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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머금은 열쇠
작가 : 제이벤
작품등록일 : 20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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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유산?
작성일 : 16-10-19     조회 : 508     추천 : 0     분량 : 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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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브라이언은 여전히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찾아온 장기 휴식에 뭘 해야 할지 몰라 밤, 낮 없이 술만 퍼마시고 있었다. 그에게 시간이라는 건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 언제가 낮이고 밤인지 인지하지도 못했다.

 

 너무 오래 누워있어서 인지 브라이언은 허리의 통증을 느꼈고 결국,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곤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휴대전화기를 찾아냈다.

 

 [부재중 10통]

 

 ‘뭐야 이건? 무슨 전화를 10통씩이나 해?’ 브라이언은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브라이언 클랜필드 씨?” 상대방은 전화를 받자마자 브라이언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 누구야? 왜 전화했어?” 브라이언의 말투는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오랜 강력계 형사 생활에서 밴 말투였다.

 

 “저는 변호사 조셉 오언입니다. 하워드 해밀턴 씨의 법적 대리인이지요.”

 

 “변호사? 하워드는 또 누구야? 소송 걸 거면 걸어”

 

 브라이언은 종종 소송이 걸리기도 했다. 워낙 거친 성격 탓에 범인을 잡을 때 몸으로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 전화도 그런 소송 때문에 변호사가 전화했다고 생각했다.

 

 “클랜필드 씨! 소송이 때문이 아니고 유산 상속 문제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지금 만났으면 좋겠는데요?”

 

 “유산 상속? 누가 나한테 유산을 준다는 거야? 야! 너 지금 나한테 장난 치냐? 나 고아야 고아! 엄마, 아빠 없다고”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커졌다.

 

 “장, 장난이라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제가 다 설명해 드릴게요.”

 

 변호사 조셉의 간곡한 요청에 브라이언은 집 근처 커피숍으로 나갔다.

 

 ‘아니 무슨 유산? 천애 고아인 나한테 누가 유산을 상속해? 아! 어떤 쓰레기 같은 자식이 사기 처먹으려고 수작 부리는 거네. 잘 걸렸다. 너 죽었어.’ 브라이언은 현장에서 사기꾼을 검거할 생각이었다.

 

 잠시 후 조셉이 허겁지겁 커피숍의 문을 열고 들어와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브라이언을 알아보고 달려와 인사를 해왔다.

 

 “죄송합니다. 차가 밀려서 조금 늦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이랑 정말 똑같이 생기셨네요. 하하”

 조셉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브라이언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게 풍겨 나오는 분위기에 위축 대곤 하는데 조셉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내 뒷조사도 한 거야? 하긴 요즘 사기 치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남의 돈 먹기가 그리 쉽지 않아. 그런데 직업은 조사 안 했나 봐. 나 경찰이야. 요새는 경찰한테도 사기 치나? 맞아 죽으려고?” 브라이언은 주먹을 쥐어 보이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에이 설마. 또라이 아니고서야. 경찰한테? 아니지, 경찰한테는 사기 칠 거란 생각을 못 하니까 오히려 더 쉬우려나?”

 

 브라이언의 거친 말도 조셉은 여유 있게 받아 넘겼다. 조셉은 나이가 어려도 꽤 숙련된 변호사였다. 흉악범들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단련돼 버렸다.

 

 “어쨌든 말이죠, 저 변호사 맞습니다. 변호사치고 너무 잘생겨서 사람들이 잘 안 믿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명함에 변호사 등록번호를 적어놨습니다. 변호사 협회에 가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조셉은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브라이언은 명함과 조셉을 의심 어린 눈길로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그럼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워드 해밀턴 씨께서 외조카인 브라이언 클랜필드씨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셨습니다.”조셉은 서류 하나를 브라이언 앞에 내려놓았다.

 

 “잠깐, 외조카? 뭔가 착각한 모양이네. 안타깝게도 나 고아야. 부모가 없어. 그런데 삼촌이 있을 리가 있나? 뭔가 잘못 아셨네! 우리 변호사 양반이”

 

 “착각 아닙니다. 브라이언 클랜필드 본인 맞아요. 하워드 해밀턴 씨께서 외삼촌 되십니다. 깜짝 놀라셨죠? 저도 놀랐습니다.” 조셉은 싱긋 웃어 보였다.

 

 “이 자식이 지금 장난하나?” 브라이언은 테이블을 ‘쾅’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경찰은 증거로 얘기하지 않습니까? 변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요! 증거!” 조셉은 재빨리 브라이언의 눈앞에 유전자 검사표를 내밀었다.

 

 “이게 모계 혈족 확인검사입니다. 하워드 해밀턴 씨와 브라이언 클랜필드 씨는 모계 쪽으로 혈족 관계가 맞으십니다.”

 

 “이런 거 검사 하려면 그 머리카락이나 칫솔, 그런 게 필요하잖아. 내 샘플을 어떻게 구해서 이걸 검사해?” 브라이언은 형사답게 날카로웠다.

 

 “아~ 상당히 난처한 질문을…. 역시 형사”

 

 조셉은 엄지손가락을 펴보았다. 하지만 구겨지는 브라이언의 얼굴에 손가락을 슬며시 도로 접었다.

 

 “사실은 사람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담배꽁초를…. 하하하. 담배를 하도 많이 피우셔서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경찰한테 사람을 붙였다라…. 배짱은 마음에 드네. 좋아, 하워드 해밀턴? 그분이 내 외삼촌이라고 쳐, 33년 만에 찾은 조카를 보러 직접 오시지 않고 어째서 변호사를 보낸 거야?”

 

 브라이언은 아직도 사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유전자 검사지를 조작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 종이 쪼가리 하나 내민다고 믿을 만큼 브라이언은 어리숙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한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조셉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조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아!” 브라이언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당황했다.

 

 ‘뭐야? 내가 그린 그림은 이게 아닌데…. 외삼촌이라고 나타나서 엄마 얘기하며 눈물, 콧물 한바탕 쏟고 그 다음에 힘든 집안 사정에 대해 말하며 돈을 뜯어낼 궁리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벌써 죽었다고?’

 

 브라이언이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에 조셉은 브라이언이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건강하실 때 두 분이 만나셨다면 좋았을 텐데. 제가 조금만 빨리 클랜필드 씨를 찾기만 했어도…. 정말 죄송합니다.”

 

 “나한테 정말 외삼촌이 있었단 말이야?”

 

 브라이언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피를 나눈 누군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기분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묘했다.

 

 조셉은 이런저런 서류를 내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어떠한 절차로 유산상속이 진행되는지 필요한 서류는 무엇인지 차근차근 이야기했지만 브라이언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돌아가셨다는 외삼촌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꽉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필요한 건 다 말씀드린 것 같네요. 자세한 건 차차 하도록 하죠! 저와 자주 만나시게 될 테니까요.”

 

 브라이언은 점점 멀어지는 조셉의 뒷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한없이 보고 있었다. 지금 벌어지는 이 모든 일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멍하니 앉아만 있던 브라이언은 전해 받은 서류들을 들고 평소 자주 가는 펍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존과 산드라가 먼저 와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존과 산드라는 브라이언과 함께 경찰 생활을 시작한 동기들이었다. 브라이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친구이자 동료였다.

 

 “이 자식 집에서 쉬더니 얼굴 좋아진 거 봐. 완전 살이 올랐어.” 존이 브라이언의 볼을 잡고 쭉 늘리면서 말했다.

 

 “이 자식이 죽으려고” 브라이언은 존의 손을 ‘탁’ 치며 신경질을 냈다.

 

 “까불지 말고 이거나 봐봐. 아까 변호사가 주고 가더라.” 브라이언은 서류를 존에게 ‘툭’하고 던졌다.

 

 “뭐야? 또 소송 당했어? 와~ 이걸로 5번째야. 아주 기록을 세우겠어. 이러다가” 산드라가 한숨을 막 내쉬면서 서류를 열어 확인하기 시작했다.

 

 “윌 팀장님 아시면 또 쓰러지시겠네…. 이번엔 뭐야? 저번처럼 피의자 때려서 이빨 나갔어? 아니면 수갑 채운다고 팔 부러뜨린 건가? 엄청난 거 아니면 이제 놀랍지도 않는데…. 이번 건 무슨 소송이야?” 존이 산드라에게 물었다.

 

 “브랜한테 유산 상속을 한다는데? 하워드 해밀턴이란 사람이” 산드라가 말했다.

 

 “뭔 소리야? 유산? 하워드 해밀턴은 또 누구야?” 존이 물었다.

 

 “내 외삼촌이라는 사람”

 

 브라이언의 말에 존과 산드라는 놀란 눈으로 동시에 브라이언을 바라보았다.

 

 “33년 동안 핏줄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혈혈단신인 줄 알았는데…. 하~ 이 사람이 내 외삼촌이래.” 브라이언도 아직은 믿어지지 않는지 덤덤하게 말했다.

 

 “정말이야? 어디 계셔? 만나봤어? 어떻게 찾은 거야?” 존이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한 달 전에 돌아가셨데” 브라이언은 맥주를 들이켜며 말했다.

 

 “아~” 존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산드라에게 구조의 눈빛을 보냈다.

 

 “조금만 빨리 찾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산드라가 말했다.

 

 “지금 이런 말 하면 좀 그렇긴 한데…. 이 사람이 외삼촌인 건 확실한 거야?” 존이 의구심을 가지며 말했다. 33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 외삼촌이라고 하면 누구든 의심할 일이기도 했고 형사이기에 더 그랬다.

 

 “여기 유전자 검사한 서류 있어.” 산드라가 존의 얼굴에 종이를 들이밀며 말했다.

 

 “혈족 관계 맞네. 외삼촌을 찾았으니 축하할 일인 건 맞지? 아니지, 돌아가셨으니까 위로를 해야 하는 건가?” 존이 미간을 찌푸리면 고민에 빠졌다.

 

 “그럼 외삼촌 재산이 너에게 상속된다는 거야? 그분은 자녀가 없으시데?” 산드라가 물었다.

 

 “결혼을 안 하셨어. 내가 유일한 혈족이래. 내가 상속받지 않으면 어디 단체에 기부가 되나 봐”

 

 “알고 봤더니 엄청나게 부자 외삼촌인 거 아니야? 상속되는 게 뭔데?” 존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저택이랑 그 저택에 딸린 ‘바’”

 

 “저택만 시가가 5억이 넘어! 직위 해제 6개월 맞더니 하늘에서 로또가 굴러들어 오는구나!” 산드라가 서류를 보며 말했다.

 

 “직위 해제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열불나니까” 브라이언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 저택은 어디 있는 건데?” 존이 물었다.

 

 “힐덴이라는 곳. 찾아보니 저 남부의 시골이더라”

 

 “시골이면 어때 팔아버리면 되지. 오늘 술은 네가 다 사라! 난 위스키 마신다” 존은 기분 좋게 술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 조항 뭐야? 유산을 상속받으려면 6개월을 이 저택에서 살면서 바를 경영해야 한다고 쓰여 있는데?” 산드라가 물었다. 정보 분석가답게 그녀는 주어진 서류를 아주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맞아! 6개월을 내가 거기 가서 살아야 유산을 상속받는다는군.”

 

 브라이언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 이상하면서 묘했다.

 

 “잘됐네. 직위해제 되어서 할 일도 없었는데, 시기도 딱 맞아. 가서 6개월 짱 박혀 있다가 6개월 뒤에 유산 상속받으면서 복직하면 되겠네. 안 그래도 너 여기 있다가는 슬금슬금 수사하는데 나타날까 봐 내가 아주 걱정이 태산이었다.” 존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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