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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머금은 열쇠
작가 : 제이벤
작품등록일 : 20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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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미친 여자
작성일 : 16-10-20     조회 : 429     추천 : 0     분량 : 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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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사는 얼른 달려와 여성을 일으켜 세우고 휴지를 건네며 다독거렸다. 그리곤 브라이언을 보면서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당장 와서 다시 앉으라는 표시였다.

 

 ‘후~’

 

 브라이언은 한숨을 크게 내뱉으며 결국 다시 중년 여성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아줌마. 혹시 렘샤이트 출신이십니까? 그럼 뭐 날 알 수도 있죠. 내가 렘샤이트 강력 범죄 검거율 1위에 빛나는 형사였으니” 브라이언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에요. 나는 클레베에서 왔어요.” 중년 여성은 서서히 눈물이 멈춰가고 있었다.

 

 “클레베라면 최북단에 있는? 거기서 힐덴까지 오셨단 말이에요? 완전 끝과 끝인 데다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서 10시간도 더 걸렸을 텐데….”리사가 놀라며 말했다.

 

 10시간도 더 걸려 만나러 왔다는 소리에도 브라이언은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자 리사가 옆으로 와서 옆구리를 찌르곤 잠시 자기와 이야기하자는 눈짓을 해 보였다. 브라이언은 마지못해 리사를 따라 옆자리로 옮겼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장님 찾아 왔잖아요. 상냥히 얘기 좀 들어줘요.”

 

 “나 저 아줌마 몰라!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리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계속 헛소리만 하잖아. ”

 

 “사장님, 경찰이잖아요. 경찰의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온 걸 수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 골드 바의 신조는 여기 오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거예요. 못하겠으면 유산 포기하고 당장 짐 싸요!” 리사가 무섭게 말했다.

 

 “내가 진짜, 내가 진짜”

 

 브라이언은 이를 악물면서 참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산드라가 말했던 ‘시가가 5억 이래!’ 라는 말이 연속 재생되고 있었다.

 

 브라이언은 중년 여성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가 거칠게 의자를 꺼내 앉았다. 리사에게 보이는 반항의 표현이었다.

 

 “아들이 뭐? 어쨌다고요?” 브라이언이 중년의 여성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파일이었다. 브라이언은 서류를 열어 보았다. 10살의 미소가 환한 남자아이의 사진이 제일 앞에 놓여있었다.

 

 “아드님이세요?” 어느새 리사가 브라이언 뒤에 와서 사진을 보고 있었다.

 

 “네, 아주 착하고 예의 바르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죠. 그런데 10살이 때…. 자세한 건 내 입으로 말하지 못하겠군요. 거기에 내가 모은 자료가 있어요.” 중년 여성은 다시 눈물이 터져버렸다.

 

 브라이언은 사건의 파일을 꼼꼼히 보기 시작했다. 그는 뼛속까지 형사였기에 사건이 눈앞에 있으니 무섭도록 집중했다.

 

 “1992년 집 근처 쓰레기통에서 검은 봉투에 쌓인 채 발견, 사인은 질식사. 결국, 범인은 못 잡았고 미제로 종결.” 브라이언은 혼잣말처럼 사건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는 사건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중요한 부분은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이 있었다.

 

 “아주머니, 24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고 벌써 오래전에 종결된 사건입니다. 별다른 건 없어 보이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해주길 바라세요?” 브라이언의 눈은 상당히 싸늘했다.

 

 형사 생활을 10년간 해오면서 범인을 잡지 못하고 결국 수사가 종결된 사건을 수도 없이 봐왔다. 그때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형사들에게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수사를 요구하며 괴롭히기도 했다. 그럴 때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했다. 계속 피해자 가족들에게 끌려 다니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약속대로 살려주세요. 내 아들을….” 중년의 여성은 브라이언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죽은 아들을 어떻게 살립니까? 그리고 내가 약속을 했다는데 난 당신을 만난 적도 없어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브라이언은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골드 바 안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리사는 이 중년의 여성에게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사장을 따라가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우물쭈물 거렸다.

 

 그때 중년의 여성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걸 저분에게 전해 주시겠어요?”

 

 리사는 종이를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씩씩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브라이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나 참, 기가 막혀서 1992년에 죽은 아들을 내가 무슨 수로 살려내라는 거야. 내가 이제는 저런 정신 나간 여자까지 상대해야 해?’

 

 브라이언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숨겨 두었던 담배를 찾았다. 이런 황당한 때에는 담배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 어디 갔어? 분명 여기다 두었는데….’

 

 브라이언은 침대 매트릭스 밑에다가 담배 한 갑을 리사 몰래 숨겨두었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담배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마을 금연 시범 마을인데…. 설마 지금 담배 찾으세요?” 리사가 방문 앞에 서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브라이언은 마지막으로 숨겨둔 담배를 리사가 가져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쳇, 인생에 도움이 안 돼! ’ 브라이언은 매트릭스 속을 뒤지던 손을 뺐다.

 

 “자요! 이거 전해 달래요.” 리사는 반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을 브라이언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언제까지 이 정신 나간 여자의 놀음에 장단 맞춰줘야 하는지 모르겠네….”

 

 브라이언은 리사를 쏘아보면서 종이를 펴보았다. 한참을 읽던 브라이언은 갑자기 눈빛이 싹 변했다.

 

 “이걸 그 여자가 줬다고? 이 여자 지금 어디 있어?”

 

 브라이언은 리사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골드 바로 달려 나갔다. 중년의 여자는 바 입구에 서서 브라이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날 그랬거든. 당신이 분명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거라고. 그러면 그 글을 보여주라고”

 

 “당신 누구야? 누군데 이 이야기를 알아? 이 세상에서 이건 나밖에 모르는 거라고!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알아?” 브라이언은 흥분해서 여자의 어깨를 잡고 막 흔들었다.

 

 “당신이 직접 내 앞에서 이 글을 적어서 줬으니까. 오늘 2016년 3월 24일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당신이 날 몰라본다면 전해 주라며 바로 당신이 나에게 준거라고.”

 

 “내가 당신에게 이걸 적어서 줬다고? 내가?”

 

 브라이언은 종이를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종이를 들고 있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 필체가 맞는데…. 미치겠네.’ 브라이언은 혼란에 휩싸였다.

 

 “당신이 7살, 칼 고아원에 있을 때 원장님이 너무 때려서 복수하겠다는 마음에 원장님이 아끼는 만년필을 훔쳐서 고아원 뒤편에 있는 호두나무 아래 묻었어. 그리고 그 모습을 수잔이 봤지. 원장은 모든 아이를 모아놓고 범인을 잡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결국 잡지 못했지. 당신과 수잔은 원장에게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즐거워하며 20살이 되어 고아원을 나갈 때 만년필을 꺼내자고 약속했지. 하지만 수잔은….”

 

 “됐어 그만.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브라이언은 수잔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상기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 날 언제 만났다고 했지? 내가 이 쪽지를 언제 줬냐고?”

 

 “1992년”

 

 “헛! 1992년? 이봐요. 아줌마. 그때 내 나이가 몇인 줄 알아요? 나 9살이었습니다.” 브라이언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니, 1992년 나에게 와서 이 종이를 전해준 사람은 지금의 당신이었어. 키하며 얼굴, 목소리까지 똑같아. 당신이 확실해!” 중년 여성의 눈빛은 조금의 망설임도 의심도 없이 또렷했다.

 

 “악! 미쳐 버리겠네. 내가 고아원 때 있었던 일을 어떻게 아는지 그리고 내 필체로 적힌 이 종이를 어떻게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요. 1992년에는 내가 9살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33살의 내가 1992년도에 어떻게 있어요?” 브라이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브라이언의 고함을 듣고 리사가 얼른 달려 나왔다.

 

 “사장님, 손님 놀라시게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요?” 리사는 브라이언의 등을 ‘짝’ 소리 나게 세게 쳤다.

 

 ‘아, 리사 진짜! 여자만 아니면 내가 진짜 패주겠는데….’ 브라이언은 온몸으로 쫙 퍼지는 따가운 고통에 소리 없이 등을 비비 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무래도 내일 다시 오시는 게 좋겠어요. 근처에 숙소가 있어요. 오늘은 거기 가서 쉬세요.” 리사는 중년의 여성을 모시고 근처의 숙소로 향했다.

 

 가는 내내 중년의 여성은 안 보일 때까지 브라이언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브라이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이 깃들여 있었다.

 

 ‘미친 여자가 틀림없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1992년이면 내가 9살이라고. 9살!’ 브라이언은 어이없어 했다.

 

 ‘근데 이 종이는 뭐야? 만년필 이야기는 나와 수잔 밖에 모르는데…. 내가 이걸 적었다고? 내 손으로?’

 

 브라이언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 종이를 작성한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자신의 필체와 자신만 아는 이야기, 누군가 이 종이를 작성했다면 그건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브라이언의 눈에 중년의 여자가 주었던 파일이 들어왔다. 그는 이 파일을 집어 들었다.

 

 ‘그 여자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이 사건을 파헤쳐주길 원하는 건가? 이런 거지같은 기분에는 위스키 한잔 마셔야 되는데….’

 

 브라이언은 위스키 한잔 정도 마신다고 리사가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리사가 자리를 비운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빨리 컵에 따르고는 사건 파일을 들고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는 정말 사장님이나 회장님이 앉을 것 같은 위엄 있으면서도 편안한 의자가 놓여있었다. 그래서 브라이언은 이 의자에 다리 올리고 앉아서 신문이나 책 등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증거도 없고 그렇다고 당시에 감식을 지금처럼 철저하게 한 것도 아니고 아무리 다시 봐도 이건 미제야. 방법이 없어.’

 

 브라이언은 눈물이 맺힌 여자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 한쪽이 착잡해졌다.

 

 ‘경찰에 다른 기록이 남아 있으려나?’

 

 브라이언은 휴대전화를 들어 산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빠, 그러니 1분 안에 끝내!” 산드라가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쓸데없이 안부를 물으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전화 스타일이었다.

 

 “1992년 클레베에서 살해돼 집 근처 쓰레기통에 사체가 유기된 10살짜리 남아. 마이클 엘리엇에 대해서 알아봐 줘. 최대한 빠르게”

 

 “야!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지금 직위 해제 중이다! 딴 짓하는 거면”

 

 “아~그런 거 아니야. 힐덴 유일의 초호화 바 사장으로서 최고의 경영을 하는 데 필요한 거야. 이 시골에도 베테랑 형사 브라이언에 대한 소문이 낫는지 너도 나도 몰려 들어서”

 

 “헛소리 들어줄 시간 없어. 1분 끝” 산드라는 1분이 지나자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

 

 ‘1분 안됐는데….이씨’ 브라이언은 끊긴 전화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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