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우가 내민 병원환자복 주머니에는 “김영옥 11.8. 8시.25분 pm 여아”란 띠지도 같이 들어있었다.
“ 하. 애기를 낳은 사람이네. 애기를 낳았어. ” 박봉우는 연신 같은 말을 반복했다.
“ 애낳고 도망간겁니까?”
병원 관계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 아니. 여자가 애를 낳고 도망갔으면 그 애는 어떻게 된 겁니까?”
조원장은 이번 일로 행여 다른 미혼모들도 아기를 낳고 도망갈 수 있는 허술한 병원이란 이미지를 가지는 게 제일 싫었다.
이미 아이는 병원문을 나간 뒤다. 어떤 산모가 도망치는 걸 봤다해도 문제가 될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입을 막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봉투밖에 없다. 이 인간도 그걸 노리고 온게 아닌가
“ 저희도 그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예. 그러니깐 곧 찾게 될 겁니다. 예.”
조원장은 봉투를 건네면서 아무일도 아닌 듯 건성으로 말했다.
“ 하. 나 이거 이거를 받으려고 한 건 아닌데...”
벌쭘하면서도 봉투안에 있는 게 여간 반가운게 아닌 박봉우.
박씨는 병원을 나오면서도 여전히 궁금한 몇가지를 물었다.
“ 근데 그 산모가 도망갔으면 그 애는 어떻게 되었어요? 그 산모는 여기 다시 안왔나요?”
“ ...저희는 몰라요. 경찰서에서 사람이 나왔으니까요. 그 뒤는 모르죠.”
박봉우는 봉투안의 금액이 궁금해져 대답을 기다리지않고 바로 병원밖으로 나왔다.
조원장의 생각과 달리 박봉우는 입이 무거운 편이 아니다.
술 먹을 일만 있으면 그 해프닝을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돈을 받아서인지 의기양양, 마치 목격이라도 한 것마냥 더 신나서 불려 불려 눈덩이처럼 크게 만들어 모험담인양 늘어놓았다. 아마 그 동네 사람들은 한 번씩은 다 들었을 정도로.
동생 한연진이 병원에서 받아 온 사진에는 아기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울고 있다.
발도장도 있다.
“ 아이 귀여워~ 이렇게 보니 또 다르네.. 애들은 열두번도 더 변한다더니...
태어났을 때 보면 당신 닮은 것도 같아요. 지금은 날 닮아가는 것 같고”
“ 그러게. 그 때랑 또 다른 느낌이다. ”
한수진, 강을남은 민아와 사진속의 두 사람이 다른 사람임을 전혀 눈치채지못했다.
눈을 감고 있는 신생아 아기들은 특별한 차이점을 찾아내기가 쉽지않으니깐.
김영옥이 바꿔치기 한 아기, 곧 한수진의 친딸은 경찰서에서 이내 근처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아기는 계속 울었다. 울음소리도 왜그렇게 서러울까.
보는 이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 지가 뭘 안다고 이렇게 서럽게 울까요? 어떻게 애를 버릴 수 있을까요?”
“ 그러게 말야. 산모가 도망을 쳤다지. 아마.”
“ 그렇게 생각없이 애를 낳고 가다니...쯧쯧쯧..저 애가 무슨 죄가 있어그래.”
“ 아가야. 꼭 좋은 집에 입양되거라.”
“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새끼도 키우기 힘든데 뭘 입양을 하겄어?
차라리 코쟁이들한테 가는 게 낫지.”
아기를 본 경찰들은 저마다 한소리를 했다.
아기를 데리고 간 고아원은 조산부인과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오십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있는 “소망의 집” 이다.
원장은 마흔이 넘은 여자 박안나였다.
박안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한참동안 바라본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어린아이들을 보아왔던 눈썰미로는 이 녀석은 분명 예쁠 얼굴이다.
오목조목 생긴 눈 코 입. 천상 여자.
볼이 발그레한 게 바같바람을 여러번 쐰 탓일게다.
“ 볼이 빨개요. 텃나봐요. 불쌍해라...볼이? 그래, 볼이...이름을 보리라고 지어야겠다.”
그 날부터 한수진이 낳은 아기는 보리란 이름으로 살아간다. 보리. 김보리.
김원장의 남편은
“ 거, 안그래도 불쌍하게 태어난 거 이왕이면 비싼 찹쌀로 짓지. 싸디 싼 보리가 뭐야.
가난냄새가 뚝뚝 떨어지게..”
라고 타박을 했지만 김원장은 보리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보리는 힘차게 우유를 빨다가도 갑자기 알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려서 보모들을 당황케했다.
그렇게.. 그렇게 보리는 첫겨울을 보냈다.
김영옥은 친구 금옥이가 아기의 행방을 알아봐주겠다란 말을 했을 때 심장이 정지되는 것 같았다.
가슴이 벌렁거려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아기 이야기를 계속 했다가는 본인이 저지른 범죄까지 털어놓을 것만 같았다.
‘안돼...누구도 알아서는 안돼...알면 나를 죽이려고 할거야. 특히 그 집에서는..한.수.진 그 집에서...
혀가 깨물린다해도 이 비밀만큼은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말아야 해.'
한 수 진이란 이름은 단 한 번 보았음에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만큼은 절대 만나면 안돼.
그러나 설거지를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어린아이 소리가 들리거나 어린 아이가 지나갈 때면 자신의 아기가 보고싶고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애가 얼만치 컸을까...좋은 부부에게 갔으니까 잘 살고 있겠지.’
그러다가 불현듯 혹시 자신이 나온 다음에 아기가 뒤바뀌었다고 알아챈 건 아닐까.
아냐. 나도 몰라봤는데... 하지만 그 엄마는 알아보았을지도 몰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냥 잠자코 있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병원을 다시 찾았다.
범인은 다시 현장에 나타난다고 했다.
병원입구까지 갔지만 차마 병원안으로 들어 갈 용기는 나지않은 그녀가 선택한 건 공중전화다.
" 저...몇달 전에 아이를 낳은 산모가 있는데요. 김영옥이라고..."
" 저희가 다 이름을 외울 수는 없어요. 언제낳은 누구시라고요?
오간호사는 시쿤둥하게 대답하다가 이름을 다시 한번 되물었다.
" 김영옥. 김. 김영옥씨? 옥시 그 때 아기놓고 그냥 가신 분 아녜요? 맞죠?"
" ... "
" 김영옥씨. 아니, 애기 엄마...듣고 있어요?"
" ...."
오간호사는 점점 더 목소리를 높히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 김영옥씨...그 때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로 오세요."
"........저. 저"
" 그래요. 말씀하세요 지금 어디세요?"
전화가 끊어지면 안된다. 다급해진 오간호사.
" 그 때는 사정상 그렇게 되었는데요. 병원비는 갖다드릴거예요. 근데 제 애기는 어떻게 되었는지..."
" 아니,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면 어떻해요? 아니 돈이 없으면 없다고 얘기를 하시던가..."
상대방이 말을 시작하자 아까의 다급함보다는 혼내는 입장이 되버린 오간호사.
" 예...죄송해요. 제가 꼭 돈은 낼거예요. 근데 제 애기는 어떻게 되었는지..."
" 아휴.. 산모님이 그렇게 가고 나서 병원이 발칵 뒤집어졌죠. 그 때는 경찰에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했어요 애기 엄마가 없는데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요. 그나 저나 어떻게 된거예요.“
“ 그럼. 그 때 저하고 같이 아기 낳았던 한수진씨도 퇴원 바로 했나요?”
“ 누구요? 한누구요? 그때가 언젠데요. 벌서 다 퇴원했죠”
“ 그럼...제 아이는?”“ 아니 그러니깐 말을 왜 끊어요? 그 때 경찰이 데리고 가서 지금 고아원에 있다는 거 같아요. ”'아, 아기가 바뀐 걸 얘기안하는 걸 보니 그 집에?
그럼 우리애는 그 부모밑에서 큰다는 거네.'
김영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은 참...얼마나 이기적인 것일까
고아원에 간 아기가 자신의 아기가 아니라는 걸 안 순간 그런 한숨이 나온다는게 말이다.
병원에서도 한수진도 아기가 바뀌었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알았더면 단번에 나올 얘기가 왜 아이를 바꿨냐고 묻거나 왜 그런짓을 했냐고 소리를 질렀을 게 뻔했다.
김영옥은 전화를 내려놓았다.
내 아이는 좋은 집, 부모있는 집에 갔다는 거네. 아까 바뀐 애는 고아원으로 갔다고?
‘내가 그런 게 아냐. 난 잘못한 게 없어, 간호사들이 아기를 잘 보지 않았기 때문이야’
오간호사는 이미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한참동안 혼자 떠들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허탈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 뭐야. 이여자. 이 김영옥이란 여자... 무슨 꿍꿍이야. 돈을 갖다준대놓고서는 언제 오겠다는 얘기도 없고,. 고아원으로 보내졌다면 어디 고아원으로 갔는지 물어봐야하는 거 아냐?
한수진이란 산모는 왜 물어보는거야. 진짜 이상한 여자네. 오기만 해봐라 아주..."
오간호사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가 이상한 기분이다.
종이에 김영옥이란 이름을 두어번 적었다.
끊어진 전화를 계속 바라본다.
알 수가 없어 이 여자. 도데체 자기 애를 고아원에 보낸게 다행이라고 생각한건가.
자기애는 어떻게 되었냐고 묻고 어떻게 되었는 걸 알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럼 아이가 어디로 갔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한수진...같은 날 낳은 산모를 물어본다?
그럼...한수진하고 알고 있었던 사이였나? 아니. 그렇지않았잖아.
두 사람 같은 분만실에 있었는데 서로 아는 사이같지않았어
이건 병원비가 문제가 아니라...혹시 한수진.
오간호사는 더 이상 상상을 멈추었다.
너무 무서웠다.
자기의 기억력에는 도저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않는다고 봐야한다.
얼마나 철저하게 아이들을 관리하는데. 김영옥이 한수진씨하고 엮일 일은 절대 없어.
그럴리는 없지. 다른 걸거야. 돈을 훔쳤다거나. 그래 그랬을거야.
강순해가 왔을 때 오간호사는 물었다.
“ 만약에 순해야. 너가 아이를 낳고 상황이 어려워서 버리고 갔다고 하고. 뒷 날 그 아이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뭐부터 질문할거냐?”“ 언니는 ..말만 들어도 무서워요...질문이요? 뭘 질문하겠어요? 건강합니까? 잘 살아있습니까? 만나볼 수 있습니까? 뭐 그런 것 아닐까요?”“ ......... 그렇지. 그런 걸 물어보겠지..”
오간호사는 김영옥에 대한 이야기를 잊기로 했다.
난 전화받은 것도 없고. 아는 바도 없고...누군지도 모른다. 모른다.
그러나 오간호사는 김영옥의 이름을 그 전화를 잊을 수가 없었다.
영옥은 아이게 대해 안심하자 다시 일상으로 편안히 돌아갈 수 있었다.
일자리를 구했고 열심히 돈을 벌었다.
보리는 다섯 살 때 한국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오랫동안 아기를 갖지 못한 부부였다.
여자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된 말 그대로 남자신생아를 원했지만 남자는 여자아이를 원했다.
여자의 눈에 딱 들어오는 아이는 없었다.
물건을 고르듯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에는 절실함도 설레임도 없다.
반면에 남자는 모든 아이들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 내 눈에는 모두 데리고 갔음 좋겠는데...다 이쁘고 건강해보이는데..."
남자의 말에는 진심이 있어보였다.
복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중에 보리가 눈에 띄었다.
두 손을 예쁘게 모으고 인사하는 보리.
" 몇살이야?"
남자는 아이 키에 맞춰 몸을 낮췄다.
" 다섯살이요."
감기가 걸렸는지 코에서 콧방울이 살짝 나왔다 들어간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아준다,
여자는 감기걸린 아이를 처음본 듯 경계한다.
" 감사합니다. "
깍듯하게 인사하며 저만치 뛰어가는 보리.
원장 박안나가 거든다.
" 보리라고 해요. 이쁘죠? 태어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여기를 왔죠. 착하고 순하고 머리도 좋고..."
머리가 좋다란 말에 여자의 눈빛이 흔들렸고 되물었더.
“ 머리가 좋아요?”
그러나 평생 키워야 할 자식을 결정하기란 쉽지않다.
그 날 결정하지못하고 돌아간 부부는 일주일 후 다시 와서는 남편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후보에 오른 보리는 어느 순간 그 어른 남자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 어허...이녀석.. 여보. 이 아이 좀 봐..날 좋아하나봐. "
어른 남자는 기뻐했다.
" 어머나. 우리 보리가 왠일일까.. 수줍음이 있는 아이인데..."
어른 남자는 그 말에 더 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 아저씨 좋아요?"
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아이의 엄마 혹은 아빠가 있는지 만약 있다면 누구인지를 물어보았다.
“ 그런 것은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
“ 버려진 아이인지. 아니면 부모가 죽었는지...”
“ 병원에서 데리고 왔다고 처음 말씀드렸는데... 그 이상은 모르시는게 낫습니다. ”
여자는 버려진 아이가 행여 자기 집에 화를 가져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김원장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 그렇게 자신없으면 데려가지말지. 그런게 다 걱정이면...’
남편뜻에 따르겠다던 여자는 좀처럼 결정을 못하는 눈치였다.
“ 이 아이가 오히려 축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않을까요?
아기가 있으면 온 집안에 웃음소리가 끊어지지않아요.”
여자는 반신반의하면서
“ 난 사내아이가 좋은데...”
여자가 말끝을 흐렸다.
" 이 아이가 여간 똑똑한 게 아니예요. "
김원장이 덧붙혔다.
똑똑하다란 말은 여자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 똑똑해요? 어떻게 아시죠? 아이큐라도.."
" 아휴. 애 아이큐검사를 어떻게 해요.
그냥 제가 천 명이 넘는 아이를 키운 경력으로 보니. 또래애치고는 꽤 똑똑하다는 거죠.
야무지고, 말도 빠르고. 수줍어서 그렇지 말을 하면 잘해요. "
여자는 그제서야 보리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똑똑하다구...?'
여자는 보리에게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보리는 작은 목소리지만 똑똑히 대답했다.
어른 남자가 말했다.
" 이 아이가 저를 선택했네요, 제가 아빠가 되고싶습니다 "
김안나 원장은 떠나는 남자를 조용히 불러세웠다. 그리고는 서류봉투를 건네주었다.
“ 이건 혹시나해서요... 아이 친엄마 이름하고 병원에서 알아 낸 기록입니다. 낳은 지 얼마 안되어 신고하고 이쪽으로 온 경우라 자세한 내용이나 도움될만한 건 없어요. 그래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신의 친부모를 찾고자한다면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지요. ”
남자는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내 몰래 자신에게 주었다는 게 어떤 뜻인지 금세 알 것 같았다. 조심스레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 이 아이는 우리 아이입니다. ’
그렇게 보리는 입양이 되었다. 보리는 기뻤다.
좋은 집이었다. 자신만의 장난감, 방, 옷이 생겼다.
엄마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가르쳐주었다. 이 집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말아야 할 것.
아빠는 너무 너무 친절했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내지않았다.
밥먹을 때도 자신의 밥그릇에 맛있는 반찬을 먼저 올려주었다.
가끔 엄마가 심하게 히스테리를 부릴 때 말고는 부족한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