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으로 보낸 편지>
0-프롤로그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의 밤. 한 남자아이가 산에 올라 혼자 앉아있다. 아이가 내려다보는 도시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혼란스럽다. 그것이 소년이 올라온 이유이다.
그날 정오쯤이었다. 아이가 평소엔 잘 가지 않던 동네들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웬만해서는 잘 가지 않는, 아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일명 달동네까지 구석구석 휘젓고 다녔다. 분명 평일에다 해는 중천에 가까이 가고 있었지만 아이는 학교가 아니었다. 또래보다는 조금 큰 키와 잘 빠진 몸에 서글서글하고 아주 얇은 쌍꺼풀이 있는 눈, 날카로운 턱, 맵시 있는 붉은 입술, 크고 높은 코, 하얗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하얀 피부, 독특한 헤어스타일까지. 이 아이는 그런 동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아, 여기도 그냥 서울이구나. 심심해 죽겠어.”
어느 골목을 지나다 아이가 말했다.
사실 그날 아침 아이는 학교에 갔었다. 언제나처럼 7시도되기 이전에 등교해 가장 먼저 교실 문을 열었다. 3학년 들어서 학교에 오면 매일 가운뎃줄 맨 뒷자리에서 잠만 자는 이 아이는 또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앉았다. 그때, 앞문이 열리더니 평소엔 8시 반은 넘어서 교실에 얼굴을 비치던 소년의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어,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음, 너도 정말 일찍 오는 구나. 그래서 학교서 잘 거면은 왜 일찍 오냐? 집에서 더 자지.”
“칫…, 전 밤에 공부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뭐 어쨌든 축하한다. 외고에 붙었다면서? 요놈 참 신기하지. 학교에선 잠자거나
수업 중에 딴 짓만 하는데 말이야.”
“아 그거 참, 거야 영어공부나 좀 한 거고요. 공부는 저녁에, 밤에 한다고요. 그리고 1, 2학년 때는 제가 놀았나요?”
“알아, 알아. 너 외고 간다고 잠도 안 자가면서 열심히 한 거.”
“이제 학교에서 맘 놓고 자겠네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그런데 말이다….”
“네, 뭐요?”
“네가 지금 외고에 붙었잖니. 그것도 지방에 있는 외고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요?”
“아직 친구들은 고입고사가 안 끝났잖니. 그런데 너 혼자 좋은 학교 붙어서 이렇게 노는 모습 보여주면 애들한테 별로 좋지 못 할 거 같구나.”
“그럼 저보고…?”
“애들 대부분이 가고픈 고등학교가 경각에 달려있는 애들이잖니.”
“그럼 저보고 집에 가라고요?”
“그게… 그래, 내가 그냥 출석으로 처리해 줄게 고입고사 끝날 때 까지만 집에서 좀 쉬거라.”
“뭐…, 저야 고맙죠. 그럼 진짜 가도 되나요?”
“고맙다. 이해해 줘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정말 애썼다. 플래카드에 이름은 제일 먼저 걸어주마.”
“고맙습니다. 다 선생님 덕이죠, 뭘.”
이 아이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다. 40대 중반의 통통한 여선생님이 제자를 안아주었다.
학교를 나간 소년은 집으로 가지 않은 채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평소에 자신의 발이 닿지 않았던 곳은 다 돌아다닐 요량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해가 서쪽에 가까워가기 시작했다. 소년이 미아리의 어느 언덕길을 넘어가고 있을 때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하, 하이, 필. 음 예 아이 해브 섬띵 투 두. 예 쏘리….”
원어민 강사와의 통화는 언제나 그에겐 고역이었다,
“얘는 왜 만날 오라는 거냐? 이제 다 끝났는데.”
아이는 투덜거리더니 다시 버스를 타고 남산까지 돌아갔다.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소년이 다 어두워진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책이라곤 없는 가방에서 시디플레이어와 시를 끄적이는 노트를 꺼내려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가방을 닫는다. 그리곤 전화를 한다.
“김성준이, 얼렁 튀어와라. 남산이다. 아, 진짜 헛소리 말고 튀어와.”
잠시 뒤에 다른 남자아이가 소년이 앉아있는 벤치 뒤로 다가온다.
“이 새끼가 돌았나? 내가 니네 집 종이냐? 이 시간에 여긴 왜 불르냐? 나랑 데이트라도 할거냐? 고백이라도 할라고?”
“너도 과학고 붙어서 어지간히 할 거 없다매. 불러준 거 고맙게 여겨라. 잔말 말고 여기 앉아봐라.”
“뭔데? 아, 맞다 너도 그 외고 붙었다며? 맨날 필인지 팔인지 하는 외국인이랑 놀더니 붙네, 히히. 그기다 너 이제 머리 빡빡 밀어야긋네.”
“빙신아, 외고가 어디 영어 잘해서 가는 데냐? 나도 자연계 갈 거다. 그리고 머리는…, 나도 모르겠다.”
“미친놈, 그럴 거면 과고 시험이나 봐보지 그랬냐? 너가 의대라도 갈려고 하냐? 글쟁아.”
“너 죽일 기운도 없다. 여튼 나 여행이라도 가볼까 하는데….”
“뭐? 나랑 가자고? 나 그지다. 그리고 과고에 입학전 교육받으러 가야하걸랑.”
“그지 같은 새끼야, 너 까짓 놈 데리고 다닐 마음 없거든요. 여행은 혼자 다니는 거다.”
“말도 참 이쁘게 하지. 그럼 난 왜 불렀냐?”
“너 같은 놈한테라도 헛소리 같은 조언 좀 받을라고. 말 좀 해봐라.”
두 소년은 서로 피식 웃는다.
“미친새끼…, 난 모르겠고 필한테 물어봐라 외고 갈 건데 양키 애한테 물어봐야
지.”
“섀끼…, 말도 참 이쁘게 하네요.”
벤치 양 끝에 두 소년이 앉아서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 서울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1.
나는 분명 어릴적부터 보통가정의 보통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의 높은 교육열 탓에 안 다녀본 학원이 없었고, 철이 좀 들고 나서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기타연주 등 남들이 잘 하지 않는 것까지 스스로 찾아 배웠다. 잘난 척 같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콧대도 높으며 피부도 깨끗하고 희었다. 한마디로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오죽하면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나서면 아역배우냐는 질문에 어머니가 성가셔하셨을 정도였으니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키도 큰 편이었고 운동으로 몸매 또한 다른 아이들에 비해 근육질이었다. 머리모양도 시대를 앞섰던 듯하다. 당시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따라해 다들 옆머리와 뒷머리는 짧고 앞머리는 길게 하고 다녔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다시 유행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지만. - 하지만 그게 나에겐 얼마나 우스웠는지 결코 따라하지 않았다. 나는 만화영화 ‘들장미소녀 캔디’에 나오는 ‘테리우스’처럼 기르고 다니던지 아니면 요즘 많이 보이는 연예인들처럼 귀밑머리와 뒷머리를 조금 기르고 앞머리는 좀 짧거나 눈 한 쪽을 가리는 식의 그 당시에는 아무도 잘 하지 않던 머리모양을 하고 다녔다. 또 내가 다른 보통 아이들과 가장 달랐던 점은 여행을 자주 다녔다는 것이고 언젠가 혼자 어디든지 떠나 볼 요량으로 유치원 때부터 어른들에게 받는 돈이나 용돈 등은 대부분 통장에 저금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인지 지금도 나는 좀처럼 군것질을 하지 않는다.
어느덧 나도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자의든 타의든 공부를 열심히 했던 나는 명문 사립 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다. 합격자명단을 보고 나에게 기쁨은 손톱만큼이나 느껴졌을까?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외국어고교에의 합격은 자유로움의 시절이 끝났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더 이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 라틴어는 공부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입시만을 위한 공부를 시작해야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현실은 내 평생에 처음으로 강력한 두발규제에 머리를 박박 깎고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학교와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설렘이나 기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10대로서의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어머니를 밤낮으로 설득하기 시작했고 1주일간의 대치상황 끝에 내가 지금까지 모은 돈과 부모님의 약간의 도움으로 친구들의 고입고사가 끝나는 다음날 미국으로 나만의 여행을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떠나기 전 나는 나름대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목적지와 내가 가서 해야 할 것 그리고 기간이나 예산 등 생각해야할 것들이 무척이나 막막하리만치 널려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평소에 나의 영어공부를 도와주던 학원의 외국인 강사 필에게 도움을 청했고, 비로소 목적지까지 정확히 정하게 되었다. 바로 드넓은 사막으로.
삼면이 바다인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드넓은 곳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거기에 마침 NASA기지가 있는 휴스턴 출신 외국인 강사 필과의 대화를 통해 사막에 가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이었다. 마음을 굳히고 난 뒤에 나는 나 스스로 여행사를 찾아갔고, 혼자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의 긴 줄을 지나 영어인터뷰를 거쳐 비자를 획득했으며, 비행기표 예약까지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다란 트렁크에 우리나라 학생들이라면 모두 한 번쯤 펼쳐봤을 ‘수학의 정석’여섯 권과 이미 10번은 족히 봐서 너덜너덜해진 ‘성문종합영어’, 허창덕 신부님의 라틴어책들, 그리고 10권 가량의 소설책, 필기구를 챙겨 넣었다. 배낭도 엄청나게 많은 옷가지와 세면도구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어깨에 메는 가방엔 전자수첩과 책 한 권, 노트까지 넣음으로써 떠날 준비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드디어 친구들의 연합고사가 끝났고 나는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 할 것 같아 미안하고 나중에 잘 돼서 만나자는 등의 인사치레를 나누고는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부터 나의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수하물을 전부 보내고 든든하게 점심식사까지 끝낸 나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왜일까? 정말 심장이 떨려야 할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냥 평소처럼 편안했다. 편안하게 여행자들의 얼굴을 구경하다 드디어 로스엔젤레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한산했다. 그날은 미국으로 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비행기 한 줄을 통째로 전세를 내다시피 하였고, 승무원이 쉬지 않고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또 기분을 내어서, 승무원이 내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권하는 와인을 주는 족족 받아 마셨다. 그러나 결코 지루함에 잠들거나 와인에 취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계획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세워졌다 허물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잦은 여행으로 터득한 시차적응법인 ‘도착해서 그곳의 밤이 되기 전까지, 그들이 잠자는 시각까지는 잠들지 않는다.’를 지키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도 잠들 수가 없었다. 가면서 나는 창밖을 이따금씩 바라봤다. 오랜 기다림 뒤 드디어 미국 대륙의 드넓은 평원과 사막, 우리나라처럼 높지는 않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게 펼쳐진 도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첫 번째 나의 기항지인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했고, 정오쯤 이었다. 나에겐 다음 나의 목적지로 가는 비행기가 떠날 때까지 4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사실 여유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제 정말로 한국말은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고, 엄청나게 넓은 공항에서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티켓팅부스를 찾아야하며, 나 스스로 영어로만 티켓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닥쳐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겨우겨우 30여분 만에야 티켓팅부스를 찾았다. 그리고 영화에서 자주 본 듯한, 티켓팅부스의 뚱뚱한 흑인 아줌마에게 첫 미국에서의 영어를 떼었다.
“Window seat, please?(창가로 주실래요?)”
혹여나 늦을까봐 나는 바삐 게이트를 찾았다. 혼자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스치는 사람들 중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밖에 안 보이는듯했고 뭔가 새로운 세계에 던져졌다는 오묘한 기분도 들었다. 세상을 마치 노출카메라로 찍은 듯, 나는 재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잔상이 느껴졌다. 군중 속에서 긴장감과 오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나는 여유 있는 척 게이트 옆 상점가 벽에 기대있으면서 영어듣기 시험을 보듯 공항 방송에 귀기울였다. 주의력이 흐릿해 질 때 쯤 드디어 내 비행기의 탑승 방송이 나왔고 나는 게이트로 향했다. 아까 본 듯한 흑인 아줌마가 아직 내 차례가 아니라고 막아서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곧 우리와 조금 다른 미국 국내선의 탑승법을 이해했고, 무사히 내가 가려는 사막의 주(州)의 주도(州都)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덩치는 비슷했지만 우리나라 항공사의 비행기들과 달리 외관부터 다소 남루한 비행기는 내부 또한 우리나라 비행기들만 못 했다. 물론 친절하고 젊은 승무원들 대신 덩치 큰 금발 아줌마들이 승무원이었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 도 있지만. 어찌됐던 볼품없는 회색 펭귄같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며 나는 끝없이 펼쳐진 어스름속의 사막을 응시했다. 잿빛 사막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살아갈 삶처럼 나를, 내 발밑을 미끄러져 흘러갔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