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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례한 첫사랑
작가 : 송볕
작품등록일 : 201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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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와 거래를 해보는 게 어때?
작성일 : 16-09-22     조회 : 608     추천 : 2     분량 : 6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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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꾼을 찾았으니 가서 물어봐. 그리고 여기서 당장 나가.”

 

 그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날이 서 있었다. 이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은 5방의 일꾼들이었다. 서행수의 심기에 날이 선 것을 느끼자 일꾼들이 하정에게 몰려갔다.

 

 그들은 합심해 하정을 출입문 밖으로 몰아내었다. 쫓겨나는 와중에 그녀의 보따리와 쓰개치마가 면주전 바닥에 떨어졌지만 챙겨주는 이는 없었다.

 

 하정은 일꾼들의 힘에 밀려 길바닥으로 넘어졌다. 일꾼들은 넘어진 그녀를 본체만체 하고 5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번지르르 하게 생긴 만큼 인정머리 없는 금명에게 화가 났지만 지금은 인정을 따져 물을 상황이 아니었다. 사기꾼을 잡아야 했다.

 

 바닥에서 일어나 툭툭 먼지를 털어봤지만 젖은 옷에 묻은 흙은 털어지지 않았다. 서둘러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가짜 서금명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봐, 처자!”

 

 언제 밖으로 나왔는지 염서방이 하정의 곁으로 와 있었다. 그의 손에는 보따리와 쓰개치마가 쥐어져 있었다.

 

 “이거 가져가야지.”

 

 염서방이 안쓰럽게 하정을 보며 짐을 내밀었다.

 

 “그 사람 서가락이라고 해. 본명은 모르겠고 신이 날 때면 언제든 구성지게 가락을 뽑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렇게들 부르지.”

 

 “저 근데 어디 사는지 아세요?”

 

 “서소문 쪽에 산다고 들은 거 같기는 하네.”

 

 “고맙습니다.

 

 하정은 그에게 고개 숙여 꾸벅 인사를 한 후 뒤돌아서 부리나케 뛰었다.

 

 ***

 

 꽁지 빠지게 도망쳐온 서가락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쫓아오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죄 짓고는 못살겠네. 그나저나 하필 5방에서 마주칠 게 뭐람.”

 

 서가락은 삐질삐질 솟아 나온 이마의 땀방울을 닦으며 서소문을 향해 걸으며 중얼거렸다.

 

 “그 계집애가 운종가에서 날 찾아 다닐텐데... 아이씨, 일도 못하겠네. 어디 다른 데라도 가야되나...”

 

 하는데 콰당! 그만 무엇엔가 걸려 길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아이쿠, 아이구 다리야.”

 

 넘어진 몸을 일으켜 앉아 아픈 다리를 매만지는데 그의 오른팔이 휘리릭 공중으로 끌어올려졌다. 그가 얼굴을 들어 보는데 헉! 하정이었다.

 

 뭐라 운을 떼어보기도 전에 하정은 새앙머리를 묶고 있는 댕기를 휙 풀어 그의 오른쪽 손목과 자신의 왼쪽 손목을 함께 칭칭 동여매었다.

 

 “남의 돈 떼어먹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정이 눈을 부릅뜨며 그를 일으켜 세우고, 발밑의 보따리와 쓰개치마를 챙겼다.

 

 “자,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다른 말 필요 없어요. 돈부터 내놔요.”

 

 “내가 갚으려고 했어. 정말이야.”

 

 “관가에 가야 돈을 내놓을 거에요?”

 

 “아잇, 그래! 차라리 관가로 날 데려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오히려 서가락이 역정을 내었다.

 

 “좋아요! 가요. 가면 뭐 나라에서 해결해 주겠죠.”

 

 하정이 댕기로 묶은 팔을 잡아끌자, 좀 전의 기세는 어딜 갔는지 서가락이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내 얘기부터 들어봐.”

 

 “무슨 얘길 들어요? 아저씨 같은 사람은 옥살이를 해봐야 해요.”

 

 “옥살이를 해도 갚을 돈이 없어.”

 

 “뭐, 뭐라구요?”

 

 서가락의 팔을 잡아끌던 하정이 주춤했다.

 

 “내가 오죽하면 동무에게 사기를 쳤을까.”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해요? 다 빼앗기고 조금 밖에 남지 않은 땅을 팔아 마련한 돈이에요. 우리 가족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려고 그랬다구요.”

 

 지방에서는 가뭄으로 인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하지만 나라에 낼 세금은 줄어들지 않았다. 해서 돈 많은 양반에게서 빚을 내어 세금을 내고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또다시 농사를 지어보지만 이자도 갚지 못하고 빚만 늘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농부들이 빚을 갚지 못하자 양반들은 그 땅을 빼앗았고, 그리하고도 빚을 감당할 수 없는 농민들은 식솔들을 이끌고 야반도주를 감행하기도 했다.

 

 하정의 집안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빚을 내고 빚을 갚느라 소유하던 땅을 야금야금 양반에게 빼앗겼다. 이러한 때 아버지의 동무이자 한양 면주전 시전상인이 되었다는 서금명이 찾아왔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근데 나도 하나뿐인 자식 살리려고.. 그 방법 밖에 없었어.”

 

 “그럼.. 아저씨 집이라도 내놓아야죠. 집으로 가요!”

 

 “잠깐! 집은 안돼. 아픈 아이가 있어.”

 

 “저도 아저씨한테 속아 마음이 너무 아프거든요. 가요, 어서! 아니면 관가로 먼저 가서 집으로 빚 갚고 옥살이도 하실래요?”

 

 풀이 죽은 서가락은 체념한 눈빛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면주전 5방의 일꾼들이 새로 들어온 옷감들을 창고로 옮기고 있었다. 금명은 염서방이 내민 문서들을 보며 옷감의 목록들을 살피고 있을 때,

 

 “주인장 계시오?”

 

 중년의 사내가 큰 소리를 내며 5방 안으로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도 그의 차림새가 양반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굴빛만큼은 기세가 등등해 보였다.

 

 “예, 제가 이곳의 주인입니다.”

 

 금명이 사내에게 나서며 공손히 말했다.

 

 “대윤 윤대감 댁에서 왔소.”

 

 금명은 흠칫 놀랐다. 대윤 윤대감은 이 나라의 권세를 지고 있는 세자의 외숙부였다. 그동안 금명 자신이 윤대감 쪽에 줄을 대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매번 허사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윤대감측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셔 온 것이 아닌 스스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금명은 놀란 티를 내지 않고 차분히 응대했다.

 

 “이 누추한 곳에 어떻게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진하정이라는 도원을 찾아왔소.”

 

 진하정? 이름이 익숙하기는 한데 전체 면주전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도원은 없다. 그런데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한지... 앗! 그 계집애!

 

 사기 당한 줄도 모르고 가짜 문서를 들고 왔던 그 계집애였다. 그녀가 보여주었던 문서에 진하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도대체 그 계집애를 윤대감이 왜 찾는다는 말인가?

 

 “그 사람을 어찌 찾으십니까?”

 

 속마음과는 달리 금명은 다시 차분히 물었다.

 

 “우리 아가씨께서 그 도원에게 은혜를 입으셨소. 그걸 몰랐소?”

 

 “아.. 죄송합니다. 저도 밖에서 일을 보고 조금 전에 왔습니다.”

 

 “대감마님께서 진하정 도원에게 사례를 하시겠다고 데려오라 하셨소.”

 

 기회다! 그토록 어렵던 대윤 윤대감과 연을 맺을 절호의 기회가 금명에게 찾아왔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근데 이를 어찌합니까. 진하정 도원은 전방의 일로 인해 도성 밖에 있습니다. 저희가 가서 데려온다 해도 시간이 꽤 걸릴 듯 합니다.”

 

 잠자코 옆에서 듣고 있던 염서방이 금명의 거짓말에 흠칫했다.

 

 “그럼, 돌아오는 대로 기별을 해주시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금명은 태연하게 사내를 출입문 밖에까지 따라가 배웅을 했다. 금명이 5방 안으로 들어서자 근심이 깃든 표정의 염서방이 물었다.

 

 “서행수, 어쩌려고 그래?”

 

 “대윤 윤대감을 만날 수 있는 기횝니다. 놓칠 수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우선 아저씨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조금 전 가짜 문서를 들고 온 계집애를 찾아오세요. 그 계집이 진하정입니다. 아마도 여리꾼을 찾아다닐테니 그 자를 먼저 찾는 게 빠를 겁니다.”

 

 “알았어.”

 

 염서방은 옷감을 옮기던 일꾼 두 명을 데리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

 

 “이거 좀 풀어주면 안될까?”

 

 자신의 초가 앞에 당도한 염서방은 혹시나 누가 하정에게 매어져 있는 자신의 팔을 볼까 안절부절 했다.

 

 “안돼요.”

 

 “아이도 있고, 애 엄마도 있는데 이렇게 하고 가면 놀랄 거야.”

 

 아이라는 말을 듣자 하정은 주춤했다. 그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그가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자신을 보고 도망쳤던 사람이었다. 하정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부여잡으며 사기 행각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요량으로 물었다.

 

 “물어볼 게 있어요.”

 

 “뭔데?”

 

 “면주전 5방 주인이 서금명인 거 맞아요? 아저씨랑 이름이 같아서 우리 식구들에게 5방 주인 행세를 한 거에요?”

 

 “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서가락이 기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여리꾼은 뭐에요?”

 

 “그게..운종가를 찾은 손님을 전방에 데려가서 물건을 팔면... 돈을 받을 수 있어.”

 

 “그러니까 호객해서 돈 받는다는 거네요?”

 

 “어.”

 

 하정은 자신의 식구들이 왜 서가락의 말에 넘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 비록 시전상인은 아니었지만 운종가에서 호객행위를 하며 시전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지식과 여리꾼으로 익힌 말솜씨로 그녀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속아 넘어 간 것이다.

 

 하정은 오른 팔목에 걸쳐 있는 쓰개치마를 옮겨 댕기가 칭칭 감겨 있는 손목을 덮었다. 댕기를 풀어줄 것이라 기대했던 서가락이 흠칫 놀랬다.

 

 “아, 이봐...”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요. 두 번 속을 수는 없거든요. 저랑 같이 행동하시면 댕기 보일 일은 없을 거에요.”

 

 서가락 초가의 안방 문이 열리며 천수댁이 죽그릇이 든 쟁반을 들고 나왔다. 그녀는 방문을 닫지 않고 안을 향해 말했다.

 

 “천수야, 봄바람이 시원하네. 문을 잠시 열어 놓을게.”

 

 힘없이 벽에 기대어 앉은 여섯 살의 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 밑의 짚신을 신던 천수댁이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고 놀랐다.

 

 “천수 아버지!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어.. 소, 손님을 모시고 왔어.”

 

 천수댁은 서가락 옆에 있는 하정을 보았다.

 

 “손님요? 누구신데요?”

 

 “왜 있잖아... 100냥을 빌려준 내 동무.. 그 사람 딸이야.”

 

 하정은 흠칫 놀라서 서가락를 쳐다보았다. 그는 애써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서가락은 그녀의 식구들에게만 거짓말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에게도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천수댁은 하정을 반가워했다.

 

 “어머! 그래요? 어서 와요.”

 

 천수댁은 죽그릇 쟁반을 얼른 마루에 놓아두고 하정 가까이로 다가왔다.

 

 “내 생전에 아버님 만나서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은혜는 꼭 갚을 거에요. 아니 죽어서라도 갚아야지.”

 

 “아니.. 뭐..”

 

 하정은 사실을 모르는 천수댁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아버님이 돈을 빌려주셔서 명의를 찾아갈 수 있었어요. 우리 천수가 이렇게 살아난 것은 다 아버님 덕택이에요.”

 

 하정은 천수댁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천수댁 옆으로 문이 열린 안방이 보였다. 창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남자 아이가 보였다. 아픈 아이를 보니 하정의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이가 여전히 아픈가봐요.”

 

 “두 달 만에 훨씬 좋아진거에요. 예전에는 앉아 있지도 못한 걸요.”

 

 하정은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한양에는 무슨 일로 온거에요?”

 

 서가락의 불안한 눈동자가 말하지 말아달라고 하정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하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저.. 그게.. 사기를...”

 

 “마침, 여기 있었네.”

 

 하정이 우물쭈물 하는 사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하정이 고개를 돌려보니 염서방이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은 죄가 있어 서가락이 화들짝 놀랐다.

 

 “여, 염서방이 이곳에 어쩐 일로...?”

 

 “자네를 만나러 온 게 아니고 이 처자를 만나러 왔네. 처자 이름이 진하정이라 했지?”

 

 “예. 제가 진하정입니다.”

 

 “우리 행수가 보자고 하시네.”

 

 “행수요? 그 분이 누구신데요?”

 

 하정은 서금명이 5방의 주인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가 행수라고 불리어지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조금 전 전방에서 본 분 말이야. 서금명 행수.”

 

 뭐, 매정하게 날 쫓아냈던 그 남자가 나를 보자 했다고?

 

 그녀는 그가 한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사기꾼을 찾았으니 가서 물어봐. 그리고 여기서 당장 나가.

 

 나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나를 찾는다고? 왜?

 

 ***

 

 ‘이곳이 면주전 행수가 일하는 곳이구나.’

 

 금명의 집무실은 5방의 2층에 있었다. 2층에는 행수의 집무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규모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였고, 다음이 행수 집무실 그리고 염서방과 문서작성을 맡아 하는 서사(書師)가 함께 쓰는 방이 있었다.

 

 하정은 좋은 목재를 사용해 만든 고급스러운 책상과 탁자 및 장식장 등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길래 이렇게 꾸며 놓았을까?’

 

 이곳에 온 목적을 잊은 채 하정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탁.

 금명이 가볍게 책상을 쳤다. 이 소리에 하정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 없는 얼굴이 방 안의 분위를 냉랭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사기꾼은 잡았나?”

 

 “예.”

 

 “돈도 돌려받았어?”

 

 “그건.. 아니요.”

 

 “그럼, 기다리고 있으면 받을 수는 있나?”

 

 매정하게 쫓아낸 사람이 자신의 돈 걱정을 해주는 이상한 상황에 하정은 대답 보다는 경계심이 생겼다.

 

 “그건, 왜 물으시는 건데요?”

 

 “나도 돌려 말하는 거 싫으니 직접적으로 묻지. 나와 거래를 해보는 게 어때?”

 

 “예? 거래요?”

 

 놀란 하정의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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