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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대첩
작가 : 견화
작품등록일 : 2016.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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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인은 왜 안된답니까?(2)
작성일 : 16-09-20     조회 : 533     추천 : 1     분량 : 5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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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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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점점 기우나 보다.

 

 별채를 에두르는 돌담 너머의 나무 그림자들이 몽당이 부지깽이 마냥 짧다 했는데 어느새 조금씩 길어졌다.

 

 별채 앞마당에서 빗자루를 들고 있는 단이는 마당을 쓰는둥 마는둥 하며 대문에서 별채로 이어지는 중문을 바라보았다.

 

 

 혹여 마님이라도 먼저 들이닥칠까.

 

 그랬다가는 아씨는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먼저 제 목숨이 달아날 것이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릴만한 일이었다.

 마님이 곧 돌아오실텐데 저잣거리에 나간 아씨는 대체 언제 오는 것인지... 이러다 제 명에 못 죽을 것만 같았다.

 

 

 “희원이 안에 있느냐?”

 

 안절부절 단이가 아직도 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정부인이 자뭇 인자하고 지엄한 말투로 희원을 찾았다.

 

 “마... 마님!”

 

 단이는 부리나케 정부인 옆으로 다가갔다.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 애를 써도 도통 얼굴이 마를 듣지 않는다.

 

 정말... 이러기냐... 아직 아씨가 도착 하지도 않았는데 마님이 먼저 들이닥치다니.

 

 아... 내 인생 참으로 박복하구나...

 

 

 “왜 대답이 없을꼬. 희원아.”

 

 정부인이 희원을 계속 불렀지만 대답이 없자 옆에 서있는 단이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단아, 희원이 안에 있느냐?”

 

 “네? 네... 그러니까 그게...”

 

 단이는 갑작스런 정부인의 등장에 너무 놀란 나머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하며 애꿎은 빗자루만 만지작거렸다.

 

 정부인은 거짓말을 못하는 단이가 얼굴을 빨개진 것을 보고는 제 딸 희원에게인지, 아님 단이에게인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단이를 어찌하면 좋을는지.

 

 착하고 거짓말 하나 못해서 지금 자신이 데리고 있기는 좋은 아이인데 희원이가 출가해서 시댁에 같이 가게 되면 골치 아프게 될 것만 같다.

 

 아랫사람이 적당히 눈치 있게 잘 에둘러 줘야 윗사람이 편한 법인데 저리 말 하나 요령 있게 하지 못하니 속을 다 들켜서 시어머니에게 더욱 미움을 받을까 걱정인 것이다.

 

 그나저나 이 년의 가시네가 또 어딜 나갔단 말인가.

 

 단이 저것보다도 희원이 이 노무 딸년이 더 문제다. 필시 또 집 밖을 나간 것이다.

 

 그저 보통 양반댁의 규수답게 참하게 키우고자 글을 가르치고, 그림을 가르치고, 자수를 가르치는 것인데 도통 말을 들어먹질 않는다.

 

 가만히 방에 앉아 나비 문양의 자수를 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일러놨건만 그 새를 못 참고 기어이 나가버린 것이다.

 

 “단이, 네 이년. 내가 희원이 단속 잘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찌 네 년은 이 쉬운 거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이냐?”

 

 “마... 마님 죄송해요. 그것이 제가 잠시 뒷간에...”

 

 “됐다. 너한테 말해 뭐하겠냐. 내 이 년을 아주 그냥...”

 

 단이에게서 빗자루를 뺏어들은 정부인은 빗자루를 치켜들고 그 기세로 희원의 방으로 돌진했다.

 

 

 또 시작이다.

 

 마님은 아씨 일만 아니면 곱디 고운 분이시다.

 

 말씀도 조근거리며 잘 하시고, 부모 없는 나한테도 엄마 마냥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분이신데 아씨한테 화만 나면 말년이 아줌마처럼 입이 거칠기 짝이 없다.

 

 이럴 때 보면 평민이고 양반이고 말하는 것은 피차 똑같아 보이기까지 하다.

 

 정부인은 누구 하나를 잡아먹을 기세로 희원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당연히 없을 줄 알았던 희원이가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능청스럽게도 아주 다소곳하게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자수를 하면서!

 

 “아... 아니... 안에 있었으면서 그리 대답이 없느냐. 어미가 여러 번 불렀거늘.”

 

 “어머, 그러셨어요? 자수에 집중하느라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어인 일로 저를 찾으셨어요?”

 

 “아니다. 그냥 불러봤느니. 하던 일 계속 하거라.”

 

 “예. 어머니. 들어가시어요.”

 

 정부인은 금세 화가 풀려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완연하게 짓고는 단이에게 빗자루를 건네주고는 별채를 떠났다.

 

 

 희원의 모습을 본 단이가 받아든 빗자루를 내팽겨치고 희원에게 달려왔다.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벙찐 표정을 지으며 단이는 희원에게 물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큰둥한 반응의 희원은 자수 꾸러미들을 뒤로 던져버리고는 품에서 빨간책을 꺼냈다.

 

 그리곤 히죽히죽 웃으며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아... 오늘은 좀 많이 아슬아슬 했지만 성공! 누가 최희원 아니랄까봐. 훗”

 

 “예예. 누가 아씨 아니랍니까아. 제발 간 떨어지게 좀 하지 마세요. 정말 조마조마해서 제 명에 못 죽습겠습니다요.”

 

 “걱정마. 이런 긴장을 달고 사니까 니 뱃살이 늘어지지 않고 심장과 간이 더 쿵쾅쿵쾅 운동질을 더 해대서 남들보다 몇 년은 더 살거야.”

 

 정작 나는 간이 쪼그라들어서 말라 비틀어질 지경인데 가까스로 마님에게 걸리지 않았다고 저리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정말 이 아씨는 내겐 너무 과분하다.

 

 단이는 속으로 볼멘소리를 계속 해대는데 이런 단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원은 방금 가져온 춘화집을 보고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캬아. 단아. 이것 좀 봐봐. 이 정도는 되어야 과연 화집이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예? 대체 뭐길래 아까부터 그리 열심히 보십니까?”

 

 희원은 단이가 곁에 다가오자 그가 잘 볼 수 있도록 화집을 크게 펼쳐줬다.

 

 “에그머니나.”

 

 나무 아래 여자 남자가 속이 비치는 얇은 적삼을 입은 채 엉켜 있는 그림을 본 단이가 놀라 자빠졌다.

 

 “여인이 돼서 남우세스럽기로 이런 걸 왜 본단 말입니까?”

 

 “뭐가 그리 무섭고 두려워? 그리고 여인은 안 된다고 누가 말해? 그것이 다 고리타분한 성리학의 잘못이야. 이것은 그저 예술이야.”

 

 “아이고 아씨. 얼른 덮으십시오. 마님이 아시는 날엔 경을 치실겁니다.”

 

 “쯧쯧. 이렇게 예술을 몰라서야. 세상에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해가 있으면 달이 있잖니. 이들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세상이 잘 돌아가는 법이야. 똑같아. 사람들도 남자가 있으면 여자도 있고. 이 음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단 말이지. 그 중요한 행위를 한 폭의 그림으로 묘사해놨는데 어찌 아니 아름답겠어?”

 

 저리 유려한 말솜씨가 또 있을까.

 

 본인이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저 성미만 없어도 벌써 시집가고도 남았을텐데...

 

 마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틀린 곳이 없다.

 

 마님이 그랬다. 저 입을 꿰매기 전에는 시집 보낼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리고 말이야. 내가 그림을 좀 볼 줄 알지 않겠니? 이 예술적 감성으로 이 물건이 청에서 들어온 진귀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봤다는 거다. 자, 봐봐. 이게 붓선이나 그림의 색깔들만 봐도 이게 청에서 바로 들어왔는지, 조선인이 모사를 한 것인지 난 다 알 수 있거든.”

 

 “그게 무슨 예술입니까? 그저 아씨가 노처녀 모태독신이라서 욕구를 그런데다 푸는거 아닙니까?”

 

 “우이씨”

 

 희원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며 화를 내는 바람에 단이는 또 혼날까봐 고개를 푹 숙였다.

 

 “아...아니... 그것이 아니라... 제 말 뜻은...”

 

 “지금 나랑 장난 하나. 끝장이 찢어졌잖아! 망할 늙은이!”

 

 “예?”

 

 “화룡점정과도 같은 제일 중요한 마지막 부분인데! 뭐 이런 게 다 있어?”

 

 어째서! 왜! 꼭 이리 중요한 부분은 항상 찢겨져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것은 내가 잠시 빌리는 것도 아니고 지난번에 모사한 그림 값을 고스란히 다 치르고 정식으로다가 매입한 물건인데.

 

 이런 하자 있는 물건을 판매하다니!

 

 이것은 정녕 참을 수 없다. 이것은 나를 향한 선전포고이다.

 

 그래 받아주마. 내 이 늙은이를 아주 그냥!!!

 

 “아씨! 아씨!”

 

 단이가 잡을새도 없이 어느새 옷을 갈아 입은 희원은 방을 나갔다.

 

 “아씨, 저 죽어요. 얼른 돌아오세요”

 

 단이는 자신의 목소리가 안채에 들릴까 쉰소리로 희원을 계속 불러보지만 희원은 책자를 품에 안고 어느새 이미 중문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

 

 

 쾅쾅쾅!

 쾅쾅쾅!

 

 희원은 신경질적으로 문을 두들겨 댔다.

 

 곧 순라꾼들이 몰아닥칠 시간이다.

 

 그래도 이 책의 기승전결은 꼭 봐야만 했다.

 

 이 책방 늙은이를 쥐어짜서라도 책을 새 것으로 바꿔와야 했다.

 

 쾅쾅쾅! 쾅쾅쾅!

 

 끼익.

 

 “아니 이 시각에 어인 일이오? 아까 그 사내를 못 본 것이오?”

 

 문이 열린 틈 사이로 책방 주인이 희원을 보며 말했다.

 

 어떤 티끌도 묻지 않았다는 듯이 세상 말간 얼굴로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주인에게 더 화가 났다.

 

 “어찌 장사를 이리 하십니까? 자 보십쇼.”

 

 희원은 찢겨진 마지막 장을 펼쳐 주인에게 보여줬다.

 

 “책을 그새 찢은 것이오? 낭자.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에효. 여인이 돼서는... 쯧쯧.”

 

 “아니, 누가 책을 찢었단 말입니까? 찢겨진 책을 나한테 넘기지 않았습니까? 내가 중요한 장면만 찢어대는 그런 사람들과 똑같은 줄 압니까?”

 

 주인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것처럼 벙쪄서 희원을 쳐다 봤다.

 

 “거 뭐 됐고. 새 책으로 바꿔줘야겠습니다. 아니, 하자 있는 물건을 거래했으니 내 돈 도로 내놓으쇼.”

 

 “돈이라니? 무슨 돈?”

 

 “이 책 값 말입니다. 그 돈이 한 두 푼입니까? 자그마치 궁궐 여인의 가채에 버금가는 값입니다. 그리 비싼 돈을 받아가면서 어찌 물건이 이런단 말입니까?”

 

 “허. 누가 여인 아니랄까봐 비유 하고는.”

 

 “뭐요? 여기서 여인이 왜 나옵니까? 여인이라서 뭐요”

 

 희원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책을 보든 돈의 값을 가채에 비유하든 갓에 비유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거래를 이렇게 하는 당신은 사내가 맞긴 합니까?”

 

 “이 사람이 진짜 말 다 하신거요?”

 

 “왜요. 사내라고 여인을 패기라도 할 겁니까?”

 

 “그럼 진짜 한번 맞아보기라도 할거요?”

 

 순간 문을 열어 제끼고 문 밖으로 나오려는 주인을 보고 놀란 희원이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주위를 살핀 주인이 다시 문을 반쯤 닫고서는 희원에게 말했다.

 

 “내가 이래 뵈도 물건 사고파는 데에 허튼 마음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소. 내가 한 두 해 책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책을 다루는 사람이 어디 그딴 식으로 거래를 한단 말이오? 사람을 뭘로 보고.”

 

 주인의 말을 들은 희원은 화가 한풀 꺾인 개미나 나올까 하는 작은 목소리를 내었다.

 

 “그럼 이 책은 어찌 된 거란 말입니까...”

 

 “나는 모르는 일이오. 요새는 단속이 심하다 말하지 않았소. 근래에는 나도 그저 중간 연락책 노릇만 하고 책을 직접 보지는 못하오. 그리 분하고 억울하면 그 사내를 직접 찾아가시오. 아직 이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을게요.”

 

 희원에게 한참을 쏘아대던 주인은 세게 문을 닫으며 대화를 마무리 지어버렸다.

 

 희원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저잣거리를 한 바퀴 더 돌아다니다 보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희원은 달렸다.

 

 그 사내를 찾아야만 했다.

 

 책에 대한 예의가 없는 놈.

 

 그 놈을 찾아서 혼을 내주고 책도 바꿔야만 했다.

 

 

 ***

 

 

 [이 시각에 돌아다니는 그 쪽에게 정숙한 여인의 옷가짐은 무리일 듯 보이오.]

 

 희원은 안그래도 민망하고 창피한데 자꾸만 자신을 구해준 사내의 말이 떠올라 이제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불덩이처럼 뜨거워져갔다.

 

 발은 왜 이리 갑자기 무거워졌는지 아까까지만 해도 잘 뛰어지던 발인데 도통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낮에도 분명 이 옷으로 집에 뛰어 갔을텐데.

 

 남의 눈을 의식한다면 지금이 밤이고 인적이 드물어 차라리 더 나은 상활 일텐데.

 

 그런데 왜.

 

 지금 갑자기.

 

 더.

 

 부끄러워졌는지 모를 일이다.

 

 집까지는 한 식경은 더 가야 되는데 이 옷매무새를 어떻게든 정리하고 가고 싶었다.

 

 꾸역꾸역 치마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있는데 순간, 희원의 머리 위로 천이 수루룩 덮였다.

 

 ‘이건 뭐지? 여기서 보쌈 당하는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데 그 때 낯익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라도 쓰고 가시오. 아무리 보여주고 싶어도 이 시각엔 자제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아무리 밝히는 여자라지만 지금 저 여인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진은 자신의 도포를 벗어 되돌아가 희원의 머리위에 던지듯이 씌워 주고는 다시 제 길을 갔다.

 

 ‘참 신경 쓰이는 여인이다.’

 

 

 갑자기 톱니바퀴가 제 가던 길을 이탈 한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톱니가 생겨서 어긋났다고 해야 되는 것인가.

 

 우진은 잘 맞아 떨어져 굴러가던 제 마음에 삐걱거림이 생기자 그 낯선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원은 깜짝 놀란 마음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덮어진 우진의 도포자락을 살포시 밀어내며 우진을 뒤돌아 봤다.

 

 그는 자신이 언제 희원에게 그랬냐는 듯이 한 손엔 호롱불을 들고, 한 손엔 책을 들고는 그렇게 걸어가고 있었다.

 

 

 쿵쿵쿵.

 

 

 ‘아직도 심장이 뜀박질 했다고 성을 내고 있는 것인가.’

 

 

 쿵쿵쿵.

 

 

 화를 삭힐줄 모른다는 듯이 희원의 심장은 계속 뛰고 있었다.

장담 17-01-22 23:31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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