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요? 퇴원하는 날 좀 챙겨주시지...전 애를 봐야해서 나갈 시간이 없는데..혹시 제 여동생을 보내도 될까요?”
“ 그러세요. 미리 연락만 주세요.” 간호사 오혜순이 대답했다.
김영옥이 어두운 밤 길거리에서 옷 갈아입는 것을 목격한 전파사 박봉우는 한동안 산부인과 환자복을 잊고 있었다.
그래봐야 남의 일에 오지랍이고 산부인과가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가게 귀퉁이에 있는 걸 박씨의 아내가 발견한거다.
“ 여보? 이거 뭐예요? 이것 산부인과 옷인데? 이게 왜 여기있는거야?”
박씨의 부인은 산부인과란 글자에 순간 욱해서 여섯 살 아래임에도 반말이 확 튀어나갔다.
“ 아니, 이게 뭐냐고?”
“ 아... 그거.... 아무것도 아냐.”
시쿤둥한 대답에 더 화가 난 박씨 부인은 어림짐작으로 시비를 턴다.
“ 아니, 남자 혼자 있는 전파사에 왠 산부인과 옷이야? 누가 애라도 낳어?”
“ 아, 또 시비건다. 혼자서 소설쓴다니깐.”
박씨는 마누라가 오만상상을 하기 전 빨리 털어야겠다 생각에 말문을 열었다.
여자가 갑자기 전봇대 뒤에서 옷을 훌러덩 벗더니 옷을 갈아입고는 차를 타고 가버린 것,
나가서 살펴보니 이 환자복이 있는 것.
박씨 부인은 남편의 말이 막힘 없는게 얼른 꾸며낸 이야기같지는 않지만 더더욱 궁금해졌다.
" 그게 언제적 얘기야? "
" 아. 지난 번 당신네 조카 서울왔다고 술 한 잔 하던날.. ..
" 그럼 얼마 안된거잖아. 근데 왜 당신은 왜 저걸 갖고있었어? 산모가 올까봐? 아니면 병원서 찾을 까봐? 당신이 안버린 건 그만치 상황이 수상한거잖아요. 당신이 가서 물어보면 되지. 이 근처에서 이런 여자를 봤는데 혹시 당신네 환자냐구?”
“ 아 그게 내가 할 일인가? 일도 많아 바빠 죽겠는데..”
“ 바빠 죽겠기는...술먹느라고 그렇지. 조용래 산부인과면 저어기 오거리에 있는 거잖아요. 한 번 가봐요. 혹시 또 알아요? 사람을 찾고 있는지...그런거 뭐 목격자같은 거...“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하다. 목격자란 말에 솔깃해진다. 병원에서도 누군가를 찾고 있다면 말이다.
‘안그래도 밥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한데 슬슬 갔다와볼까?’
박봉우가 조산부인과에 들어와서 둘레둘레하자 강순해가 물어본다.
“ 어떻게 오셨어요. 누구 찾으러 오셨나요?”
“ 아니요. 저는 좀 궁금한게 있어서....”
“ 뭔데요?”
“ 아, 얼마전에... 이 병원에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없어지지않았나요?”
강순해는 순간 뜨악했다.
하필이면 오혜순도 외출중이다.
조원장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일을 처리하라고 해서 내용을 정확하게 아는 건 두 간호사와 원무과 최씨뿐이었다.
“ 아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강순해의 도도한 말투에 박봉우는 당황했다.
‘어라, 내가 환자복을 갖고 있는데.. 뭐야, 사람이 도망간게 아냐?’
“ 아니, 언제더라. 몇 주전인가..이 병원에서 밤에 한 여자가 나갔을텐데...”
“ 없다니깐요. 그런일이 왜 있겠어요.”
박봉우는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내가 뭘 바라고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길에 보탬이 될까싶어서 온건데..이것봐라. 거짓말을 하고 있네’
그 때 오혜순이 들어왔다. 강순해와 웬 낯선 남자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 무슨일이세요?”
오혜순은 경계하면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 아니, 내가 몇주일 전에 웬 여자가 한밤중에 이 병원복을 입고 가는 걸 봤다니까요..”
그러면서 자신이 들고 온 병원복을 꺼내보였다.
“ 내가 뭘 얻으려고 온게 아니라 혹시나 그런 일이 있으면 정보나 주려고 온건데...
뭘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아니 그럼 그 여자가 환자복만 훔쳤다는 거요?
그럼 왜 길거리에서 발가벗고 옷을 갈아입겄소?”
두 간호사는 그제서야 상황판단이 되었다. 김영옥의 동선이 그려졌다.
그 날. 그 여자가 도망간게 맞아. 둘은 잠시 침묵했다. 이 이야기를 조원장에게 해야하나...
오혜순이 결심한듯 남자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
오혜순 혼자 섣불리 결정할 일이아니었다.
남자는 들어가면서도 계속 꿍얼꿍얼 혼잣말을 해댔다.
언니의 심부름으로 때마침 병원에 들른 한수진의 여동생 한연진은 세 사람의 실랑이를 보았다.
안그래도 처녀혼자 산부인과에 들어가는 게 찝찝해서 얼른 일을 보고 나가려는데 이게 왠 소란이야.
내용은 그런거같았다.
여자가 한밤중에 환자복을 입고 나갔다.
도망치는 것 같다. 옷을 갈아입고는 어디론가 갔다.
목격을 했다.
왜 거짓말을 하냐.
애를 낳고 도망을 갔는지 환자복을 훔치러 왔는지는 모르겠다.
‘저 아저씨도 웃긴다. 남이 버린 옷은 왜 들고온대.
결국 여자가 옷갈아입는 걸 다 봤다는 거잖아. 변태같으니라고.’
한연진은 눈치가 빠른 편이다.
저 아저씨 때문에 몇십분을 더 소비할 수는 없다란 생각에 얼른 재촉을 해본다.
“저기요~..한수진씨 애기 사진하고 증명서 좀 빨리 주세요.”
진료실에서 나온 어린 간호사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있었다.
허둥지등 자신과는 눈도 마주치지않았다.
무슨 일이야.
당연히 한연진은 병원에서 본 그대로를 언니 한수진에게 모두 전했다.
“ 언니, 그 아저씨 변태같아. 아니면 돈좀 뜯으러 왔던가. 안그래?”
“ 그래? 이상한 사람이긴 하다. 근데 몇주전이면 나도 병원에 있었을 때인데...난 그런 얘기 못들었다.”
“ 별 사람이 다 있어. 그리고 앞으로 산부인과 심부름은 시키지말아줘, 남사스럽다구. 들어가는 것도 창피해. 민아는 자? 우리 조카 생각해서 참는다. 내가 ”
한수진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병원이 그렇게 조용했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마음은 왠지 무거워진다.
어찌되었든 민아와 비슷한 때에 그런 여자가 있었다는게. 어떻게 병원에서 도망을 치지? 왜 그런걸까. 애는 낳고 도망을 친건지. 아니면 유산하고 도망을 친건지. 별일이네 별일.
‘아이. 내가 다 심란해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