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늦은 겨울밤
창문을 열고 그 옆에 앉았습니다
방금 마신 아일랜드산 흑맥주의 향
그리고 알싸하게 맴도는 담배의 향
늦은 겨울밤
궁상맞은 향들 그 옆에 앉았습니다
눈을 감은 코끝에서 시리는 향들
그 향들이 거기 있습니다
어린시절 서재에서 풍기던 아버지의 향
고향집 부엌에서 흐르는 어머니의 향
지금도 생각나면 술잔을 기울이는 그 녀석들의 향
내 일상의 향기
그리고
가슴설레 잠 못들던 첫사랑 그 소녀의 향
힘들고 지친 내게 무릎을 내어주는 그녀의 향
마른 입술을 고요히 적셔주던 그 여자의 향
안녕이라 말하며 돌아서 걷던 그 사람의 향
부드러운 젖가슴을 내 눈물로 적셨던 그 사랑의 향
그 사람들의 향기
그러고보면 그렇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만
지나간 사람들
제 추억에 또렷이 자릴 잡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제게 향기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 아름답던 얼굴
그 곱던 목소리
그 따사한 숨결
이 모든 게 세월의 모래에 쓸려 모서리를
잃고 모두 둥근 자갈이 되었어도
그 사람은 제게 달콤한 향기로
아직 남아있는 것입니다
저도 그 사람 내 사랑에게
어떤, 향기로 남았을까요?
당신이 향기로 제게 남으신 것처럼
당신 맘속 수많은 방들의 한 켠에서
저도 제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