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조갑박리
작가 : hippo66
작품등록일 : 201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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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리의 원점
작성일 : 16-10-06     조회 : 556     추천 : 0     분량 : 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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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기앓이를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 왔을 때도 여전히 엄마의 산후우울증은 나아지지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의 표정이 낯설고 두려웠다.

 

 어느 날 민석이가 자고 있을 때 파리가 계속 그의 얼굴에 앉았다 날았다를 반복했다.

 민석이가 깜짝 놀라 움찔했다. 보리는 아가의 움찔거림이 안타깝고 신경쓰였다.

 파리는 쫒아도 쫒아도 소용이 없었다.

 뭔가로 민석이의 얼굴을 가리면 되지않을까.

 보리는 그의 얼굴에 살짝 베개를 올려놓았다. 파리가 앉았을 때보다 더 심한 반응을 보이는 민석이.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 아니, 얘가 얘가 뭐한거야."

 엄마는 허겁지겁 베개를 치우면서 보리를 매서운 눈으로 째려보았다.

 " 너가 이렇게 한거야? 왜? 왜?"

 보리는 파리라고 말했다. 엄마는 듣지않았다.

 " 이젠 거짓말까지 하는 거야? 아기한테 이 무슨 짓이야?"

 엄마는 보리의 엉덩이를 때렸다. 보리는 울면서 분명히 말했다.

 " 파리가 민석이 괴롭혀서 그랬어요.."

 

 “ 너가 베개로 누르면 아이가 어떻게 되겠니. 애가 숨 못쉬어서 죽으면 어떻할뻔했어? 엉

  학교들어갈 얘가 그것도 몰라? “

 엄마는 민석이를 안아 달했다. 민석이의 울음이 그쳤는데도 엄마의 야단은 계속되었다.

 “ 나가있어. 애 만지지말고, 누가 손도 안닦고 애 옆에 있으라고 했어?”

 “ 아까 닦았는데...”“ 뭐? 너가 언제 닦아. 난 못봤는데..얼른 가서 닦고와. ”

 

 보리는 목욕탕에 들어가 손을 닦았다. 눈물이 났다. 파리가 앉아서 그런건데...

 ' 아빠...아빠.....'

 보리는 빨리 아빠가 와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 날 저녁 엄마는 아빠와 크게 싸웠다.

 " 나는 당신이 왜 이렇게 보리한테 모질게 대하는지 모르겠어. 그래봐야 저 아이도 어린애아냐. 갑작스레 아이가 태어나고 자기 사랑이 빼앗겼는데 힘들지않겠어.."

 " 나는....민석이가 더 소중해요. 내가 입덧을 하고 내 뱃속에서 발을 차고....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이 엄마라는 감동....동네 여자들이 보리 보면서 무슨 태몽을 꾸었냐. 애 낳을 때 허리가 아팠다는 등 등이 아팠다는 등 다들 경험담을 내놓는데 ...입덫하나 없이 아이를 어떻게 낳았냐고 물어볼 때 어디 숨고싶었는데...이제는 누가한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내 아이.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온 남이 낳은 아이와 절대 같지않아요."

 

 아빠는 기가 막힌 듯 한참을 입을 다물었다.

 " 남이 낳은 아기? 그래. 누가 낳았든 우리가 입양하기로 했고 데리고 왔고 키워왔고 아니. 그럼 당신은 아직까지 보리한데 그런 생각으로 대한거야? 남이 낳은아기?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각오도 없이 그럼 왜 입양을 결정한거야? 어? 저 아이는 장난감이었나?"

 " ....우리 애가 진짜 생길줄 알았나요? 민석이가 .... 민석이가 태어날 줄 알았냐구요.. 당신은 보리하고 민석이가 같아요? 엄마가 뭐라는 줄 아세요? 당신과 나 사이에 자식은 아들 하나래요....나는 그게 무서워요....내가 업둥이를 들여서 민석이가 잘못될까봐... 날 욕해도 할 수 없어요..."

 아빠는 말을 잇지못했다. 그놈의 사주팔자타령도 지긋했다. 용하다는 그 점쟁이 말을 전해 들은 게 10년이 넘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아들 하나라고...

 

 물론 보리와 민석이에 대한 감정이 다르다는 걸 아빠는 부인할 수 없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아내에게는 그 정도냐고 다그쳤지만 본인도 민석이가 태어나고 손과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보리가 왔을 때는 울지않았지만 민석이가 태어난 날...아니 그 전에 아내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 심장이 터질것같아 집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하고 믿기지않아 또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보지않았나?

 책임감과 본능은 다르지만 아내가 그런 식으로 보리를 그동안 키워왔다는 게 기가 막히고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아내와 보리를 같이 두면 안되겠구나..위험해 보리가.

 

 며칠 뒤. 보리는 지방에 계신 외할머니댁에 다시 보내졌다.

 " 보리야...엄마가 아직도 많이 힘들어하니깐...."

 아빠는 보리를 쳐다보다가 울컥해서 말을 잇지못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저도 사랑해주세요...란 간절한 눈빛을 보이는 보리에게 생이별을 강요한다는 게 짐승같았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한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 그래도 집안의 활기가 되고 기쁨이 되고 웃게 만들어 준 보리. 자신에게 달려들며 꼭 껴안던 그 온기. 보리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올 때마다 뽀뽀 세례를 받던 아련한 기억을 누르고 비인간적인 결단을 내려야한다.

 

 아내의 히스테릭한 거부는 그 기한을 알 수 없다. 회사를 가지않고 아내와 보리를 지킬 수도 없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건 부부의 만행을 공개하는 것과 같다.

  고아원으로 되돌려보내는 건 체면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결국 방법은 하나. 혼자 계신 장모님과 함께 있는 거다. 그래도 할머니니깐 아이들 돌볼 수 있지않은가. 아내의 산후우울증도 민석이가 밤낮을 가리게되면 좀 나아지지않을까.

 어찌되었든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그래야 양심의 가책도 덜 느끼니깐.

 아내는 책임감없이 울기만 한다. 산후우울증이라는 게 무섭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기 애를 죽일 수도 있다고 했다.

 민석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게 대하지만 밤낮을 못가리고 울고 잠을 제대로 못자니 그 까칠함이 보리에게 갈 수밖에 없다.

 저녁이면 하루에 있었던 일과를 앵무새처럼 보고하는 아내. 민석이 얘기를 할 때는 사랑이 넘치지만 보리를 이야기하면 눈이 살짝 올라가고 목소리가 까칠해진다.

 민석이를 괴롭혔다란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둘이 같이 있다가는 보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란 결론에 아빠는 보리의 짐을 들었다.

 

 하지만 보리는 느꼈다. 본능적으로 이 집에서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내보려는 걸.

 어쩐지 이 집이 두 번 다시 못 올. 남의 집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애원해도 엄마는 차가운 눈빛. 차가운 말투. 민석이를 가진 이후로 공부에서는 벗어났지만 이제는 존재감도 없는 자신

 

 외할머니가 부지런히 발걸음을 채근한다.

 " 어여 가자. 어여 가. 아이구...어린애가 왜 이렇게 표정이 없을까. 애처럼 울고불고 매달리고 해야지. 애같지않아. 어떤 음흉한 어른이 들어앉았나..."

 궁시렁거리는 할머니의 모든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보리는 집으로부터 한 발 한 발 멀어지는 게 싫었다.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부터

 " 얘냐? 왜 남자애가 아니냐? 왜 기집애를 데리고 왔냐" 란 소리는 천 번이 넘게도 들었던 터라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보리는 아빠가 어린이대공원에서 사준 팔찌를 주머니안에서 계속 만지작거렸다. 미아방지를 위한 전화번호와 이름이 새겨진 팔찌..집에서 나올 때 이것 저것을 쌀 때 제일 먼저 챙긴 거였다. 행여 할머니나 누구에게 빼앗길까봐 차마 밖으로 꺼내지못하는 팔찌...보리는 그 전화번호를 꼭 한번만이라도 읽고싶었다.

 ' 아빠.....아빠 못볼 것 같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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