔거리며 준성에게 다시 물었다.
“예. 이름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디 사는지는 아는가?”
“모르옵니다.”
“그럼 다시 만날 수는 있는가?”
“어찌 그러시는지...”
“지금 이유를 묻는겐가?”
이방이 준성의 물음에 오히려 되물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준성은 이방의 지시에 단한번도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희원이 걸린 일이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를 의아하게 여긴 이방이 준성이 물어보는 이유를 되묻게 되었다.
“나랏일에 필요해서 그러네. 만난다면 이름을 알아봐주게나.”
처음으로 이유를 묻는 준성이 놀라웠지만 이방은 탁자위에 묵직한 돈을 내려놓으며 준성에게 말했다.
준성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탁자위에 놓여진 것을 제 소매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