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진정을 하고 수진과 선우는 병실에 같이 들어왔다.
“근데 제 이름 어떻게 알았어요?”
좀 전까지 울어서 그런 것인지 여전히 두 눈이 빨간 수진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이수진 씨 자켓 주머니에 신분증이랑 체크카드 이렇게 들어있어서 이름은 알아냈죠.”
평소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쓸 일이 많지도 않은 그녀는 지갑이 무거워 주머니에 체크카드와 신분증만 넣고 다녔다.
“근데 제가 강물에 떨어지는 건 어떻게 봤어요?”
“!!”
예상치 못한 질문에 선우는 잠시 당황했다.
“흠흠. 차 운전하고 가다가 봤어.”
헛기침을 하며 대충 둘러댔다.
침대에 앉아 있는 수진이 선우의 눈을 보지 않고 오른손으로 왼손의 손톱만 만지작거렸다.
“고맙다고 말해주길 바라요?”
“그런 거 묻는 의도가 뭐야?”
나약한 인간 같아 보여서 수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도 죽고 싶어?”
“......아직은?”
수진은 멋쩍게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상황에서 웃어보이는 이유는 뭔지.
“왜 그렇게 죽고 싶지?
“......”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이유를 대든 자신을 살린 그에게 납득을 시킬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보호자 불러서 간병해달라고 해요. 휴대폰은 안가지고 있길래 보호자에게 연락을 못했어. 그럼 가보죠. ”
침대 옆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수진이 깨어났고 더 이상 자신이 병실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 저기. 가지 마요!”
자신을 뒤돌아 병실 문을 여는 그를 그녀가 붙잡았다.
“할 말 있나?”
“오늘만! 오늘만 안가면 안돼요?”
수진은 선우의 앞을 두 팔 벌려 막아섰다.
뭘 기대하는 건지 수진이 간절히 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 내 역할은 당신 살리는 걸로 끝난 거 같은데. 이수진 씨 깨어났고. 내가 할 일이 더 남았나?”
“내가 보호자를 부른다고 생각해봐요. 우리 부모님한테 나 두들겨 맞아요!”
“그래서?”
“보호자 안 부를 거니까. 그쪽이 내 간병 좀 해요.”
방금 전까지 손톱만 만지작거리던 여자가 맞나 싶었다.
“뭐?”
어이가 없었다.
“아 몰라! 몰라! 당신이 나 책임져!”
갑자기 바뀐 그녀의 태도에 선우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졌다.
“그쪽이 여기 병실 나가면 내가 그쪽 앞에서 죽을 거예요. 나보고 죽지 말라며!”
수진이 병실의 창문으로 가서 한쪽 발을 내미는 시늉을 했다.
“어어? 가지마. 가지 말라니까요? 나 완전히 발 내민다?”
황당한 수진의 고집스러운 태도에
“후.”
선우는 결국 손을 들었다.
‘그래. 죽으면 안 되긴 하는데...... 어째 뭔가 너한테 코가 단단히 꿰인 거 같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부를 보호자도 없었거니와 또 다시 혼자 남겨진다면 오늘 하루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수진 스스로도 가늠이 안됐다. 아플 때 서럽고 더 외로운 법이었다. 죽었다 깨어난 오늘 병실에 아무도 없이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라도 병실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때마침 잡을 사람이라고는 선우밖에 없어서 ‘필사적’으로 선우를 붙잡았다.
**
“그쪽 이름이 뭐예요?”
대답대신 선우는 지갑을 꺼내 지갑에 꽂아 둔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강선우 씨구나.”
“고마워요. 가지 않고 있어줘서.”
이제야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의지할 곳이 지금 강선우 씨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이왕 산 거 살아야하니까.”
또 죽고 싶거나 힘들면 거기로 와요."
수진이 들고 있는 명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수진을 보며 선우는 내심 마음이 놓였다.
오늘 하루 같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아무 말도 없이 보냈지만 시간은 나름 빠르게 흘러가 밤이 되었다.
어느새 잠들어 있는 수진을 보며 선우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용한 발 걸음으로 병실의 불을 끄고 병실을 나왔다.
그렇게 몇번의 해가 뜨고 졌다.
“나래상담센터......강선우”
수진은 병실 침대에 앉아 그가 주고 간 명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잘 빼입은 정장에 구두, 시계. 그와 너무도 잘 어울리고 그를 빛나게 했었다. 그래서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상담사라고 했다. 상담사라고 하니 뭔가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나저나 그렇게 잘생긴 남자가 심리 상담을 해준다니 상담 받으러 간 사람들 전부 심장 아파 쓰러지지 않을까.
아니, 지금은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다. 어찌 어찌 다시 살아났는데 이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길 잃은 어린아이의 느낌이라고 하면 그녀의 기분을 설명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수진은 가지고 있던 명함을 쓰레기통에 툭하고 던져버렸다. 자신이 하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에 답답할 뿐이지 상담센터를 찾아간다고 뭐가 해결될 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르륵.
흰가운을 입은 의사가 병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 머리에 연한 쌍커풀이 있는 남자였는데 소년과 같은 느낌을 줬다.
“이수진씨 오늘 퇴원하셔도 돼요. 그리고 다시는 그런 나쁜 생각은 하지 마시고. 내 친구가 수진씨 때문에 얼마나 고생한지 알아요?”
진연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친구요?”
“강선우씨요? 강선우씨가 친구예요?
진연은 대답대신 웃으며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뭐야, 둘다 되게 잘생겼네.’
사람은 유유상종이라더니 그게 틀린 말은 아닌가보다.
유일하게 강선우와 다른 게 있다면 이 의사 선생님은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사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감정을 가져야했다. 선택권이 있다면 두 개가 존재했다. 인간을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할 것인지 아니면 모두에게 상냥하게 대할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은 천사 그들의 몫이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힘든 일이 있으면 선우네 상담센터 가봐요. 도움이 될 거예요. 명함 받았죠?”
“아,네. 감사합니다.”
진연의 말에 수진은 대충 대답했다.
진연이 나간 후 수진은 짐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있던 게 아니라서 짐은 별로 없네."
자신의 작은 짐가방을 보며 말했다.
수진은 병실을 나가려 문을 잡았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것일까.
그녀는 문 앞에 서서 잠시 상념에 빠져있었다. 그리곤 다시 뒤를 돌아 그녀 침대 옆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내가 여기에 갈 일은 없을 거 같은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쓰레기통에 손을 뻗어 구겨진 명함을 주워들었다.
“그래 나를 살려줬다니까 밥이라도 사려면 명함은 필요하겠지.”
집 앞에 도착한 수진은 괜스레 밀려오는 씁쓸함에 고개를 저었다.
“요즘은 해가 왜 이렇게 빨리 지는 거야.”
그녀는 캄캄한 자신의 방 창문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가는 길이면 ‘진짜 휴식처’란 생각에 설렌다고들 한다. 그러나 수진에게 집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집을 가도 맞아주는 사람 하나 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아.”
수진은 불도 켜지 않은 방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그래도 병원에 있을 땐 나 혼자라는 생각은 덜 들었는데 여기 오니까 다시 완전히 혼자인 것 같네.”
파도처럼 밀려오는 외로움에 수진은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문득 선우가 생각이 났다.
수진은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명함을 꺼내들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알고 거기 와 있었을까? 왜 나를 구했을까?'
**
“오늘 이수진씨 퇴원했다.”
“어. 그래.”
그게 무슨 별일이냐는 듯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야 별로 안 궁금했나봐?”
“뭐, 딱히?”
선우는 한손에는 맥주캔을 들고 진연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무관심 할 거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린 거래? 난 또 너랑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사연은 무슨. 인간의 죽음이 다가올 때 그 느낌 알지?”
“알긴 알지.”
“그 여자가 보낸 느낌은 분명 ‘죽음’이었는데 느낌이 달랐어. 뭐랄까. 좀 더 묘하고 싸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접해보는 유형의 죽음이었어.”
“응 그래. 너 요즘 피곤해보이더라.”
선우의 저런 반응이 단순히 피로가 쌓여서 감각이 예민해진 결과로 인한 것이었으리라 단정지어버리는 진연이었다.
“됐다.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너 나 말고 얘기할 사람 없지 않냐? 같이 밥 먹을 사람 친구도 없지 않냐?”
진연의 장난 섞인 물음에 선우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모든 사람에게 상냥한 진연은 인간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와 반대의 성향을 가진 선우는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연 한 명뿐이었다. 선우는 괜히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너처럼 인간이랑 친구하면서 항상 감시를 받는 것 보단 내쪽이 오히려 더 편하지."
"인간이란 존재는 쓸모가 없어. 우리에겐."
선우가 진리를 말하듯 했다.
"자존심 상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거 내가 다 들었다."
“안 가냐?”
살짝 짜증 섞인 선우가 말했다.
“괜히 할 말 없으니까. 하여튼 성격 이상해.”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쇼파의 쿠션이 날아가 그의 얼굴을 때렸다.
“알았어. 알았어. 간다 가!”
진연이 입을 삐죽였다.
지이잉 지이잉.
“어? 내거 아닌데? 뭐야, 설마 네 거야?”
‘설마’.
진연의 ‘설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선우의 폰이 한밤중에 울린 적이 있었던가. 더군다나 지금은 새벽1시였다. 그만큼 냉정하고 단호한 선우에게 애정을 주는 이도 없었고 선우를 편하게 대했던 이도 없었다.
선우는 진연의 물음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자신의 폰을 확인하는 선우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이 번호 누군지 모르는데.”
‘잘못 걸린 건가.’
선우는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보세요.”
받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휴대폰 신호음이 오랫동안 울리기에 수진은 그가 안받으려는 줄 알았다.그런데 갑자기 들려오는 그의 나지막한 음성에 수진은 잠시 할말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