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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머금은 열쇠
작가 : 제이벤
작품등록일 : 20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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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1992년도라고?
작성일 : 16-10-20     조회 : 465     추천 : 1     분량 : 5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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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서 리사의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위스키 마셨죠? 몰래 마셨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와~ 병마다 체크를 해놓나? 잰 또 어떻게 알았데?’

 

 브라이언은 불이 나게 뛰어나갔다. 리사는 눈에 불을 켜고 짐 싸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댔고 브라이언은 그녀를 달래느라 진을 뺐다.

 

 ‘내가 진짜 별짓을 다 한다. 6개월이다. 6개월만 참자!’ 브라이언은 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간신히 리사를 진정시킨 브라이언은 진이 쫙 빠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산드라가 자료를 좀 찾아봤을까?’

 

 브라이언은 전화하려고 휴대전화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 아까 서재에 두고 왔구나!’

 

 브라이언은 서재로 가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잠겨 버린 것인지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았다.

 

 “뭐야? 잠긴 건가? 별개다 말썽이네. 리사, 여기 서재 문 잠겼어!” 브라이언은 밖에 있는 리사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서재 문 원래 잘 잠겨요. 문 앞 탁자 서랍에 열쇠 있으니 그걸로 여세요~” 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가 보네’

 

 브라이언은 쉽게 탁자 서랍에서 열쇠 하나를 찾았다. 그리고 바로 서재의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브라이언은 뭔가 살짝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순간이었지만 깜깜한 방에 들어온 듯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밝은 빛이 브라이언의 눈을 강타했다. 그는 눈이 부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이봐 청년! 여기 서서 뭐하는 거야? 길은 왜 막고 서 있어?”

 

 브라이언의 귀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70대의 할머니가 마트 카트를 끌고 브라이언 앞에 서 있었다.

 

 “비키라는 말 안 들려?” 할머니는 브라이언을 카트로 막 밀었다.

 

 브라이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옆으로 비켜섰다.

 

 ‘내가, 내가 서재로 들어갔는데…. 근데 여긴’ 브라이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파프리카, 당근, 오이 등의 채소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오렌지, 사과 등이 있었다. 저 멀리 닭고기, 돼지고기 등이 있는 냉장고도 보였다.

 

 ‘여기 마트잖아!’ 브라이언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혹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방금 브라이언을 카트로 밀고 지나갔던 할머니가 어느새 다시 돌아와 있었다. 카트에는 닭고기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아니 이 청년 아직도 여기에 서 있네? 비키라니까”

 

 “저기 할머니, 여기 어디에요?” 브라이언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여기 마트잖아. 멀쩡하게 생겨서 어디가 아픈 건지…. 자기가 어디 있는 주도 몰라, 쯧쯧쯧” 할머니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렇죠, 마트긴 마트인데. 이상하다? 힐덴에는 이런 마트가 없는데….”

 

 “힐덴? 거긴 또 어디야? 여긴 클레베야.” 할머니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브라이언을 쳐다보며 말했다.

 

 ‘클레베? 클레베라고? 여기가? 뭐야? 순간이동을 한 거야? 뭐야?’

 

 브라이언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두려워졌다. 범인을 쫓으며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도 두려움이라는 것 모르는 저돌적으로 돌진하던 그였는데 지금은 모든 상황이 무서웠다.

 

 그래도 말 몇 마디 나눈 할머니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브라이언은 할머니의 뒤를 졸졸 쫓아서 마트에서 나왔다.

 

 마트 입구에는 커다란 광고판이 세워져 있었다.

 

 [클레베 최대, 최고의 마트! 원 마트!]

 

 ‘진짜 클레베란 말이야? 내가 여길 도대체 어떻게 온 거야? 순간이동이야? 뭐야? 난 분명히 서재에 있었는데….’ 브라이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당히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구식 자동차들, 거리 곳곳에 있는 공중전화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낯설었다.

 

 ‘헛것이 보이는 건가? 술 취한 것도 아니고 이거 뭐야?’

 

 브라이언은 심각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헛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생생했다.

 

 브라이언의 눈에 몇몇 사람들이 가게 앞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뭡니까?” 브라이언이 옆에 남자에게 물었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요. 지금 막 시작했소.” 남자가 대답했다.

 

 “동계 올림픽? 올해가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해였던가? 아닌데…. 18년에 하는데” 브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친구 어디 산에서 왔나? 올해 맞소. 92년 프랑스 동계 올림픽!” 남자가 이상한 눈빛으로 브라이언을 훑어봤다.

 

 “92년이요? 1992년? 지금이 1992년이라고?” 브라이언은 남자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물었다.

 

 남자는 놀라서 고개를 아래위로 막 흔들었다. 그리고 슬쩍 자리를 피해버렸다.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브라이언은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모든 신경 세포가 멈춰 버린 것 같았다.

 

 ‘형사의 판단으로 지금 상황을 정리해 보면 그러니깐 내가 열쇠로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바로 1992년도의 클레베라는 건데….내가 미친 거지? 이게 말이 돼?’

 

  브라이언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신의 과거로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좋아! 그냥 과거로 왔다고 쳐. 말도 안 되지만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92년도의 클레베지? 다른 곳도 많은데 왜? 왜 여기냐고?’

 

 브라이언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곤 그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하! 1992년도 클레베와 관련 있는 게 하나 있었네. 조금 전 나를 찾아왔던 그 여자! 여자의 아들이 1992년도에 죽었어. 여기 클레베에서’

 

 브라이언은 자신에게 벌어진 이 이상한 사건의 작은 실마리 하나를 붙잡았다.

 

 ‘아니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그 여자 때문에 내가 과거로 왔다는 게 말이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 몰래카메라 같은 건가? 예전에 그런 영화도 있었는데? 인생 자체가 몰래카메라로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이었던. 뭐 그런 거 아니야? 리사가 이 세트장 어디서 보고 있고’

 

 브라이언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과거에 와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믿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곳이 정말 1992년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브라이언의 눈에 공중전화 박스가 들어왔다.

 

 ‘전화?! 전화번호라…. 젠장! 기억하는 번호가 하나도 없어. 와~ 나 바본가? 으~ 번호!’

 

 브라이언은 한참 동안 기억을 뒤져 번호 하나를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92년도에도 번호가 그대로 일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이언은 거침없이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뒤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렘샤이프 형사 1팀 진 에드워드입니다.” 앳된 목소리의 남자였다.

 

 “진 에드워드…. 국장님?” 브라이언은 놀라서 외쳤다.

 

 브라이언이 전화한 곳은 렘샤이브 형사과 사무실이었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번호가 사무실 번호였다.

 

 “국장님 찾으십니까? 그럼 전화를 잘못하셨습니다. 여기는 형사 1팀입니다. “진은 차분하게 말했다.

 

 “야? 막내 뭐야?” 걸걸한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누군가 진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국장님 찾는 전화입니다.” 진은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그럼 국장실로 하라고 해! 우리가 국장 비선가? 왜 여기로 전화해서 국장을 찾아!” 남자는 심기가 불편한듯했다.

 

 “죄송합니다.” 진이 또 크게 외쳤다.

 

 브라이언은 멍하니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뭐야? 진 에드워드 국장님이 막내라고? 막내? 목소리는 국장님이 확실한데…. 여기가 정말 92년도란 말이야?’

 

 브라이언이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진 에드워드는 여러 차례 브라이언을 부르고 있었다.

 

 “저기요? 제 말 들리세요? 안 들려요? 이봐요!” 진은 전화기에 대고 브라이언을 애타게 불렀다.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던 브라이언은 대뜸 진에게 물었다.

 

 “저기요! 혹시 딸 이름이 새라 맞아요?”

 

 브라이언의 질문에 진은 대답이 없었다. 잠시 침묵 후에 고함이 터져 나왔다.

 

 “너 이 새끼 누구야? 배 속에 있는 애 이름은 네가 어떻게 알아? 너 이 새끼! 너 뭐야? 스토커야?”

 

 분노에 찬 진의 목소리에 브라이언은 놀라서 전화를 그냥 끊어버렸다.

 

 ‘성질 더러운 건 여전하네. 그나저나 새라가 92년도 겨울에 태어났으니…. 그러니까 저 남자는 진 에드워드 국장의 젊은 시절이라고. 와~ 미치겠네…. 내가 정말 92년도에? 정말 그 여자 때문에 과거로 왔다는 거야? 왜? 그 여자 아들 마이클 엘리엇 때문에? 그럼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있으면 되는 건가? 돌아갈 수는 있는 거야? 설마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브라이언의 머리에는 여러 질문이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브라이언은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었다. 갈 곳도 해야 할 일도 아무것도 없었다.

 

 ‘잠깐만, 92년도면 외삼촌도 살아 있는 거 아니야? 그럼 내가 전화를 하면 통화를 할 수 있는 건가?’ 브라이언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죽은 삼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브라이언은 다시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전화기를 들었다.

 

 ‘골드 바로 전화하면 되겠지!’ 브라이언은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갈수록 브라이언의 긴장감은 점점 더 커졌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손을 옷에 문질렀다. 땀이 났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로 전달되었다.

 

 “골드 바죠?” 브라이언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브라이언은 전화상대자의 목소리가 왠지 낯설지 않다고 느꼈다.

 

 “하워드 해밀턴 씨 부탁합니다.” 브라이언이 말했다.

 

 한동안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저기요! 하워드 해밀턴 씨 안 계십니까?” 브라이언이 재차 물었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 마이클 엘리엇한테나 집중해! 잘못하다가는 늦어 버릴 거야.” 남자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그대로 끊어버렸다.

 

 “뭐? 이봐! 이봐?” 브라이언은 끊긴 전화를 붙잡고 불러댔다.

 

 ‘ 뭐야? 이 자식이 마이클 엘리엇을 어떻게 알아? 설마 내가 누군지 아는 거야? 그래, 이 자식은 내가 마이클 엘리엇 때문에 과거로 온 걸 아는 거야! 이게 말이 돼?’

 

 브라이언은 다시 골드 바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조차 가지 않았다. 전화선을 빼놓은 모양이었다. 브라이언은 몇 번 전화를 더 걸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화가 난 그는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전화 부스에서 나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러니까 92년 과거로 내가 왔는데…. 92년도에 사는 어떤 사람이 2016년의 내가 이곳에 올 줄 알았다고? 미치겠네’

 

 브라이언은 머리카락을 꽉 움켜잡았다.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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