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는 그 즈음 십여명이 넘는 신생아들이 있었다.
남자아이는 파란색, 여자아이는 분홍색 포대기였다.
아이 손목에는 헐렁하나마 000아기라는 띠지가 붙어있었다.
산모의 손목에도 크기가 다른 띠지가 붙어있었다.
김영옥은 그 띠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기쁘게 태어난 아기,
슬프게 태어난 아기,
돈 걱정 없이 병원에 온 산모,
병원비를 걱정하는 산모, 어떻게 인생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나 역시 그렇게 축복과 같은 탄생은 아니지.
태어난 곳은 시골, 시골도 그렇게 멀 수가 없다.
서울에서 내려가자면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그 내려서 두 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타야했다.
거기서도 또 두시간을 털털 거리는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산골,
맏이로 태어나 아홉 살 때부터 밥하고 온갖 집안일은 다 해야했고 동생들 돌보느라 학교도 뛰어뛰엄 다녔다.
서울가면 뭐든지 될줄알았는데..돈도 많이 벌고 못갔던 고등학교 공부도 하고..
그 놈의 돈..
‘ 우리 애기가 좋은 집에서 태어났더라면..나처럼 그지같이 살지말고 고생하고 살지않았으면 좋을텐데... 어쩌자구 나같은 엄마를 두었니...’
자기처럼 가난하게 살면 어쩌나싶어 울컥해진다.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아니 부잣집아니어도 병원비걱정없는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아냐 아냐 그냥 제대로 결혼한 부부사이에서 태어났다면...
아까 본 부부마냥 그렇게 행복한 집에서말야..
나야 더 거지같이 산들 괜찮은데... 내 아이만큼은 그렇게 살지않았더라면....
그렇게 김영옥은 병원에서의 하루를 보냈다.
몸은 언제 아이를 낳았더냐싶을 정도로 가벼웠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의 산모인데다 여자아이여서 그랬을까.
김영옥은 문득 지갑안의 돈이 얼마나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병원비가 얼마정도냐란 자신의 질문에 간호사는 별다른 치료가 없었으니
기본비용정도만 나올거라며 시쿤둥하게 정말 성의없이 대답했는데 차마 그 기본비용이 얼마인지 묻기가 두려웠다.
내일쯤 금옥이한테 부탁을 해볼까. 그래도 아이낳을 걸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집도 아닌 금옥이뿐이다.
이런 저런 생각중에 언제 잠이 들었을까
젖이 불어오는 지 묵직한 가슴무게에 잠이 깼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고 신생아실에 들어가니 자신의 아이는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바로 옆에도 분홍색의 싸개에 쌓인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제 본 안경 낀 아저씨네 아이였다.
저 안쪽에서는 두 간호사가 아이를 목욕시키고 있다.
손이 서투른지 고참한테 혼이 나는 듯 했다.
“이렇게 하면 어떻해, 이리줘. 이리줘봐”
“아이참 그렇게 하지말라니깐. ”
카랑카랑한 목소리. 아마도 목욕시키는 게 쉽지않은 모양이다.
김영옥은 누워있는 신생아들을 주욱 보면서 이 중에서 자신의 아이가 제일 불쌍하다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목욕을 시키고 있는 두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둘은 아이 목욕을 두고 입씨름을 벌였다.
“이렇게 하면 어떻해. 잡아, 잡으라고 아니 그거 말고...”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며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두 사람.
자신이 들어온 거는 알고 있는지..
김영옥은 한참동안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측은하고 짠해서 코가 시큰거렸다.
싸개를 풀어 아기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만지다가 순간 머리가 쭈삣 서는 것 같았다.
띠지에 있는 이름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한 수 진.
신생아를 눕힌 침대머리맡의 이름표에도 한수진이란 이름이 적혀있는게 아닌가.
바로 옆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그제서야 알아챈 김영옥,
둘은 똑같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자고 있다.
머리색깔도 숱도 비슷한데다 자는 모양하고 얼굴도 비슷한 두 아이,
하루밖에 지나지않았으니 내 아이인지 남의 아이인지 언뜻 봐서는 구별가기 쉽지않다.
김영옥은 한수진 아이의 손목 띠지를 매만졌다.
띠지는 부드러운 플라스틱이었다.
구멍에 단추를 채우는 형식이었다. 만지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띠지는 툭하고 풀렸다.
너무나도 쉽게 풀린 띠지.
‘ 내 아이를 저 부부가 키워준다면...어차피 축복속에 태어난 아이는 그렇게 자라지않을까.
환경이 바뀌어도.’
누가 시킨 것 마냥 김영옥은 자신의 아이와 바로 옆에 누워있는 여자아이의 띠지를 바꾸었다.
점점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런데 손은 떨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고리는 너무 쉽게 벗겨지고 채워졌다.
간호사들은 여전히 자신쪽을 바라보지않았다.
왜그랬을까...왜 자신의 범죄행위를 모른체 해주는 걸까
김영옥이 서둘러 겉싸개로 아이를 싼다.
두 이름표까지 마저 바꾸고 돌아설 때 그제서야 간호사 누군가가 말을 붙혔다.
" 엄마, 아기보러 오셨어요?"
" 아...예...자고..자네요.."
" 이 시간에 아이들이 자는 것도 행복이예요. 좀 지나면 밤낮이 바뀌어서 얼마나 힘든지몰라요."
" 아..예..."
간호사 강순해는 방금 목욕시킨 남자아이를 자리에 뉘이느라 산모의 표정도 그녀의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못했다.
김영옥은 서둘러 신생아실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